[어른들을 위한 동화] 혹
김경숙
“할머니, 이모는?”
내가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물었더니 할머니는 화를 벌컥 냈다.
“어째 이모부터 찾냐? 학교 다녀왔습니다 하고 인사부터 해야지.”
할머니는 기분이 좋지 않은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투덜거렸다.
“수술을 해 줬어야 했는데. 어휴, 영감 말만 듣고 멀쩡한 딸을 늙히네, 늙혀. 얼굴에 칼 대면 사람 구실 못할 팔자라니. 그런 게 어디 있다고. 내가 어두워서 그래.”
순이 이모의 턱에는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 한 혹이 있다. 혹은 툭 튀어 나와 있는데 실핏줄 때문에 파르스름하게 보일 때도 있다. 어렸을 때부터 봐서 그런지 나는 이모의 혹이 아무렇지도 않다. 혹이 있든 없든 나는 순이 이모가 참 좋다. 이모는 엄마의 언니인데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랑 이모랑 이렇게 셋이 산다.
이모는 어디에 간 걸까. 마침 이모가 대문으로 들어섰다. 나는 한눈에 이모의 머리 모양이 바뀐 걸 알아보았다.
“내일 우리 다연이 초등학교 첫 참관수업인데 그냥 가면 안 되지.”
할머니가 나에게 말했다.
“얼른 들어가서 숙제나 해라.”
할머니가 숙제나 하라고 할 때는 이유가 있다. 이모랑 비밀 얘기를 하려는 거다. 할머니랑 이모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궁금해서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숙제를 하는 척했다.
할머니가 이모에게 말했다.
“시간 맞춰서 나가면 돼. 그 쪽도 다 사정이 있다더라. 제발 이번엔 에미 말 좀 들어.”
“다연이 참관수업 날인데, 하필이면 왜 그때 선을 보자고 하는 거야?”
이모의 대꾸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모, 선 봐?”
할머니가 쥐어박듯 대답했다.
“그럼. 언제까지 혼자 살아? 좋은 사람 만나서 아들 딸 낳고 자알 살아야지.”
“난 이모 선보는 거 싫어, 결혼하는 거 싫어.”
느닷없이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알았어. 이모 선 안 볼게.”
이모가 나를 안아주며 말했다. 이모한테서 낯선 파마약 냄새가 났다. 왠지 마음이 불안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할머니가 가슴을 쳤다.
“얘가 또 말썽이네. 이것아, 넌 이모가 불쌍하지도 않냐? 시집도 못 가고 저렇게 사는 게. 나 죽고 너 시집가면 이모는 어쩌라고.”
“난 시집 안가. 이모랑 살 거야.”
그러자 할머니의 목소리가 감기에 걸렸을 때처럼 맹맹해졌다.
“쯧쯧, 어린 것이 어미 정을 모르고 자라서…….”
할머니 말은 늘 듣는 노랫소리처럼 익숙했다. 코끝이 싸해지면서 슬픈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말하는 어미 정은 엄청 슬픈 건가 보다.
참관 수업이 있는 날, 이모가 다른 엄마들과 함께 교실에 들어왔다. 나는 이모한테 손을 살짝 흔들었다. 이모가 나에게 함빡 웃어주었다.
옆에 있던 짝꿍이 물었다.
“너네 엄마 얼굴에 그거, 혹부리 할아버지한테 있는 그 혹 맞지?”
“우리 엄마 아니야.”
그 뒤로 나는 이모와 눈을 맞출 수가 없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이모한테 혹이 있는 게 창피해졌다. 게다가 오늘따라 이모의 혹이 유난히 튀어나온 것처럼 보였다. 이모가 나한테 아는 척을 할까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참관수업이 끝나기 전에 이모가 교실 밖으로 나갔다. 휴, 다행이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할머니한테 투정을 부렸다.
“할머니, 이모 혹 수술 해줘. 혹 때문에 창피하단 말이야.”
“철없는 것아. 이모가 들으면 얼마나 속이 아프겠냐?”
어리광 부리듯 말했는데 할머니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마음을 몰라주는 할머니가 야속하고 또 이모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모는 혼자가 아니었다. 옆에 얼굴이 검붉은 아저씨가 서 있었다.
이모가 할머니에게 말했다.
“엄마, 준호 오빠 알지?”
“준호? 예전에 옆집 살던 그 준호. 이게 얼마 만인가? 그래, 어른들은 건강하시고?”
할머니는 준호 아저씨를 무척 반겼다.
“그만그만하십니다. 그렇잖아도 연락이 끊어져서 어떻게 사시는지 궁금하다고 가끔 말씀하셨는데요.”
나는 준호 아저씨를 반기는 할머니가, 또 얼굴을 붉히는 이모가 불안했다. 셋이 친한 게 싫었다. 왠지 나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할머니가 아저씨 손을 잡은 채 마루로 끌며 이모에게 과일을 내오라고 했다.
한참 동안 이런저런 나누다가 할머니가 느닷없이 말했다.
“선보러 나온 사람이 자네라니? 얘기 들었지? 우리 둘째가 교통사고로 …….”
아저씨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할머니 옆에 딱 붙어 앉아 아저씨한테 물었다.
“우리 이모 혹 있는데 그래도 이모가 좋아요?”
과일 쟁반을 내려놓는 이모의 어깨가 움찔했다. 아저씨는 그냥 허허 웃었다.
“너, 혹 있어도 느네 이모 예쁘다는 거 알지?”
아저씨 대답은 이모가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할머니가 거봉 한 알을 떼어 내 입안에다가 밀어 넣었다.
“어른한테 버릇없이 군다.”
다시 거봉을 뱉어낸 나는 손톱으로 껍질을 조금씩 살살 벗겨냈다. 손에 묻은 포도즙을 쪽쪽 빨며 준호 아저씨를 올려다봤다.
“우리 이모랑 결혼하면 남들이 혹 있는 부인이랑 산다고 놀릴걸요.”
이모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할머니가 허둥지둥 또 거봉 한 알을 떼어 입에 넣어주었다. 아저씨에게 혹이 있는데도 정말 이모가 좋은 거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거봉을 껍질째 꿀떡 삼켰다. 그런데 거봉이 목에 딱 걸려버렸다. 아무리 애를 써도 뱉어지지 않았다.
내가 목을 잡고 켁켁거리니까 할머니랑 이모가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했다.
할머니가 등을 두들기고 이모는 허겁지겁 물을 한 컵 떠왔다. 나는 점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픽 쓰러졌는데 눈앞이 흐릿해졌다. 별안간 아저씨가 나를 거꾸로 들고 마구 흔들었다. 몸이 들썩이다가 어느 순간 목에서 커다란 포도송이가 툭 튀어나왔다. 눈물, 콧물, 침이 줄줄 흘러내렸다. 창피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다. 이모가 나를 끌어안고 등을 쓸어주었다. 나는 이모의 품으로 파고들어 울다가 언제인지 모르게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이모가 옆에 누워 있었다. 손을 뻗어 이모의 머리칼을 만졌다. 곱슬곱슬한 머릿결을 손가락으로 빙빙 감았다.
“이모. 아저씨가 나 살려준 거지?”
“응.”
“아저씨는 이모 혹이 아무렇지도 않은가봐. 이모더러 혹 수술하라고 안 그러겠지.”
이모가 내 볼을 살짝 꼬집었다.
“으휴, 네가 진짜 귀여운 혹인 거 알아?”
내가 이모한테 혹처럼 딱 붙어있는 걸 좋아하듯, 이모도 아저씨 옆에 있고 싶은 거다. 게다가 아저씨는 나한테 벌써 이모부 노릇을 톡톡히 했다. 문득 밖에서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잠 없는 할머니가 약수터에 다녀오시나 보다. 할머니 뒤를 졸래졸래 따라온 날이 환하게 밝아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