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정상회의를 잘 치렀다는 것 자체가 제겐 포상입니다”
한 평생을 현장에서 보낸 老경찰서장의 목소리와 향기에 대하여
꿀풀과의 관목인 백리향(百里香). 그 이름의 유래를 두고 다들 ‘향기가 백리까지 이른다’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산길을 가다 발 끝에 묻은 향기가 백리를 가도록 계속 이어진다’라고 풀이하는 게 바르다. 어쨌든 그 향기의 오묘함과 신비스러움을 설명하는 데는 손색없는 이름이다. 그런데 백리를 넘어 천리만리에서도 맡을 수 있는 향기가 있다. 바로 사람의 향기다. 누구나 각자의 향기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다른 이들의 입과 가슴에 묻어 그 먼 길을 날아다닌다. 혹자는 이를 인품이라 하는데, 그 향기가 어찌나 짙은 지 몇 백 년의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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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서울정상회의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습니다. 이 행사의 치안을 총괄했던 서울강남경찰서의 역할 또한 훌륭했는데, 준비기간 동안 쏟아 부은 노고에 대한 대외적인 격려가 소홀하지는 않았는지요.
G20정상회의 서울 유치 발표를 듣는 순간 강남구에 있는 코엑스가 회의장소로 정해질 것이라 예상하고 조용하면서도 치밀하게 준비했습니다. 강남지역 지하에 있는 지하철 공사장을 비롯해 공동구, 하수구, 심지어 맨홀까지 샅샅이 점검하고 각국 정상들이 묵을 숙소와 이동로 및 행사장 반경 일정 거리 안에 있는 모든 시설을 점검했습니다. 행사가 임박할수록 사소한 시설조차 점검을 반복하다보니 ‘이런 시설도 있구나!’하며 스스로 놀란 적이 있을 정도로 복잡하고 거미줄 같은 구조로 이뤄져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더욱 치밀하게 준비했지요. 어쨌든 성공적으로 개최되어 국격 향상에 일조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는 평생 기억에 남을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행사 이후에 정부를 비롯해 경찰지휘부, 유관기관장은 물론 많은 시민들께서 강남경찰서의 노고에 대해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지난 12월20일에는 반기문 UN 사무총장님께서 “세계 여러 행사에 참석해 봤지만 이번 ‘서울 정상회의’ 만큼 안전하고 세련된 행사는 경험해 보지 못했다”며 친필서신까지 보내주셨습니다. 이는 서장인 저를 비롯해 강남경찰서 직원 모두에게 큰 보람을 안겨줬습니다.
다양한 국제행사 및 국민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신 경험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행사나 에피소드가 많이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AST, IPU, 레이건 대통령과 로마교황의 방한 행사가 기억에 남습니다. 경복궁에서 독립문까지 그리고 이대 입구에서 프라자호텔까지 지하철 공사장 지하를 직접 걸어서 점검했고, 한강에 있는 대교 상판과 교각 그리고 여의도광장 지하공동구까지 점검하고 봉인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국제행사의 경호와 경비를 담당했습니다만,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된다”라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기에 긴장된 근무의 연속이었습니다.
고품격 치안서비스를 표방하며 지역의 치안안정을 위해 애쓰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강남경찰서만의 치안유지 노하우가 있다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치안은 경찰의 힘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게 제가 가진 소신입니다. 안전하고 평온한 지역 치안을 지역치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신고와 협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경찰서의 문턱을 낮춰 주민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주민들의 신고나 민원을 기다리지 않고 ‘찾아가는 이동 경찰서’나 ‘주민간담회’, ‘치안설명회’ 등을 통해 제가 직접 주민들을 찾아가 경찰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여쭙고, 여러 진솔한 말씀을 듣곤 하지요. 그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는 일일이 카드로 기록해 두고 지속적으로 챙겨나가고 있습니다.
이를 ‘주민의견수렴카드’로 제도화 했는데, 서장이나 참모가 바뀌더라도 후임자가 해당 민원의 처리과정을 지속적으로 챙길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는 강남경찰서에 부임한 이후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예전에 함안경찰서장과 여주경찰서장으로 근무할 당시부터 꾸준하게 해 왔던 일이기에 이제 제게는 습관화 된 일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직접 현장을 뛰면서 자연스럽게 깨달았던 것은 경찰서와 서장이 주민들에게 다가갈수록 신뢰가 더욱 커진다는 사실입니다. 발품을 파는 만큼 주민들이 사랑해주시니 신이 안 날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기본적으로 주민들을 위한 서비스이기도 하지만, 강남경찰서 직원들이 시민들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기 위한 노력이라는 점에서 더욱 애착을 가지고 진행하고 있는 일입니다.
취임 만 2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남다른 사명감과 부담이 있으셨으리라 여겨집니다. 지난 2년을 회고하시면서 드는 생각들이 많으시지요.
제가 강남경찰서에 부임했을 당시 관내 안마시술소 비리사건 등으로 경찰서 전체 분위기가 어수선했습니다. 외부에서 강남경찰서를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았고요. 이러한 시기에 저를 강남경찰서로 보낸 지휘부의 의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결국 ‘나로 하여금 이곳을 안정시키고 올곧게 세우라’는 뜻이라 풀이하고 본격적인 실천에 돌입했습니다. 우선 대폭의 쇄신인사를 단행해 근무분위기를 전환시켰지요. 유착비리 만큼은 일체의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직원들의 의식전환을 위해 부단히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지요. 이제는 어디에 내놔도 최고의 직원이라고 자부합니다. 경찰서를 쇄신하는 과정에서 마음고생을 했고, G20정상회의를 준비하는 동안 몸 고생도 많았는데, 연일 계속되는 야간근무에도 불구하고 각종 동원에 흔쾌히 동참해 준 직원들이 참 고맙고 사랑스럽습니다.
쉴 새 없이 열정을 쏟으셨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눈부신 성과를 거두셨는데, 이에 합당한 상이라도 받으셔야 하는 게 아닙니까
물론 G20정상회의가 성공적으로 끝나자 주변에서 승진에 대한 덕담을 해주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제게 승진이나 포상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몇 개월을 버티기 힘들다는 강남경찰서장을 2년여 간 재임할 수 있었다는 것과 그 기간 G20정상회의라는 범국가적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경찰서장이라는 자부심으로 만족합니다. 36년 동안의 경찰생활 중 강남경찰서장으로 일했던 지난 2년이 가장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전국적으로 흉악한 사건사고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이에 대한 원망과 비판이 일선 경찰관들에게만 너무 집중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제가 처음 경찰관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4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림자처럼 따라붙은 격무와 박봉은 크게 나아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경찰관은 예나지금이나 매우 높은 사명감을 필요로 하는 직업이지요. 다만, 밤새워 일하고 온갖 위험한 상황과 마주해야 하는 일인 만큼 이에 합당한 보수와 수당이 지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만성적인 예산부족으로 실제 일한 수당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정책적으로 해결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너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다는 어려움도 겪고 있습니다. 해마다 112 신고사건은 폭증하고 있는데 인력충원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로써 경찰관 1인당 담당하는 치안수요가 증가하게 되는데 이는 시민들의 안전과도 직결되는 문제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고 봅니다. 이 모든 것은 경찰관들이 좀 더 편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싶어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저 열심히 일한 만큼 칭찬해 주시고, 대우해 주시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실현된다면 때론 목숨까지 걸며 치안유지에 애쓰는 저희들의 사명감이 더욱 단단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10년은 경찰창설 65주년이 되는 해였다. 안병정 서장은 전경으로 근무했던 3년을 빼더라도 36년을 경찰관으로 살았다. 그 기나긴 세월을 짚어보면 가히 우리 경찰역사의 살아 있는 역사라 할 만하다. 안 서장은 처음 경찰관으로 근무를 시작할 당시와 비교하면 국민들의 가치관이나 의식은 매우 성숙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경찰의 조직과 근무환경 역시 변화하고 발전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것은 “밤샘과 위험에 대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현실과 “경찰관은 당연히 밤을 새워 일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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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안 서장의 이야기는 결코 불평이나 불만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정년을 앞둔 老경찰관이 신산스러웠으나 자랑스러웠던 자신의 지난날에 대한 회고였으며, 부하이자 동료이며 또한 가족이기도 한 후배 경찰관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이런 안병정 서장의 모습을 보며 소담스러운 백리향 꽃송이와 거대한 나무 한 그루를 떠올렸다. 주민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귀 기울였던 그의 마음은 따뜻한 향기로 다가왔고, 결코 녹록치 않았을 현장을 지켜온 그의 세월은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으로 여겨진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