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운 방년의 청춘을 다시 한 번 맞이하는 중입니다”
생각과 행동과 습관과 성격을 바꿔 결국 운명을 바꿔내다
![]() | ||
예로부터 갓을 쓰기 시작하는 스무 살 무렵의 나이를 약관(弱冠)이라 했고 그 직전인 열여덟 살 무렵의 나이를 방년(芳年)이라 했다. 꽃다울 방[芳]. 열여덟 살은 그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곱고 향기로운 나이이다. 청춘은 꾸미지 않아도 멋이 흐르고, 얼굴에 먹칠을 해도 빛이 나는 법이다. 그것은 누구나 딱 한 번씩 받는 삶의 선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 방년의 나이를 다시 한 번 살아가는 이가 있다. 현대자동차 김칠석 부장이 바로 그 주인공. 그는 고객과 자동차 그리고 땀과 함께하는 또 다른 인생을 살아왔다. 그 세월이 어느덧 18년 7개월. 두 번째의 방년을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천직(天職), 하늘이 내린 직업
1986년 상경했던 청년 김칠석.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이 연이어 개최되던 그 무렵, 그는 낯설고 드넓은 서울 땅에서 둥지를 틀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치러야 했던 삶의 신산스러움은 현대자동차에 입사하기 위한 수업료였는지 모르겠다고 회상했다. 그 청년은 이제 18년 7개월 경력의 현대자동차 버팀목으로 온전히 자리 잡았다.
“입사 초기에는 몸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일과 중 미팅 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 이상씩 걸어 다녔습니다. 저녁마다 다리가 퉁퉁 부어서 잠을 이룰 수 없을 지경이었지요. 하지만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 쌩쌩했습니다. 고객을 만날 수 있다면 물이나 불 속까지 걸어갈 각오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이런 점에서 제가 현대자동차에서 보낸 세월은 또 다른 삶이라 부를 만하지요.”
시간과 하루와 일주일과 한 달이 차곡차곡 쌓여 세월이 된다. 그 은근한 눌림은 무엇이든 느슨하게 만들어 놓기 마련이다. 제 아무리 열정적이고 혈기가 왕성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팽팽하던 팬티의 고무줄처럼 늘어져 버리거나, 짓눌린 정부미(政府米)처럼 기름기가 빠져 푸석푸석해지기도 한다. 물론 혹자는 그것을 여유라 하고, 연륜이라 하기도 하지만 김 부장이 보내고 있는 오늘은 조금 달라 보였다.
“성동지점에서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드는 시간까지 고객과 자동차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지요.”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회사나 사회에서의 위치나 환경이 많이 바뀌었고, 근무여건 또한 한결 나아졌다. 일과를 조금 느슨하게 꾸려나가고, 여유를 부려도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김 부장의 하루는 18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18년 전 다리가 퉁퉁 붓도록 걸어 다녔던 나날들이 엊그제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그 때의 마음처럼 여전히 고객과 자동차에 대한 일과 생각만으로 저는 충분히 행복하거든요.”
거대한 야망 때문에 시작한 일이 아니었던 까닭이다. 그저 사람을 만나고 자동차를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이 일을 선택했다. 그 후 가지게 된 꿈과 희망들은 순전히 그 뒤를 따라온 부산물일 뿐이었다. 이는 그가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않고 현장과 호흡하며 고객을 만날 수 있는 힘의 근원이기도 하다.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장인’이라 하고, 그들이 가진 직업을 ‘천직’이라 부른다.
신차를 접하거나 고객을 만날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린다는 김칠석 부장. 그의 사람들 이야기, 자동차 이야기에서는 묘한 열기와 전율이 전해져 왔다. 또한 이야기를 이어가는 모습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그에게 있어서 자동차 판매는 천직, 하늘이 내린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용광로에 몸을 던지듯 살아온 세월
“서울을 기회의 땅이라 여겼습니다. 넓은 만큼 활동할 수 있는 무대가 넉넉하고, 사람이 많은 만큼 만날 수 있는 고객도 넘쳐난다는 뜻이니까요. 하지만 기회가 많을수록 부담해야 하는 위험과 외로움은 대단했습니다. 때론 이 땅이 용광로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니까요.”
혹독하게 단련된 검(劍)은 더욱 날카롭고 쓸모 있는 법이다. 김 부장이 보낸 막막함과 외로움이 그를 단련시켰고, 그에게는 온전히 실력과 우직함으로 남았다. 머리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부르면 반사적으로 몸이 먼저 움직이는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명절 아침에 전화를 한 통 받은 적이 있습니다. 마침 차례를 지내려던 참이었는데, 엔진 이상으로 거리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도움을 요청하는 고객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길로 집을 나서서 급한 상황을 처리한 뒤 다시 돌아와 보니 차례를 지낸 가족들이 식사를 하고 있더군요.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함께 식사를 하며 즐겁게 명절을 보냈습니다.”
가족들에게 있어서 김 부장의 그런 모습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그의 지독한 고객사랑은 마치 오래 입어 몸에 딱 맞는 셔츠처럼 익숙한 일상의 한 도막이었던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얼굴은 가족이다. 그 자연스러움은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오랜 세월 마주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야 가능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가 고객을 향해 ‘가족’이라 부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였다.
평생을 갚아야 할 ‘따뜻한 빚’
아무리 고객과 자동차를 사랑한다고 해도 그 오랜 세월을 한 곳에서 머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랑과 그것을 실천하는 대상이나 공간은 꼭 일치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건과 환경에 따라 손쉽게 직업과 직장을 바꾸는 세상인데, 그는 18년이 넘도록 한 자리를 우직하게 지키고 있다.
이에 대해 김칠석 부장은 “따뜻한 빚을 갚아나가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짧게 대답했다. 빚은 결코 따뜻할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차갑고, 매서우며, 또한 무거운 것이 바로 빚이 아니던가. 하지만 그는 굳이 그것을 ‘따뜻하다’고 표현했다.
“지금은 두 분 다 돌아가셨지만 입사 초기에
![]() | ||
세계를 누비며 유수의 명차들과 겨루는 현대자동차의 명성과 자존심도 그를 이끌어 준 단단한 힘이 되어 주었다. 더구나 그는 지난 18년 동안 회사의 명암을 그 누구보다도 똑똑히 확인했다. 그래서 더욱 떠날 수 없다고 했다. 우수한 인재와 나날이 수준을 높이고 있는 기술력이 세계 무대에서 더욱 밝게 빛나리라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성격이 바뀌고, 성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성공을 멀리서만 찾으려고 하는데, 가장 가까운 곳, 현재하고 있는 것에 성공의 비밀이 숨어 있음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막바지에 그가 덧붙인 이 이야기가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왔던 것은 그가 여전히 도전을 멈추지 않는 ‘방년의 현대차동차맨’임을 확신했던 까닭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