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가진 문화재, ‘보존수복가’가 치료한다
(주)세종문화재연구소, 회화문화재 모사제작 및 보존처리 위한 설비 완비
“우리가 모사(模寫)를 하거나 과학기술을 이용해 기록을 하는 원화(原畵)는 이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리 세밀하게 모사를 제작한다 해도,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원화가 아닌 이상 다른 어떤 것으로도 원화를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말은 모사제작 전문가가 논문을 통해 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는 또 말한다. 모사제작은 문화재에 사용되어진 전통 재료와 기법을 연구하고, 이것을 후세에 전하고 남겨야 하며, 문화재를 대신해 전시하고 문화재를 보호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고. 대신 할 수는 없지만 원래의 것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 그것이 바로 모사인 것이다.
문화재는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순간에도 유기체처럼 항상 변화하고 또 언젠가는 없어지고 마는 인간과 유사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병이 들었을 때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처럼 문화재 역시도 훼손의 위기에 처했을 때 치료가 필요하다. 이때 문화재가 더 이상 손상되지 않도록 치료하는 사람을 일컬어 ‘문화재 보존수복가’라고 부른다.
2006년 통도사에 있는 영산전 다보탑 벽화의 현상 모사제작 작업을 시작해 2009년 12월까지, 약 4년 간의 작업 기간을 거쳐 작품을 완성, 통도사에서 성공적으로 전시를 마친 (주)세종문화재연구소 김 민 소장은 최근 각광받고 있는 문화재 보존수복가다.
‘문화재 보존수복가’라는 직업이 많은 이들에게는 생소하지만 김 민 소장은 일찌감치 이 길에 발을 들여놓았다. 1998년 일본 교토시립예술대학에서 문화재 보존 및 모사제작을 전공, 석사에 이어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그는 유학 시절 주로 동양회화문화재의 모사 제작을 통해 작품에 사용된 전통 재료와 기법의 습득과 연구에 힘을 쏟았다. 동시에 김 소장은 역사적인 고증을 통한 연구, 과학적인 분석과 실험에 의한 연구도 병행, 작품에 대한 다각적인 연구를 실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연구열을 불태운 결과, 박사 학위 취득 시에는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최우수논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김 소장이지만 그가 처음부터 문화재에 관심을 두고 이 분야에 뛰어든 건 아니었다. 창작을 위해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재료와 기법에 대해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어 시작했던 것이 창작뿐 아니라 회화문화재 관련 각종 프로젝트와 심포지엄, 대학의 교단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현재 일본 교토대학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가 하면 한국전통문화학교 연수원, 전남대학교 회화문화재의 재료와 기법, 모사제작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문화재의 보존수복가가 되기 위해서는 대상 문화재의 인문사회적인 이해, 과학적인 분석, 예술적 표현기술 능력과 함께 작품에 대한 양심적 태도가 중요하다. 즉, 작품의 표면만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작품에 사용된 재료와 기법, 작품이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 원 작가의 화풍 독화(讀畵) 등 다각적인 능력이 요구된다”고 말하는 김 소장. 그는 이어 “한국의 회화문화재 중 대다수의 작품이 불교회화이기 때문에 단순한 미술품으로의 접근이 아니라 종교적 대상물로서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김 소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선친의 뒤를 이어 불교미술에 종사해오고 있는 정무훈 대표와 뜻을 같이해 경상남도 김해에 (주)세종문화재연구소를 설립했다. 연구소에서는 회화문화재의 모사제작 및 보존처리와 더불어 우리 고유의 단청과 불교회화 제작이 가능하도록 설비는 물론 연구원까지 완비,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최근에는 문화재를 단순히 유물로 평가하는 것에서 넘어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서의 가치도 주목받고 있다. 이에 문화재를 연구·개발하려는 움직임이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연구소가 설립되었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는 김 소장. 한 사람으로의 능력이라고는 도무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들을 해내고 있는 그이지만 지금 당장은 국민대학교와 경도대학 간 ‘한지의 E-라이브러리화’ 프로젝트와 12월18일부터 오는 2011년 1월31일까지 통도사 성보 박물관에서 전시될 ‘拈華-모사에서 창작으로’라는 주제의 개인전 준비에 여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