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중독 진단

2005-06-23     글/정숙경 기자
몸망치는 지름길, '맞춤 운동법' 알고 뛰세요
운동 후 희열감 마약 기운과 비슷…안 쉬다 결국 몸 망가져

스포츠 인구가 확산하면서 '죽자 사자' 운동에 매달리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운동 양과 시간에서 운동선수가 무색할 지경이다. 그러나 운동 역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긍정적인 면이 크지만 지나치면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 스포츠의학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운동중독은 무엇이며, 내게 맞는 적절한 운동량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본다.

'운동을 하면 행복하다?'
회사원 김모(44)씨는 2년째 매일 새벽 등산을 한 후에 출근을 한다. 그러던 중 최근 무릎 통증이 있어 병원을 찾은 결과 초기 관절염 진단을 받았다. 무릎 관절을 혹사했기 때문이다. 등산을 잠시 쉬라는 의사의 충고가 있었지만 그는 무릎에 붙이는 소염진통제로 통증을 견뎌내면서 매일 등산을 강행한다. 하루라도 등산을 하지 않으면 왠지 일손을 잡을 수 없기 때
문이다. 최근 '웰빙'과 마라톤 등 운동 열풍이 불면서 운동중독자들도 덩달아 늘고 있다. 운동을 안 하면 불안·초조 등 금단현상이 나타나고, 운동에 집착함으로써 사회활동에 지장 받고 자기 조절 능력에도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바로 '운동중독' 증상이다.

운동은 인체의 반복 행위인 만큼 노동처럼 고통과 지루함을 수반한다. 그런데도 왜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날까. 이들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것은 미국에서 운동 붐이 일어난 1970년대 초이다. 이전까진 특별한 목적 없이 혼자 달리는 사람은 범죄용의자로 의심받기까지 했다.
연구 결과 운동을 지속하게 만드는 몇 가지 생리적 배경이 밝혀졌다.
첫째는 격렬한 운동 후엔 긴장과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는 것. 특히 우울증이나 자신감이 낮은 사람에게 이런 현상은 뚜렷했다. 둘째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일명 '엑서사이즈 하이'라고도 하는 이 현상이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 거의 모두가 운동 중 또는 운동 후에 기분이 매우 좋아진다고 말한다. 특히 달리기가 그렇다. 마라톤을 30분 이상하면 '최상의 행복감'에 젖게 되는데 이는 마치 마약을 하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비슷한 의식 상태나 행복감에 비유된다.
실제로 이런 현상은 운동시 증가하는 '베타 엔돌핀'의 영향 때문이다. '베타 엔돌핀'은 우리 몸에서 생성되는 신경물질로 마약과 화학구조가 유사하다. '베타 엔돌핀'은 운동시에 일반적으로 5배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되며, 그 효과는 일반 진통제 수십 배에 달한다.
운동을 하면 그 외에도 다양한 체내 마약성 물질들이 증가한다. 이 같은 현상은 운동시 생성되는 젖산 등 피로물질의 축적과 관절의 통증을 감소시키기 위한 체내 보상작용인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최상의 행복감'에 중독성이 있다는 데 있다. '베타 엔돌핀' 등이 최고조에 이른 상태를 경험한 사람들은 이런 희열을 다시 느끼기 위해서 운동에 빠져들게 되
는 것이다.

운동중독 무엇이 문제인가

운동중독에 빠지면 우선 금단증상을 느끼게 된다. 바빠서 하루라도 운동을 못하면 불안하거나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또 희열감을 느끼기 위해 지칠 때까지 운동을 하게 되고, 계속적으로 운동량을 늘려나간다. 더 나아가서는 운동 중 심한 통증이 발생하거나 질환이 나타났는데도 무리하게 운동을 지속하게 된다. 나중에는 스스로 운동을 중단하거나 운동량을 줄이려고 해도 뜻대로 되지 않게 된다. 한국체육학회지(2003년)의 단국대 강신욱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생활체육 참가자 1121명을 대상으로 운동행태를 조사한 결과 전체의 7.4%가 운동중독자로 나타났다. 본인 스스로 운동중독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31.4%로 조사됐다. 이들은 대개 가족이나 대인관계보다 본인의 운동 스케줄을 우선시한다. 이 때문에 가족들이 운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생긴다.
장년층에서는 매일 등산을 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 경우 앞쪽 정강이에 피로 골절이 생기는 것이 대표적인 운동중독 부작용이다. 다리를 무리하게 사용하면 정강이뼈에 지속적으로 압력이 가해지고 결국은 뼈에 금이 가는 것이다. 축구에 중독된 사람은 운동 중 발목과 정강이에 부상을 입고도 축구를 계속하는 경우도 흔하다. 마라톤 동호인 중에는 발바닥 근육과
근막에 염증이 생겼는데도 쉬지 않고 달리는 경우도 많다. 길거리 농구에 빠진 청소년 중에는 무릎 인대에 염증이 생겼는데도 운동을 쉬지 않으며, 인라인스케이트는 무릎 연골 파열, 골프는 팔꿈치 인대 염증이 있어도 계속 운동을 하게 된다.
이처럼 운동중독은 신체 과사용으로 인한 질병을 야기하고 그 상태를 악화시킨다. 근육이나 인대를 다치면 당분간 쉬면서 회복을 기다려야 하지만 운동중독자들은 통증만 견딜 만하면 바로 다시 운동을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손상된 근육과 인대는 회복할 사이도 없이 망가지게 되는 것이다.


당신도 예외는 아니다
육체노동을 많이 한 사람이 빨리 늙듯 스포츠 수준으로 지나친 운동을 하면 몸의 세포들이 에너지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유해산소가 형성되어 노화를 촉진시킨다. 중년 이후에는 유해산소를 억제하는 항산화 효소 생성력이 떨어지므로, 30대 이후에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이 스포츠 수준으로 운동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근육과 관절의 통증 등 퇴행성 질환을
앞당겨 겪기도 쉽다. 강도 높은 운동을 뒤늦게 시작한 사람들이 '이틀만 쉬어도 몸이 찌뿌듯하고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역시 '운동 중독'으로 좋지 않은 신호다. 엔도르핀의 과잉분비가 몸의 이상을 감지하는 감각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하고 나면 피곤하다는 느낌이 들거나, 할 때 너무 힘이 들면 운동을 100%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운동은 노동처럼 하면 안 된다. '운동 능력은 사선이 아니라 계단식으로 향상된다'는 통설도 스포츠 선수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다.
'운동'을 하려는 사람들은 적정 수준을 넘지 않아야 하며, 점진적으로 강도를 늘려나가고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스포츠의학 전문가들은 가벼운 운동이라도 규칙적으로 2∼3개월 계속하면 100% 운동의존증이 생긴다고 지적한다. 등산 또는 매일 3㎞를 걷는 것만으로도 이런 현상이 생긴다는 것.
이런 의존성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안될 뿐이지 상태는 마약보다 심하다. 운동을 거르면 불안, 초조, 신경과민, 불쾌감이 생긴다면 이미 이 단계에 들어간 사람이다. 상태가 더 악화하면 운동이 일상생활의 중심이 된다. 과사용 부위가 고통으로 '비명'을 질러대도 운동을 계속하고, 사회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운동에 탐닉한다. 궂은 날씨나 위험한 환경에서도 운동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이들의 특성. 문제는 운동에 대한 내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다른 중독과 마찬가지로 운동강도를 계속 여야 행복감을 유
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존증은 모든 운동종목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가장 강도가 높은 것은 역시 달리기. 상대가 있는 운동은 일정한 룰이 있고, 경기 내용도 상대적이지만 달리기는 자신과의 기록 싸움이기 때문. 운동목표(거리×시간)를 정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기록을 경신한다는 점에서 가장 격렬한 운동이다.

내게 적당한 운동은

운동중독은 긍정적인 면이 많다. 우선 지루하고 고통스런 운동을 규칙적으로 할 수 있게 하는 동기를 부여한다. 운동을 하지 않아 성인병에 걸리는 것보다 운동 부작용이 오히려 이롭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그렇다면 과유불급의 부작용을 줄이고 이점만을 취하려면 어느 정도 운동을 해야 할까.
첫째는 자신의 운동 목적을 파악해야 한다. 스포츠 선수 또는 비만을 개선하는 목적이 아니라면 건강을 유지하는 정도의 운동량이 적당하다. 주 3∼5회, 1회에 1시간 이내에서 운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는 운동종목을 바꿔보는 것이다. 달리기만 하던 사람은 근력강화 운동이나 수영 등 다른 종목을 섞어보자. 최근 몸짱 아줌마 열풍 때문에 매일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는 사람이 많지만 이는 잘못된 습관. 근육은 운동 후 48시간 쉬게 해야 피로도를 줄이고, 볼륨도 커진다.
셋째는 몸의 경고 증상에 귀 기울이라는 것. 운동중독에 빠지면 인대가 늘어나고 뼈에 무리가 가도 운동을 계속해야 직성이 풀린다. 결국 피로골절까지 간 뒤 운동을 포기하는 사태에 이르기도 한다. 따라서 반드시 의사의 권고를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넷째, 과훈련 증후군 증상이 나타나면 즉각 운동을 쉬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 과훈련 증후군이란 평상시 부하로 운동을 해도 경기성적은 떨어지고, 만성피로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현상. 이때 '정신력으로 극복하자'며 강박적으로 운동하는 것은 스스로 몸과 마음을 망치는 길이다. 건강을 유지하는 정도의 운동량이 적당하다. 1시간 이내에서 운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 격렬한 운동을 한 다음날에는 휴식을 두거나 운동 강도를 줄이는 것이 좋다. 따라서 운동중독을 예방하려면 정기적으로 스포츠의학 클리닉을 찾아 현재 하는 운동이 자신에게 맞는 운동인지, 강도는 적절한지, 과도한 운동 등으로 신체질환이 발생했는지 등을 체크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건강 검진을 받듯 정기적으로 스포츠 검진을 받아 자신의 건강에 맞는 운동 처방을 받는 것이 좋다.
또한 운동을 할 때 목표 달성을 이루는 식의 비장한 각오로 임하지 말고 재미로 즐겨야 한다. 운동을 생활화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으로 생활이 망가지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 스포츠의학 전문가들의 충고다.

내 몸에 맞는 운동 고르기
이상적인 운동은 유산소운동 70%+근력운동 25%+유연성 강화운동 5%를 기본으로 각자 체질과 체형에 맞게 비율과 강도를 조절해 매일 하는 것이 좋다. 내게 맞는 운동을 찾으려면 ▲질병의 유무 ▲체력 상태(나이와 체형, 직업, 출산 경험 등을 모두 포함) ▲자각적 느낌을 종합해야 한다.
체력 상태를 점검하려면 운동부하 검사를 하거나 피트니스 클럽에서 체성분 검사를 해보는 것이 좋지만 일상생활 속에서도 간단한 점검은 가능하다. 계단을 오를 때 몸의 변화에 주목해보라. 다리도 아프고 숨도 차서 더 이상 못 걷겠다는 느낌이 들면 단순한 운동 부족이지만, 다리가 아픈 느낌이 더 강하면 근 골격계 강화운동, 숨이 찬 느낌이 더 강하면 심폐기능을 강화하는 유산소 운동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유연성을 기르기 위한 스트레칭은 운동을 시작할 때와 끝낼 때 반드시 해야 한다.
자기 몸의 운동능력을 측정하는 지표로 심박수가 곧잘 쓰인다. 심폐기능을 향상시키려면 최대 심박수(220-나이)의 70∼85%로, 체중감량을 원하면 60∼70%, 초보자는 50∼60%로 운동하면 된다. 운동을 해서 심장이 튼튼해지면 같은 강도의 운동에서 심박수가 감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