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노리는 ‘무색, 무취의 무미의 묘약’
불법 최음제 유통 방지, 성욕해소에 대한 사회적 대안 마련해야
섹스(Sex) 즉 ‘사랑의 행위’는 연인 또는 부부 사이에 육체로 나눌 수 있는 최고의 유희이자 서로에 대한 선물이이다. 다만 철저히 사랑을 전제로 해야 하고 상대의 의사가 존중받아야 한다. 돈이나 물질을 매개로 한 행위는 매춘이 되며, 상대가 원하지 않는 강제행위는 그 자체가 폭력이다. 여성이 남성에게 가하는 성폭력이나 매춘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로 남성이 여성에게 행하는 성폭력이 압도적으로 많은 추세다. 그것은 여성이 아직 사회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약자에 머물러 있는 까닭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폭력이 꼭 힘에 의한 강압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른바 ‘최음제’로 통칭하는 불법 약물을 통해 은밀하고 비밀스럽게 이루어지기도 한다.
‘돼지발정제’의 섬칫한 오용과 은밀한 유통
지난 10월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양승조 민주당 의원은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장에서 “최음 성분이 담긴 돼지발정제나 말발정제가 관리부서도 없이 사각지대에서 불법유통이 이루어지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발정제는 가축의 증산이나 우량종자 관리를 위해 사용되는 약제인데, 이 같은 동물용 발정제가 일부 유흥가와 청소년 사이에서 최음제로 인식돼 은밀히 유통되는 한편 광범위하게 오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양 의원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돼지발정제의 경우 농어촌 가축병원을 비롯해 동대문, 청량리, 용산 등 전국 곳곳의 성인용품점에서 유통되고 있다. 가격은 2만 원에서 50만 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것으로 파악됐다.
돼지발정제 등은 동물용 의약품이라 보건복지부나 식약청 소관이 아니다. 농림수산식품부나 수의과학검역원 역시 별도의 인허가 품목이 아니라는 이유로 관리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런 제도적인 허점으로 인해 동물용 발정제가 어느 정도 수입되는지, 국내 유통량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정확한 실태조차 확인되지 않는 상황이다.
양 의원은 “이러한 동물용 발정제를 음료나 술 등에 섞어 사람이 섭취하면 극도의 무기력증이 일어나는데, 특히 이로 인해 여성들이 성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돼지발정제는 강한 중독성과 의존성을 보이는 마약으로 볼 수는 없지만,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이성을 마비시키고 성적 흥분을 유도하는 성분이기 때문에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당연히 지정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실제 돼지발정제를 먹어본 여성들은 한결같이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스껍다”고 호소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돼지발정제를 사람이 먹었을 경우 “생리불순이나 유산의 위험이 높고 섭취량이 지나칠 경우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최음제’를 가장한 다양한 마약도 나돌아
사실 지난 국감에서 불거진 ‘돼지발정제’ 논란은 새삼스러운 사회문제가 아니다. 일부 유흥가와 호색한(好色漢) 사이에서 암암리에 유통되어 오남용이 이뤄져 왔다. 문제는 일부 클럽, 카바레 등 불특정 다수의 남녀가 어울려 유흥을 즐기는 공간에서 상대 여성을 강간할 목적으로 음료나 술에 몰래 타 먹이는 이른바 ‘퐁당수법’으로 한 때 물의를 빚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일부 유흥업소 웨이터가 직접 이 수법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고.
더욱 심각한 것은 이 과정에서 돼지발정제를 비롯한 최음제는 물론 마약까지 섭취하게 되는 경우도 있어 마약중독자로 전락하게 된 사례도 심심치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퐁당수법’으로 마약이 섞인 술을 마시게 될 경우 각성효과가 일어나 술에 잘 취하지 않다는 점에 주목해 일부 유흥업소에서 이 같은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퐁당수법’에 빠진 사람은 그만큼 술을 많이 마시게 되고 이는 곧 매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물뽕’이라고 불리는 신종 마약 GHB는 성범죄에 악용될 수 있는 최음제의 일종이다. 무색무취로의 투명한 액상의 이 마약은 몇 방울을 음료에 타서 마시는 것만으로도 20분 내에 효과가 나타나 3~4시간 지속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약효가 빠르게 나타나는 탓에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을 수 있고, 약에 취한 동안 일어난 일에 대한 기억을 잃게 된다.
이러한 ‘물뽕’이 강간의 도구로 활용되는 것은 약물성분이 24시간 내에 체내에서 빠져나가 증거를 찾기가 힘들고 피해사실을 인지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피해자가 당시 기억을 잃은 터라 구체적인 범죄사실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일부 유흥업소와 성범죄자들 사이에서 ‘물뽕’이 화제가 된 후 심지어 ‘가짜 물뽕’도 등장했다. 식염수나 콘택트렌즈 세척액을 ‘물뽕’이라 속여 팔다 덜미를 잡히는 한편 이와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저렴한 최음제를 고가에 속여 파는 사례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대부분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는 이러한 신종 마약은 작은 병이나 앰플 하나에 많게는 수십만 원까지 값이 매겨졌지만 불티나게 팔려나갔다고 한다.
한편 검찰은 마약류 관리 특례법에 따라 “실제 마약이 아니라더라도 마약인 줄 알고 구입했다면 명백히 처벌받게 된다”고 밝히고 “실제 ‘물뽕’ 또한 이러한 경로로 유통될 수 있으므로 철저히 단속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성욕 해소에 대한 사회적 대안은 없는가
물론 정부당국이 적극적인 단속과 대책 마련을 통해 마약류에 가까운 불법 약물의 유통 방지에 힘써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단속과 처벌만이 능사라고 할 수도 없다.
전통적으로 유교사상이 팽배한 우리 사회에서 유독 성(性)에 대한 부분을 금기시 해 왔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인간의 5대 욕구 중 하나인 성욕이 감추고 부끄러워해야 하는 불온하고 불결한 감정으로 매도되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최근에 와서 이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방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지만, 학교 등에서 공식적이고 효율적인 성교육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한 것도 최근의 일이다. 이에 더해 인터넷을 통해 음란 동영상 등이 무분별하게 유포됨에 따라 주로 청소년을 중심으로 잘못된 성 의식과 성관계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자리 잡게 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여성을 상품화하며 인신매매, 성 착취 등 온갖 불법의 온상이었던 매춘을 적극적으로 단속하는 일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합법적으로 성욕을 해소하거나 아예 억제시킬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것도 이러한 범죄 확산에 한 몫을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단속과 처벌이 강해질수록 성욕해소와 관련된 각종 분야는 음성화, 불법화 양상으로 변할 수밖에 없고 이에 대한 피해는 결국 선량한 여성들에게 가혹한 범죄와 상처로 되돌아 올 것이 분명하다.
사랑하는 사람들 끼리 육체로 나눌 수 있는 최고의 유희인 섹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으며 인위적으로 억제하기가 쉽지 않은 본능인 성욕.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이 오묘한 욕구 사이에 범죄가 끼어들지 않게 방지할 수 있는 사회적인 대책은 정녕 없는 것일까?
성인용품점 업주가 제시하는 대안
돼지발정제 등 불법 최음제 유통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취재 중 서울 모처에서 성인용품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정모 씨(남, 서울, 59세)를 만났다. 건물 2층에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도록 짙게 선팅이 되어 있는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기는 일이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점포에 들어서자 환한 조명과 각종 성인용품들이 정돈된 채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작은 슈퍼마켓에 와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깔끔한 느낌이었다. 선반에 진열된 진귀한(?) 상품들을 구경하며 “혹시 돼지발정제를 파느냐”고 은밀히 물었다. 하지만 업주 정 씨는 정색을 하며 “그런 건 취급하지 않다”고 단호하게 답했다. 그러면 “아무도 모르게 여성을 유혹할 수 있는 약품은 구할 수 있느냐”고 다시 물었다. “최음제 종류가 있기는 한데 역시 이곳에서는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성인용품점을 찾아가 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기자 신분을 밝히고 정식 인터뷰 요청을 했다. 거절할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당당하게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했다. 단, 얼굴과 익명을 요청했을 뿐이다. 그는 다른 사업을 하다가 2008년 후반기 글로벌 경제위기로 큰 타격 입고 4월 전에 성인용품점을 개업했다고 말했다.
기사에 쓰지 않는다는 약속을 단단히 하고 “정말로 최음제를 팔지 않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정 씨는 벽에 걸린 ‘성인용품업 영업허가증’을 보여주며 합법적인 상품만 취급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성인용품점이라면 무조건 불법의 온상이라고 여기는 사회적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점형 성인용품업자들과 구분해달라는 것이었다. 현재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대부분의 불법행위가 노점형 성인용품업자들이나 점조직형 보따리 장수들에 의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산 비아그라만 예를 들더라도 도매가가 한 알에 100원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를 받아 소매로 팔 때는 7,000원이 넘지요. 하지만 당연히 불법이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영업허가를 받고 운영하는 성인용품점에서는 취급하지 않습니다. 돼지발정제를 비롯한 최음제는 두말할 것도 없고요.”
가끔 중간 판매책들이 찾아와 위와 같은 약품을 취급해 볼 것을 은밀히 권유하기도 한단다. 하지만 정 씨가 성인용품점을 개업하면서 가졌던 확고한 영업철학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해도 앞으로도 취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합법적으로 운영하는 성인용품점이라면 다른 곳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품목이라는 것일 뿐 일반적인 상점과 다를 바 없는 엄연한 사업입니다. 그런데 무슨 마약판매상 취급을 하는 건 몹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리고 성인용품에 대한 규제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독신인구가 늘었지만, 매춘에 대한 적극적인 단속으로 인해 집창촌이 거의 와해되다시피 한 상황에서 성인용품은 현대인의 성욕을 해소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안이라는 것. 대부분 자위기구 등이기 때문에 사람을 상품화하는 매춘과도 구분된다는 것이다. 성인용품을 그냥 ‘성인용 장난감’으로 봐달라는 것이다.
“성욕은 사람이 가진 본능적인 욕구 중 하나로 마치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런데 합법적인 성인용품점까지 지나치게 규제해 음성화를 유도하는 것은 또 다른 부작용을 가지고 올 것이라 예상합니다. 물길을 자꾸 막는데, 결국 그것이 어디로 흘러가겠습니까?”
가끔씩 시청 등에서 단속이 이뤄지는데, 손님으로 가장해 들어와 이것저것 불법적인 물건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함정단속’이라고 표현했다. 청소년 등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품목을 취급하는 업종인 만큼 규제와 단속의 정도는 필요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합법적 영업을 성실하게 실천하고 있는 업소를 단속함에 있어서 마치 예비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억울하다는 성인용품점 업주 정 씨. 어쩌면 그가 두서 없이 쏟아낸 억울함에서 우리가 찾고 있는 대안이 숨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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