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순리와 인간의 진리를 깨닫다
기도도량 염불암, 맹호도와 선묵화를 통해 중생을 제도(濟度)하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오늘날,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나’를 잃어버린 채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다. 조용한 산이나 강, 바다를 찾아 잠시 여유를 찾는 것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현대인들, 이에 시사매거진은 해인사 말사 염불암을 찾아 마음의 여유를 통해 삶에 대해 성찰하며, 정체된 일상에서 벗어나 생명의 무한한 의미를 깨닫는 시간을 찾고자 염불암 주지 중현 스님을 통해 부처님의 말씀을 들어보았다.
부처님의 가피와 영통함이 함께하는 염불암
염불암은 해인사 말사로, 동현 스님은 대한불교조계종 진주 월광사에 계시다가 큰 스님의 입적(入寂)으로 살아생전 큰스님께서 아끼시던 염불암(경남 사천시 곤명면 마곡리 581번지)에 지주소임을 맡고 오게 되었다. 스님이 염불암으로 온지는 5~6개월 정도. 지난 6월 4대 주지진산식이 있었다.
대봉산의 영험한 기운이 산자락을 따라 흘러들어 모이는 명당 터에 자리한 염불암은 그 경관마저 범상치 않다. 관음기도도량으로 영통하다는 소문이 자자한 염불암은 500여 명의 신도들을 중심으로 초하루와 보름, 관음제날 법회가 있다.
도량(道場)이란 석가불이 처음 보리수 아래에서 성도한 자리, 곧 보리도량(菩提道場)에서 유래된 말로 부처와 보살이 항상 머무는 곳을 일컫는다. 관음기도도량이란 관세음보살을 모셔놓고 예불과 치성을 드리는 곳으로 염불암은 관음기도도량의 명지(名地)이다.
전국불교포교당, 선묵화를 통해 중생을 제도(濟度)하다
염불암 곳곳에는 고급 화선지 위에 내려앉은 멋진 수묵화가 눈에 띈다. 모두 스님의 작품이다. 어릴 적부터 큰스님께 그림을 시사 받은 중현 스님은 현재 부산에 작업실을 두고 목단화와 맹호도를 주로 그리고 계신다.
꾸준한 참선수행을 통해 맑고 건강한 기운을 모아서 그려낸 선묵화(禪墨畵)는 스님의 영험한 기를 담고 있어 불자들의 마음을 정화시켜 주고 있다. 특히 호랑이는 산(山)의 신령으로 화재, 수재, 풍재를 막아주고 질병과 고통에서 인간을 지켜준다는 뜻을 담고 있어서 그 의미가 크다.
스님의 영험함으로 잘 갈무리된 호랑이의 용맹스러운 기를 집안에 담기위해 불자뿐만 아니라 많은 중생들이 스님을 찾고 있다. 특히, 스님께서는 작품 안의 기와 불심이 그 집안에 가서 잘 어우러 지고 이를 통해 중생들이 제도(濟度)될 수 있도록, 각 작품마다 그 작품을 데려갈 집안의 기운을 정리해서 글귀를 적어 넣고, 불심을 다해 기도하고 있다고 한다.
“작품을 그리기 전에 항상 몸과 마음을 닦고 기도를 올립니다. 또한 필선 하나하나에 불심을 담아 그려냅니다.” 당장이라도 액자 너머에서 튀어 나올 듯한 맹호의 눈은 스님의 손길로 일곱 번 채색작업을 필요로 하며, 그 털 하나하나에 불심을 담아내기까지 15일의 시간이 소요된다.
선묵화를 통한 스님의 중생 제도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작품을 통해 얻은 수익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인다. 특히 스님은 부산지역 불자님들로 구성된 연심회의 고문을 맡고 있으며. 연심회를 통해 부산의 ‘선아원’을 후원하고 있다. 선아원은 장애인복지시설로 정신지체 장애인의 재활을 돕는 기관이다.
더욱 대단한 것은 스님께서 지속적으로 후원을 아끼지 않는 선아원이 기독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기관이란 점이다. ‘어려운 중생을 돕는데 종교의 벽은 의미가 없다’고 하는 중현 스님의 초교파적인 신념은 타교를 배척하고 비난하는 이들에게 좋은 귀감이 된다. 얼마 전에는 전국 불교 포교당을 통해 스님의 작품 100점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선뜻 내놓았다. 스님은 세상에 소외받는 이들, 편협한 우범자들까지도 따뜻한 시선으로 해탈하는 마음을 가지고 쓰다듬어야 한다고 말한다.
초자연 진리에 눈을 떠라
“초자연의 진리를 모르고 인간의 진리로만 세상을 보아서는 안됩니다.” 과열된 현대의 경쟁구도 속에서 남을 배타하고 자신의 이익을 쫓는 것에만 급급한 현대인들, 아무렇지 않게 자연을 파괴하며 조화와 공생을 망각해 가는 이기적인 인간(人間)에게 중현 스님은 일침을 놓는다.
진리(眞理)는 변하지 않는데 그 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이 편협해서 ‘이치’는 왜곡되고 이것이 사상과 윤리, 역사, 체제와 나라, 인종에 무장되어 무서운 무기가 된다고 스님은 말한다. 스님의 이 한마디가 현재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전쟁, 또 작게는 지금 내 주위, 내 이웃과의 갈등까지, 모든 세상사 문제의 답을 푸는 열쇠가 아니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얄팍한 지혜로 자연의 진리를 파괴하지 말라는 스님의 말은 모든 이들을 겸허하게 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스님은 ‘오늘을 살라’고 말한다. “어제는 지나간 오늘이고 내일은 다가올 오늘입니다. 지금 현재 살아가고 있는 ‘오늘’을 충실히 하고, 스스로 자신의 세계를 창조해 나가야 합니다. 이상을 추구해서는 안됩니다. 미륵도 부처도 오늘을 사는 불자님 곁에서 함께 합니다.” 알에서 깨어난 새는 선과 악, 그 어느 것도 아니며 스스로 어떻게 나아가야할지를 창조해나가야 한다고 말하는 스님은 불교를 떠나 인류애적인 조언을 한다.
부처님의 사상이 인류를 구할 핵심 진리라고 믿고 이를 전파하여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 스님이지만, ‘종교인이 진리를 따져서 모든 인간이 현재의 어려움에서 구제 받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며 오히려 개인의 의지를 강조한다. “인간이 진정 종교적 의존에서 벗어나는 것이 해탈의 경지이고 자연과 조화되어 세상의 진리를 깨닫는 순간입니다”라는 스님의 말씀은 기존의 종교적 벽을 허문다.
종교가 사라지고 인간이 인간을 신뢰하고,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개개인이 이상을 꿈꾸지 않고 현재의 행복을 자각할 때가 진정한 극락(極樂)이라고 말하는 스님은 오늘도 누군가가 자신을 통해 진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스님은 종교를 벗어나 이러한 진리를 설파하기위해 서울 불교포교당과 진주불교 대학에서 한 달에 4회 정도 특강을 하고 있다.
끝으로 중현 스님은 “삶의 에너지는 순환되고 있으며 이는 크게는 사회, 작게는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좋은 생각과 좋은 에너지를 주면 이는 순환되어 다시 나를 힘이 되게 하는 에너지로 돌아오며, 이러한 에너지의 순환은 그 사회와 가정을 건강하게 합니다.
항상 이를 염두하고 좋은 에너지를 많이 베푸세요”라고 말했다. 부처님의 설법을 전하는 중현 스님의 말씀을 통해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이 자신을 성찰하고, 자연의 순리(順理)와 인간의 진리(眞理)에 대해 깨닫길 희망한다. 연향과 향내음이 어우러진 염불암에 참된 기도도량으로 많은 불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