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꿈꾸며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통해 깨달은 진정한 삶의 의미

2010-11-12     공동취재단

다들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이야기한다. 애초에 출발선이 다르다는 것이다. 무전유죄, 유전무죄,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말들이 끊임없이 세상을 떠도는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이 하나 있다. 출발선은 물론 그 분량 역시 너무나 정확한 하루 24시간, 바로 그것이다. 누군가는 이를 허비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를 활용해 부와 명예는 물론 꿈과 희망을 이룬다. 이런 점에서 세상이 완전히 불공평하다고 단정 짓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

롤러코스터 같았던 그의 삶

ING생명 중앙지점 권상훈 부지점장. 그에게 하루 24시간이 지옥 같았던 때가 있었다. IMF경제 대란이 온 나라 안을 휘젓고 다니던 시절, 그는 국내 최고 연봉을 받던 제일종합금융에 재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IMF환란의 영향으로 수많은 대기업들이 파산했고, 그가 다니던 회사 또한 하루아침에 문을 닫고 말았다. 아침 9시, 집을 나서도 마땅히 갈 곳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다.

그는 인생 전반에 대한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996년부터 공부하던 세무사자격 공부를 그만둔 후 투자상담사와 펀드매니저 자격증을 취득해 주식공부에 매진했다. 그리고 약 7,000만 원의 종자돈을 1년 반 만에 16억 원으로 불렸다.

당시 가지고 있던 주택까지 합치면 36세의 나이에 자그마치 20억 원에 달하는 자산가로 거듭나게 된 셈이었다. 이때부터 하루 24시간은 다시 달콤하고 즐거운 순간으로 변했다. 잠시나마 잃었던 세상에 대한 자신감도 되살아났다. 돈 벌기가 세상에서 제일 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하니, 당시에 그가 가졌던 자신감과 성취감이 얼마나 대단했던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만하다.

“2000년 초에 前직장 선배의 권유로 더블에이경영컨설팅(주)를 공동 설립해 벤처기업컨설팅사업에 뛰어 들었습니다. 단순히 돈을 더 버는 게 목적은 아니었죠. 그것보다 기업컨설팅을 통하여 더 큰 세상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골프도 그때 배웠죠.”

하지만 그의 열정은 채 한 해를 채우지 못한 채 좌절을 맛 봐야했다. 꿈을 이루기는커녕 그 동안 모았던 거액의 재산까지 탕진하는 쓰디쓴 실패를 경험했다. 벤처열풍이 거품이 빠지는 과정에서 2000년 초부터 주식시장이 폭락을 거듭했고, 그는 거의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주식과 주택을 팔아, 회사설립 과정에서 졌던 금융기관의 부채를 정리하고 나니 20억 원에 달하던 재산 중 19억 원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없었다.

“보험영업으로 3억 원을 버는 게 가능합니까”

“한눈 안 팔고 참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막상 그런 상황을 마주하고 보니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죠. 한편으로는 일장춘몽이랄까 너무나 허탈했어요. 하지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랄까. 처음으로 맛 본 실패가 아니었던 까닭에 다시 정신을 추스르는 데에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더라고요.”

IMF경제 환란으로 인한 실직, 그 후 36세의 나이에 거머쥐었던 20억 원대 자산, 그리고 뼈저린 실패. 짧은 기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그 파란만장함의 깊이는 남달랐다. 인생의 가장 저점과 고점을 동시에 경험해 봤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남 보기 좋은 직장을 택하기보다 인생의 밑바닥에서 가장 빠르게 비상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대학친구의 소개로 ING생명의 보험설계사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다. 그 신산스러웠던 굴곡의 세월을 겪은 그가 다시 연봉 몇 천만 원의 직장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은 이미 그가 품기에는 너무나 작은 세계였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는 다시 주식투자를 하기 위한 3억 원의 종자돈을 버는 일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그 돈을 가장 빨리 벌 수 있는 방법을 갈망했다. “3억 원을 벌 수 있다면 그 어떤 지옥행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게 그때의 절박한 심정이었다.

“보험영업으로 3억 원을 버는 게 가능합니까?”

그는 누군가의 소개 없이 무작정 ING생명을 찾아가 당시 부지점장에게 대뜸 그렇게 물었다고 한다. 2001년 3월16일, 꽃샘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이른 봄날이었다. 그는 그날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전했다.

그의 당돌한 물음에 부지점장은 “ING내에서 10등 안에 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웃으며 답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ING생명 입사를 결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입사 이래 줄곧 3억 원 이상을 벌고 있으며, 지금도 국내보험업계에서 최고의 FC로서 활약하고 있는 중이다.

최선을 다해 일하고 휴식하며 하늘의 뜻을 기다리다

그는 현재 10여 명의 FC를 이끌고 있는 부지점장이자, 가업승계를 포함한 상속증여컨설팅을 통하여 고객에게 적합한 보험상품과 증권상품을 제안하는 국내 최고의 재무설계사다. 지난 20여 년 동안 종금사와 보험사 등 금융업계에 종사해 온 까닭에 이론과 실무에 두루 능통한 소위 ‘금융통’으로 명성을 쌓아가는 중이다.

또한 지금까지 끊임없이 유수 기업의 CEO들과 교류하며 대한민국 경제흐름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는 그는, ING생명뿐만 아니라 관세청 및 수많은 CEO모임 등 대내외적으로 인기강사로서도 주가를 올리고 있다. 또한 머니위크를 비롯한 여러 언론사에 칼럼을 쓰는 기고가이다.

이렇듯 권상훈 부지점장은 거의 모든 것을 이룬 듯 보였지만, 그는 여전히 준비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현재 서강대학교 경제대학원 4학기에 재학하며 끊임없는 향학열을 불태우고 있으며, 주1회 이상 나가던 골프마케팅까지 줄여가며 세미나 주최나 책을 집필하는 데 전문가로서의 열정을 쏟는 중이라고 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내년에는 작은 책 한 권을 출간할 것이라며 설렘 가득한 미소를 보이기도 했다.

또한 자신을 갈고닦는 일에 그치지 않고, 이를 함께 나누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블로그(blog.naver.com/kwon6469)를 개설해 각종 정보와 자신의 이야기를 누리꾼들과 나누는 한편 후배 재무설계사들을 교육하며 자신 역시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제 제가 꾸는 꿈은 ‘자유’입니다. 누구나 인생을 즐기기를 원하죠. 인생을 즐기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과 경제적인 면에서 자유가 아닐까요? 자유라는 최고의 열매를 맛보기 위해 젊을수록 더욱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평소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을 신념처럼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젊었을 때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일한 후 나이가 들어 편안한 마음으로 휴식을 취하며 기다린다는 제 나름의 해석하지요.”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존경받는 보험설계사로 기억되고 싶다는 권상훈 FC. 그래서 후배들에게 더 많은 경험과 성공을 뒷바라지 해 주고 싶다는 권상훈 부지점장. 그는 1~2개월에 한 번씩은 설악산 등 10시간에 가까운 무박산행을 즐기며 자신과의 대화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가 기다리고 있는 하늘의 뜻은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