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 떠나는 사찰여행

2005-05-02     글/ 신혜영
남해 5대 사찰로 떠나는 불교역사 탐방


우리나라 3대 기도처 '보리암'
683년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로 산 이름을 보광산, 초당 이름을 보광사라고 했다. 훗날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 기도를 하고 조선 왕조를 열었다는데, 그 감사의 뜻으로 1660년 현종이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 산 이름을 금산, 절 이름을 보리암으로 바꿨다.
금산의 정상에 자리잡고 있는 보리암은 금산의 온갖 기이한 암석과 푸르른 남해의 경치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절이다. 경내에는 원효대사가 좌선했다는 좌선대 바위가 눈길을 끌며, 부근의 쌍홍문이라는 바위굴은 금산 38경 중의 으뜸으로 알려져 있다.

남해 역사의 산실 '화방사'

신라 신문왕 때 원효대사가 보광산(금산)에 보광사를 세우고 망운산 남쪽에 연죽사를 건립한 것이 화방사 역사의 시작이다. 화방사는 호국사찰로써 남해 역사의 산실로도 유명하다.
기풍 당당한 대웅전 뜨락 오른쪽으로는 대밭을 배경으로 사색에 잠긴 부처상과 범종루가, 왼쪽으로는 이승과 저승을 이은 듯 1998년에 축조한 9층 석탑이 서 있다. 화방사 여행의 백미는 명월당에서 맞는 달맞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솔바람 소리도 잦아드는 밤 초승달은 서럽게, 득도에 이른 보름달은 경이로 다가와 화방사 뜨락에 내려 앉는다.

영험을 안고 있는 '망운암'
망운산 정상 부근에 있는 망운암은 창건연대는 알 수 없지만 화방사의 부속암자로 화방사를 건립할 때 같이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개의 명승지들이 관광지로 탈바꿈되어 세속화 되고 있지만 아직은 동자승 눈빛처럼 깔끔한 곳이다.
망운암은 중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기도를 드리면 병이 씻은 듯이 낫는다는 영험을 안고 있는 기도도량으로 보물급에 해당하는 보살을 형상화한 석불이 있는데 수백년의 인고의 세월을 이겨냈다고 전한다.

천년의 고찰 대방산 '운대암'

고려초부터 망경암(望景庵)이라하고 대방산(臺芳山) 중턱에 창건되어 산자수려(山紫水麗)한 팔선지(八仙地) 명당의 제일 기도도장으로 번창하여 오던중, 이조(李朝) 때 운대암(雲臺菴)이라 개칭(改稱)하였다. 상좌중이 낙상(落傷) 사망하여 한동안 절이 비었다가 임진란(壬辰亂) 후에 세월선사(洗月禪師)가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운대암은 근 천년의 시대를 함께한 사찰로 일설에는 이순신 장군과의 인연도 이야기 되지만 그것은 확실하지는 않다.
대방산 운대암 주변에는 훌륭한 곳과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많다. 창선면 상신마을 도로에 있는 운대암이란 이정표를 따라 마을을 질러 산길을 내쳐 오르면 대방산 굽이 굽이 고개를 돌아 산마루에 오르자 지리산 계곡처럼 깊은 계곡 아래 저수지 물빛이 청명하다.

호국사찰 '용문사'
남해군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해발 650m의 호구산에는 남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절, 용문사가 기다리고 있다. 용문사의 역사는 원효대사가 금산을 찾아와 보광사을 짓고 산명도 보광산이라 했다. 뒤에, 호구산에 첨성각(瞻星閣)을 세우고 금산에 있었던 보광사를 이 곳으로 옮겼다고 전한다.
용문사는 임진왜란 때 사명당의 뜻을 받들어 승려들이 용감하게 싸운 호국사찰로써 조선 숙종(1675∼1720)은 용문사를 수국사로 지정하고 왕실에서 용문사 경내에 축원당을 건립하고, 위패를 비롯하여 연옥등, 촉대, 번 등을 하사했다. 그러나 지금은 번과 수국사 금패만 보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