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소비절벽’…서민들 먹고 쓸 돈 없다

주거비, 물가 오르며 가게 구매력 바닥

2017-02-07     김현기 실장

가계의 구매력을 높이고 소비심리를 살릴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해야

그야말로 사상 최악의 ‘소비절벽’이다. 저성장 기조속에 소비심리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쓰고 싶어도 쓸 돈이 없는 서민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슬금슬금 불어나기 시작한 국내 가계부채 규모는 어느새 1,300조 원까지 늘었고, 이는 고스란히 서민들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쓸 돈이 없는 서민들이 소비를 줄이면서 국내 내수기업들도 비명을 지른다.

   
▲ 물가는 고공행진 중이다. 지난해 11월 한국의 식료품·비주류 음료 물가는 전년동기대비 4.5% 상승 했다. 지난 1월 8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대형마트 등에선 달걀 한 판(특란 30개 기준)이 1만 원에 육박했고, 지난달 기준 배추 값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91.9% 뛰어올랐다. 밥상 단골 재료인 양배추, 무, 당근, 파 등도 각각 211.3%, 150%, 112.2%, 32.3% 상승했다.[사진_뉴시스]
수원에 사는 A씨(30)는 전업주부로 2살, 5살 두 딸을 키운다. 남편이 직장에서 세후 350만 원을 벌어온다. 맞벌이를 하고 싶지만 베이비시터를 써가며 맞벌이를 한다 해도 배보다 배꼽이 클 것 같아 외벌이를 택했다.
현재 A씨 가구의 지출은 24평 반전세 아파트 보증금을 마련할 때 빌렸던 대출금이 3,000만 원 가량과 대출금 상환과 이자 60만 원, 월세 70만 원, 관리비 20만 원, 보험료 30만 원, 핸드폰 2대와 인터넷비 등 통신비 20만 원, 차 유류비 20만 원 등 매달 숨만 쉬어도 고정적으로 220만 원이 나간다. 남편 용돈으로 한 달에 30만 원을 주고 나면 남는 돈은 100만 원에 불과하다. 이 돈으로 4인가족의 식료품비와 아이들 교육비를 쓰고 나면 화장품 하나, 옷 한 벌 사는 것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한다.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반전세를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최근 들어 치솟는 물가를 보면 한숨만 나올 뿐이다.
최근 주거비, 물가가 무섭게 치솟으며 가계 구매력이 바닥을 찍고 있다. 그야말로 소비절벽이다. 더 줄일 래야 줄일 돈이 없으니 꼭 필요한 생활비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쓸 돈이 없다.

소비절벽은 이미 상당 부분 현실화 됐다는 평가다. 생활물가는 치솟고 금리불안이 서민들의 고민을 가중시키다보니 주머니 사정이 빠듯한 가계에서는 소비 자체를 안 한다는 생활패턴을 보이고 있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월평균 지출이 100만 원 미만인 가구(2인 이상 가구 실질지출 기준)는 13.01%에 달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영향권인 2009년 3분기(14.04%)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난달 27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6년 12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4.2로 2009년 4월(94.2) 이후 7년 8개월 만에 최악의 수준을 나타냈다.
청년층 소비도 급격하게 위축되고 있다. 지난 1월 18일 통계청 가계동향에 따르면 청년층 가운데 29세 이하 가구의 지난해 3분기 소비지출은 205만 742원으로 5년 전 201만 4,451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5년간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9%대가 넘어 사실상 소비지출은 크게 줄어든 셈이다. 반면 5년새 집값과 전월세금이 오르면서 주거비 지출은 39세 이하 가구 기준으로 51.9%나 늘었다.
가계부채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 상황에서 미국발 기준금리 인상으로 국내 시중금리가 오르며 서민들의 부담은 더 커졌다. 지난해 여름 이어진 폭염과 가뭄으로 채소와 과일 가격이 크게 오른데 이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제 곡물가, 유가가 오름세를 보이고 작황 부진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의 유행으로 신선채소와 계란가격 등이 상승하면서 가계의 구매력은 더욱 줄어들고 있다.
물가는 고공행진 중이다. 지난해 11월 한국의 식료품·비주류 음료 물가는 전년동기대비 4.5% 상승 했다. 지난 1월 8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대형마트 등에선 달걀 한 판(특란 30개 기준)이 1만 원에 육박했고, 지난달 기준 배추 값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91.9% 뛰어올랐다. 밥상 단골 재료인 양배추, 무, 당근, 파 등도 각각 211.3%, 150%, 112.2%, 32.3% 상승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0%. 전체적으로는 1%대라는 저물가 수준이지만 국민들의 실생활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신선식품지수는 전년 대비 6.5%나 뛰어올랐다. 이는 2010년(21.3%)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전·월세를 포함한 생활물가 지수도 전년 대비 0.8% 올랐다. 지난해 12월 물가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국민들이 느끼는 ‘장바구니 물가’는 더 큰 폭으로 치솟을 가능성이 크다.

   
▲ 청년 소비 절벽’이라고 불릴 만큼 취업난, 주거비 상승 등 청년층 구매력이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이다. 서민들의 소비절벽 현상은 ‘소비위축-고용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깊어지며 고용시장에서의 찬바람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사진_뉴시스]
소비자들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등 불안한 미래 등으로 인해 지갑부터 먼저 닫아버리는 소비 패턴을 보이고 있다. 소비 절벽이 본격화되면서 유통주의 올해 실적 전망도 좋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 4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증권가에서 내놓는 유통업체의 실적 전망치는 계속 낮아지고 있다.
이 같은 소비심리는 올해 1분기 경기전망지수(RBSI)에도 반영되고 있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000여 개 소매유통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올해 1분기 RBSI는 4년만의 최저인 ‘89’를 기록했다. 백화점이 89, 슈퍼마켓이 85, 대형마트가 79를 기록했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예년에는 설, 추석 등이 대목이었는데 올해는 그렇지도 않다”며 “소비자들의 구매력 감소와 김영란법 영향 등으로 내수시장에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고 설명했다.
삼성증권 남옥진 연구원은 “유통업체 실적은 작년 10월까지는 3분기의 회복 기조가 이어졌지만 11월에 대부분의 유통업태 매출이 전년동기대비 역신장하며 부진했다”며 “소비침체가 올해 상반기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묘수로 유통업계에서 소비절벽 시대 맞춤형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HMC투자증권 박종렬 연구원은 “작년 11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국정 혼란과 함께 소비심리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소비절벽이 가시화되고 있다”며 “유통업체들은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고 있는 소비절벽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책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소비자심리지수는 작년 10월 101.9까지 상승했다가 11월 지난 2008년 미국 재정위기 이후 최저 수준인 95.8로 급락했고, 12월에는 94.2까지 떨어졌다. 작년 11월 촛불집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와 맞아 떨어진다.
대신증권 유정현 연구원은 “작년 11월 촛불집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소비심리 하락세가 이어졌다”며 “시내 집회 장소와 인접한 백화점 점포는 영업에 직접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유통업 주가는 정국 영향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1분기까지 민간 소비 둔화 우려에 따른 실적 악화가 불가피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HMC투자증권 박종렬 연구원은 “작년 11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국정 혼란과 함께 소비심리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소비절벽이 가시화되고 있다”며 “유통업체들은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고 있는 소비절벽기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책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서민들의 소비절벽 현상은 기업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기업들은 직원을 비정규직으로 바꾸거나 고용을 줄이고 소비자가를 올리며 이익을 늘려보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소비위축-고용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깊어지고 있다. 산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분야별 구조조정의 여파로 고용시장에서의 찬바람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는 고용지표에서도 잘 나타난다. 지난해 우리나라 실업자수는 100만 명을 돌파했다. 가장 열심히 일해야 할 청년들의 실업율도 9.8%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업계 관계자는 “대졸 실업자가 30만 명을 넘어선 상황에서 고용안정을 느낄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최우선 과제다. 최근 유행하는 신조어에서도 알 수 있듯 ‘청년 소비 절벽’이라고 불릴 만큼 취업난, 주거비 상승 등 청년층 구매력이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이라며 “불황에 맞물려 요행을 바라는 인형뽑기방, 랜덤박스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도 청년 구매력 하락에 따른 현상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현상으로 경기 불황이 장기화되는데 따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이른바 ‘가성비’를 따지는 가치소비 경향뿐 아니라 적은 금액으로 최대한의 만족을 노리고, 당장 치고 오르는 소비욕구를 억제하며 최저가 제품을 기다리는 등의 모습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SNS 상에서 널리 쓰이는 용어 ‘탕진잼’은 다 사용해서 없앤다는 의미의 ‘탕진’과 재미를 줄인 ‘잼’이 합쳐져 생긴 신조어로, 적은 금액으로 최대 만족을 누리는 2030 세대의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일컫는다.
또 쇼셜커머스나 인터넷쇼핑몰에서 각종 이벤트와 상품을 묶어 판매 시간을 짧게 예고한 뒤 해당 시간대에 소비자에게 할인 판매하는 ‘핫딜’만을 쫓아다니는 소비자 ‘핫딜 노마드족’ 역시 불황이 낳은 젊은층들의 신조어다.

   
▲ 청와대의 ‘최순실 게이트’와 김영란법 시행 등으로 연말 소비자의 지갑이 굳게 닫히며 경기침체가 계속되는 가운데 경기 수원의 한 대형 완구점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사진_뉴시스]
국민들의 소비 활동은 경제에 가장 큰 주축을 담당한다.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도 소비활동이 어떤지에 따라 전망치가 달라진다. 정부와 국책 및 민간 연구소들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내려잡은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소비 둔화다.
기획재정부는 ‘2017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연간 민간소비는 미국 금리인상과 유가상승, 가계부채 등의 영향으로 2.0% 증가하는데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LG경제연구원도 올해 경제성장률을 2.2%로 전망, “유가 상승이 가계의 실질구매력을 떨어뜨려 내수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대내외 불확실성은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지면서 경제주체들의 소비 및 투자활동을 제약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지난달 21일 출입기자들과 가진 ‘만찬 간담회’에서 “2017년 우리 경제의 관건은 위축된 소비심리를 되살리는 것”이라고 말하며 “성장세 견인은 소비에서 찾아야 한다”며 “그러려면 위축된 소비심리를 불러일으키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계속되는 국내 내수부진과 세계적인 보호무역정책 기조 강화 움직임으로 업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며 “한국경제 성장률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도록 하려면 가계의 구매력을 높이고 소비심리를 살릴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화투자증권 남성현 연구원은 “유통시장에서 이런 변화가 나타나고 있음을 인정하고 그에 걸맞는 성장 전략을 찾아야 할 때”라며 “그렇지 않으면 성장이 둔화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시장에서 도태되거나 장기적으로 퇴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