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만나는 일은 가파른 산을 오르는 일과 같다”

전업주부에서 보험설계사 루키로 인생 전환한 그녀의 이야기

2010-09-02     공동취재단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의 전환점을 겪기 마련이다. 결혼이나 출산처럼 축제의 모습으로 찾아오기도 하고,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처럼 눈물을 동반한 슬픔일 때도 있다. 개인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강렬한 전환점이겠지만, 특별한 것이라 할 수는 없다. 만남과 이별, 삶과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며, 그로 인해 삶의 행로가 바뀌는 것도 그 범주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니까.

평범한 전업주부로 살았던 그녀가 사회활동에 나서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일상의 지루함이나 궁핍함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감 때문이었다고 했다. 전업주부로서 살아오는 동안 그녀는 가정과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그에 대한 충분한 보람과 보상을 받았다고 여기던 중이었다.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활동 범위를 좀 더 넓히고 싶다는 욕심이 분수처럼 솟아났다.
“보험설계사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비전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의 특성상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가 있었을 뿐이었죠. 김연희 지점장님이 입사를 권유했을 때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러겠노라 대답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자신감과 함께 만난 인생의 전환점
kdb생명 김수영 FP는 명랑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혼자서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지만, 조금도 수다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노련한 토크쇼 진행자처럼 인터뷰를 주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녀의 보험설계 경력은 2년이 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처음엔 부끄럼을 이기느라 진땀을 뺐다고 기억했다. 사람을 마주한 채 미리 준비한 이야기를 꺼내놓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더란다.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렀고, 혀가 꼬여 말을 더듬거리기 일쑤였다.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지만, 고객을 만나는 일에는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고객을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만나보세요.”
김 FP의 든든한 동역자인 김연희 지점장의 조언이 뜻밖의 돌파구를 만들어줬다. ‘가족 같은 고객’ 그것은 너무나 흔하고 익숙한 이야기였지만, 그녀에게는 잠시 움츠러들었던 자신감을 되살려 주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나는 얼마나 당당하고 유능했던가?’

그녀는 고객과 마주할 때마다 끊임없이 이렇게 반문한다. 그러면 마주 앉은 낯선 이는 다정한 가족이 되고, 상담을 하는 공간은 더할 나위 없이 포근한 집이 된다고 했다. 이러한 그녀의 마음가짐은 마음 아픈 일을 당할 때에도 큰 힘이 되어 주었다.
FP로 활동하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지인에게 적금상품을 판매했는데, 가입 후 1년이 채 되지 않아 해지요청을 받았다. 지인은 중도해약 시 원금손실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음에도, 해약과 동시에 차액분의 원금을 배상하라고 요구해 왔다.

김 FP은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손실금액보다 4년 넘게 친분을 유지해 왔던 지인과의 우정 때문에 마음이 쓰라렸다. 돈이나 계약관계를 떠나 오랜 세월 동안 추억을 나눠온 다정한 사람을 잃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심장이 녹아내리는 듯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김 FP가 선택한 것은 사람이었다. 그녀의 표현대로라면 ‘가족’을 선택한 것이었다.

 

“돈은 돌고 도는 것이라 열심히 노력하면 다시 저에게로 돌아오겠지요. 하지만 사람과 마음은 한 번 떠나면 돌이키기가 정말 힘든 법이거든요.”
어차피 감수해야 할 손실이었다. 돈보다는 사람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기에 김 FP는 큰 망설임 없이 사람을 지키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을 겪은 후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지인들과의 계약에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게 됐다고 전했다. 지인이 아니라 고객을 만나는 일이며, 그 고객은 계약의 대상이 아니라, 새롭게 맺어지는 가족으로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이러한 사람에 대한 믿음을 심어준 것은 저의 첫 고객 덕분이었습니다. 일적으로 따지자면 첫사랑 같은 분이죠.”

사람에 대한 끝없는 믿음
김 FP가 보험설계사 업무를 막 시작할 무렵, 한 고객을 만났다. 기업을 운영하는 CEO였는데, 장기 불황 때문에 회사 여건이 여의치가 않았다. 하지만 김 FP의 열정을 눈여겨 본 그는 적금상품을 하나 계약해 줬단다. 비록 소액의 적금이었지만, 그 고객으로서는 김 FP에 대해 큰 신뢰를 보내준 것이었다. 보험업계에서 경력이 곧 실력으로 인정받는데, 당시 그녀는 신출내기나 다름 없는 처지였다.

 

첫사랑은 기억이 아니라 추억으로 남고, 머리가 아니라 가슴 속에 남는다고 했던가. 김 FP는 그렇게 만난 첫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해 관리하고 조언했다. 김 FP 역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어려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던 시절이었기에 불같은 열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때였다.

 

이렇듯 어려운 시절에 맺어진 계약관계였던 덕분에 첫 고객과의 인연은 인생의 조언을 주고받을 정도로 돈독해졌다. 또한 고객의 사업이 번창하면서 업체의 단체보험을 수주하는 쾌거도 이뤄냈다. 그 덕분에 김 FP는 매출 1위를 의미하는 ‘루키’를 수상할 수 있었다. 그날 김 FP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사람을 만난다는 건 매우 매력적이고 특별한 도전입니다. 가파른 산을 오르고, 물살이 거친 강을 맨몸으로 건너는 것이나 다름없지요. 하지만 그 도전에 성공하고 나면 돈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아름다운 인간관계가 만들어집니다. 그것은 삶의 자산이라 할 만하지요.”

 

이렇듯 김 FP의 영업철학은 질긴 고무공을 연상케 했다. 말랑말랑하지만, 너무 질겨서 쉽게 찢어지지 않는 부드러운 단단함. 더욱 놀라운 것은 업계의 선배들이 수십 년 동안 몸과 마음을 부대끼며 만들어낸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녀가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안목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김 FP가 후배들을 위해 건네는 당부에는 더욱 뜨겁고 다정한 애정이 서려 있는 듯 했다. 부와 명예가 곧 성공의 전형으로 굳어져 버린 오늘날에 그녀는 뜻밖에도 사람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일의 핵심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단순한 직업인으로서 판매하는 보험상품은 단발적일 수밖에 없거든요. 저는 고객의 삶과 행복을 지킨다는 사명감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한 마음에 진심이 실린다면 매출증대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부산물이 될 테니까요.”

진정한 성공이란 남이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라 믿는 김수영 FP. 그녀의 성공이 다른 이들의 그것에 비해 유독 빛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눈부심은 스스로가 만들어낼 신화가 아니라, 그녀가 지키고 있고, 또한 그녀를 지켜주고 있는 사람들이 빚어내는 빛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