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밭의 쑥은 더욱 높고 단단하게 자라지요”

30개 국내특허와 8개 세계 특허 앞세운 글로벌 기업

2010-09-01     김득훈 부장

신과 인간 사이에는 초인(超人)이 있고, 신화와 역사 사이로는 전설이 흐른다. 대개 사람들의 이야기는 선명하고 정확한 증거를 지니고 있는 까닭에 언제 어디서든 찾아보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지만, 신과 관련된 것은 그럴 수가 없다. 까마득히 오래 전에 일어났던 일이거나 사람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까닭이다. 하지만 신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초인은 현실에서 직접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얼마간의 운이 따라준다면 그들이 만들어 내고 있는 전설 또한 흐릿한 풍문이나 소문이 아닌 뚜렷한 현상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오늘 우리가 만나보게 될 그가 바로 그렇다.

길 위의 신문지 한 장으로 시작된 전설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부친 때문에 나날이 가세가 기울었다. 소년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집안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다. 중학교 합격통지서를 받았지만 너무 일찍 철이 들어 버린 탓에 그것을 차마 꺼내놓지 못했다. 들녘에는 봄이 가득 했고 겨우내 얼어 있던 개울에는 생명과 활기가 흘렀지만 소년의 가슴 속에는 커다란 얼음덩이가 박힌 듯 내내 시리기만 했다.
굳은살이 맺힌 손으로 흙 묻은 바지를 털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노을이 붉었고, 땀과 먼지로 얼룩진 소년의 이마도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던 것은 들일의 고단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집에 다다를 무렵 신문지 한 장이 길 위에 나뒹굴고 있었다. 낮고 잔잔한 바람이 그것을 소년의 발 앞까지 날라다 주었다. 무심코 밟고 지나기엔 종이가 너무 깨끗했고, 발길질로 차 버리기엔 너무 가벼워 보였다. 소년은 결국 그것을 집어 펼쳐 보았다.


‘중학교 과정 강의록 구독자 접수 중’
소년은 고딕체로 새겨져 있던 광고문구 한 줄을 읽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심장에 박힌 채 끝없이 생채기를 내던 날카로운 얼음덩이도 어느새 녹아내리는 듯 했다. 찬찬히 광고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혼자서 열심히만 하면 중학교 과정은 마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길에서 주운 신문지 한 장이 소년의 운명을 바꿨다.
그야말로 주경야독으로 열정을 불태웠던 그는 일 년 반 만에 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고등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까지 합격했다. 그것은 이후 그가 만들어 낼 전설의 시작이었다. 후일 미국 프레스턴대학교를 졸업하고 박사학위까지 받아 객원교수로 임명받았으며, 국내 토목건설업계의 숱한 전설을 만들어내고 있는 초인으로 자라났다.

이는 다름 아닌 엔티에스그룹 김정윤 회장의 이야기다.
그는 오늘도 초인의 아우라를 흩날리며 세계를 누비고 있다. 그리고 길 위에서 만나는 세계인들에게 대한민국의 기술력을 보이며, 우리의 기술력이 흐릿한 풍문이나 소문이 아님을 똑똑히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할 일이라면 내가 하고, 언젠가 할 일이라면 지금한다
김정윤 회장이 이끌고 있는 엔티에스그룹은 지난 30여 년 동안 수많은 신공법을 통해 국내 토목건축사업의 비약적 발전을 주도해온 지하구조물 공사전문기업이다. 건설교통부에서 426호 신기술로 지정한 NTR공법을 비롯해 SRC공법, TR&T공법 UTRM공법 등 30여 개의 국내특허와 8개의 세계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돈으로 산 성과도, 하루아침에 이뤄진 기적도 아니었다.
1980년대 초, 당시 국내에선 지하토사터널 공법기술 분야는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대부분 외국의 기업이나 기술력에 의존해 막대한 비용을 치르며 공사를 진행하기 일쑤였다. 일부에서는 국내 기술력만으로 공사를 시도하기도 했으나,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영원히 외국 기술에 의존해야 하는 건 아닌지 답답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사명감이나 애국심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내가 하고, 언젠가 할 일이라면 지금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김 회장은 토목선진국이었던 벨기에로 날아갔다. 비행기로 26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였다. 당시 서울에서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는 격주마다 한 번씩 있었는데 탑승인원은 10명이 채 되지도 않던 시절이었다.
7개 나라를 돌아 그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SMET사를 방문했다. 그토록 원했던 ‘선진기술’을 배우지 못하면 결코 귀국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김 회장은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기술을 배우고 익혔다. 크고 작은 상처가 몸에 남았지만, 그럴수록 기술은 몸에 착착 감겨드는 듯 했다. 그래서 작은 돌멩이를 옮기고, 나사를 하나를 조이는 일에도 소홀할 수 없었다.

결국 토사터널축조기술인 TRM공법을 국내에 도입해냈다. 그것은 비단 ‘개인 김정윤’이 익힌 기술이 아니었다. 그는 귀국 후 인천 지하철 1호선 공사를 수주했고, 먼 이국에서 배워온 기술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당시 부평역 앞 지하상가 밑으로 지하철이 지나가야 하는 까닭에 매우 난해한 공사였다. 기존의 공법대로라면 지하상가를 허물고 지하철을 건설한 후 다시 지하상가를 만들어야 할 판이었다. 그럴 경우 지하철 두 개 노선을 더 만들 수 있는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하지만 김 회장이 도입한 신공법의 타당성과 기술력이 인정돼 기존의 계획이 취소됐고, 국내 최초로 TRM공법을 통해 공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기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인 가운데 안전하게 공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또한 이를 계기로 광주, 인천, 대구, 대전 등 여러 지역의 지하철 공사를 연이어 수주할 수 있었다.

삼밭의 쑥은 더욱 높고 단단하게 자란다
하지만 유럽에 비해 건설 환경이나 토질이 다른 국내 현실상 TRM공법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문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공 중 측량 오차가 발생하기 쉽고, 중간부의 강관파이프 굴착 시 정밀성과 공기감소 효과가 저하되며, 공사 중 지하수 처리가 불가능해 인접 건물의 침하 및 붕괴 가능성이 높아지는 단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대마초로 더 잘 알려진 ‘삼’을 아시는지요? 이것은 다 자라면 2~3미터에 이릅니다. 이에 비해 쑥은 아무리 좋은 토양에서 거름을 주며 가꾸더라도 채 1미터까지 자라기가 어려운 법이지요. 하지만 삼밭에 있는 쑥은 삼과 함께 자라지 못하면 햇빛을 받을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삼과 같은 크기로, 혹은 삼보다 더 크고 단단하게 자라게 됩니다. 이렇게 자란 쑥은 약초로도 쓸 수 있을 만큼 효능을 발휘하게 되지요.”

그는 당시에 겪었던 TRM공법의 한계를 설명하던 중 문득 ‘삼밭에서 자라는 쑥’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당시 우리 토목산업은 막대한 자본력과 선진 기술력으로 무장한 외국기업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삼밭의 쑥과 같은 처지였다. 연약하고 작은 쑥의 처지를 비관하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외국의 기술력을 뛰어넘는 수밖에 없었다.
“배워온 기술을 중심에 놓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했습니다. 그때부터는 개인적인 자존심 문제가 아니었죠. 우리가 포기하게 된다면 이전에 겪었던 그 지루한 정체(停滯)를 모두가 다시 겪어야 했을 테니까요.”
김 회장은 별도의 연구팀을 꾸려 연구를 거듭했다. 그 결과 TRM공법의 16가지 단점을 보완한 ‘New TRM(NTR)공법’을 개발해낼 수 있었다. 이는 붕괴사고의 위험이 없고 방수가 확실하며 오차가 거의 없는 순수 우리 기술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공사기간을 대폭 줄이는 한편 굴착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을 자재로 재활용할 수 있는 환경 친화적 공법으로 평가받았다.

“터널공사와 기반개량 토목공사에 획기적인 공법들을 개발하여 많은 특허와 신기술을 보유하게 됐습니다. 이를 개발하고 연구하는 데 있어서 도움을 주는 20여 명의 주주들은 저희들의 버팀목이지요. 그분들은 국내의 명문대학교에 재직 중인 교수님들이며, 해당분야에서 오랫동안 연구한 박사님들이기 때문에 오늘보다는 내일에 더욱 큰 기대를 걸어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신공법들은 현재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으며 여러 국책사업에서 70%의 예산절감효과를 거두고 있는 중이다. 환경오염 방지와 안전사고 예방 등 국가경쟁력 강화에도 크게 이바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를 통해 엔티에스그룹은 탁월한 기술력을 인정받아 건설교통부장관 신기술 426호로 지정되는 성과를 올렸다. 이는 생존과 전진을 위해 안간힘을 쓴 쑥이 거대하고 단단한 삼을 앞지르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국내를 넘나드는 독보적 신기술의 저력
이렇듯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듭하는 가운데 많은 성과를 이뤘지만, 특히 해외에서 받고 있는 평가는 국내에 알려져 있는 것보다 훨씬 높고 눈부시다.
토종 NTR공법을 앞세워 중국 심양시 지하철 1호선 중가역 정거장 공사를 비롯해 심양시 방강가역 정거장 공사 등 대형공사를 수주했다. 일제히 개통공사에 들어간 중국의 지하철 공사 수주는 대기업의 브랜드 네임 파워가 아닌 순수한 기술력과 노력으로 얻어진 성과이기에 더욱 값진 성과라 할 수 있겠다.

이를 통해 우리 기술력의 우수성을 확고히 각인시키고 국위를 선양했음을 두말할 나위가 없는 사실이다. 더구나 최근 중국의 잠재적 시장성에 주목해 많은 국내 기업들이 중국 투자를 확대하고 있지만, 독자적인 기술력만으로 중국의 국책사업에 뛰어든 기업은 엔티에스그룹이 유일하다.
“심양은 우리 민족의 얼이 서려 있는 고구려와 부여의 옛 영토라는 점을 되새겨 볼 때 이곳에 우리의 기술로 경제적 영토를 만들어냈다는 것에 더욱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로 시작되는 시를 남기며 청나라의 볼모로 잡혀간 청음 김상헌 선생이 저희 8대조모의 외조부입니다. 이런 까닭에 심양에서의 공사는 역사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큰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김 회장의 눈가에 언뜻 이슬이 맺히는 듯 했다.
“다만 예전처럼 단순히 값싼 인건비만을 보고 무분별하게 중국을 진출하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외양적으로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 실체는 사회주의의 핵심인 ‘당’이 존재하는 이원적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김 회장은 이러한 그곳의 사회구조적 특성상 세계를 놀라게 할 만한 기술력이 없다면 살아남기 힘든 곳이 중국 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철옹성을 뚫고 국내 기업이 중국 내에서 자리잡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당과 접촉해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는 기업과 정부의 긴밀한 협조체계가 더욱 절실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김 회장은 지난 2005년부터 글로벌 시대에 걸 맞는 세계화 전략을 추진하는 차원에서 중국, 유럽 등 세계 신기술 특허를 취득해 놓은 상태다.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 향해 발걸음을 내디딜 준비를 마친 셈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우리 기술의 우수성을 인정한 파키스탄 국무총리의 초청으로 이슬라마바드를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 파키스탄 정부와 협상을 벌여 지하벙커, 철도, 터널공사를 위한 MOU를 체결하는 성과를 거뒀다.

“회의를 마친 후 파키스탄 군부의 실세 장성이 꼭꼭 숨겨놨던 술을 꺼내 대접해 주더군요. 회교국가에서 술을 마시는 것은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데, 저희가 그런 대접을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신뢰와 우정을 쌓았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삼밭의 쑥 세계무대에 우뚝서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김 회장이 가진 경영철학에 대해 물었다. 그와 이어왔던 장시간의 인터뷰를 통해 이미 그가 가진 사유의 깊이와 철학에 대해 충분히 들었다고 생각했기에 마무리를 하는 차원에서 가볍게 던진 질문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새가 하나의 모이라도 더 먹는 법이기에, 누구보다 앞장서서 일하자.”
그리고 웃었다. 그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명료하게 답변했으나, 그 내용은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김 회장은 실제로 날이 밝기 전에 잠에서 깬다. 그리고 날이 밝아올 때까지 글쓰기에 몰두한다.

전문분야인 신공법 관련 전문서적만 10권 이상을 출간한 바 있고, 최근에는 좥삼밭의 쑥, 세계무대에 우뚝서다좦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준비 중인데, 그 분량이 자그마치 원고지 4,000매에 육박한다.
게다가 김 회장의 책들에는 이한동 前 국무총리, 정동영 前 통일부 장관 등 지도층 인사들의 추천사가 빠짐없이 자리 잡고 있어 내용의 품격을 대변해 주고 있다. 또한 얼마 전 그가 세계적인 명문대학인 美 링컨대학교 경영대학원의 산업경영학과 교수로 취임한 것은 그의 학문적 성취가 결코 만만치 않은 깊이를 지니고 있음을 방증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포털 사이트에 개설한 블로그(http://blog.naver.com/jeongyoonk)에서는 그가 쓴 주옥같은 에세이들도 만날 수 있는데, 그 분량 또한 만만치가 않다. 여간한 부지런함으로는 해낼 수 없는 일을 그는 묵묵하고 성실하게 이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탁월한 역량으로 신화에 가까운 전설을 이룩한 사업가들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김정윤 회장을 초인의 경지로 이르게 하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그는 선진조국의 미래를 위해 온 세계를 누비고 있다. 그런데 그가 움직이는 것은 비단 발과 다리와 몸만이 아니다. ‘삼밭에서 자라는 쑥’만이 가질 수 있는 사명감으로, “누군가 할 일이라면 내가 하고, 언젠가 할 일이라면 지금한다”는 소박하나 결코 가볍지 않은 철학을 품고 끊임없이 사유하며,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신을 만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신화를 증명해내는 일은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운이 좋다면 신화와 역사 사이에서 숱한 전설을 흩뿌리며 세계를 누비고 있는 김정윤 초인을 직접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동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며, 우리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끊임없이 달리고 있다. 행여 운이 닿지 않아 직접 만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그의 서재로부터 출발했을 책들이 서점에 있고, 두어 번의 마우스 클릭으로 그의 흔적과 전설을 만나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