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의약분업 10년
항생제 처방 비율은 낮아졌지만 약제비는 3배 가까이 상승
2000년 7월1일 정부는 약물 오남용과 약화사고로부터의 국민 건강권 보호, 약사의 불법적인 임의조제 등 진료행위 근절,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 억제를 통한 국민부담 절감, 의사·약사의 전문성 증진을 통한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이라는 제도적 명분으로 의약분업을 강행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약품 오남용 방지에선 성과를 거두었지만 약제비는 증가했다는 평가다.
의약분업은 준비과정부터 순탄치 않았다. 의약분업에 동의하지 않는 의료계가 진료행위를 거부하는 등 시작부터 삐걱댔기 때문이다. 10년의 시간동안 의료계는 여전히 불만을 제기하며 의약분업을 전면 재평가해 대폭 손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약계는 재평가 자체를 거부한다는 입장이라 실질적인 당사자들 간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상황이다.
시행 전부터 의료계 세 차례 집단 휴업, 폐업
의약분업은 의사 또는 치과의사가 진단하고 처방하면 약사가 이 처방에 따라 의약품을 조제하는 제도다. 이를 통해 의료소비자(환자)는 의사의 처방 없이는 전문의약품을 구입할 수 없게 되어 다소 불편해졌지만 의약품 오남용은 제도적으로 방지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63년 약사법 개정에 따라 의약분업의 원칙이 규정되었다. 하지만 부칙에서 의사의 직접조제를 허용해 실질적인 시행은 유보되어 왔다. 그러던 중 1993년 한약분쟁이 발생, 이를 계기로 약사법 개정을 통해 1999년 7월7일 이전에 의약분업을 실시토록 해 1996년 도입을 추진했다.
이에 보건복지부에서는 1998년 의료계·약계·언론계·학계 등으로 이루어진 의약분업추진협의회를 구성했으나 12월 의사협회·병원협회·약사회가 의약분업 실시를 연기하는 청원을 국회에 제출해 다시 시행이 1년 후로 연기되었다. 1999년 5월 다시 시행방안을 협의해 정부에 건의해 그해 9월 시행방안을 최종 확정하고 12월7일 약사법 개정법률안이 국회에서 통과해 시행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의약분업 시행을 앞두고 의료계가 세 차례에 걸쳐 집단 휴업, 폐업 등으로 장기간 진료행위를 거부해 국민 의료 서비스에 심각한 불편을 초래하기도 했다. 약계 역시 자신들만의 이익을 고집해 범국민적인 문제로까지 야기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혼란과 갈등을 온전히 극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우여곡절 끝에 2000년 7월1일부터 의약분업이 전격 시행되었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출발한 의약분업은 의사와 약사 사이에 환자 치료를 위한 역할을 분담해 처방 및 조제 내용을 상호간 점검, 협력해 불필요하고 잘못된 투약을 막고 무분별한 오남용을 예방해 약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의료기관에서 진료 받은 외래환자는 원내에서 조제 및 투약을 받을 수 없고 반드시 원외에 있는 약국에서만 받아야 하며, 약국에서는 의사의 처방전에 따라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을 조제한다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다.
의협 “국민의 뜻 무시하고 강행되어온 의약분업”
의약분업은 안으로는 편익을 극대화하고 비용을 최소화하며 밖으로는 이해집단간의 갈등을 최소화하고 국민들이 제도에 순응하고 정책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수 있게 한다는 목적이다. 이를 통해 국민에게는 ▲의약품 오남용 감소에 따른 약품비 감소 ▲질병의 조기진단 및 치료에 따른 건강 증진 ▲처방내역 공개에 따른 환자의 알 권리 충족 ▲조제약국이나 조제시간 등에 대한 선택의 자유를 제공하고, 의료기관에는 의료기관 내에서 외래환자를 위한 의약품을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의약품 구매 및 관리 등에 관련된 인건비 등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또한 약국에서 전문의약품을 구입해 사용하던 환자들의 의료기관을 이용하게 됨에 따리 진료수입도 증가하게 된다는 계산이다. 약국 역시도 처방전 조제 수입이 증가하고 제약업체 및 유통업체는 의료기관에 대한 판촉비용을 절감하고 연구개발비 투자를 확대할 수 있어 제약 산업의 경쟁력 제고에 기여할 수 있으며 도매업체의 매출도 증가할 수 있다는 기대를 모았다.
일단 의약분업으로 불필요한 항생제 처방 비율은 상당히 낮아졌다는 평가다. 2000년 5월 54.7%였지만 지난해에는 30.9%까지 낮아졌다. 주사제 처방도 34.6%에서 26.3%로 비율이 감소하는 등 항생제, 주사제 남용은 개선되는 결과를 보였다. 하지만 그에 반해 약제비는 가파르게 상승하는 결과를 낳았다. 2000년대 초반 약 4조원이던 약제비가 2009년에는 11조 6,000억 원으로 3배 가까이 상승한 것이다. 이는 건강보험 전체 지출의 약 29.6%로 OECD 평균인 17.6%보다도 1.7배 가량 높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시행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의약분업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의협은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강행되어온 의약분업”이라면서 “정부는 선진의료국으로의 도약과 약물 오남용의 근절이라는 미명하게 의약분업을 강행했으나 누구도 언급을 꺼리는 실패한 제도가 되었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이어 의협은 국민과 의료계가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사회적 합의 없이 의약분업이 강행되었을 뿐 아니라 시범 사업 후 의약분업을 추진하라는 국회의 부대결의까지 무시한 채 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소수의 독선에 의해 자행된 최대의 실책이라고 덧붙였다.
의협은 시행 2년이 지난 후 ‘결과는 참담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국민의 약제비는 계속 증가되고 있고 약국에서 소비되는 전문 의약품은 그 추계조차 못하는 상황이다. 또한 분업 후 국민이 부담하는 국민의료비는 대폭 인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건강에 도움이 되었다는 증거가 없으며 오히려 보험재정은 파탄 나고 국민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보험급여범위는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재 건강보험의 성적표”이라고 밝힌 의협은 “정부가 국민의 건강권 확보에 입각한 의료의 질 향상에 목적을 두었다기보다는 정부의 치적 쌓기에 급급했던 바 이 나라의 의료체계를 망가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했었다.
이듬해에도 의약분업이 당초의 목적을 달성하기 보다는 국민들의 불편과 부담만 가중시켰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이던 이원형 전 한나라당 의원은 2003년 국정감사 자료에서 “3년 동안 실시한 의약분업의 비용평가 결과 국민추가부담이 총 7조 8,837억 원이며 그 중 약국조제료가 4조 7,697억 원이나 된다”고 밝혔으며, 당시 의협 회장을 맡고 있던 김재정 회장도 “의약분업은 의료개혁은커녕 약사를 제외한 모든 의료인과 국민을 불편하게 하고 비용만 증가시킨 제도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일본식 선택분업, 의역분업 폐지 등 근원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제도 개선 등 의약분업 재평가 작업 시급하다
의약분업 시행 10년을 앞두었던 지난 5월13일 의협은 ‘한국의료살리기 전국 의사대표자대회’를 개최, 의료제도 개선을 촉구한 바 있다.
이 날 의협은 객관적으로 인정받는 보건의료서비스 수준에도 우리나라는 의료자원(인력, 시설, 장비)의 지속적 비효율성으로 인해 보건의료체계 최일선이라고 할 수 있는 1차 의료기관의 기능이 위기에 봉착하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한계상황으로 치닫고 있다”고 밝히며 이러한 1차 의료기관 붕괴는 건강보험재정 악화, 지속적 의료공급의 불완전성, 국민의 건강권 악화로 귀결되기 때문에 대정부 요구사항을 제안한다고 전했다.
또한 “2000년 의약분업 대란 이후 건보재정과 의료공급의 지속가능성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작금의 현실을 개탄한다”고 밝힌 의협은 “의료자원 이용에 효율성과 합리성을 높이는 방안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에 건강보험과 의약분업에 대한 재평가는 물론 ‘한국의료 살리기 대정부 요구사항’ 15가지를 제시했다.
의협 요구사항은 ‘국민을 위한 의료시스템 전면 개선’의 일환으로 ▲건강보험 30년 평가 및 의약분업 10년 평가 ▲의료공급자 및 소비자의 자율 선택권 보장을, ‘붕괴하는 1차 의료 활성화 대책’으로 ▲의료전달체계의 확립 ▲약가제도 개선 ▲1차 의료 활성화를 위한 수가항목 신설 ▲의사 인력 적정 수급 대책 마련 ▲기본진료료 요양기관종별 차별 폐지 ▲의원 종별가산율 상향 조정(15%⇒20%) ▲건강보험 국고지원 강화를, ‘불공정한 법·제도 개선’으로 ▲원외처방약제비 환수 법안 철회 ▲차등수가제 완전 폐지 ▲임의비급여 제도 개선 ▲현행 공정경쟁규약 폐지 ▲굴욕적인 과징금 제도 개선 ▲의사-환자 간 원격 의료 폐지를 담고 있다.
한편 의협은 이 같은 대정부 요구사항에 대한 답변이 성의가 없거나 미봉책으로 그칠 경우 대규모 집회 및 휴·폐업 시위를 통해 우리의 의지를 적극 관철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와 건강복지공동회의도 지난 6월25일 심포지엄을 열고 의약분업을 평가하고 정책과제를 발표하며 “의약분업 평가는 의료시스템의 안정뿐 아니라 국가 경제를 위해서도 매우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규식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심포지엄에서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의약분업의 목적은 처방과 조제의 분리를 통해 의약품의 오·남용을 방지는 물론 조제시 약사로 하여금 복약지도 등을 함으로서 약화사고를 예방하고 과잉투약을 방지함으로서 불필요한 의약품의 소비를 감소시켜 국민의료비를 절감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도입되었지만 건강보험진료비는 의약분업 이후 급속히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2000년~ 2009년까지 10.9%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고, 의약분업 이후 고가약 처방 또한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의약분업시스템의 문제는 ▲의약품-진료 전달구조의 특이성 ▲이해 당사자(국민연금공단, 의료공급자, 보험가입자)간의 이해상충 ▲직능분리와 업권 분리의 구분 ▲의약분업으로 인한 의사와 제약사간 정보 분리 ▲보험약가결정: 실거래가상환제 ▲제약사의 수익구조와 국민건강보험 ▲약가제도의 개선 및 리베이트 문제 등 크게 7가지로 구분된다고 말한 김 교수는 지난 10년의 의약분업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의약분업의 개념을 업권 분업뿐만 아니라 직능분업으로도 확대해 병의원이 일정의 약사를 고용하고 복약지도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의약품 보험수가가 시장원리에 따라 결정될 수 있도록 소비자들에 대한 의약품 할인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보험수가제도를 다양화해 실거래가상환제도와 참조가격제로 분리해 적용하고, 의사들에 대한 현금성 리베이트는 제약사나 의사들이 소득으로 국세청에 신고하도록 하고 합법화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의약분업 도입 10년을 기회로 의료와 제약을 함께 어우르는 새로운 의약분업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김 교수는 이를 위해 정부와 민간의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하는 의약분업 재평가 작업이 서둘러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통해 현재의 의료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는 정책방향을 설정하고, 의료산업을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재조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재희 보건복지부 장관도 6월9일 경만호 의협 회장과의 회동에서 ‘재평가’라는 의견에 뜻을 같이 했다. “건강보험제도와 의약분업에 대해 연구기관을 통해 객관적인 평가를 추진하겠다”고 말한 전 장관은 “3개월 이내 의협이 제시한 요구안을 토대로 장·단기적인 1차 의료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겠으며,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논의 단기, 장기 과제로 구분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복지부 “의약분업 틀 유지하면서 문제점 보완”
하지만 정부의 입장이 의협이 원하는 적극적인 제도 개선보다는 원론적인 평가에 그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추측이다. 실제로 6월25일 심포지엄에서 보건복지부는 현재의 의약분업 틀을 유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김충환 복지부 의약품정책과장은 이날 토론자로 참석해 “의약분업 이후 의사와 약사의 전문성 발휘와 처방의약품에 대한 이중 점검과 처방전 공개로 환자의 알권리가 강화됐다”면서 “의사는 처방, 약사는 조제라는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줬다”고 의약분업을 평가했다.
의약분업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에 김 정책과장은 “건강보험제도와 의약분업을 같이 평가해 전반적으로 손질해야 할 부분을 수정해야 하지만 의약분업의 틀을 유지하면서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보완하는 방법으로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며 “의약분업을 평가하는 부분은 정부 혼자 할 수 없는 것이고 전문가 그룹이 같이 논의해야 하는 것으로 앞으로의 사회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 평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날 김 정책과장은 하반기부터 시행될 DUR 시스템에 대해서도 기대감을 드러냈다. “하반기부터 DUR 시스템(의약품 처방조제 지원 시스템)이 전국적으로 처방전간 점검을 하는 방향으로 확대된다. 이로 인해 다른 의료기관에 가서도 금기약물에 대한 점검을 할 수 있어 불필요한 의약품 사용을 줄여 환자의 안전을 보호 하고 약제비 절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이 제도가 정착되면 약 가격도 내려가고 약제비도 줄어들고 줄어든 부분을 수가로 보상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대한약사회는 의약분업 평가에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의약분업 평가가 약사회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점에서 약사회는 평가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부적으로 정리했다는 것. 약사회는 “지난 10년 간 의료계가 분업제도에 대해 사사건건 불만을 제기한 반면, 약사들은 제도 정착을 위해 희생을 감수해 왔다”면서 “약사회는 의약분업 평가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정리한 상태”라고 말했다. 약사회는 이전에도 “약사회는 의약분업 준비과정부터 엄청난 고통을 인내하고 정부의 정책에 순응해왔다”고 입장을 밝혀왔다.
의약분업 10년. 약물 오남용을 막는다는 기본적인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했다. 하지만 의사들의 불만은 여전하며 국민들 편의도 다시 한 번 검토해보아야 할 시점이다. 의약분업의 진정한 주인공이 의사나 약사가 아닌 국민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와 이를 극복할 대책 마련이 요구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