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경쟁 비판인가, 경찰 내 힘겨루기인가

경찰서장이 검거 실적 평가 시스템 비판하며 서울경찰청장 사퇴 촉구

2010-08-18     김미란 기자

국가인권위원회는 경찰서에서 조사받다가 고문당했다는 이들의 진정을 계기로 해당 경찰서를 직권 조사한 결과 고문 피해가 인정된다며 경찰관 5명을 검찰에 고발하거나 수사의뢰했다. 그리고 결국 경찰은 폭행을 시인했고 국민들의 매서운 질타를 받았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이 과정에서 실적주의를 비판하며 사직서를 제출한 현직 경찰서장이 경찰청장의 동반사퇴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6월16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3월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범행을 자백하라며 입에 재갈을 물리고 스카치테이프로 얼굴을 감고선 폭행당했다”는 이 모 씨의 진정을 접수해 진상조사를 벌여 결과를 발표했다.

인권위는 이 씨의 진정을 포함해 유사한 내용의 진정 3건이 연이어 접수된 사실을 확인하고 지난해 8월부터 올해 3월까지 양천서에서 조사받고 기소돼 구치소 등으로 이송된 피의자 32명을 대면조사 했으며, 그 결과 양천서 형사과 강력팀 팀장 외 경찰관 4명이 공범 관계와 여죄 자백을 받아낼 목적으로 피의자 22명을 경찰서로 연행하는 차량 안과 강력팀 사무실에서 심한 구타 등을 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이에 양천서 정은식 서장은 그 날 오후 기자 간담회를 열어 입장을 밝혔다. “자체 조사한 바로는 인권위 발표는 사실과 다르다”고 말한 정 서장은 “강력계 형사들이 마약에 취해 있던 피의자들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물리력으로 제압하기는 했지만 조사과정에서 고문이 있지는 않았다”고 반박했다. 조사 대상인 박 모 형사 역시 “약에 취해 격렬하게 저항하는 피의자들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뒤로 수갑을 채우면서 어느 정도 꺾어질 수 는 있었겠지만 의도적으로 팔을 꺾은 적은 없다. 조사하는 과정에서 고문은 없었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자체 감찰 조사를 벌인 경찰청은 며칠 후인 20일 “경찰관이 피의자들에게 가혹행위를 한 정황을 발견했다”고 입장을 바꿨다. 감찰 조사에서 해당 경찰관 5명이 처음에는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지만 조사가 진행될수록 일정부분 가혹행위를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서울남부지검은 다음날 이들에 대해 폭행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키로 했다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강희락 경찰청장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일부 사실이 확인된 걸로 보고받았다.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하며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지휘부 강요에 무조건 실적 요구한 책임 느낀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6월28일 양천서 고문 사건은 경찰 내부의 실적주의로 인한 결과라고 비판하며 사퇴를 밝힌 채수창 강북경찰서장이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의 동반사퇴도 촉구한 것. 이른바 ‘항명’, ‘하극상’이 일어난 것이다.

채 서장은 “양천서 사건은 우선 가혹행위를 한 담당 경찰관의 잘못이 크겠지만 이것 못잖게 가혹한 행위를 하면서까지 실적경쟁에 매달리도록 분위기를 조장한 서울경찰청의 지휘부 책임 또한 크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책임을 일선 현장 경찰관에게 미루면서 조직원 잘못에 절대 관대하지 않겠다고 말한 지휘부의 무책임하고 얼굴 두꺼운 행태에 분개한다”고 말한 그는 이러한 조직 문화를 만들어낸 데 근원적 책임이 있는 서울경찰청장의 사퇴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채 서장은 실적평가에 대한 불만보다 현행 시스템을 유지하는 한 이러한 조직문화는 계속될 것이라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국민이 경찰에 대해 법 절차를 준수하고 국민의 인권을 우선하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는 만큼 경찰관이 법을 집행함에 있어 얼마나 절차를 잘 준수하고 얼마나 인권을 우선시했는가를 기준으로 성과를 평가해야 하는데도 검거점수 실적으로 보직인사를 하고 승진을 시키겠다고 기준을 제시하면 오로지 검거에만 치중하도록 분위기를 몰아가는 것에 대해 심히 걱정스럽다”고 밝힌 채 서장은 “아직도 이러한 근원적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일선 경찰관에만 책임을 미루면서 여전히 검거 실적 평가 시스템을 고치지 않고 있는 지휘부의 태도에 경종을 울리고자 서울경찰청장의 사퇴를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그는 “경찰서장으로서 서울경찰청 지휘부의 검거실적 강요에 휘둘리며 강북경찰서 직원들에게 무조건 실적으로 요구해온데 책임을 느낀다”면서 일선현장 경찰관들도 실적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당당하고 자존심 있는 직업인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채 서장의 이 같은 발언에 경찰청은 그를 직위해제하고 후임에 백운용 서울청 교통관리과장을 발령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직서장이 정상적인 절차에 의해 개선책을 건의할 수는 있으나 언론인터뷰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은 조직 내 지휘계통을 위반한 기강문란 행위”라고 못 박았다. 이 날 강희락 경찰청장은 각급 지방청장들과 긴급 화상회의를 열고 성과주의로 인한 부작용과 현재 시행 중인 평가시스템의 문제점을 개선키로 논의했다.

한편, 강북서와 채 서장은 최근 4개월간 서울청의 실적평가에서 최하위를 기록해 서울청의 집중감찰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대-경찰대 출신성분 갈등 구조 추측
일각에서는 이번 항명 파동을 경찰대와 비경찰대 간의 힘겨루기라고 점치고 있다.

지난해 3월부터 강북서장으로 재임해온 채 서장은 경찰대 1기 출신으로 일각에서는 이번 항명파동이 그의 독단적인 결정이 아니라 ‘총대’를 맨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런 추측이 나온 배경에는 경찰 인사를 앞두고 있다는 시기적인 이유가 가장 크다. 고문 수사 사건으로 직위 해제된 정은식 前 양천경찰서장은 경찰대 1기로 채 서장과 동기다. 그런가 하면 조현오 서울청장과 강희락 경찰청장은 고려대 선후배 사이다. 이에 고려대-경찰대의 힘겨루기라는 조심스러운 갈등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현 정권 최고의 출신성분인 ‘고려대-TK’에 해당되는 조 청장이 차기 청장으로 유력시 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견제하려는 행동이라는 것이 이 사태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반응이다.

이에 경찰대 1기 출신인 채 서장이 기자회견까지 감행한 배경에 대해 감찰이 이뤄질 것이라 예상되고 있다. 강희락 경찰청장은 7월14일 징계위원회를 열어 채 전 서장에게 중징계를 내려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으로는 징계위에서는 청장의 요구대로 징계수위를 결정하지만 간혹 예외의 경우도 발생한다. 2007년 황운하 총경의 항명 파동에 이택순 경찰청장이 중징계를 요구했지만 결과는 감봉 3개월 경징계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채 서장의 경우에는 내부 게시판이 아닌 기자회견이라는 방식을 선택했기 때문에 중징계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반응이다.

이번 항명 파동으로 경찰 내 경찰대 출신과 비경찰대 출신들의 힘겨루기가 쟁점화 되고 있지만 사실 이 같은 출신성분 갈등은 예전부터 계속되어 왔다.

지난 2007년 5월27일, 황운하 총경이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보복폭행 사건 부실·축소수사와 관련 이택순 서울경찰청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선 항명 파동이 있었다. 이 보복폭행 사건 수사 과정에 전직 경찰총수의 로비와 현직 경찰 지도부의 부적절한 처신이 있었다는 경찰청의 감찰조사 결과가 발표된 지 이틀 후였다.
경찰대 1기 출신인 황운하 총경(당시 경찰종합학교 총무과장)은 사이버경찰청 경찰관 전용 게시판에 “이택순 경찰청장은 스스로 물어남으로써 조직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는 글을 올리며 청장의 사퇴를 촉구해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며 경찰의 내부 갈등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에도 경찰 지휘부는 중징계 의사를 밝혔다. 내부에서도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문제인데도 황 총경이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사안을 언급한 것이 부적절한 처신이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일선 경찰관들은 “비판을 막는 조직은 살아있는 조직이 아니다”라며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으며 내부 게시판에 경찰청장 사퇴 주장 글을 올리기도 했다.

황 총경이 경찰대 1기 출신으로 그에 대한 징계방침에 대해 경찰대 동문회가 조직적인 반발 움직임을 보인 반면 비경찰대 출신들은 개인에 대한 징계에 경찰대 동문까지 나선다며 비난하는 등 경찰대와 비경찰대 간 마찰이 야기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이 청장이 해임, 파면, 정직 등을 요청한 것과 달리 ‘감봉 3개월’의 경징계였다. 중앙징계위는 “황 총경이 조직의 수장인 경찰청장을 지속한 표현으로 비난하고 언론을 통해 경찰이 내부에 갈등이 있는 것처럼 비춰져 조직의 위상이 실추됐다. 국가공무원법 성실의무와 품위유지의 의무를 위배하고 경찰공무원복무규정 등을 위반해 더 무거운 징계를 내려야 하지만 훈장을 받은 점을 참작해 징계 수위를 낮췄다”고 경징계 사유를 설명했다.

갈등 때마다 원인 제공 경찰대 폐지론 제기
이 같은 경찰대와 비경찰대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경찰대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경찰대 폐지를 주장하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민주당 최규식 의원이다. 최 의원은 2005년부터 “경찰 조직의 발전과 대국민 치안서비스 개선을 위해 경찰대 폐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경찰 간부급이 대부분 경찰대 출신이라 조직의 유연성을 해치고 조직 내 갈등과 사기저하를 가져오고 있다. 사회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 조직인 만큼 획일적인 집체교육을 통한 간부 양성을 경찰을 지나치게 경직된 조직체계로 만들고 있다”고 밝힌 최 의원은 병역특혜 문제, 경찰대와 비간부 경찰의 이원화 부작용 등도 경찰대를 폐지해야 하는 이유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단순히 예산이 많이 들어가고, 특혜적인 경찰대학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계급에 관계없이 전체 경찰을 우수한 인력으로 양성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발점이 경찰대학의 폐지”라고 밝혀왔다.

이에 2006년 이택순 청장은 “경찰대학을 운영해 본 결과 경찰대는 양질의 경찰 인적자원을 제도적으로 획득하기 위한 가장 올바른 방법”이라면서 경찰대를 존속시키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밝히며 대안 없이 경찰대 폐지를 거론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경찰대 폐지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는 내용의 토론회를 열었다. 최 의원은 “경찰대 설립 초기와 달리 순경입문자의 80% 이상이 대졸이고 경찰관련 학과가 있는 대학이 70여개에 이르는 등 경찰대 설립 취지가 사라졌다”면서 “앞으로는 실무경험을 쌓은 순경 입문자 가운데 우수 인력을 선발해 초급간부로 육성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최 의원은 “경찰대 출신은 전체 경찰공무원의 2.4%에 불과하지만 경무관 8.1%, 총경 19.8%, 경정 29.3% 등 고위직급을 많이 차지해 경찰 조직 내에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후에도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고 2007년 10월26일 몇 년간 주장해 온 최 의원은 11명의 의원 서명을 받아 경찰대 폐지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2009학년도부터는 경찰대가 신입생을 받지 못하도록 하고 2012년 2월 말까지 경찰대학을 폐지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더 이상의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면서 경찰대 존폐논란에 대해 일축했다.
한편, 경찰청 감사관실은 당초 7월16일 오후 채 전 서장에 대한 경찰 중앙징계위를 열 예정이었으나  일정을 연기해 달라는 채 서장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달 안에 징계위 개최 일정을 다시 잡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후 경찰청은 22일 징계위를 열어 채 서장의 파면을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