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에 빠진 국민건강보험, 비상등을 켜다

국민건강보험제도 도입 10년,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

2010-08-18     황슬아 기자

부유한 사람은 보험료를 더 내고, 가난한 사람은 보험료를 덜 내며 국민과 기업과 정부가 분담해서 재정을 마련한 국민건강보험이 창설된 지 올해로 10년을 맞이했다. 국민의 병원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마련한 국민건강보험은 사회통합의 아름다운 제도로 자리 잡으며 어느 나라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우수한 제도로 정착했지만, 재정은 갈수록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그 대안으로 의료보험 민영화 도입과 더불어 영리병원 설립이 숱한 우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현실화 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절대적인 의미의 의료보험 민영화가 아니라 시대적 변화에 따르는 추세라고 하지만 향후 이러한 제도변화로 인한 부담은 서민에게 고스란히 가중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국민건강보험제도 도입 10년 만에 최대 위기에 봉착한 지금, 현실에 맞는 대안은 무엇일까?

국민보건을 향상시켜 모두가 잘 사는 세상 실현
국민건강보험제도는 의료급여 대상자와 일부 국가보훈대상자들을 제외한 전 국민이 가입자의 능력에 따라 보험료를 납부하고 질병 등을 치료를 받게 되면 기여정도를 따지지 않고 차별 없이 보험혜택을 받는 사회보험제도이다. 국민건강보험의 실시확대는 병원문턱을 낮춰 의료수요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켰고, 의료기관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보험수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항목들을 개발하여 첨단검사장비들을 앞 다퉈 들여와 의료기술 발전을 선도했다. 더불어 수익성이 담보된 의료계에 우수한 인력들이 몰려들어 수준 높은 의료인이 배출되며 전 국민이 보험 하나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는 ‘선진형 의료보장’이 가능해 졌다. 이렇듯 국민건강보험이 실시 된 지 10년이 지난 현재 온 국민이 질병과 복지 증진에 충분한 혜택을 수여하고 있을까?

왜 우린 아파도 치료받지 못하는 건가요?
아파도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이 있어도 구입하지 못해 결국 죽음에 이르는 사람, 병원비가 없어서 조기 퇴원하고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보내는 사람, 엄청나게 불어난 병원비에 집까지 팔고도 결국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 남 얘기가 아닌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들어 볼 법한 이야기다. 또한 TV프로그램을 통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조기퇴원 하는 장면을 많이 보았다. 그들은 의료포기각서를 쓰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이들은 병세가 더 악화되거나 끝내 세상과 등을 지고 만다. 가상의 시나리오가 아닌 지금도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국민의 건강증진에 대해 국가가 책임진다는 국민건강보험료도 꼬박꼬박 납부하고 있는데 왜 아파도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의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되는 걸까?

이는 사회통합의 아름다운제도라고 생각한 국민건강보험의 이면에는 보장성이 낮아 국민의 병원비 부담을 제대로 덜어주지 못하는데 있다.

지금 OECD국가의 보장률은 평균 80% 이상 수준. 한국의 보장률은 2007년 64.6%에서 2008년 62.2%로 떨어졌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보장률은 50%로 추락할 전망이다. 공보험이 힘을 잃자 민간의료보험과 사적 의료비가 매년 12%씩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2008년 민간의료보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간의료보험 가입자가 부담하는 월평균 민간의료보험료는 십수만 원에 이른다. 1인당 국민건강보험료가 월 평균 3~4만 원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면 민간의료보험료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보장성이 낮아 암을 포함 중증질환에 걸릴 경우 민간의료보험의 보장에 기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지난 5년 사이에 2배 가까이 늘어난 민간의료보험 시장의 크기와 민간의료보험시장의 팽창 속도가 한층 가속화됐다는 점도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이와 더불어 국민건강보험이 매년 적자를 면치 못하면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올해 1조 8000억 원의 적자가 예상되자 보험료를 더 걷고 경비를 절감해 적자를 1조 3,000억 원으로 줄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올해까지 쌓아 놓은 적립금 2조 2,586억 원은 내년에 바닥날 것으로 관련 전문가들을 내다보고 있다. 적립금이 고갈되면 공단이 환자를 진료하는 의원과 병원에서 지불해야 할 돈이 줄어들며, 보험을 통합한 이듬해인 2001년 건강보험 재정이 고갈된 것처럼 10년 만에 또다시 건강보험재정 위기를 맞게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셈이다. 문제는 이 같은 국민건강보험의 재정 적자가 현재의 시스템에선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정의 악화는 의료비 보장률 하락으로 이어지고 국민들은 민간의료보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의료비 지출이 늘어난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2024년 한국 국민 1인당 의료비 지출액은 세계 최고가 될 것이라고 관계자는 전망하고 있다.

영리병원도입과 원격진료의 시작
사실상 의료보험 민영화 추진

이러한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적 적자와 더불어 현실화 있는 대안이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의료보험 민영화에 힘을 실고 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영리병원의 도입이다.

정부는 영리병원 도입으로 인한 병원의 수익증대를 통해 의료 환경 개선과 다수의 자본이 병원에 투입되어 병원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이로 인해 환자 서비스 부분이 질적이나 양적으로 올라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 선발주자로 제주도 영리병원 설립을 허용하는 ‘제주특별자치도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제주도 내 영리병원을 설립하는 방안을 주요 골자로한 개정안을 의결했다. 더불어 의료채권법, 건강관리서비스법, 병원 간 인수합병 허용, 의료기관 인증제, 병원경영지원회사의 활성화 관련법, 의료분쟁조정법과 환자정보 사용을 하가하는 보험업법에 이르기까지 각종 의료민영화법이 국회통과를 준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이번 의료법 개정안의 또 다른 이슈는 원격의료이다. 원격의료는 환자가 직접 의료기관을 방문하지 않더라도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하여 진료를 보고 처방하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의료법 개정을 통해 만성질환자의 경우 원격의료를 통해 직접 진료와 처방까지도 가능하도록 할 예정이다. 또한 의료법인의 병영 경영 지원 사업, 의료법인간 합병 허용 등을 놓고 의료계는 영리병원 허용과 민영화라는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물론 정부는 절대 민영화가 아니며 시대적 흐름에 따르는 추세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의료민영화를 추진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의료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사실상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행동하는의사회 임석영 대표는 <오마이뉴스>의 기고를 통해 “대병원, 명의를 선호하는 풍토가 있는 한국에서 일부 환자들은 1차 의료기관을 거치지 않고 직접 대병원의 원격의료를 이용하려 할 것이고 이는 1차 의료기관의 붕괴를 초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며 “경제적 여유가 있는 환자의 경우 고가의 진단장비를 구비해 원격의료를 실시하겠지만 저소득층 환자의 경우 이를 이용할 엄두도 내지 못하면서 동시에 가까운 1차 의료기관이 몰락하는데 따른 부정적인 영향이 이런 저소득층에게 집중될 것이다”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세계 최대 강국, 미국의 슬픈 자화상 
이처럼 영리병원 도입으로 인해 의료 민영화가 가시화되면서 이를 우려하는 전문가들은 이미 1960년대부터 의료 민영화를 실시하고 있던 미국의 예를 비교하며 현 정부의 잘못된 방침에 대해 일격을 가하고 있다. 세계 최대 강국인 미국의 슬픈 자화상인 바로 의료보험 민영화에서 여실히 들어나고 있기 때문.

몇 해 전 미국의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는 <식코>를 통해 잔인한 미국의 의료보험의 난맥상을 다루며 돈 없는 사람은 아프지도 말아야 하는 세상을 적나라하게 영상으로 담아 화제를 모았다. 감기 주사 한 방에 몇 만원씩을 지불하고 큰 수술을 하려면 수천, 수억 원을 지불해야 하는 세상이 온다면? 거짓말 같은 세상은 의료보험 민영화가 되는 순간 <식코> 속 세상은 우리의 일상이 될 것이다. 미국에서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은 주변국인 캐나다로 치료를 위해 원정을 떠나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캐나다에서 100원 하는 약이 미국에서는 수천 원, 많게는 수만 원하는 세상이니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는다면 지옥과 다름없는 곳이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민간보험사의 감독 하에 의료보험이 진행되는 일명 의료보험 민영화의 대표적인 나라로 4,700만 명에 달하는 무보험자는 물론 보험 가입자들도 빈약한 보장범위로 의료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의료보험 민영화를 선진화인양 강조하고 있지만 공보험과 사보험이 혼합된 미국 의료보험제도의 실태는 선진과는 거리가 멀다. 세계 최고의 부국이자 가장 높은 의료기술을 자랑하면서도 의료서비스 현실은 참담하다. 시장 논리에 의료서비스를 맡긴 탓이다. 4,700만 명에 달하는 무보험자는 물론 보험 가입자들도 빈약한 보장범위로 의료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큰 수술을 받거나 장기치료를 받고 나면 파산하는 개인이 허다하다. 불법이민자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그렇다고 미국인들이 의료비를 적게 지불하는 것도 아니다. 미국은 지난해 국내총생산량(GDP)의 16%가 의료비로 쓰였다. 금액으로는 2조 2,600달러, 1인당 지출액은 7,349달러이다. 선진 7개국 평균의 곱절에 가까운 92.7%를 더 지출하고 있다. 나라 전체로 보면 천 개가 넘는 보험회사가 수만 개의 상품을 팔고, 수많은 국민들과 회사들이 각자 알아서 보험회사에 가입해 있다. 또한, 의료인들과 의료기관들도 이들 보험회사들과 각각 계약되어 있다. 이러한 미국의 민간보험 주도 의료제도 하에서 미국은 유럽 국가들보다 2~3배, 우리나라보다 5배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고도 건강수준을 나타내는 지표인 평균수명, 영아사망률은 OECD 평균에도 못 미치고, 우리나라보다도 훨씬 적다.

게다가 이러한 경향은 매년 강화되고 있다. 선진국답지 않은 의료 사각지대를 만들어 낸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보다 훨씬 적은 의료비로 높은 건강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국민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제공되는 건강보험제도의 존재가 가장 큰 이유이다. 세계적으로 매우 우수한 공보험(국민건강보험)시스템을 배제하고 미국도 버린 의료보험 민영화 추진에 열을 올리고 있는 현재 또 다른 대안이 모색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료 ‘1만 1,000원’ 인상, 과연 기적은 일어날까
국민건강보험료를 올려 대부분의 입원진료비를 국민건강보험으로 해결하자는 범시민운동이 시작됐다.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준비위원회는 발족식을 열고 ‘풀뿌리 운동’을 추진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준비위원회 위원장인 이상이 제주대 의대 교수는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 보장률이 62% 정도로 낮기 때문에 국민은 1인당 월평균 민간보험료로 12만 원을 따로 지출하며 보장률을 보완하고 있다”면서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고, 보장성을 높이기 위해 국민건강보험을 확충해야 한다”로 주장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위원회 측은 국민건강보험 보장률을 현재의 60% 수준에서 OECD 국가 평균치인 90%로 끌어올리려면 국민건강보험료 총액인 36조 원의 30% 증가분, 즉 12조 원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보험료의 30%를 늘려 보장률을 30% 높이자’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 주장대로라면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를 비롯해 노인 틀니 보장구와 각종 의약품 비용 그리고 자기공명영상장치(MRI), 초음파 같은 검사비 등 환자의 부담을 늘리는 비보험 진료비 및 환자 간병비를 모두 국민건강보험으로 지원할 수 있으며 이러면 중병 환자의 연간 입원진료비가 100만 원이 안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에 의료계 일각에서 ‘사실상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도 흘러나고 있다. 직장과 지역-부양자와 피부양자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으며, 건강보험재정의 상승률을 무시한 얘기라며 반박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2009년 전체 건강보험 가입자 약 40%에 해당하는 1,927만 명이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무임승차하고 있다면서 피부양자 2,000만 명이 부담해야 할 5조 6,000억 원은 다시 직장가입자에게 부담될 것이기에 실질적으로 납부하는 계층에서 그 부담이 엄청나게 늘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1만 1,000원만 올리면 건강보험이 해결될 것처럼 말하는 것은 현실을 호도하는 것이기에 건강보험과 국민건강에 대한 신중한 자세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국민건강보험 도입 10년…‘뜨거운 감자’되다
‘1만 1,000원’의 운동이 범국민운동으로 발전할 경우 ‘과연 의료보험 민영화는 피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은 다시 한 번 되새겨 봐야 할 문제이다. 도입 10년 동안 국민건강보험 재정이 적자라는 얘기는 어제 오늘 들은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은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과거에는 국민건강보험의 혜택을 늘리면서 재정이 어려워졌는데 최근에는 혜택을 늘리는 것 없이 국민건강보험의 숨통을 들어 쥐어서 재정이 어려워 진 것이라는 게 관계자의 말이다.

그 와중에 국민건강보험은 점차 고사되고 있는 것이다. 62%의 보장률과 매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은 도입 10년 만에 ‘국민복지증진’과 사회통합의 아름다운 취지를 망각한 채 눈 가리고 아옹식의 대처법인 의료보험 민영화가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는 문제는 분명 더 실감나는 공포로 와 닿을 것이며, 급격하게 증가한 진료비 부담은 건강보험의 붕괴와 민간보험의 득세로 이어질 것이다.

미국의 의료시스템 사례를 말미암아, ‘정부가 안 한다면 국민이 한다’라는 1만 1,000원 범국민운동까지 면밀히 검토하고 따져봐야 할 중요한 시점이 온 것이다. 앞으로 고령화로 인한 노인층의 증가로 의료비 문제가 가계의 가장 큰 불안요소가 될 것이며, 이런 상황에서 안정적인 국민건강보험제도를 강화하고 의료비의 공공부담을 선진국 수준으로 확대하는 일이 시급해 졌다. 더불어 미국보다 민간의료기관의 비중이 더 크고 병의원 증설과 운영에 거의 아무런 규제도 없다는 점, 대부분의 보험료 인상분이 대형병원으로 돌아갔던 경험 등은 재정확대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의료시스템 구축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