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 첫 16강 진출, 韓 축구 역사를 새로 쓰다
쌍박양용 효과 톡톡, 세대교체를 통해 신구 조화 적절
2010-07-14 박희남 기자
그리스를 잡아라, 16강 진출의 분수령
한국은 초반부터 경기흐름을 완전히 장악했다. 생각보다 첫 골은 일찍 터졌다. 전반 7분경, 그리스 진영 쪽에서 이영표가 얻어낸 프리킥을 기성용이 반대쪽 포스트를 향해 찼고 수비수 이정수가 오른발 논스톱 슛으로 연결시키며 그리스의 골망을 갈랐다. 완벽한 세트피스 상황에서 터진 선제골이었다. 이후 강력한 압박으로 볼 점유율을 높이며 전반을 1:0으로 마친 한국은 전반전의 여세를 몰아 후반전에서도 특유의 투지 넘치는 모습을 선보였다.
두 번째 쐐기골은 캡틴 박지성의 발에서 만들어졌다. 후반 7분, 박지성은 허리 라인에서 상대편의 공을 가로챈 후 드리블에 이은 왼발슛을 성공, 상대방의 골문을 열었다. 후반전 막바지 쯤 한국은 기성용과 박주영, 이청용을 빼고 김남일과 이승렬, 김재성을 투입시켜 수비력을 높였고 이후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다.
유로2004 영광의 재현을 꿈꾸던 유럽의 강호 그리스를 격파한 한국. 이로써 한국은 승점 3점을 기록하며 B조 1위로 당당히 올라섰다.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에 성큼 다가선 순간이었다.
위기의 태극전사 아르헨티나에 1-4 대패
6월17일의 저주는 대체 어디가 끝이란 말이오. 한국대표팀은 유독 6월17일에 지독히 운이 따르지 않았다. 남아공대회까지 총 8차례 월드컵본선 무대를 밝은 한국은 공교롭게도 6월17일 4번이나 월드컵 경기를 치렀다. 하지만 결과는 1무3패. 한국은 6월17일 경기에서 단 한 차례도 승리를 거둔 적이 없다.
2010년 6월17일(한국시간). 우승후보 1순위 아르헨티나와의 조별리그 B조 2차전이 열리던 날, 이날 역시 한국은 곤살로 이과인에게 3골을 헌납하며 아르헨티나에 1-4로 완패했다. 한국은 전반전에만 아르헨티나에 2골(박주영 자책골, 이과인)을 내주며 짙은 패배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특히 최전방 공격수인 박주영은 전반 17분 메시의 프리킥이 다리를 맞으면서 자책골을 넣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그러던 중 전반전이 마무리되기 직전 이청용이 상대의 실책을 이용해 만회골을 성공시키며 2-1로 전반전을 마무리, 추격의 불씨를 지폈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였다. 후반 이과인에게 연이어 2골을 추가로 허용하며 결국 2010 남아공월드컵 1패를 기록하게 됐다.
나이지리아 2:2 무승부, 2002년 4강 신화 재현되나
탈락도 16강도, 모든 것은 이번 경기의 승패에 따라 좌지우지 된다. 그만큼 23일(한국시간) 더반의 모저스 마비다 스타디움에서 열린 남아공월드컵 B조 최종전 나이지리와의 경기는 중요하고 또 중요했다.
한국은 전반 시작하자마 이청용이 슈팅을 시도하는 등 적극적인 공격을 펼쳤다. 하지만 오히려 전반 12분 칼루 우체에게 선제골을 내주며 1-0으로 뒤진 채 탈락 위기에 몰렸다. 경기는 계속 됐고 전반 40분 쯤 기성용의 프리킥이 수비수 이정수의 머리와 다리를 거쳐 천금 같은 동점골로 연결됐다. 헌데 이 장면 왠지 익숙했다. 지난 12일 그리스와의 예선 1차전 첫 골 상황과 너무나 비슷했기 때문이다.
이후 1-1로 팽팽한 접전이 계속됐다. 후반 4분, 박주영이 프리킥 찬스를 만들었다.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자책골을 넣으며 눈물을 흘려야했던 박주영. 때문에 국민들의 바람은 간절했다. 그 순간 박주영이 강하게 감아찬 볼이 나이지리아의 골문으로 연결되며 그림같은 역전골을 성공시켰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김남일의 반칙으로 후반 24분 야쿠부 아이예그베니에게 페널티킥 골을 허용해 2-2 무승부가 됐다. 결국 이날 최종 스코어는 2-2 무승부. 이로써 한국은 1승1무1패, 승점 4점으로 아르헨티나(3승, 9점)에 이어 조2위로 한국 사상 첫 원정 16강에 진출하게 되는 쾌거를 달성하게 됐다.
계속될 것만 같았던 허정무호의 마법이 봉인 해제됐다. 한국은 26일(한국시간) 포트 엘리자베스 넬슨 만델라베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 1-2로 아쉽게 패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을 비난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싸웠기에, 가진 것을 모두 쏟았기에 5,000만 국민은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대한민국 파이팅!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2010 남아공월드컵 이모저모
똥개도 자기 집 안마당에서는 50%를 먹고 들어간다는데, 월드컵까지 개최한 남아공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월드컵 사상 개최국 첫 탈락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남아공은 22일 남아공 블룸폰테인 프리스테이드 경기장에서 열린 프랑스와의 2010남아공월드컵 A조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2-1로 승리를 거뒀지만 멕시코에 골득실(멕시코 +1 남아공 -2)에서 뒤져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개최국 첫 탈락 만큼이나 망신살을 당한 두 팀이 있다. 그 주인공은 2006 독일 월드컵 준우승팀인 프랑스와 디펜딩 챔프 이탈리아. 이 두 국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란히 사이좋게 예선 탈락, 그것도 꼴지의 수모를 맛봤다. 25일(이하 한국시간) 요하네스버그 엘리스파크에서 열린 슬로바키아와의 경기에서 2-3으로 무릎을 꿇은 이탈리아는 조별예선 2무1패를 기록, 승점 2점에 머물러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이로써전 대회 우승팀은 16강에 오르지 못한다는 가설을 증명했다. 반면 프랑스는 월드컵 기간 내내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선수는 감독에게 육두문자를 남발했고, 감독은 귀 막고 입답은 독불장군처럼 행동했다. 아트사커의 종가 프랑스는 아넬카와 감독의 불화 및 에바를 필두로한 선수들의 훈련 거부 등 내부적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자폭했다. 멕시코에 0-2로 패배한 프랑스는 우루과이와 0-0 무승부, 개최국 남아공에게 1-2로 패배하며 일찍 감치 짐을 쌌다.
한편 이번 월드컵 최대의 히트상품은 누가 뭐래도 ‘부부젤라(Vuvuzela)’다. 120~140데시벨(dB)의 코끼리 울음소리를 내는 부부젤라는 경기에 방해되는 시끄러운 소음 때문에 월드컵 기간 내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경기 시간 내내 해설은 고사하고, 뿌우우-뿌우우 소리만 들어야 했던 관중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젤라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