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죽을 만큼 운동중이신가요”
지나친 운동은 몸 망치는 지름길, 운동을 하면 자연마약인 베타 엔돌핀 분비 돼
172㎝, 108㎏이었던 20대 직장인 박모 씨. 그는 다이어트를 위해 하루 3시간 이상 걷기와 자전거타기, 줄넘기를 반복하면서 90일 만에 32㎏을 감량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A씨는 하루라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자신이 다시 살이 찔 것 같다는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회사원 김모(44) 씨는 2년째 매일 새벽 등산을 한 후에 출근을 한다. 그러던 중 최근 무릎 통증이 있어 병원을 찾은 결과 초기 관절염 진단을 받았다. 무릎 관절을 혹사했기 때문이다. 등산을 잠시 쉬라는 의사의 충고가 있었지만 그는 무릎에 붙이는 소염진통제로 통증을 견뎌내면서 매일 등산을 강행한다. 하루라도 등산을 하지 않으면 왠지 일손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박 씨나 김 씨처럼 운동을 안 하면 불안·초조·우울감 등의 금단현상이 나타나고 운동에 집착함으로써 사회활동에 지장 받으며 자기조절능력에 문제가 생기는 것, 이것이 바로 ‘운동중독’ 증상이다. 운동중독은 운동에 과도하게 몰두함으로써 운동수행능력에 대한 자기조정능력이 약해지고 타의에 의해 운동을 못할 경우 혼란과 무기력에 빠지게 된다.
운동, ‘최상의 행복감’에 중독성이 있다
운동은 인체의 반복 행위인 만큼 노동처럼 고통과 지루함을 수반한다. 그런데도 왜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일까.
연구결과 마라톤, 보디빌딩, 배드민턴, 축구 등 생활체육 동호인의 70%정도가 운동중독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엔 몇 가지 생리적 배경이 있다.
첫째, 격렬한 운동 후에는 긴장과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우울증이나 자신감이 낮은 사람에게 이런 현상은 뚜렷하게 나타난다. 운동의 경우 알코올중독이나 약물중독 등 다른 중독과는 달리 운동 자체를 통해 생활의 활력소를 찾으며 긴장과 우울 증세를 해소하면서 자신감을 찾는다. 이 과정을 통해 건강이 좋아지는 것에 대한 만족감을 얻는다.
둘째,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일명 ‘엑서사이즈 하이’라고도 하는 현상 때문이다. 이 현상은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 거의 모두가 운동 중 또는 운동 후에 기분이 매우 좋아진다고 말한다. 마라톤을 30분 이상하면 ‘몸이 붕 뜨는 기분’에 젖어들게 되는데 이는 마치 마약을 하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비슷한 의식 상태나 행복감에 비유된다. 실제 탈진상태에 이를 정도로 운동 강도가 최고점에 이르면 베타 엔돌핀이라는 호르몬의 분비가 왕성해져 고통은 줄고 행복감이 커지는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고 알려져 있다. ‘베타 엔돌핀’은 우리 몸에서 생성되는 신경물질로 마약과 화학구조가 유사하다. 운동 시에 일반적으로 5배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되며, 그 효과는 일반 진통제 수십 배에 달한다. 엔돌핀은 통증에 대한 민감성을 감소시켜 황홀감과 중독성 행동성향을 일으킨다. 이것이 운동을 시작한 사람이 점점 더 운동에 빠져드는 이유다.
운동을 하면 그 외에도 다양한 체내 마약성 물질들이 증가한다. 이 같은 현상은 운동 시 생성되는 젖산 등 피로물질의 축적과 관절의 통증을 감소시키기 위한 체내 보상작용인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최상의 행복감’에 중독성이 있다는 데 있다. 최고조에 이른 상태를 경험한 사람들은 이런 희열을 다시 느끼기 위해서 운동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운동 할수록 점점 불안해지는 이 느낌은 뭐지?’
문제는 행복해하는 거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운동중독의 가장 큰 문제는 몸을 필요 이상으로 혹사시켜 질병을 야기하고 상태를 악화시킨다는 데 있다. 그래서 중독에 이를 경우 운동이 되려 삶을 지배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운동중독에 빠지면 우선 금단증상을 느끼게 된다. 마치 운동을 많이 하면 할수록 더 건강해진다는 잘못된 인식에 빠져 운동에 몰두하다가 결국 건강상의 문제가 생기게 된다. 또 내성 때문에 운동 강도도 더 높아지며 부상이나 다른 이유로 운동을 못하게 되면 분노, 게으름, 우울, 답답함, 죄책감, 불쾌감, 신체활력저하, 신체이완, 식욕증가 등과 같은 금단증상을 겪기도 한다. 나중에는 스스로 운동을 중단하거나 운동량을 줄이려고 해도 뜻대로 되지 않게 된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다 보면 어느새 운동은 일상의 중심이 돼 버리고 만다.
운동중독으로 인한 대표적인 증상은 잠을 제대로 못 이루는 것이다. 단거리 운동이나 웨이트 트레이닝과 같은 무산소 운동을 지나치게 하면 흥분 상태가 지속되고 잠이 안 오거나 혈압이 높아지고 불안, 빈맥, 체중 감소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 달리기와 같은 유산소 운동을 많이 하면 맥박이 늦게 뛰고, 계속 잠이 오거나, 피로, 입맛이 없어지고, 기분이 처진 느낌이 발생한다. 보통의 경우 이 두 가지 증상이 섞여서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의들은 하루나 이틀간 운동을 안 했을 때 심리적으로 불안, 초조, 우울감 등을 느끼거나 일주일 내내 매일 운동을 해야 한다고 느낄 때, 가족이나 대인 관계보다 본인의 운동 스케줄을 우선시 할 때, 가족들이 운동을 하지 못하게 막는 경우가 있을 때, 또 매일 2시간 이상씩의 등산을 즐기는 경우, 발목·정강이 등에 통증이 있으나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운동을 지속하는 경우에 운동중독을 의심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근육이나 인대, 관절 등을 다치면 완전히 회복된 후 다시 운동을 해야 하지만 운동중독자들은 어느 정도 견딜 만하면 다시 운동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몸이 회복될 사이도 없이 악화된다. 때문에 운동중독으로 인해 몸이 망가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적절한 운동인지, 그리고 운동 강도가 적당한지 등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또 과도한 운동 때문에 몸에 이상은 없는지 체크하는 것도 중요하다.
운동중독, 방심하면 누구에게나 걸릴 수 있어
육체노동을 많이 한 사람이 빨리 늙듯 지나친 운동을 하면 몸의 세포들이 에너지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유해산소가 형성되어 노화를 촉진시킨다. 중년 이후에는 유해산소를 억제하는 항산화 효소 생성력이 떨어지므로 30대 이후에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이 지나친 운동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강도 높은 운동을 뒤늦게 시작한 사람들이 ‘이틀만 쉬어도 몸이 찌뿌듯하고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역시 ‘운동중독’으로 좋지 않은 신호다. 베타 엔도르핀의 과잉분비가 몸의 이상을 감지하는 감각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려는 사람들은 적정 수준을 넘지 않아야 하며, 점진적으로 강도를 늘려나가고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스포츠의학 전문가들은 가벼운 운동이라도 규칙적으로 2∼3개월 계속하면 100% 운동의존증이 생긴다고 지적한다. 등산 또는 매일 3㎞를 걷는 것만으로도 이런 현상이 생긴다.
그렇다면 운동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스스로 운동 조절 능력을 키울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오늘의 운동량이 목표점에 도달했을 때는 운동을 멈출 수 있는 조절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개개인의 능력과 수준에 맞도록 운동량을 조절해야하며 전문가의 진단과 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혼자 하는 운동보다는 여럿이 어울려 하는 동호회에 가입하는 것이 좋고, 운동중독이 의심되는 경우에는 주저하지 말고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일정량의 운동을 하고 난 후에는 적당한 휴식이 있어야 한다. 통증이나 피로감이 느껴질 때는 운동을 하루 정도 쉬는 것이 좋다.
나에게 맞는 적절한 운동
운동중독은 긍정적인 면이 많다. 우선 지루하고 고통스런 운동을 규칙적으로 할 수 있게 하는 동기를 부여한다. 그래서 운동을 하지 않아 성인병에 걸리는 것보다 운동 부작용이 오히려 이롭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그렇다면 내게 맞는 적절한 운동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상적인 운동은 유산소운동 70%+근력운동 25%+유연성 강화운동 5%를 기본으로 각자 체질과 체형에 맞게 비율과 강도를 조절해 매일 하는 것이 좋다. 내게 맞는 운동을 찾으려면 ▲질병의 유무 ▲체력 상태(나이와 체형, 직업, 출산 경험 등을 모두 포함) ▲자각적 느낌을 종합해야 한다.
우선 자신의 운동 목적을 파악해야 한다. 스포츠 선수 또는 비만을 개선하는 목적이 아니라면 건강을 유지하는 정도의 운동량이 적당하다. 주 3~5회, 1회에 1시간 이내에서 운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운동종목을 바꿔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무엇보다 몸의 경고 증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인대가 늘어나고 뼈에 무리가 가는지 이상은 없는지 잘 살펴야 한다. 또 과훈련 증후군 증상이 나타나면 즉각 운동을 쉬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 과훈련 증후군이란 운동을 해도 경기성적은 떨어지고, 만성피로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건강을 유지하는 정도의 운동량이 적당하다. 1시간 이내에서 운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격렬한 운동을 한 다음날에는 휴식을 두거나 운동 강도를 줄이는 것이 좋다. 따라서 운동중독을 예방하려면 정기적으로 스포츠의학 클리닉을 찾아 현재 하는 운동이 자신에게 맞는 운동인지, 강도는 적절한지, 과도한 운동 등으로 신체질환이 발생했는지 등을 체크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기 몸의 운동능력을 측정하는 지표로 심박수가 곧잘 쓰인다. 심폐기능을 향상시키려면 최대 심박수(220-나이)의 70∼85%로, 체중감량을 원하면 60∼70%, 초보자는 50∼60%로 운동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