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 해소방안 모색

2005-02-13     글/정숙경
장기화된 청년실업이 드리운 ‘그늘진 젊음’
청년층에 발목잡힌 실업률…사상 최고치 앞으로 5년간 지속 전망

대학가의 도서관 풍속도가 바뀌고 있다. 일부 고시생들만 드문드문 눈에 띄던 한적한 옛 풍경은 사라졌고, 넉넉하던 자리는 취업준비생들로 꽉 찼다. 국제무역사, 금융자산관리사, 관세사, 감정평가사 등 다양한 자격증 취득과 취업 준비생들이 대부분이다.
13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4년 및 12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15세에서 29세까지의 청년층 실업률은 7.9%로 지난 99년의 10.9% 이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해 20대 태반이 백수라는 말이 빈말이 아님을 입증했다. 특히 대졸 여성의 실업률은 전달보다 10.5%나 증가했다.



2005 청년실업, 멈추지 않는 질주
2005 청년실업, 멈추지 않는 질주
나 떨고 있니? 청년들이 불안하다. 최근 취업난에 시달리는 20, 30대의 실업우울증은 체념을 넘어 죄책감으로 사회공포증을 낳기도 한다. 인터넷 취업포털 잡링크가 구직회원 2,44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구직활동 중 스트레스로 질병을 앓아본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61.6%가 ‘그렇다’라고 답했으며, 가장 심하게 앓은 질병으로는 우울증이 52.7%로 단연 1위를 차지했다. 청년실업이 ‘청년우울증’을 양산한 것이다.
대학생 취업 사교육비도 연평균 164만원으로 ‘쑥쑥’ 올랐다. 극심한 취업난의 여파로 대학생 10명중 5명이 취업을 위한 사교육을 받고 있으며 이들이 1인당 취업을 목적으로 쓰는 사교육비는 연평균 164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세태를 반영하듯 한때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이태백이라는 ‘신’조어는 이제 ‘헌’조어가 된지 오래다. 신규 구직자들의 취업난이 가중되면서 졸업을 하지 않고 학교에 머무는 ‘대5(대학 5년생)’을 비롯,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듯 어렵게 취업한 졸업 예정자를 뜻하는 ‘낙바생’과 학업과 창업의 이중생활을 겸하는 ‘더블 라이프족’, 토익폐인을 의미하는 ‘토폐인(토익 폐인)’이란 신조어들이 출시되고 있다.

청년실업, 양극화에 ‘시름시름’
청년실업의 굴레. 내일은 보이지 않는 것인가. 미래의 국가 주역인 젊은이들이 꿈을 펼치기는커녕 학교 문을 나서자마자 좌절부터 맛보며 방황해야 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는 물론이고 '사회건강성' 차원에서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한국 경제는 극심한 양극화를 경험했다. 수출은 사상 최대의 실적을 냈지만 내수는 심각한 부진을 보였다. 이런 경제가 건강할 리 없고 양극화 해소와 동반성장 없이는 고도성장도 의미가 없다.
이러한 경제 상황을 반영하듯 인구 증가와 고학력화 때문에 앞으로 5년간 청년실업 문제 해소가 어렵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나왔다. 엘지경제연구원은 ‘청년실업 5년간은 개선 어렵다’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연간 경제성장률을 4.5~5.0%로 설정할 때 청년층 인구 증가, 고학력화, 고급 일자리 감소 등 때문에 청년실업 문제는 향후 5년간 해소되기 어렵다”고 밝혔다. “본격적인 취업을 해야 할 이 연령대 인구가 2008년 401만 명까지 늘면서 청년실업 문제에 부정적인 인구구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보고서는 지난해 80%에 육박한 대학 진학률을 청년실업 해소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꼽았다.
또한 기업들이 신규투자보다 기존의 설비를 보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인력 구조조정은 상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심각하다.
무엇보다도 구직자들의 눈높이가 여전히 고공비행 상태라는 점이 고학력 청년실업의 심각한 요인으로 꼽혔다. 대졸실업자가 사회 문제로 떠오른 것은 오래 전이다. 대학 졸업 후 1년 이상 구직활동을 하고 있는 장기 구직자가 47%에 달하는 등 청년실업이 심각하지만 중소기업과 지방 근무 기피현상은 여전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졸실업은 구직자들의 눈높이를 낮추지 않고서는 해결이 쉽지 않은 고질병이다. 젊은이들의 직업에 대한 눈높이가 지나치게 높은 것이 ‘희망’ 실업을 양산했고 아직도 많은 기업에서는 쓸 만한 인재를 구하기 어렵다고 토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판을 갈아야 청년실업 뚫린다
판을 갈아야 청년실업 뚫린다
어떤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일까? 한국의 교육당국은 그 동안 끊임없이 교육제도를 수술해 왔다. 하지만 공교육은 무너지고 사교육이 그 역할을 상당부분 대신하기에 이르렀다. 교육을 통한 인력공급의 구조와 사회 각 부문의 인력수요의 구조를 연결시켜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인력흐름 모델은, 사회가 요구하는 인력수요의 구조와 거의 맞지 않다.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대학졸업자의 비율은 50%도 채 되지 않는데, 90%의 청소년이 대학을 졸업한다.
반대로 기업체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기능인력의 공급은 충분치 않다. 정부의 교육정책은 이 두 톱니바퀴를 맞추려는 노력은 어디에도 없고, 단지 입시제도만 뜯어고치는데 중점을 두었기에 뿌리가 흔들리는 것이다.
유럽의 독일, 스위스, 스웨덴 등의 경우, 대학입학 비율이 60~70%에 그치고, 초-중학교 시절부터 직업교육을 시작한다. 고졸 단계에서 청소년의 30~40%가 사회로 흡수되고 고졸자와 대졸자의 소득격차를 줄임으로써 과도한 대입경쟁을 막아 청년실업자를 줄이는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들은 매년 신입사원을 뽑으면 이들을 재교육시키는 데 많은 예산과 시간을 낭비했다. 기업에서는 지식활용기술력은 물론 예절태도까지도 다시 가르쳐야 하는 실정이고 이러다 보니 기업들은 대학에서 무엇을 가르치는지 모르겠다고 볼멘소리를 해왔다. 이에 최근 청년실업시대를 맞아 대학도 기업이 필요한 인재양성에 눈을 뜨는 등 대학교육을 개선하기 시작했다. 대학교육의 개혁 없이는 차세대 성장산업을 이끌 핵심 인력을 육성할 수 없다는 점에서 대학교육의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은 산업이고 산업이 돼야 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은 바로 이점을 지적한 것이다.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은 산업현장이 요구하는 인재양성에 달렸다. 그러한 인재양성은 대학의 몫이다.

청년실업 공화국, 봄날 언제 오나
장기화 된 경기 침체는 실업자의 증가와 함께 사회적 약자들이 헤어나지 못하는 늪으로 더욱 깊이 빠져 들어가는 현상을 가져왔다. 그 구조화된 불황에 청년실업도 끼어 있다.
사실 청년실업 문제는 올 한해 반짝 집중해서 해소될 사안이 아니다. 대학교육의 공급 과다와 산업수요에 못 따르는 교과과정, 인력개발과 잘못된 산업 육성 등 갖가지 사회문제가 뒤섞인 복합적인 병이다. 노동부 말고도 교육부, 산업자원부, 중소기업청, 재정경제부, 보건복지부 등 각 부처가 장기적으로 매달려 복합적인 처방을 내려야 할 문제다.
이러한 심각성을 인지한 것인지 정부에서는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서울시는 행정 복지 서포터스와 청년공공근로사업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2만개 정도의 일자리를 제공할 계획이고 특히 청년 실업자의 해외취업을 돕기 위해 시 산하 산업진흥재단에 ‘해외취업교육센터’를 개설, 운영하기로 했다.
중장기대책의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비교적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공공부문에서 일자리 제공, 직장체험, 직업훈련 등을 통해 청년층이 취업 의사와 취업능력을 잃지 않도록 하는 데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직장체험, 직업훈련, 해외취업 지원은 참여기간만 단기일 뿐 청년층의 원활한 취업을 위해 장기적 관점에서도 필요한 사업이다. 학교를 졸업했더라도 기업이 원하는 직업능력을 갖추지 못한 청년층에 대한 지원 등 모두 능력개발을 위해 실시되는 사업들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청년실업종합대책을 다양한 방법으로 평가하고 현재 보완책을 마련 중이다. 국회국정감사, 대국민 설문조사, 전문가 연구평가, 감사원 감사 등과 함게 민간전문가와 관계부처로 구성된 '청년실업대책 태스크포스팀'에서 사업별 성과를 평가했다.
또 노사 및 시민단체, 교육계, 여성계, 청년실업전문가 관계부처 등으로 청년실업 대책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청년실업 해결을 위한 지혜를 모으고 있다.
그리고 나름대로 청년실업자와 대학생들을 만나 그들이 바라는 해결책을 듣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새로운 청년실업대책은 청년층 단계별 진로, 직업지도 및 직업세계 경험을 통한 직업관, 직업의식 확립 등에 중점을 둘 계획이다.
정부는 2005년 40만개 일자리 창출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지하였듯이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서 '40만개 일자리 창출'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 만약 임시직 40만개를 제공하는 땜질식 처방을 한다면 통증 완화에 그칠 뿐이다. 내년에도 같은 문제가 재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일자리 20만개를 찾아주는 게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교육제도의 ‘인력 배출시스템’과 산업구조상의 ‘인력수요 시스템’이 잘 맞아떨어진다면, 지나친 대입경쟁과 그에 따른 엄청난 사교육비 문제, 해외조기유학 현상 등이 감소할 것이고,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을 못하는 ‘청년 백수’들도 줄어들 것이다. 이렇게 되었을 때 공교육은 정상화되고 청년실업은 자연스럽게 매듭을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해외 사례
1.독일의 JUMP
독일은 1999년부터 ‘청년들의 훈련, 자격증 및 고용을 위한 즉각적인 행동프로그램’(JUMP)을 시행했다. 정부와 기업이 다양한 연구와 훈련 프로그램 제공하고 자격증 취득하도록 지원했다. 그 결과 10만명 참여를 목표로 했던 JUMP 프로그램은 1999~2000년 참가자가 27만명에 달할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 이후 1997년 10.2% 청년 실업률이 2001년 8.4%로 감소했다. 또한 직업훈련이 힘든 외국인 회사, 첨단기술분야, 신흥산업부분 등에 직업 훈련기회 제공했다.
2.프랑스의 청년고용계약과 TRACE
청년층 고용문제를 단순히 구직의 문제가 아닌 복합적인 요소에 의한 문제라고 인식에서 출발하여 지금까지 프랑스가 해온 청년층 고용지원 프로그램 수행결과를 바탕으로 만든 제도이다. 재취업 지원 및 직업 훈련의 현대화에 초점을 맞추어 참여 과반수의 장기적인 일자리 제공을 목표로 했다. 그 결과 1999~2000년 두 해 동안 30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됐다.
3.영국 청년 뉴딜 프로그램
1998년 ‘청년 뉴딜 프로그램(New Deal for Young People)’을 도입했다. 만 18~24세 청년실업자 중 6개월 이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을 대상으로, 지도교사의 ‘1대1’ 밀착 상담과 체계적 훈련을 통해 취업이 될 때까지 국가가 책임져주는 제도다. 이 프로그램은 청년 장기(長期) 실업자 숫자를 줄이고 매년 1만7000여명의 청년 고용을 추가로 창출, 영국의 실업률을 낮추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