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인간의 출현, 안전지대는 사라졌다
사이코패스와 변태성욕자들의 습격, 근본적 대책은 없나?
산업화 정책이 절정에 달했던 80년대 중반, 한강에서 등이 굽은 물고기가 무더기로 발견돼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는 떼죽음 당해 떠오른 그것과 사뭇 다른 섬뜩함을 불러일으켰다. 그 막연한 공포는 단순한 현상(現象)이 아니라 끝없이 변형과 확대를 반복하는 징조(徵兆)에 기인하고 있었기에 더욱 강력했다.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논리만을 강요하는 현대사회도 당시의 한강생태환경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무분별하게 유입되던 폐수가 등이 굽은 물고기를 낳았다면, 숨 막히도록 조여 오는 오늘날의 우리사회는 또 어떤 기형(畸形)을 만들어내고 있을까?
안전지대는 사라졌다
이번에는 학교에서였다.
지난 6월7일 오전 10시경, 서울 영등포구에서 등교하던 초등학생 A(8)양이 학교운동장에서 납치돼 끔직한 성폭행을 당했다. A양은 범인이 잠든 사이에 범죄현장을 빠져나와 학교로 돌아왔고, 한 교사가 이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A양의 진술과 학교 주위에 설치된 폐쇄회로 화면(CCTV)을 토대로 탐문수사를 벌여 같은 날 밤, 용의자 김모 씨(44)를 검거했다. 김 씨는 경찰조사에서 “맥주를 마시면 성욕을 느낀다. 일감이 없어 집에서 술을 마시다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피해자 A양은 복부와 항문 등에 심각한 상해를 입어 5~6시간에 걸친 응급수술을 받았다. 의료진에 따르면 치료에만 최소 6개월이 걸리며, 신체와 정신적 피해로 인한 치명적인 후유증이 뒤따를 것으로 보여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지난 2008년 12월 교회 화장실에서 8세 여아를 강간상해한 조두순 사건과 올해 초에 벌어졌던 김길태의 여중생 강간살해사건에 이어진 터라 그 충격이 더욱 크다.
조두순에게 유린당한 B양 역시 대낮의 대로변에서 납치되었고, 김길태에게 강간당한 후 목숨까지 빼앗긴 C양의 경우에는 자신의 집에서 변을 당했다. 그리고 이번에 A양은 학교운동장에서 납치당했다.
대로, 집, 학교…. 우리 아이들의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마지막 보루마저 사라진 셈이 됐다. 경찰은 연일 범죄예방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극심한 불안증은 쉽게 진정되지 않을 전망이다. 일부 학부모들은 자체 순찰단을 꾸려 직접 방범활동에 나서겠다고 밝혔을 정도다.
“나를 지배하는 욕망의 괴물”
유영철, 조두순, 정남규, 강호순, 김길태. 이들은 최근 몇 년 사이 전국을 공포와 분노에 빠뜨렸던 희대의 흉악범들이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사람들을 잇달아 살해했거나 미성년의 아동이나 청소년을 잔인한 수법으로 짓밟았다. 물론 살인, 강도, 강간 등 흉악범죄는 시대를 막론하고 존재했다. 사회구조가 복잡해지고, 발전을 거듭할수록 그 빈도나 잔인함이 상승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에 우리가 목도한 일련의 사건들은 이러한 일반적인 강력범죄와는 전혀 다른 측면에서 해석된다. 과거의 범죄들이 주로 원한이나 치정, 혹은 돈과 관련된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이었다면, 앞서 예로 든 최근의 사건들은 개인이 가진 반사회성(反社會性)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내 속에는 욕망의 괴물이 있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건 발생 8일 만인 15일 오전 6시, 현장검증에 나선 김 씨는 모자를 눌러쓴 머리를 숙인 채 덤덤하게 말했다. 100여 명의 취재진과 주민들이 분노와 먹먹함이 교차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를 지켜봤다. 2시간가량 진행된 이날 현장검증에서 그는 경찰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부산에 내려가 산이나 모텔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며 잠시 흐느끼기도 했지만, 일말의 연민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사건 자체의 참담함도 그렇지만, 그는 검거 직후 뻔뻔하고 파렴치한 표정으로 “징역을 얼마나 살면 되겠느냐?”며 반문했을 만큼 냉혈한(冷血漢)이었다.
또한 김씨는 23년 전 강도짓을 하고 피해자의 남편이 보는 앞에서 부녀자를 강간하는 등 엽기적인 범죄행각으로 15년 동안 수감된 적이 있었고, 출소 4년 만인 2006년에는 15세 남학생을 성추행해 경찰조사를 받았던 전력도 밝혀졌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전형적인 ‘반사회적 인격장애 범죄’로 보고 김 씨의 여죄를 추궁하고 있다. 실제 그는 지난해 신경정신과병원에서 ‘반사회적 인격장애’ 진단을 받았으며, 우울증 등으로 7개월에 걸쳐 치료를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인격장애(personality disorder)란 인간이 사회적으로 적응하지 못한 채 개인 자신을 고통 속에 빠뜨리는 정신장애를 말한다. 이는 사회적 관계와 대인관계의 부적응, 타인을 괴롭히는 경향, 자기중심적인 인간관계를 나타내는 특징을 보인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반사회적 인격장애는 비이성적이고, 비도덕적이며, 충동적인 성향을 드러내며 죄의식 없이 반사회적이고 범죄적인 행동을 지속하는 증상을 말한다. 흔히 ‘사이코패스(Psychopath)’라 불리는 자들이 대부분 이에 해당된다.
교정(矯正)이 아니라 치료의 대상
원인과 치료방법 현재까지 없어
전문가들은 “이들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까닭에 범죄행각이 매우 잔인하고 반복적일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이들에게 있어서 ‘인면수심(人面獸心)’이란 말은 단순히 분노를 담은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말 그대로 사람의 얼굴을 하였으나, 범죄본능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존재로 새롭게 분류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사회적, 의학적, 생물학적으로 기존의 인간과 전혀 다른 ‘변종인간’이 출현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현행 교정제도의 핵심은 신체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범죄자 스스로가 도덕성을 회복하도록 유도하는 것에 있다. 하지만 사이코패스를 비롯한 반사회적 인격장애 범죄자들 앞에서는 이러한 기대가 무색해진다. 애초부터 이들은 회복할 도덕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으로 의학계는 이를 일종의 신종질환으로 인식하고 있다.
최근 들어 뇌 과학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고, 사이코패스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마땅한 치료방법 찾지 못한 상태다. 의학적 측면에서 보자면, 아직까지 불치병으로 분류되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급속한 산업발전 이루는 과정에서 각종 사회병리현상을 폭넓게 겪은 서구선진국들도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반사회적 인격장애 성향을 조기에 색출해 범죄발생을 미리 차단하거나, 영구격리 등 강력한 처벌을 조치하는 수준이다.
2009년 7월 미국 텍사스주 법원은 10대 소녀 3명을 20개월에 걸쳐 성폭행한 40대 남자에게 ‘4060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그리고 최근 유럽에서는 뜨거운 논란에도 불구하고 ‘화학적 거세’가 시행되기 시작했다. 상습적인 성범죄 중 성도착증 환자에게 주기적으로 화학적 호르몬을 투입해 인위적으로 성적욕구를 감소시키는 것이다. 심지어 체코에서는 성범죄자의 고환을 제거하는 ‘물리적 거세’를 시행하고 있으며, 지난 10년 동안 94명이 물리적 거조치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연이어 발생한 미성년자 성폭행사건을 계기로, 국내에도 이러한 화학·물리적 거세 처벌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6월14일,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은 잇따르고 있는 아동 성폭력 범죄를 방지하기 위해 화학·물리적 거세제도를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스위스와 덴마크, 스웨덴 등의 사례를 들며 “거세처벌을 제도화 한 이들 나라의 경우 40%에 달하던 성폭력 재발률이 5% 미만으로 낮아진 점”을 강조했다.
증세를 드러내지 않는 사이코패스도 많다
하지만 이미 발생한 범죄에 대한 처벌보다는 적극적인 예방활동을 통해 피해자를 만들어내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사이코패스 범죄의 예방책에 대해 논의함에 있어서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사이코패스라 해도 이들이 모두 범죄와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정한 조건과 환경이 맞아 떨어질 때 비로소 범죄로 발현된다는 것인데, 최근에 검거된 반사회적 인격장애 범죄자들 대부분이 학대, 방임, 가난으로 불우한 유년시절을 경험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20명을 살해한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은 가난과 고독으로 점철된 유년기를 보내며 반사회성을 키웠고, 얼마 전 부산에서 여중생을 강간 살해한 김길태도 친부모에게 버림받은 후 양부모 손에서 성장하며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번에 서울 영등포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을 일으킨 김 씨 역시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를 잃은 후 설움에 젖은 유년기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들이 불우한 개인사(個人史)를 겪었다고 해서, 함부로 면죄부를 건넬 수 없는 노릇이다. 그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다수의 피해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범죄발현과정을 짚어보는 것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일임에 틀림없다. 범죄자들의 인권이 아닌, 이들로 인해 잠재적 피해자로 전락한 대다수 사람들의 안전을 도모하는 차원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현재까지 알려진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의 개인사에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범죄성향을 극대화시킨 ‘불우했던 유년’에 주목하고 있다. 어차피 사이코패스 성향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없다면, 가능한 한 이를 억제시켜 구체적인 범죄행위와 차단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안전망이 보다 촘촘했다면, 그래서 조금이라도 덜 불행한 유년시절을 보냈더라면 그들의 범죄본능을 억제시키거나 지연시킬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미 흘러가버린 시간에 대한 덧없는 가정일 수 있다. 하지만 이들로 인해 소중한 가족을 잃었거나 치명적인 후유증을 안은 채 살고 있는 피해자들을 떠올리며, 그런 부질없는 아쉬움에 휩싸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보다 근본적인 예방대책은 없나?
주로 아동과 부녀자들이 희생되고 있는 가운데 경찰을 원망하는 목소리가 높다. 근본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제때 내놓지 못하는 탓이다. 설상가상으로 이번 사건에 대해 초동수사가 부실했다는 지적과 함께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져 경찰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사건 발생 사흘 뒤, 교육과학기술부는 전국 16개 시·도 교육청 관계자 긴급회의를 소집해 대책을 내놨다. 내달부터 전국 초중고에 ‘연중무휴 24시간 순찰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게 그 골자다. 추가적으로는 ‘배움터 지킴이’를 상시 배치, 교내 폐쇄회로 화면(CCTV) 실시간 모니터링, 외부인원에 대한 방문증 발급, 학생의 등하교 상황을 알려주는 ‘안심문자 서비스’ 확대, 교내 안전지대 지정 등이 포함됐다. 하지만 교과부의 신속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반응은 냉소적이다. ‘사후약방문’식 뒷북 대책이라는 것이다.
한편 비슷한 유형의 사건이 반복될 때마다 한층 강력해지는 법망(法網)이 뜻밖의 아노미현상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하는 목소리도 있다. 근본적인 예방책을 마련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소수의 사이코패스를 차단하느라 다수의 사람들이 사법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한 이는 사회 전반에 사람에 대한 불신이 쌓이고, 사회적 약자들의 소외현상이 가중되면서 끔찍한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사회복지 전반의 제도정비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이코패스 인자를 보유한 새 생명이 태어나고 있다는 걸 전제로 할 때, 이들이 가진 범죄본능을 최대한 억제시킬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갖추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이를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실질적인 해결책일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불안의 실체는 “나와 우리 가족 역시 사이코패스 범죄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막연한 공포가 아닐 수 있다. 끝없이 변형하며 자기 복제를 반복하는 변종인간을 향한 구체적인 공포일 수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오염된 한강의 기형물고기’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 대목이다. 무분별하게 유입되던 폐수가 등이 굽은 물고기를 낳았듯이, 적자생존(適者生存), 무한경쟁이 최고의 가치로 추앙하는 현대사회가 이와 같은 인간 돌연변이를 만들어낸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사회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는 이상, 더욱 잔인하고 강력한 변종인간이 출현하지 않을 것이라는 장담을 할 수 없게 된다.
몇 해 전, 폐수로 인해 돌연변이를 일으킨 괴물이 한강에 나타났다는 내용의 영화가 크게 흥행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한강은 본래의 모습을 거의 되찾은 듯하다. 기형물고기가 잡혔다는 소식은커녕, 한강의 생태가 되살아나고 주말마다 낚시를 즐기는 도시의 강태공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릴 뿐이다. 이 반가운 현상은 우리사회가 산업적으로 퇴보했거나 성장을 늦춰서 가능해진 것이 아니었다. 30여 년에 걸쳐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쏟아온 덕분이었다.
우리 아이들의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있다고 믿었던 마지막 보루마저 무너져 버린 지금, 공포와 분노에 휩싸이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앞서 겪었던 한강의 기형물고기 사례에서 그랬던 바와 같이 이성적인 관점으로 차분하게 대응해나가야 할 시점으로 여겨진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형성하는 것이 사회환경이다. 비록 오랜 세월을 쏟아 부었지만 신의 영역이라 불리는 자연환경도 사람의 노력으로 바꿔냈다. 하물며 사람에 의한 사회환경인데, 굳이 바꿔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포와 분노가 아닌, 의지와 신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