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의 여왕 박근혜의 침묵, “드릴 말 없다”
한나라 “더 이상 대안 없다” 박근혜 당대표 추대론 불거져
지방선거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는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다시 ‘박근혜 역할론’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관련,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 짧게 응수했다. 사실상 역할론을 일축한 것이다.
박 전 대표 앞세워 당 위기 극복해야
정치적 칩거 중인 박근혜 전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과의 화해를 바탕으로 전면에 나서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논리는 당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터져나와서 진정성을 잃어가는 멘트이기도 하다. 친이계는 박 전 대표의 전당대회 출마, 국무총리직 수락 등을 요구했다. 한나라당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를 아우르는 정치의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친박계는 아직도 이명박 대통령이 박 전 대표를 진정한 국정 동반자로 대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친박계인 현기환 의원은 8일 <KBS> 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에 출연해 이와 같이 밝혔다.
결국 이 대통령이 먼저 ‘국정 동반자’로서 박 전 대표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를 포용할 수 있을 것이냐’의 문제에 대해 정치권 관계자 대부분은 고개를 젓는 것이 현실이다.
중립 성향의 권영세 의원은 “박 전 대표가 일을 할 분위기를 만든 다음에 요청해야지, 세워놓고 흔들릴 수 있는 상황에서 역할을 맡으라는 식이라면 맡기도 힘들 거고, 대표를 맡아도 당에 플러스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친이계의 공세를 꼬집었다.
선거 전후만 되면 박 전 대표를 일단 거론하고 보는 한나라당의 고질적인 현상이 문제라는 지적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또 여야 모두 ‘MB정부 심판론’이 통했다는데 공감하는 상황에서, 박 전 대표가 선거에 나왔다 한들 영향력을 발휘했을지 여부도 불투명하다는 지적이다.
침묵, 칩거 박 전 대표의 시나리오는?
일각에서는 “당직을 맡지 않은 비주류라고는 하지만 무관심이 지나칠 정도”라는 식의 비판론도 대두되고 있다. 친박계 좌장으로 불리던 김무성 원내대표가 주류와 손을 잡는 등 측근 그룹의 전열도 약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차기 주자로서 30%대 지지율을 유지해온 박 전대표로서도 이번 지방선거를 계기로 정치적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친박계 인사는 “박 전 대표가 선거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순간 권력을 갖게 되는데 지금 시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왜소하고 힘없는 정치인 박근혜로 주류에 밀리는 모습을 보이는 게 더 낫다. 지금 중요한 건 원칙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칩거역시 박 전 대표의 정치적 전략이라는 의미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그녀는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의 지역구인 달성군에서도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는 수모를 당한 것. 박 전 대표는 선거 기간 내내 자신의 지역구인 달성군에 장기간 머물면서 친박계 의원 등과 함께 한나라당 지원유세를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패배한 것이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표의 정치적 위상과 입지에 적지 않은 타격이 일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위기감에 빠진 박 전 대표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크게 3가지다.
첫 번째는 지금처럼 ‘여당 내 야당’을 하면서 2012년 12월 대선을 총력전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친박인사들은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2012년 박전대표에게 대통령 지명권을 준다는 보장도 없고 아마 그전에 요즘 한나라당 분위기로 봐서 많은 변수가 생길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정몽준, 원희룡, 김문수, 오세훈 등등 대권을 꿈꾸는 인사들이 너무 많아 이들과 다시 한판전을 해야 하는 부담도 만만치 않다는 것.
특히 ‘정몽준-박근혜’라는 조기 대권경쟁 구도가 만들어지면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여당 내 야당’으로 남아 당 안팎에서 친이 인사들의 정책을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것 역시 쉬운일은 아니다.
두 번째는 당권에 도전하는 방법이다.
박 전 대표가 당권에 도전할 경우 7월 전당대회는 ‘당권경쟁’이 아니라 ‘친이-친박’ 이전투구가 예상된다. 만일 박 전 대표가 당권을 잡을 경우 또다시 당내는 계파싸움으로 혼란이 예상된다. 이럴 경우 국민들의 실망감은 극도로 커져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지금 보다도 하락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는 ‘친이-친박’ 모두 바라는 일이 아니다. 때문에 친이쪽 사람들은 그럴 바에는 박 전 대표를 추대해 당 대표를 만드는 것이 “모양새가 더 좋다”라고 생각한다. 다만 “박 전 대표가 당 대표로 나서 국정운영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라고 했다.
이도저도 아닐 경우 마지막으로 탈당 카드를 꺼내드는 것이 최후의 방법이다. 박 전 대표가 탈당을 단행할 경우 한나라당 과반의석은 무너지고, 여소야대 국면에서 MB의 운신의 폭은 절대적으로 좁아질 수밖에 없다. 탈당의 가능성은 가장 희박하지만,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항상 유효한 카드이기도 하다.
박 전 대표가 어떤 선택을 할 지 아무도 모른다. 최근에는 남덕우 전 부총리, 김용환 전 재무부 장관 등 원로 자문그룹과의 접촉빈도도 예전보다 크게 줄었다고 한다. 혼자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난 것이다.
득과 실을 따질 때가 아니다. 칩거와 침묵으로 일관함에도 국민은 박 전 대표에게 변함없는 사랑과 지지를 보내고 있다. 여기에 어떻게 보답할 것인지를 일순위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