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컨슈머’로 몰리는 소비자의 허와 실

생산자와 소비자 간 신뢰회복이 관건, 견제와 감시의 끈 놓지 말아야

2010-05-20     김영식 운영고문

새우과자에서 쥐머리가 나온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이는 전 국민이 애용하는 전통 있는 국민과자였기에 파급효과가 더 컸다. 이뿐이 아니다. 세계 1위의 탄산음료 기업에서 대못이 발견되고 유명 유탕면 업체의 봉지면에서 은밀한 털이 발견된 일도 있었다. 물론 업체측에서는 생산과정의 오류일 뿐 고의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당연히 완전무결점이란 존재하지 않지만 식품업체일수록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또한 꾸준한 관심과 감시를 하는 것이 소비자의 의무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날 부터인가 ‘블랙컨슈머’라는 신조어가 등장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 간 불신을 조장하고 있다.
기업을 상대로 고의적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블랙컨슈머.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소수의 블랙컨슈머로 인한 피해가 선량한 소비자들에게 전가되는 문제가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 블랙컨슈머란 악성을 뜻하는 블랙(Black)과 소비자를 뜻하는 컨슈머(Consumer)를 합성한 용어로, 고의적으로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소비자를 말한다.
실제 경기도 소비자정보센터가 올 2월 발표한 ‘블랙컨슈머 조사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인 51개 식품업체 중 48개 업체(94.1%)가 블랙컨슈머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겪은 블랙컨슈머의 대표적인 부당한 요구 유형으로는 근거 없는 피해보상 요구(43.1%), 보상기준을 넘는 피해보상요구(23.5%), 간접적 피해보상요구(15.7%), 상담자에 대한 부당한 언행(15.6%), 불만사항을 근거로 언론 유포 협박(2.0%) 등이었다.
물론 업체 입장을 이해 못 하는 바 아니다. 식품가공제조업체들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블랙컨슈머 사례로 인해 선량한 소비자들을 가려내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하지만 선의의 피해자들조차 블랙컨슈머로 의심하고 대하는 태도에 소비자는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입고, 기업에 대한 지속적인 불신과 반감을 갖는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업체와 실랑이를 벌이다 보면 본인의 의사와 전혀 무관하게 어느새 블랙컨슈머가 돼버릴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물이 검출된 제품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중도에 협상하고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김 모 씨는 분유에서 이물질을 발견하고 고객상담실에 신고했지만 “분유통이 아닌 분유병에서 이물질이 나올 경우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질 수 있다”는 회사 측 답변에 제조업체의 과실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 며칠 뒤 해당 업체와의 만남을 취소했다. 그리고는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기업들은 소비자와의 입장차를 줄이기 위해 기업내부에서 정한 법적 해석을 공개하고,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분쟁해결기준도 세밀하고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블랙컨슈머라는 정의가 모호하다. 의도성을 가지고 대가를 바래 기업에 접촉하기도 하지만 본인이 보상을 받아야 하는 줄 알고 기업에 무조건 항의하는 사례도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피해를 입었을 때,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차분하고 침착하게 관련 정보를 찾아보고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식음료업계에 따르면 제품에서 이물질이 발견되는 사고는 흔하게 발생하고 있다. 제조업체는 한결같이 “제조사의 문제가 아니라 유통과정에서 벌어진 일이고,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측면이 크다”고 답변한다. 보상금을 노리고 업체를 협박하는 진짜 블랙컨슈머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사법당국과 업체는 이들을 가려내는데 신경을 곤두세운다. 하지만 블랙컨슈머 실체에 대한 경계선이 매우 모호하다. 업체를 상대로 ‘제품 몇 개 주면서 없던 일로 하자는 당신네들과 협상 못 하겠으니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답했다간 자칫 거액을 노리고 협상을 다짜고짜 내팽개치는 블랙컨슈머로 몰리기 십상이다.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신뢰회복이 급선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