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대학을 거부하는 이들, 도대체 왜

시대를 역행하는 획일화된 교육방식에 학생들 회의감 느껴

2010-05-20     박희남 기자

얼마 전 소위 명문대학으로 꼽히는 K대 경영학부에 재학 중이던 21살의 여대생이 스스로 자퇴서를 작성하는 일이 발생했다. 초등학교를 입학해 지난 12년 간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으로 공부하여 들어온 대학을 스스로 걸어 나갈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고스란히 적힌 대자보는 순식간에 온라인상에 퍼지며 각종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를 기록하는 등 최근 화두로 떠올랐다.
이후 대자보를 둘러싼 사람들의 의견은 크게 엇갈렸다. 명문대학 진학을 목표로 삼수 사수도 불사하고 있는 이들의 눈에는 그저 복에 겨워 별 짓을 다하는 한심한 인간으로 비춰졌고, 또 다른 이들에게는 젊은 지성이 바로 선 영웅이 되어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들 모두 대학의 병폐에는 크게 공감했다는 부분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구시대적 커리큘럼과 창의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전형적인 교육방식에 병들어 가고 있는 대학은 대학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해 지식을 매매하고 졸업장을 판매하는 단순한 공장으로 전락해버렸다. 무한경쟁 체제 속에서 빛을 잃어가고 있는 캠퍼스의 낭만. 이에 학생들은 오늘부터 대학을 거부하기로 했다.

경쟁만 부추기는 대학, 이젠 우리가 필요 없거든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 그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과 좌절감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 그 20대의 한 가운데에서 다른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마지막 남은 믿음으로….”
꽃샘추위로 매서운 바람이 불던 지난 3월10일. K대 학생게시판에는 눈길을 끄는 대자보 한 부가 붙어있었다. 수업을 청강하기 위해 서둘러 강의실을 향하던 학생들의 발걸음이 하나 둘씩 멈춰 섰고, 이내 수십 명의 학생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와 대자보로 시선을 돌렸다. 학생들 사이사이 이들의 모습을 담는 취재진들의 모습도 곳곳에 보였다. 무엇이 이들의 발걸음을 붙잡은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K대 학생 김예슬씨가 대학을 자퇴하면서 작성한 대자보.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되어버린 대학, 그곳에선 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다는 그녀의 조리정연하면서도 비통함이 가득한 글은 대자보를 읽는 젊은이들의 가슴에 콕콕 못을 박았다.
그런가하면 국내 최고 명문대학으로 꼽히는 S대학교에서도 제2의 예슬이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그 주인공은 S대학 지리학과에 재학 중이던 채상원(20)씨. 그는 지난 3월27일 서울대 학생회관과 중앙도서관, 사회과학대 등에 ‘오늘, 나는 대학을 거부한다. 아니, 싸움을 시작한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여 대학 사회를 비판하고 이를 변화시키기 위한 대학생들의 행동을 촉구했다.
그가 적인 대자보에는 “우리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12년 동안 대학에 들어가면 ‘자유’라는 것을 누릴 수 있다는 환상을 품고 친구를 밝고 올라서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이런 과정을 거쳐 대학에 들어왔으나 이는 그저 헛된 환상에 불과했고, 무한 경쟁의 닫힌 공간인 대학은 우리에게 그 어떤 삶의 의미도, 방향도 가르쳐주지 않고 있다”며 현 대학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글이 적혀있었다. 아울러 그는 낡고 답답한 대학에 학생들의 미래를 걱정하며 자발적 퇴교와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그러면서도 지금의 대학을 거부하고 대학의 변화를 주도하기 위한 싸움을 벌이기로 조용히 다짐한다고 자신의 뜻을 밝혔다.
“너희들은 진정한 혁명가야”
지난 3월30일 K대 김예슬씨의 자퇴가 처리됐다. 자퇴서 논란 이후 정확히 20일만이었다. K대 교무처 학적지원팀 관계자는 “김예슬 학생의 자퇴가 처리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으며, 자퇴시기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했던 대학 자퇴 파문이 조용히 덮어지는 순간인 듯 했다. 하지만 자퇴 대자보 이후 후폭풍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강하고 거셌다. 그녀의 용기 있는 선언 이후 그녀를 지지하는 온라인상의 모임인 ‘김예슬 선언’(cafe.daum.net/kimyeseuls)이 만들어졌으며, 사회 곳곳에서는 그녀를 향한 지지가 이어지고 있다. 대자보가 붙은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지만 고려대 온라인학생커뮤니티인 ‘고파스’에는 수 십개에 가까운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ID ‘대한민국 대학생 파이팅’의 네티즌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점을 속 시원하게 말해줘 정말 고맙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고, ID ‘우울한 현실’도 “김예슬씨가 제기한 문제의식은 대학생인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문제이다. 대학 사회 내에서 적극적인 토론을 통해 대학의 본질을 찾아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특히 이번 논란의 주인공인 K대의 지지 열기는 그야말로 폭발적이다. 지난 3월16일 K대 정경대학 후문에서는 김예슬씨를 응원하기 위한 작은 문화제가 개최됐다. 대자보는 치워진지 이미 오래지만 그녀의 뜻에 감동한 학생들이 그녀를 응원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석한 것이다. 이날 응원 문화제에서는 대학생들로 구성된 인디밴드의 공연과 한 줄씩 댓글을 달아 단체 대자보를 제작하는 행사가 이어졌다. 학생들이 제작한 대자보 속 김예슬씨는 한마디로 혁명가였다. 대자보에는 “당신은 최고입니다”, “아무도 해낼 수 없었던 일을 언니가 해낸 거예요”,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인 당신을 오늘부터 존경해요” 식의 댓글들이 이어졌고 문화제를 준비한 이들은 그녀의 선택을, 그리고 그녀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상황에 놓여있는 우리 자신의 삶을 응원하기 위해 준비한 작은 공연이라고 말해 항간에 떠도는 사위 조장설에대 일축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이 K대나, S대 등 명문대학생들이 쓴 대자보이기 때문에 주목받은 것 아니냐는 지적을 제가했다. 이른바 ‘지잡대’(지방 잡것 대학) 학생이 이러한 대자보를 작성했다면 지금과 같이 세간의 이슈가 되고 화제를 모을 수 있었겠냐는 것. 이것 또한 우리가 깊게 생각해보고 성찰해 봐야할 또 하나의 문제인 것은 틀림없다.

경쟁 과부하로 죽어가는 대학의 현실
K대 그녀와 S대 그의 말마따나 졸업장도 없는 인생, 자격증도 없는 인생이 어느 곳에 가서 인정을 받고 사람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 낙오자가 아니면 다행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은 도대체 누가한 것일까. 이도 더 이상 믿지 못할 허구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어쩌다 우리는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일까.
사람들은 고한다. 우리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든 것은 바로 교육, 그리고 대학이라고. 사실 지난 수십 년간 대학은 많이 변모했다. 사전 상 대학의 정의는 고등 교육을 베푸는 교육기관으로서 국가와 인류 사회 발전에 필요한 학술 이론과 응용 방법을 교수하고, 연구하며 지도적 인격을 도야해 진정한 성인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배움터이다. 하지만 지금은 대학은 어떠한가. 우정도 낭만도 사제 간의 믿음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곳, 오로지 경쟁만을 부추기는 살벌한 전쟁터가 아니던가.
대학은 우후죽순 마구잡이로 생겨나고 그 속에는 급우보다 높은 학점을 받기 위해 나 홀로 공부하는 얌체족들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오래된 전통인 ‘시험족보’는 그 자취를 숨긴지 이미 오래다. 여기에 취업 잘되라고 가능한 한 많은 학생들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학생들은 학점을 잘 주는 교수에게 후한 강의평가점수를 주는 일종의 상부상조 시스템 ‘학점인플레’현상도 대학의 병폐를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다. 대
다수의 학생들은 수강신청변경 기간 동안 과목의 내용이나 자기 자신의 장래희망과 관련해서 내용적으로 일치되는 과목을 듣기보다는 취업에 유리한 점수를 많이 받을 수 있는 교수의 교과목을 수강 신청한다. 이러니 대학이 잘 돌아가 턱이 있나. 교수들의 안일한 태도도 대학교육 문제의 심각성을 높이고 있다. 시대는 빠르게 변해 가고 있는데 교수들 혼자 아날로그 시대니 배우는 학생들은 뭘 보고 배우겠는가. 컴퓨터나 디지털 기기 하나 제대로 못 다뤄 학생들의 도움을 받는 교수들의 수도 적지 않다. 고액 연봉을 받는 만큼 우수한 인력을 많이 길러낼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이들의 임무일 터. 아직 늦지 않았으니 시대가 변화한 만큼 이들의 강의능력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길 바랄 뿐이다. 이 밖에도 제2전공 의무화, 영어강의 확대, 상대평가제 등의 제도가 더욱 많은 것을 강요하고 우리에게 그 어떤 삶의 의미도, 방향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임을 마주하고 있다. 대학은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가 되어 내 이마에 바코드를 새긴다. 국가는 다시 대학의 하청업체가 되어,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12년간 규격화된 인간제품을 만들어 올려 보낸다.
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 학비 마련을 위해 고된 노동을 하고 계신 부모님이 눈앞을 가린다. ‘죄송합니다, 이때를 잃어버리면 평생 나를 찾지 못하고 살 것만 같습니다.’ 많은 말들을 눈물로 삼키며 봄이 오는 하늘을 향해 깊고 크게 숨을 쉰다.”
-K대 김예슬 학생의 자퇴 선언문-

적어도 몇 년 전까지 대학은 진리탐구의 전당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단지 취업을 위한 준비기간이 되었다. 철학과 학생이든 경영학과든 국문학과이든 전공과는 별개로 다 토익 영어 공부만 하고, 죄다 공무원 공부만 하는 상황이니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기자는 K양을 두둔하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녀가 적은 글귀 중 “스무 살이 되어서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고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이대로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한 우리 젊음이 서글프다”라는 문구가 마음에 맴돌아서다. 그렇다. 우리는 언제까지 손에 잡히지도 않는 꿈을 쫓아가야 하는 것일까. 오늘날 우리가 만난 젊음은 고통과 답답함을 넘어 참으로 슬프고도 애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