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어려움 보다 차가운 시선이 더 힘들어”

전 세계 618종, 국내 60만 명 정도 난치성 희귀병 앓아

2010-05-12     장지선 기자

몇 해 전 우리나라에 5명밖에 없는 ‘하이퍼 아이지엠 신드롬’을 앓고 있는 것으로 소개된 유리공주 원경이는 주위의 우려와는 달리 건강한 모습으로 자라고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하이퍼 아이지엠 신드롬은 미세한 먼지와 자극에도 치명적이기 때문에 멸균 상태에서 생활해야 하며 완치 방법이 없어 정기적으로 항생제를 투여해야 한다. 덕분에 얻게 된 별명은 ‘유리공주’. 현재 초등학교 5학년생이 된 원경이는 건강 때문에 등교가 어려워 수업은 화상으로 받고 있지만 조련사의 꿈을 키우고 있다. 원경이는 얼마전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 많이 사랑해주셔서 감사하다”며 “나중에 크면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말해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을 뿌듯하게 했다.

특이한 병을 앓고 있는 세 명의 영국 소녀
영국언론을 통해 소개된 세 명의 소녀는 희귀병 중에서도 굉장히 특이한 병을 앓고 있다. 올해 3살 된 티앤 루이스라는 소녀는 ‘RAS(리플렉스 애녹시 시저)’라는 병을 앓고 있는데 RAS는 놀라거나 울면 뇌로 피가 공급되지 않는 희귀병이다. 이 같은 사실이 확인된 건 소녀가 18개월 되었을 때로, 의사들은 RAS확정 판정을 내리고 아이가 삶을 이어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진단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이의 부모는 가슴을 졸이면서 살고 있다. 100% 완치가 불가능한 병인 데다 초기 10~15분 사이에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딸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는 건, 아이가 울면 심장 박동이 멈출 수 있기 때문에 아이가 울 때마다 심장이 멈추지 않도록 아이의 가슴을 때려야 한다는 것. 부모로서는 가슴이 찢어지는 잔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티앤의 부모는 “간질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의 39%가 RAS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보건당국의 보다 많은 관심을 요구했다.
또한 영국 로더햄에 사는 자라 하트숀(13)은 피하지방과 피지선의 불균형으로 피부 전체가 울퉁불퉁해 지는 희귀병인 지방이영양증을 앓고 있다. 눈가와 입 주위, 목에 가득한 주름과 삶에 찌든 듯 한 표정은 누가 봐도 중년 여성의 모습이다. 원래 나이보다 몇 십년은 더 늙어 보이는 외모 때문에, 버스를 타거나 놀이동산에 놀러 가면 한바탕 실랑이가 벌어진다. 이 소녀가 현재로서 기댈 수 있는 의술은 피부리프팅 수술뿐이다. 흔히 중년의 여성들이 주름을 없애려고 받는 이 수술은 조금이나마 하트숀에게 희망을 주고 있지만, 이것 또한 일시적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하트숀은 “또래들처럼 어울리는 교복을 입고 평범하게 살아보는 게 소원”이라며 교복을 입고 지나갈 때마다 쏟아지는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이 너무 힘들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한편 루이자(15)라고 알려진 한 소녀는 몇 년 전부터 한번 잠에 빠져들면 며칠 동안 일어나지 못하는 클라인-레빈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흔히 ‘잠자는 숲속의 미녀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이 병은 전 세계 1,000명 안팎의 환자가 있으며 기면증과는 증상이 달라 한번 잠에 빠져들면 최장 몇 달 동안 깨어나지 못한다. 루이자는 “가족 여행을 떠났는데 계속 잠만 자서 눈을 떴을 때는 다시 내방 침대였다”, “춤 경연대회에 나갔는데 대기실에서 잠이 들어 경기를 포기해야 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루이자의 부모는 “루이자가 잠 때문에 또래 친구들이 누리는 행복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동화 속 공주는 왕자의 키스로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지만, 희귀 증후군을 앓는 루이자의 잠을 깨울 치료법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스탠포드 대학 기면발작 센터의 한 박사는 “루이자가 앓는 희귀병의 원인은 파악되지 않았지만 10대 때 주로 나타나며 성인이 되면 자연 치유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많은 인구 속 기상천외한 중국의 희귀병
인구가 많은 탓일까. 유독 기상천외한 일이 많은 나라 중국에서 소개된 희귀병은 그 수도 다양할뿐더러 병의 증상 또한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코가 사라지고 눈 사이가 멀어지는 등 얼굴이 일그러져 일명 ‘아바타 걸’이라 불리고 있는 중국의 우 샤오엔(22)이라는 여성은 희귀질환인 ‘섬유이형성증’을 앓으면서 눈과 눈 사이가 멀어지고 코가 사라지는 등 심각한 안면 기형이 진행된 상태이다. 그녀의 얼굴의 2/3을 뒤덮고 있는 피부 아래에는 종양이 자라고 있으며, 시력도 차츰 잃어가고 있다. 빨리 수술을 해야 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수술비를 마련하지 못해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반면 생후 14개월 된 중국의 송셩이란 남자아이는 ‘층판상 어린선(Lamellar ichthyosis)’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고통 받고 있다. 얼마 전 SBS 드라마 ‘산부인과’에서도 소개된 바가 있는 ‘층판상 어린선’은 피부가 건조해 물고기의 비늘 같은 인설이 생기는 유전성 질환이다. 송셩은 태어날 때부터 몸에 땀구멍이 없어 열을 배출하지 못해 피부가 갈라지고 벗겨지는 증상을 보였다. 땀구멍이 없는 아이의 피부는 건조하다 못해 모두 갈려져 고목을 연상케 하고, 한 올의 털도 찾아볼 수 없는 온 몸은 물고기 비늘로 뒤덮여 보이는 탓에 ‘물고기 소년’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또한 밖으로 열을 배출하지 못해 매일 열로 펄펄 끓는 송셩을 위해 부모는 아이를 얼음침대와 얼음욕조에 번갈아 넣어 수시로 몸의 온도를 조절해야 한다. 부모는 “피부가 갈라질 때 생기는 통증으로 아이가 끊임없이 고통스러워한다”며 참담한 심정을 전했다. 이 병은 선천성 피부질환으로 근본적인 치료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민간 용법에 의존하거나 기적을 바라는 수밖에 없다.
또, ‘최다 손발가락’의 세계 기네스 기록을 가진 인도 소년 두 명 보다 무려 6개나 많은 손발가락을 가진 중국 소년의 안타까운 사연이 언론을 통해 소개됐다. 랴오닝 선양에 사는 펑펑(6)이란 소년은 선천적 장애인 손발가락 과다증을 앓고 있다. 이 소년의 손가락 숫자는 보통 사람보다 5개 더 많으며, 발가락은 6개나 더 많다. 발에는 작은 발가락이 촘촘하게 나 있으며 양손의 가운데 손가락 세 개는 모두 붙어있다. 펑펑은 현재 세계 기록 보유를 포기하고 랴오닝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하여 일부 손가락과 발가락을 제거하는 성형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수술을 담당하는 의료진은 “펑펑은 유전자 돌변기형으로 양옆에 작은 손가락들이 나있는 보통 다지증과 달리 손가락이 균등하게 나있다”며 일부 손가락과 발가락을 제거하면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외에도 유전적 결함으로 온몸이 보라색 종양 덩어리로 뒤덮여 있는 일명 ‘거북소녀’와 회색털이 등을 비롯해 얼굴, 목 등으로 퍼지고 있는 ‘고양이 소녀’, 거대한 종양이 계속 커져 얼굴의 절반 이상을 덮은 ‘코끼리 남자’ 등이 언론에 소개돼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움을 나타내고 있다.

희귀병 환자들에 대한 사회적인 지원책은 부족한 현실
희귀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인터넷 등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희귀병 환자들이 세상에 속속 나타나면서 그 종류와 증상이 널리 알려져 희귀병 환자를 돕는 방법 등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희귀병 환자들에 대한 사회적인 지원책은 부족한 현실이다. 난치성 희귀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국내에 60만 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으며, 미국 희귀질환 단체(NORD)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618종의 희귀성 질환이 있다. 하지만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각 종 희귀병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희귀·난치병의 치료제는 드물고 비싸다. 제약회사들이 환자수가 적어 돈이 되지 않는 다는 이유로 개발을 꺼리거나, 희귀병의 증상을 완화하는 약이 개발됐다고 해도 대부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본인부담금을 절반으로 줄여주는 정부 의료비 지원 사업 대상 질환은 고작 132개에 불과하다. 희귀하기 때문에 무시해도 되는 수준인 것이다. 또한 희귀병의 대물림을 막으려면 유전자 검사가 필요하지만 보험 혜택에 적용되지 않아 치료비만으로도 벅찬 사람들에게는 희귀병의 유전을 우려해 검사를 실시할만한 여유가 없다. 그나마 언론이나 방송매체가 앞장서 희귀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소개해 지원을 호소하고 있지만 이 같은 기회를 얻기도 쉽지만은 않다.
또 한 가지, 많은 희귀병 환자들과 가족들은 “희귀병이 전염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주위에서 전염병 환자 취급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경제적 어려움도 크지만 주위의 차가운 시선이 더 힘들다고 토로했다.
지난 3월 이석연 법제처장은 KBS 1TV ‘사랑의 리퀘스트’ 프로그램에 출연해 “국회에도 희귀 질환자 지원에 관한 법안이 발의돼 있는데 희귀난치성 질환을 가진 이들과 가족의 경제적·사회적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라며 지원을 호소했다. 이러한 사회적·경제적 지원과 더불어 희귀병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희귀병을 앓고 있는 환자와 가족들이 어떤 현실에 처해 있을지 생각해보고 그들을 이해하려는 자세 또한 중요하다. 사회적 제도가 뒷받침 되고 사회적 인식이 변화된다면 희귀병 환자들과 가족들의 고통은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