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멘스의 미래에는 ‘친환경’과 ‘아시아’가 있다
창립자 베르너, 독일 공업 지위를 국제적으로 향상시킨 장본인
독일 베를린과 뮌헨에 본사를 두고 있는 세계적인 전기전자기업 지멘스는 현재 전 세계 190여 개국에 약 42만 7,000명의 직원이 산업, 에너지, 헬스케어 분야에서 혁신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최첨단 제품과 솔루션 및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등과 같은 전 세계가 당면한 이슈와 관련해 연구개발비의 50% 이상을 환경 및 기후 보호에 사용하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감소시키는 다양한 기술을 보유하는 등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에너지 기술과 환경 보호분야에서 중점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160여 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위기와 부활을 거듭해온 지멘스가 굳건히 세계적인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것은 그 역사 속에서 많은 이들의 용기와 희생, 그리고 탁월한 경영 전략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세계 100대 발명’으로 꼽히는 전기 동력 장치 개발
발명가, 전기기술자, 공업가 등으로 유명한 집안에서 태어난 에른스트 베르너 폰 지멘스(Ernst Werner von Siemens, 1816∼1892)는 가난 탓에 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포병학교 사관후보생이 되어 탄도학 수학 물리학 등의 기초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포병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자연과학에 흥미를 느끼게 된 베르너는 1833∼1848년 조병창에 근무하던 중에 병기 개량에 두각을 나타내고 지침전시기 개량과 구타페르카를 감은 지하 케이블 발명에 자신감을 얻어 전신사업의 장래성을 예상하게 되었다. 1846년 장거리 무선전신에 쓰일 수 있는 다이얼 전신기를 발명한 베르너는 이듬해, 기계공이었던 J.G. 할스케와 함께 전신기 제작과 부설을 하는 지멘스-할스케 회사를 베를린에 창설했다. 당시 유럽에서 전신망 수요가 급증하면서 지멘스-할스케는 설립과 동시에 대규모 전신망 사업을 수주했다. 러시아에서 대규모 전신망을 창설했고, 영국에서 동생인 빌헬름과 협력해 해저 케이블 부설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업적은 유럽 전기제작업계에서 지멘스-할스케의 지위를 확고히 자리매김하게 했다. 이후 1857년에는 발전기의 실용화를 꾀해 전기자를 개량했고, 1867년에는 자동발전의 원리를 발견했다. 이 자동발전 원리는 발전기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한편, 1866년은 베르너에게 잊지 못할 해였다. 기계의 주요 동력이었던 증기터빈을 대체할 수 있는 전기 동력 장치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세계 100대 발명’으로 꼽힐 정도로 전기 동력 장치는 중대한 발명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로서 지멘스-할스케사는 전기를 이용한 조명기기와 전기철도 전기모터 등의 사업에도 진출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여기에 자신이 태어난 프로이센의 하원의원이 되어 독일 공업의 지위를 국제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실현시켰으며 특허법을 공포하고, 물리공학, 국립연구소 창설, 공과대학 내 전기공학강좌 독립 자국의 공업을 위해 다각도로 힘썼다.
특히 1874년 아일랜드와 캐나다를 잇는 대서양 횡단 해저케이블 건설로 일약 세계적인 기업가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1차 대전’, ‘나치 정권’, ‘대기업 해체’ 위기 돌파
1892년 베르너가 7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뒤 지멘스의 경영권은 동생인 칼 폰 지멘스에게 넘어갔다. 형 살아생전에 러시아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뤄내기도 했으나 건강이 좋지 못해 베르너의 두 아들 아놀드와 빌헬름에게 경영권이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하지만 이내 1차 세계대전의 위기를 맞아 지멘스-할스케는 영국과 러시아 등에 있는 해외 자산을 대부분 몰수당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놀드와 빌헬름마저 1918년, 1919년 연이어 사망하고 말았다.
경영권은 다시 베르너의 두 번째 부인에게서 얻은 막내아들 칼 프리드리히에게 돌아갔다. 경영권을 넘겨받을 당시만 해도 지멘스에 남은 것은 거의 없었다. 1차 대전으로 잃은 자본은 40%가량이었으며 해외 자산은 물론 특허권도 상실된 상태였다. 하지만 칼 프리드리히는 굴하지 않았다. 모든 사업부문들 지멘스-할스케와 지멘스-슈커트라는 두 개의 지주회사 체제로 조직을 개편하고 경영이사회, 감독이사회를 통해 지배구조를 탄탄하게 다져나갔다. 그러면서 지멘스는 다시 제 모습을 서서히 찾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또 한 번의 시련이 지멘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나치.
대부분의 독일 기업들이 그랬듯이 히틀러의 나치정권에는 지멘스도 손 쓸 수 없는 위기와 직면했다.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으면서 지멘스는 민간용 제품 생산이 전면 금지됐고 전쟁물자 생산만 가능하게 됐다. 또한 연합군의 폭격에 따른 피해도 이루 헤아릴 수가 없었다. 또한 연합군측이 지멘스를 비롯한 독일의 대기업들을 해체하려 들었다. 대기업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나치가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칼 프리드리히가 연합군측을 끈질기게 설득해 겨우 그룹 해체를 막았고 결국 연합군측의 지멘스 해체계획은 1951년 철회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지멘스는 유럽에서 네덜란드의 필립스에 버금가는 전기기기 제조회사가 되었다.
지멘스는 독일의 대표적인 콘체른(Konzern·대규모 기업집단)이다. 전선케이블, 원자력발전소, 의료기기, 조명기구, 고속철도, 자동차부품 등 15개의 서로 다른 사업 분야를 거느리고 있다. 현재 콘체른의 중핵은 지멘스-할스케로서 주로 통신기기에 중점을 두며, 산하의 지멘스-슈커트는 원자로를 포함하는 중전기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 밖의 산하회사로는 가전기기·음향기기·레코드·계측기·전기의료기기 제조회사 등이 있다.
지멘스가 지금의 지배구조의 골격을 갖게 된 것은 칼 프리드리히 폰 지멘스의 아들인 에른스트가 감독이사회 의장을 맡은 1966년부터다. 당시 독일 정부가 대기업 집단에 속하는 회사들 간의 결합규제를 보다 강화하도록 증권법을 개정, 지멘스에게도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다. 지멘스-할스케, 지멘스-슈커트, 지멘스-라이니거 등 세 개의 지주회사를 거느리고 있었던 지멘스의 공동 감독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던 에른스트는 지주회사들을 하나로 통합해 그룹 형태로 지멘스를 조직을 새롭게 개편했다. 그리고 유능한 전문 경영인들을 등용해 회사를 전문경영인 체제로 탈바꿈시켰다.
윤리적이고 합법적 행동 요구하는 ‘사내의무정책’ 수립
지멘스는 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모든 국가의 법규와 정책을 충실히 준수해 영업활동을 수행하고 있으며 법규와 정책을 위반하는 행위는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지멘스는 전 세계 모든 임직원에게 윤리적이고 합법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사내의무정책’을 수립했다. 일상 업무와 고객, 파트너사, 직원 간의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이 정책은 또한 내부 준법의식 고취를 위한 다양한 방안들과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명확한 지침을 통해 전 임직원들이 모든 법정 규정이 준수되기 위한 방향을 제시하며, 사업컨설턴트를 상대할 때 올바른 대가 지불 절차 및 거래와 관련된 개정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준법 프로그램을 이행하기 위해 지멘스는 사내 글로벌 준법감시조직을 구성했다.
준법 헬프데스크 ‘Tell us’는 1년 365일 지멘스 임직원 또는 관리자, 고객, 공급업체 등 지멘스와 관계있는 기타 사업파트너로 하여금 지멘스 사업행동지침에 위배되는 행위를 신고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신고 내용의 비밀유지는 철저히 보장된다. 한편 지멘스는 임직원 및 제3자가 기업 내 부당한 사업거래를 외부 옴부즈맨을 통해 비밀을 보장해 익명으로 신고할 수 있도록 옴부즈맨 제도도 실시하고 있다.
지멘스의 또 하나의 경영 전략은 ‘환경보호’다. 지멘스는 지구온난화, 기후 변화 등 전 세계가 당면한 이슈를 극복하기 위해 에너지 기술과 환경 보호에 중점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지멘스는 일반 가정용 제품부터 교통, 발전 및 송·변전, 산업시설 및 운송에 이르기까지 에너지 고효율 제품 및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매년 친환경 사업을 10%씩 성장시켜 2011년까지 총 250억 유로의 매출을 달성하고 있는 지멘스는 이를 통해 약 2억 7,500만 톤의 CO2를 절감하겠다는 친환경 목표를 수립했으며, 아울러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자체 공장 시설과 사업장의 에너지 효율 20% 향상의 목표를 수립, 이를 위해 에너지 효율성 제고 프로그램을 시행 중에 있다.
지멘스의 대표적인 기후 보호 기술로는 최대 60% 이상의 에너지 효율을 자랑하는 ‘고효율 복합 화력발전소’로, 기존 발전소에 비해 CO2배출량을 연간 약 4만 톤 이상 절감할 수 있는 차세대 친환경 발전 모델과 석탄가스화 복합 화력발전과 CO2세정 기술을 개발, 향후 탄소 포집 및 저장을 통해 CO2배출량 제로의 화력발전소 실현하는 ‘석탄가스화 복합 화력발전소’, 전 세계 약 6,400여 개의 풍력 터빈을 통해 연간 1,000만 톤가량의 CO2배출량 감소시키는 ‘풍력 에너지’, 레이저 펄스 전력변환기와 부품의 80%가 감소된 전자 통제 시스템으로 뛰어난 안정성, 에너지 소비량 감소, 설비의 부피를 최소화하는 ‘고전압 직류송전시스템’이 있다. 또한, 초경량 소재를 사용, 제동 에너지를 전력 시스템으로 재생함으로써 약 50%의 에너지 절약 및 40%의 CO2배출 감소시키는 ‘혁신적인 드라이브 시스템’과 교통 통제 및 정보 서비스 시스템 솔루션으로 교통체증을 최소화하고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 및 20%의 CO2배출 감소시키는 ‘지능 교통관리 시스템’, 전 세계 약 6,500개의 건물에 에너지 효율 기술을 적용해 CO2배출량 240만 톤 감소와 함께 에너지 비용 10억 유로 이상을 절약할 수 있는 ‘에너지 효율 계약’, 기존 전구 대비 최고 50배 긴 수명을 지닌 절전 및 LED 전구로 전력 소비를 80% 낮추고 절전 전구 하나 사용 시 0.5톤의 CO2배출량 및 수백 유로의 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는 ‘오스람 절전 조명기구’ 등이 지멘스가 환경 및 기후보호를 위해 내세우고 있는 기술들이다.
구매 관리 프로그램 통해 지멘스만의 경쟁력 향상
지멘스는 2009년 세계적인 경제 불황에도 불구하고 큰 성과를 보여주었다. 지속적으로 핵심 사업에 집중한 지멘스는 주요 성장 동력 중 하나인 친환경 포트폴리오를 확장했다. 판매 및 일반관리 비용절감을 위한 구매 관리 프로그램은 지멘스의 경쟁력을 더욱 향상시켰다.
피터 뢰셔(Peter Loescher) 회장은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지멘스는 2009년에 주요 경쟁사들에 비해 우수한 성과를 달성했다. 특히 에너지와 헬스케어 부분에서 안정적인 매출과 순익을 달성했다”면서 “향후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 기술 분야는 무한한 사업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경제 위기의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사업의 극복을 위해 지멘스는 필요한 모든 방법을 실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멘스는 전년도 773억 유로 대비, 2009년 회계연도에 767억 유로의 매출을 달성했으며 신규 수주는 790억 유로에 이른다.
한편, 지멘스의 자회사인 오스람은 전 세계 조명 산업을 이끌고 있는 조명 전문 회사로 철저한 품질 관리를 통한 혁신적인 제품 및 서비스 제공을 통한 고객 만족 실현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약 5,000종의 램프를 생산하고 있는 오스람은 매년 총 매출액의 약 5%를 연구개발비에 투자하고 있으며, 그 결과 총 매출액의 40%가 최근 5년 사이 개발된 첨단 신형 램프에서 창출되고 있다.
‘선택과 집중’으로 지멘스 구원한 피터 뢰셔
현재 지멘스를 이끌고 있는 피터 뢰셔 회장 역시 과거의 칼 프리드리히처럼 지멘스의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멘스가 지금은 IT·에너지·헬스케어 분야의 세계적인 거대 기업으로 존재하고 있지만 불과 몇 년 전, 사업 부진, 부패 스캔들 등으로 기업 신뢰도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에서 당시 CEO가 퇴진하고 그 자리에 뢰셔 회장이 부임했다. 지멘스에게 뢰셔 회장은 그 의미부터가 남다르다. 160년이 넘는 지멘스 역사상 최초의 외부 CEO였으며 또한 최초의 외국인 CEO다. 2005년 557억 유로에 그쳤던 지멘스의 매출은 뢰셔 회장 부임 이후 2006년 668억 유로, 2008년에는 773억 유로까지 급격하게 치솟았다.
뢰셔 회장의 성공 비결은 ‘선택과 집중’이었다. 복잡했던 사업 부문을 산업, 에너지, 헬스케어 세 부문으로 단순화하고 거대 트렌드 분석을 통해 미래 성장 시장을 가려낸 뒤 1∼2위를 선점하는 전략을 통해 부활을 꿈꾸었다.
2010년까지 1만 7,000여 명을 감원한다는 결정도 ‘선택과 집중’의 대표적인 사례다. 뢰셔 회장은 취임 초기 트렌드를 분석해본 결과, 경기 둔화를 예상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심할 줄은 몰랐다면서 감원 결정이 금융 위기 여파를 견뎌내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단순 사무직을 제외하면 2006년보다 오히려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면서 자신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뢰셔 회장은 이제 ‘친환경’과 ‘아시아’에 초점을 맞춘다. 현재 지멘스 전체 매출 중 약 1/4이 친환경 기술에서 창출되고 있는 것은 이 트렌드를 미리 내다보고 해상 풍력사업, 고속철도, LED 사업에 집중 투자했기 때문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경기 회복 속도가 빠른 아시아가 향후 지멘스의 주력 시장이 될 것이라고 밝혀, 다시 한 번 그의 ‘선택과 집중’이 기지를 발휘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