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연륜만큼 가슴을 울리는 목소리 ‘서유석’
“칠십 인생을 돌아보니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이고 섭리였다”
인연은 언제나 새롭다. 특히 좋은 사람과의 만남은 언제나 그러하듯 행복하고 따뜻하다. 그래서 일까. 그런 시간은 오롯이 가슴 깊이 새겨진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은 추억으로 깊이 남는 그런 만남은 그래서 더욱 값지다.
▲ 70년대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가수 서유석 씨. 그가 이제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의 모습으로 세월을 얘기한다. |
구수한 음색으로 세월과 인생을 노래하는 음유시인 서유석 씨는 1970년대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로 ‘한국의 밥 딜런’으로 불린다. 70년대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그가 이제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의 모습으로 세월을 얘기한다. “칠십 인생을 돌아보니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이고 섭리였다”고 말하는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깊은 울림이 있다.
어릴 적부터 몸에 베인 신앙, 그리고 인생음악
▲ 1년에 30회 정도 전국을 다니며 간증집회를 하고 있는 서유석 씨는 요즘 기도하는 생활 속에서 부쩍 삶의 의미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간증집회를 통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서유석 씨는 자신의 나이에 비해 신앙생활은 아직 어리다고 말했다. 집안이 크리스천이라 자연스레 신앙생활을 해왔지만 그가 비로소 믿음이란 것이 무엇이고 믿음의 결과가 무엇인가에 대해 안 지는 20년이 안 된다고 한다.
“나이 50이 넘어서야 뭔가 알게 되고 느끼게 된 거 같아요. 신앙의 나이는 스무 살이 될까 말까 합니다. 이제 성인이 됐을까 말까 하는 정도죠.”
1년에 30회 정도 전국을 다니며 간증집회를 하고 있는 서유석 씨는 요즘 기도하는 생활 속에서 부쩍 삶의 의미를 느끼고 있다고 했다. 5년 전 암 진단을 이겨낸 것도 기도의 힘이었고 믿음의 힘이었다는 그는 그런 삶의 의미를 나 혼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함께 느꼈으면 하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가는 세월’에 대해 “기독교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귀띔했다. “가는 세월을 30년이나 부르고 나서야 곡의 의미를 알게 됐어요. 10여 년 전 이 곡의 의미를 성경을 읽으며 깨달았습니다. 성경에 전도서 1장 2절~11절 말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도다…’ 이 구절을 본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그동안 3분 58초짜리 ‘가는 세월’을 누구에 의해서 억압당하고 그 분풀이를 회심으로 표현한 게 아닌가하고 말입니다. ‘가는 세월’은 얼핏 들으면 인생의 허무를 노래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암울했던 시대상황과 함께 소나무처럼 늘 푸른, 변하지 않는 마음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회심의 노래로 불렀다는 건 아직도 내가 나의 잘못은 생각안하고 남의 잘못만 지적하고 남만 탓하고 있었다는 것이었어요. 생각해보니 참 부끄럽더군요. 회개하고 불러야 될 노래를 회심의 노래로 불렀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이 있은 후 서유석 씨는 간증집회 때 ‘가는 세월’을 부른 다음 ‘내 영혼이 은총입어(찬송가 453장)’ 메들리로 엮어서 부른다.
운명적인 가수로서의 삶
서유석 씨가 가수가 된 건 어쩌면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어릴 적부터 피아노 소리와 찬송가가 매일 같이 울려 퍼지는 음악이 늘 함께 하는 집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그의 모친이 대학에서 기악을 전공해 피아노를 쳤고 크리스천 집안인 까닭에 찬송가가 늘 울려 퍼졌다. 어릴 적부터 음악에 익숙해진 탓이었을까. 어릴 적 운동을 좋아해 핸드볼 선수로도 활동을 했던 그는 자연스레 음악인으로 삶을 살게 됐다.
“국가대표로 선수생활을 하던 중 대학 2학년 때 문득 운동에 대한 회의가 들더군요. 당시만 하더라도 운동선수로서의 삶이 매우 열악했어요. 학교를 졸업하면 운동으로 이어갈 여건이 안됐던 거죠. 그때 마음을 다스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 생각한 것이 ‘기타’였어요.”
그렇게 손에 든 기타로 그의 인생은 운동선수에서 가수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됐다. 고작 6개월 밖에 배우지 않았지만 음악인이었던 모친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작곡까지 할 수 있는 실력이 된 것이다. 선배의 권유로 반주를 시작했고 대학 축제 때 반주자로서 활동하던 차 우연찮게 가수 최희준 씨의 소개로 무대에 올라와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이 지금의 가수 서유석을 대중 앞에 나오게 한 계기가 됐다.
그렇게 시작된 가수로서의 삶이 어느덧 47년이 흘렀다. 1969년 ‘사랑의 노래’로 데뷔해 ‘아름다운 사람’, ‘타박네’, ‘가는 세월’, ‘구름 나그네’, ‘홀로 아리랑’ 등의 히트곡을 낸 그는 ‘밤을 잊은 그대에게’, ‘정오의 희망곡’, ‘푸른신호등’, ‘스튜디오88’, ‘출발 서울대행진’ 등 라디오 프로그램을 30년 넘게 진행한 전문MC로도 유명하다.
한 일화로 ‘밤을 잊은 그대에게’ DJ로 활동할 때 그 생방송 프로그램에서 월남파병반대관련 기사를 읽어주어 그 일로 인해 정보부를 피해 피신해 있다가 3년 동안 서울에 올 수가 없었다. 대전유성에서 유배 아닌 유배생활을 하면서 만들었던 곡이 바로 ‘가는 세월’이다.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단다”
지난해에는 그에게 있어 의미 있는 노래가 탄생했다. 중장년층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아낸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단다’란 노래를 발표 한 것. 1990년 발표한 ‘홀로아리랑’ 이후 처음 발표한 자작곡이기도 한 이 노래는 성경에 있는 아브라함이야기에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
“아브라함은 30년을 기도해 100세에 아들 이삭을 낳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아브라함이 70세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희망과 도전을 했듯 나이 먹은 우리들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었어요. 중장년층들이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과 용기를 갖기 바라는 마음으로 내 안에서부터 시작해야 꿈이 될 것이란 얘기를 노래를 통해 들려주고 싶었죠. 젊은이들에게 주는 메시지도 있지만 내 자신도 용기를 갖게 하는 제목인 거 같아요.”
오랜만에 나온 음원이기도 했지만 노랫말이 가지고 있는 의미 때문인지 공개 전부터 온라인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앞으로는 진정한 사랑에 대한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서유석 씨는 이런 이유에 좀 더 나은 세상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설명한다. 그가 말하는 사랑은 ‘네가 내 입장이 되어봐’가 아니라 ‘내가 네 입장이 될 께’라는 것. 전자는 앙금이 있는 거라면 후자는 아무런 이유가 없는 거라고 설명하는 그는 이것을 토대로 한 사랑 노래를 만들어 보고 싶다고 했다.
20대 시작한 가수 인생이 어느덧 오랜 세월이 흘러 그의 나이 70이 넘었다. 70이 넘은 그의 입에서 전해지는 ‘청춘’의 의미는 이렇다.
“청춘은 어느 시기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상태죠. 모든 걸 숫자로 관련짓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거라 생각합니다. 나이를 먹어 노인이 되었더라도 항상 새롭게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브라함처럼요. 계절을 되풀이 하면서 나이 듦에 서러워 말고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건강하기 위해 노력해야겠죠. 병약해서는 청춘도 논할 수 없을 테니까요.”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구수한 목소리로 대중들의 가슴 속을 울리는 그의 노랫소리가 오늘따라 더욱 가슴 깊이 새겨진다.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아비 되고 할배 되는 아름다운 시절들
너무나 너무나 소중했던 시간들
먼저 가신 아버님과 스승님의 말씀이 새롭게 들린다.
인생이 끝나는 것은 포기할 때 끝장이다.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단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