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진·예슬법’ 입법, 성범죄 예방 현실적 대책 필요

성폭력 재범률 70%, 성폭력범 10명 중 3명은 전과 5범 이상 상습범

2008-05-14     글_김영란 차장

   
▲ 작년 12월 25일 실종됐던 안양초등학교 이혜진(11), 우예슬(9) 양은 끝내 주검으로 돌아와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인면수심 아동 범죄, 범인 다수가 관련 전과자
작년 12월 25일 안양초등학교 이혜진(11), 우예슬(9) 어린이 실종사건이 별다른 성과 없이 미궁에 빠져 들면서, 사건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제발 살아서 돌아오기만을 학수고대했다. 앞서 제주도 양지승 어린이가 실종 40일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터라 이들 가족들은 더욱 불안감과 초조감에 시달려야 했다. 실종 기간이 길어지고 제2의 개구리소년들과 같은 미제사건으로 남는 것이 아닌가하며 노심초사하고 있을 때 범인이 체포되면서, 생존에의 희망은 낱낱이 부서지고 그 잔혹함과 뻔뻔스러움에 치를 떨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피의자 정모(39) 씨는 “사건 당일 술을 마시고 본드를 흡인한 상태에서 담배를 사러 나갔다가 혜진, 예슬 양을 만났고, 반항하자 위협해 집으로 데려간 후 성추행하고 알려질 것을 우려해 이들을 살해했다”고 범행과정을 밝혔다. 경찰 수사에서 정 씨는 스스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성격으로 지난 10여 년 동안 각종 음란 동영상과 사람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과정이 담긴 이른바 ‘스너프’ 동영상을 수집해 반복 시청해오다, 성적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범행 당일 두 어린이들에게 접근해 유인하여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일산 초등생 납치미수사건이 발생해 온 나라를 다시금 분노에 떨게 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이 사건의 피의자가 아동을 대상으로 수차례 상습적으로 강간한 혐의로 징역 10년을 산 뒤 2년 전 출소한 전과자였다는 사실이다. 2년 전 용산에서 여자 어린이를 성폭행한 뒤 시신을 불태웠던 범인도 집행유예 중인 성폭행 전과자였다. 작년 제주 여자 어린이 살해범도 여러 건의 성폭행 전과를 갖고 있었고, 혜진·예슬이 살해범도 상습 성폭력범이었다. 성폭력범의 재범률이 70%에 이르고 성폭력범 10명 중 3명은 전과 5범 이상 상습범이다. 지난해 13세 미만 아동 가운데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는 1,081명으로 2003년 642명보다 68%나 증가했다. 어린이를 성폭행한 혐의로 입건된 사람도 2003년 637명에서 지난해는 702명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정해체와 사회적 소외현상을 아동 성폭행 증가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어린이를 성 도구로 삼는 ‘소아 성 기호증’은 거의 치료가 불가능한 정신질환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해 한 관계자는 “성폭행을 당한 어린이는 평생 그 정신적 상처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그래서 어린이 성폭력은 악질적인 ‘영혼 파괴 범죄’라고 하는 것이다. 정부는 하루빨리 ‘혜진·예슬법’을 제정해 성 맹수들이 먹잇감을 찾아 거리를 어슬렁거리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며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성폭력범 관리체계의 허술, 실질적 무방비 상태

   
▲ 아동 범죄와 관련된 범죄자들의 재범을 막기 위한 궁극적이고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와 같이 우리 사회는 어린이 성폭력범을 관리하는 체계 자체가 너무 허술하다. 현행 ‘성폭력 범죄 처벌 및 피해자보호에 관한 법률’은 ‘13세 미만 어린이 강간은 징역 5년 이상, 강제추행은 징역 1년 이상 또는 벌금 500만~3,000만 원’에 처벌하게 되어 있다. 형량 자체도 죄질에 비해 가벼운데다가 법원이 다시 합의 등 명목으로 형을 깎아줘 집행유예로 풀려나기가 다반사였다. 어린이 상대 성폭력 범죄자의 구속률은 2003년 61.4%(391명)에서 2004년 59.6%(374명), 2005년 49.3%(337명), 2006년 41.5%(303명)로 낮아졌다. 지난해에는 36.7%(257명)를 기록해 처음으로 40% 아래로 떨어졌다.

성범죄자 등 전과자의 유전자(DNA) 정보를 체계적으로 모은 데이터베이스(DB)가 없는 점도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런 DB를 지난해 국가청소년위원회가 만들려 했지만 국가인권위원회와 시민단체가 인권침해가 우려된다며 반대해 중단된 바 있다. 이에 반해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전과자 400여만 명의 DNA 자료를 유전자검사시스템(CODIS)에 모아서 수사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의 신상에 대해 지난 2월부터 공개되고는 있지만, 이 정보를 범죄자가 사는 지역의 부모와 학교장만 열람할 수 있어 그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아동 성범죄와 관련하여 미온적으로 수사해 왔던 경찰들에 대한 인식개선에 대해서도 질타의 목소리가 높았다. 혜진·예슬이 경우 경찰은 한 동네에 사는 정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있으면서도 증거 불충분 등의 이유로 풀어주는 어처구니없는 수사 행보를 보였다. 또한 2만여 명의 경찰을 투입한 암매장 현장수색은 수원인데, 그동안 안양 일대에만 집중하는 등 헛다리를 짚기도 했다. 또 과정상 실종사건은 초동수사와 목격자 확보가 결정적인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수사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도 확인됐다. 금품을 요구하는 협박전화도 없고 목격자도 없는 상황에서 공개수사를 너무 늦게 시작한 것도 지적되고 있는 부분이다.

또한 일산 어린이 납치 미수사건에서도 범인이 선명히 찍힌 CCTV를 보고서도 지구대측은 이 사건을 목격자가 없는 단순 폭행 건으로 분류해 버렸다. 참다못한 피해 어린이 부모가 직접 나서 수배 전단지를 만들어 집 주변 아파트 일대에 붙이고, 사건이 세간에 가시화되자 수수방관하던 경찰은 사흘이 지나서야 뒤늦게 CCTV를 확보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경찰청을 찾아 사건에 대한 늑장 수사를 질타한 뒤, 채 며칠도 지나지 않아 범인을 신속 검거한 상황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의아함과 분노를 동시에 느껴야 했다. 물론 현 수사체계에서 많은 실종사건에 대해 일일이 전담인력을 파견해 수사하는데 시간·인력적인 한계가 있다는 점은 이해한다 하더라도, 충분히 검거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방비 상태로 방치함으로써 사건을 확대시킨데 대한 책임 부분에선 이러한 현실적 설명은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최근 사건 발생 이후 전담반을 구성하는 등 성폭행 관련 범인 검거 체계를 재편하고 있지만 그 실효성은 지속적으로 지켜봐야 할 부분으로 여겨진다. 한 범죄 전문가는 최근 급증하고 있는 아동 범죄에 대해 “어린이는 울고 소리치고 눈에 띄고 하기 때문에 관리가 어렵다. 범행 당일 날 빠른 시일 내에 납치된 어린이들의 생명을 구하려면 무엇보다 경찰의 신속하고 치밀한 초동수사가 필요하다. 특히 신속하게 용의자를 추려낼 수 있도록 아동범죄 전과자에 대한 관리가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아동 성범죄와 관련하여 미온적으로 수사해 왔던 경찰들에 대한 인식개선에 대해서도 질타의 목소리가 높았다.
형법·제도 보다 범죄 사전예방 대책 세워야
아동 범죄에 대한 각 나라의 대처 방식은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적극적이고 범죄에 대해 엄중한 처벌을 하고 있다. 어느 나라보다도 인권을 강조하고 있는 미국에서조차 성범죄자, 특히 아동 대상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는 법조문뿐 아니라 실제로도 무거운 중형을 선고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여러 주(州)에서는 미성년자들을 상대로 한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석방돼 어느 동네에 거주하게 되면, 경찰이 이 사실을 이웃에 알려주는 ‘메건법(성범죄자 석방공고)’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의 적용 대상은 미성년자에게 돈을 주거나 유혹해 성관계를 맺거나 강간한 사람들이다. 메건법은 지난 1994년 뉴저지주의 메건 캔터라는 7세 여자 어린이가 이웃에 이사 온 전과 2범의 성범죄자에게 강간당한 뒤 살해된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성범죄자가 형을 마치고 출소하면 지방 검사의 신청에 따라 법원이 범죄자의 위험성 정도를 결정하고 경찰은 이름, 나이, 육체적 특징, 사진, 관련 범죄, 거주지 등 상세한 정보를 등록한다. 이 같은 신원공개 제도에 대해 사생활 침해와 명예훼손이라는 반론도 제기되었지만, 연방 항소법원은 ‘성폭행으로부터 어린이와 지역공동체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들어 합헌 결정을 내렸다. 2000년 7월에는 아동 대상 성범죄로 두 번까지 유죄판결을 받으면 무기징역에 처해, 무조건 사회에서 ‘아웃’ 시키는 내용의 이른 바 ‘투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또 2005년 미국에선 ‘제시카’라는 9세 여자아이가 성폭력 전과자에게 납치돼 성폭행당하고 살해됐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어린이 이름을 딴 ‘제시카법’을 만들어 성폭행범에게는 최저 25년형을 선고하고 출소 후에도 재범 가능성이 없어졌다는 의학적 진단이 있을 때까지 전자 팔찌를 차도록 하고 있다.
범죄에 대해 엄하게 단죄할 수 있는 형법이나 제도도 중요하겠지만, 사전에 이러한 범죄를 예방함으로써 어떻게 우리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켜낼 수 있는지에 대해 더욱 고민해야 할 때다.

‘혜진·예슬법’ 입법예고, 성폭력 예방 현실적 대책 필요

   
▲ 최근 법무부는 13세 미만 아동에 대해 강간·유사 성교 행위·강제추행 등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후 살해할 경우 ‘사형 또는 무기징역’의 법정형을 적용하는 법률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국내 한 포털사이트의 조사에 따르면, 이러한 험악한 아동 범죄들이 속출함에 따라 맞벌이 가정의 부모 87.5%가 자녀의 안전에 대해 걱정이 크다고 답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중에는 걱정이 큰 나머지 회사를 그만둘까 고민한 적도 있으며, 실질적으로 직장생활을 접는 이도 있었다. 최근 초등학교 하교 시간 교문 앞을 지켜선 학부모들의 모습만 보더라도 ‘이제 내 아이도 그러한 범죄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불안감이 팽배되었음을 느낄 수 있다. 최근 법무부는 13세 미만 아동에 대해 강간·유사 성교 행위·강제추행 등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후 살해할 경우 ‘사형 또는 무기징역’의 법정형을 적용하는 법률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아동 성폭력사범 업안 및 재범방지대책’의 일환으로 내 놓은 이들 조항들은 속칭 ‘혜진·예슬법’으로 불리게 될 전망이다. 법무부는 입법예고안에 대한 의견수렴절차를 거쳐 최종안을 확정한 수 5월 임시국회에 법안을 제출할 방침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법률적인 근거 확립도 중요하지만, 아동 범죄와 관련된 범죄자들의 재범을 막기 위한 궁극적이고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찰-지방자치단체-시민단체-학부모 등이 연계한 예방차원의 사회안전망 구축 방안이 ‘현실적인 대책’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경찰은 교육청과 연계해 통학로 인근의 문방구, 약국, 편의점 등 8,000여 개의 주변업소를 ‘안전둥지’로 지정하고, 아이들이 위험에 처할 경우 언제든 대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아동 안전지킴이 집’ 제도도 도입해 운영을 시작했다. 또 ‘실종 전담반’을 편성해 실종사건 발생 시 수사 착수시간을 24시간 이내에서 신고접수 즉시로 앞당기고, 최근 3년 간의 실종사건을 전면 재수사하기로 했다. 실종, 유괴 아동의 신속한 구조와 범인 검거를 위해 4월부터 방송과 이동통신, 인터넷업체 등 18개 기관의 인프라망을 활용해 공개 수배하는 ‘앰버 경보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경찰의 다양한 대책에 대해 전문가들은 예방 기능을 강화한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지만, 경찰의 예방 기능은 사실상 미미한 수준이기 때문에 사회전체가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산업자원부는 지난해 12월 도시시설물의 설계부터 ‘범죄 예방’을 반영하는 범죄예방환경설계의 표준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와 함께 지방자치단체들도 폐쇄회로(CC TV) 수를 늘리고 자체적으로 사고예방 안전망 구축을 위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미국의 ‘학교 경찰관’을 벤치마킹하여 우리나라에서도 퇴직한 경찰관, 군인, 청소년상담사 등으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들이 등하교 지도, 학교폭력 예방활동을 펼치는 ‘배움터 지킴이’도 지난 3월부터 시행 중이다. 이와 관련해 한 전문가는 “범죄의 해결에 있어서 가장 좋은 것은 예방이다. 그 첫 번째 조건은 각자가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경찰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모두가 함께하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신상 공개, 전자 팔찌 등 궁지에 몰린 여러 가지 자구책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이러한 범죄자들의 재범을 막기 위한 체계적인 치료· 관리시스템도 마련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러한 인면수심의 범죄 배경에는 그릇된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 놓은 어른들의 책임도 크다. 만일의 경우에 대처하는 철저한 자녀 교육과 함께, 남의 일만으로 간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인다면 갈수록 흉폭해지는 세상에서 우리들의 자녀들을 보다 안전하게 지켜 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