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오 vs 박근혜 실세들의 ‘당권대첩’

세종시 블랙홀에 빠진 한나라, 친박 여전히 ‘세종시 원안 +알파(∂)’ 주장
MB 세종시 수정안 입법강행, 친박과의 화해모드 종결인가

2010-03-08     신현희 기자

박근혜 전 대표가 뿔이 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MB 정권이 ‘원안 백지화’를 2008년 7월부터 결정해 놓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는 지난 대정부질문에서 친박연대의 김 정 의원이 “수정안을 미리 만들어놓고 연구용역 보고서를 짜맞춘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정 총리는 “정부가 지난 1년 반 동안 연구해 온 결과”라는 답변이 화근이 됐다. MB 정권은 2008년 중반부터 지역발전위원회와 국토해양부, 행복도시건설청이 ‘원안을 백지화’하고 수정작업에 돌입했으며, 근거도 희박한 행정비효율 비용 산정을 위해 70여 명의 연구단과 40여 명의 자문 교수단을 동원했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 진영에서는 당연히 ‘속았다’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미 결론이 나있는 시나리오였다는 것이다. 그동안 ‘절충안’이나 ‘원안 고수’는 밑밥에 불과했다는 것이 박 전 대표 측의 주장이다.

박근혜 전 대표 “뿔 난데 이유 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이렇듯 세종시에 촉을 세우는 이유는 지난 2007년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경선에서 패배한 박 전 대표는 ‘경선에 깨끗이 승복하겠다’며 이 후보를 지지했다. 그러나 충청권에서는 이 후보의 지지율이 좀처럼 오르지 않자 이 후보는 박 전 대표에게 충청권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박 전 대표는 “무작정 가서 표를 달라고 할 수 없으니 명분을 달라”고 했다. 이로 인해 이 대통령은 ‘세종시 원안’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계기가 됐고 박 전 대표는 충청권을 돌며 원안 추진 공약을 설파해 충청권 민심을 살 수 있었다.
아직까지 한나라당의 당론은 세종시 원안 고수다. 세종시법은 향후 당 장악 능력을 수월하게 하고 2012년 대선으로 가는 지름길도 원활하게 만든다. 최대 쟁점 현안인 ‘세종시법’은 원안추진을 원칙으로 삼고 있는 한나라당 친박계 수장인 박근혜 전 대표가 넘어야할 가장 큰 산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종시 수정안이 통과된다면 충청의 민심은 박 전 대표에게서 완전히 고개를 돌릴 것이다. 친박 진영에서는 ‘박근혜 고사작전’, ‘박근혜 고립화 전략의 일환’으로 세종시 수정안 문제를 내다보고 있다.

‘이재오 vs 박근혜’ 사활을 건 당권경쟁
세종시 주도권을 잡는 자가 당을 장악할 수 있다는 말이 돌 정도로 모두가 ‘세종시’에 사활을 걸고 있다. 또한 이명박 정권 중간평가라 할 수 있는 6.2 지방선거에 이어 7월 전당대회까지 한나라당은 굵직한 사안들이 산적해 있다. 이명박 정부 집권 초만해도, 한나라당 친박계는 비주류였던 만큼, 당 장악을 모색하려는 큰 그림의 플랜을 짜지 않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집권 3년차, 이젠 친박계도 당의 구심력을 확보할 조직책을 구상하는데 신경을 쏟고 있다.
이에 가장 이슈가 되는 것이 ‘권력2인자’로 통하는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의 당내 귀환 시점이다.
한나라당 당헌당규에 따라 7월 전당대회가 치러지면 박 전 대표의 출마가능성이 높다. 박 전 대표는 당권 도전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고 있지만 ‘세종시법’으로 분열된 시점에 박 전 대표의 당내 리더십이 절실하다는 판단이다.
관건은 친이계측에선 누가 당권을 노리고 친박계와 견주느냐도 당권 구도의 관전포인트다.
여권내 친이계 일각에선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이 6월 지방선거 이후, 7월 전대를 통해 당을 장악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의 측근은 “그가 최근 (국민권익위원장으로) 조신한 행보를 보이며 원외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면서 “내심 그는 7월 전대에서 당권에 도전할 의향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위원장이 당내로 진입할지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그의 뜻과는 달리 여권 내부에선 그의 당내 진입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거세다.

진정성을 강조한 ‘이재오식’ 활동으로 당내 진입 모색
당내에선 이러한 기류로 7월 전대에서 ‘이재오 vs 박근혜’간의 당 장악 투쟁이 일어날 것이란 시나리오가 있다. 혹은 대리 후보전 양상도 예상되는 부분이다. 여권내 친이계측 대리 후보로 이재오계인 안상수 현 원내대표가 당권 도전에 나설 가능성도 높다.
관건은 ‘이재오 vs 박근혜’간의 권력 장악을 놓고 벌이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될지 여부다. 이 위원장은 최근 각종 언론매체에서 자신을 향해 ‘권력2인자’, ‘권력실세’ 등의 수식어가 부담스럽다고 자제해 줄 것을 주문했다.
그가 당분간은 정치일선에서 벗어나 진정성을 강조한 ‘이재오식’ 활동을 대중 앞에 충분히 심어주고, 국민적 신뢰감을 회복한 이후 당내 진입을 모색하는 플랜을 짜고 있다는 셈법이 엿보인다. 그가 한동안 조용한 행보를 이어가면서 때가 되면 정치 일선으로 복귀할 것으로 보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를 잘 아는 측근도 “국민권익위원장은 국민과 함께 호흡하는 자리다. 원외에서 국민들에게 신뢰감을 쌓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보면 된다. 머지않아 그는 위원장직을 과감하게 버리고 정치일선에 뛰어들 것이다”고 한 바 있다. 측근의 발언처럼 최근 이 위원장은 투쟁성이 강한 이미지를 탈피하고 부드럽고 신뢰감 주는 이미지로 변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치현안 함구하지만 보이지 않는 힘 발휘
그의 당내 귀환은 예고된 시나리오다.
이명박 정부의 일등 창업공신으로 당내 친이계 의원들에게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 뿐 아니라 2012년 총선 및 대선과 관련한 여당의 차기 당권 문제와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세종시’를 두고 계파대립이 격화된 상황에서 그의 당 복귀가 몰고 올 파장 역시 만만치 않아 당분간은 권익위원장으로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 중도실용을 현장에서 실천하는 모습을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국민권익위원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정치현안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지만 표면적인 행보일 뿐이라는 의견이다.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가는 곳마다 느껴지는 무게감이 향후 그의 선택을 대변하는 듯하다.
이렇듯 당내 최대의 권력지분을 소유한 ‘이재오-박근혜’ 두 인사가 당권에 전장을 내밀면 당권 무대에서 그 시너지 효과는 상당할 것이다.
물론 각 계파별로 대리 후보들이 잇따라 출사표를 던질 시, 그 후보군은 꽃놀이패에 지나지 않을 전망이다. 당내 계파에서 최대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이재오-박근혜’ 누구든 당 주도권을 거머쥘 무대가 마련되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친이·친박계 중 한 계파는 2012년 대선으로 가는 길이 더욱 순탄해질 전망이다.

‘이재오’를 말하다
 
그는 원래 민중당 소속의 재야 출신이다. 민중당은 14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을 한명도 배출하지 못해 사라졌다. 이때 김영삼 전 대통령이 그를 신한국당으로 영입했다. 그는 15대 총선에서 서울지역 최다 득표율로 당선된 이후 이어 16대, 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가 이 대통령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16대 총선 이후다.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을 때 선대본부장을 지냈다. 이런 인연을 기반으로 대선 경선의 전초전인 당 대표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의 좌장 자격으로 출마, 박근혜 전 대표의 지원을 받던 강재섭 전 의원과 치열한 접전을 벌였으나, 분패했다. 한나라당 내 친이-친박 구도는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18대 총선 최대격전지인 서울 은평 을에서 한나라당의 실세이자 이명박 대통령의 2인자로 평가받은 이재오 의원이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에게 10%포인트 가까운 격차로 패배, 이후 ‘대운하’와 ‘공천학살’의 책임을 안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한국으로 들어온 이재오는 지난 2009년 9월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조용한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