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변화시키는 교육의 대안은 '부모'

2010-03-03     남희영 기자
   
   

평화의 상징인 간디와 전쟁의 화신인 히틀러의 어린 시절은 그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의 모습만큼이나 정반대였다. 어린 간디는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와 깊고 강한 유대감이 있었던 반면 어린 히틀러는 심한 학대를 받고 자랐다. 그들은 전혀 다른 유년기를 경험을 했고, 전혀 다른 역할모델을 보고 자랐던 것이다. 어른이 된 간디는 가족 안에서 경험하고 배운 평화와 사랑의 교훈을 전 세계에 전했다. 어른이 된 히틀러는 가족 안에서 경험하고 배운 폭력과 수치를 전 세계에 퍼뜨린 것이다.

만일 어린 히틀러가 간디의 가족 안에서 성장했다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훌륭한 멘토를 만났다면, 그는 과연 어떤 어른으로 자랐을까? 탄력성(상처를 회복하는 힘)에 관한 연구조사에서, 어린 시절의 학대와 무관심을 극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적어도 한 명 이상의 다른 사람과 끈끈한 연결을 맺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의 답 “내 아이에게 있다”

세계적으로 유아교육 산업이 번창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유아교육 부문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고 있으며, 갈수록 교육 대상연령도 낮아지고 있다. 더욱이 “영재교육진흥법”이 통과되면서 아이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영재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급속한 도시화로 아이들이 뛰놀 공간은 크게 줄어들고, 핵가족화로 말미암아 부모 이외에 ‘아이 키우기’에 도움을 주거나 의논해 줄 수 있는 사람도 이제는 우리들 곁에 없다. 생활을 위해 맞벌이를 할 수밖에 없고 일과 직장을 우선시 할 수밖에 없어 부모가 아이들 교육을 진지하게 고민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고 가족계획으로 저출산을 장려한 사회적 환경에서 자란 요즘의 젊은 아빠와 엄마들은 어린 동생을 돌본 경험이 부족한 까닭에 아이를 대하는 방법을 잘 모르기도 한다. 부모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걱정하는데 시간을 보내거나, 조기교육열풍에 우리아이가 뒤처지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잘못된 교육열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주지 않는 판단능력이 필요한 교육범람 시대 속에서 오히려 우리아이에게 히틀러처럼, 당장 눈에 보이지 않을 뿐 폭력과 수치를 심어놓고 있진 않은지 ‘고릿적’일의 잔재와 싸워가며 자신을 돌아보고, 긴 마라톤과 같은 육아문제를 두고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고 본다. 다른 아이들이 아닌 바로 ‘내 아이에게 일어나는 현상’에 관심을 갖고 내 아이가 원하는 것을 알고 올바른 발달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육'인 것이다.

기본원칙은 아이는 어른과 다르다는 것을 아는일

이탈리아의 교육학자 마리아 몬테소리(Maria Montessori, 1870.8.31~1952.5.6)는 “교육의 기본원칙은 아이와 어른은 다르다는 것을 아는 일이다. 모든 아이들의 개별적 삶을 ‘다름’의 세계속에서 보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무분별하고 왜곡화된 상품화속에서는 ‘다름’의 세계 속에 살아가는 아이들의 ‘인격’이 결코 인정될 수 없고, 현대교육이 목표로 하는 전인교육, 인격교육도 힘들기만 하다. 어떤 기준으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아이들을 판단하고 점수매길 수 있을까? 인간을 알기위해 행해졌던 학문의 분석적 연구는 오히려 인간의 전체모습을 감춰지게 만들고, 의학의 발달은 분명 유용하며 현실적이고 흥미있는 사실들을 밝혀내었지만 그것이 인간에 대한 진정한 이해로 이어진 것은 아닌 것 같다. 하버드대학의 교육심리학과 교수이자 보스턴 의과대학의 신경학교수인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er, 1943~)는 ‘거장들의 삶에서 밝혀낸 창조성의 조건’연구에서 창조적 인물들은 유년기의 통찰과 감정, 그리고 경험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면에서 두드러진 모습을 보인다는 것을 분석해낸바 있다. 어린 시절부터 마음편히 탐구하면서 주변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발견하고, 그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활용할 수 있는 귀중한 ‘창조성 자본’을 많이 축적해 놓은 것이라고 제시했다. 그럼 간디는 어린 시절부터 ‘평화적 자본’이, 히틀러는 ‘폭력성 자본’이 많이 축적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그 과정 안에서 아이의 감정적 욕구를 채워주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이고 아이들의 행복과 건강, 최상의 발달을 위해 꼭 필요한 열쇠는 아이와의 강한 유대관계를 맺고 유지하며, 사랑으로 연결하는 부모자신이 쥐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교육업체 중에는 교육의 마지막 대안을 '부모'로 보고, ‘참부모되기 운동’, ‘피스멘토’등의 시스템을 통해 부모의 역할도 모르면 배워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카톨릭에서는 인간이 저지르지 말아야함에도 불구하고 인류역사상 끊임없이 저지르고 있는 죄악을 10계명으로 정하고 이를 지키려 오랜 시간 노력하고 있다. 꼭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서라도 끊임없이 평화로운 삶을 추구하려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갈망인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상대를 평가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공통분모이다. 문제는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방법을 알고 실행에 얼마만큼 옮기느냐’인 것으로, 이는 전혀 다른 결과로 나타난다. 어떤 부모가 자녀가 잘 되기를 갈망하지 않겠는가. 노력하는 부모의 아이들이 행복해지고, 그런 아이들이 이끌어가는 이 세상이 평화롭게 할 것이라는 비전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어떤 학원을 보내서 몇 등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