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비만의 실태와 문제점

2004-11-09     글 / 최승걸
성인병 앞당기는 어린이 비만 심각하다
최근 경제수준향상과 외국문화의 수용으로 식생활이 서구화되고 생활양식이 편리해짐에 따라 선진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장기 아동의 체중과다 및 비만의 발생이 증가 추세에 있어 의학적, 사회적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어린이비만은 신체적, 심리적, 정신적인 문제가 성인비만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동맥경화, 지방간, 관절 등의 성인병적 합병증의 가능성이 그 이유. 또 자신감과 지구력 등이 떨어져 학업 성적도 좋지 않고 주위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사회성 발달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 때문에 비만을 어릴 때부터 개인이나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국가적 문제로 보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견해가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어린이 비만의 실태와 심각성, 국내 비만 진단 및 치료의 현실, 치료 대안과 부모의 역할 등을 조명해 본다.


◇급증하는 어린이 비만
소아 비만(유아기∼사춘기 비만)은 1970년대만 해도 전체 어린이의 2∼3%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1980년대 들어 남아의 9∼15.4%, 여아의 7∼9.5%로 증가하기 시작해 2002년 대한소아과학회가 서울지역 고교 1학년생 4만9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비만율이 남학생 21.7%,여학생 21.3%로 치솟았다. 지난 30여년간 거의 10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생활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고칼로리, 고지방 음식으로 구성된 식사 습관과 상대적으로 부족한 운동 습관이 주원인이다. 특히 뚱뚱한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에 비해 과식하며 기름기 많은 음식을 좋아하고 특히 저녁 식사를 많이 한다. 밥 먹는 속도 또한 대체로 빠르다.
비만은 단순히 체중이 많이 나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체내에 지방 조직이 과잉 축적돼 있는 상태를 말한다. 비만을 진단하는 가장 간편한 방법은 체질량 지수(BMI)를 구하는 것이다. 체질량 지수는 체중(kg)을 ‘신장(m)’2로 나눈 것. 그러나 어른과 달리 어린이는 계속 키가 자라므로 나이와 성별에 맞는 기준표가 사용된다.
기준표는 대한소아과학회가 지난 98년 어린이 10만명을 대상으로 나이별 평균 체중과 키를 조사해 만든 ‘체질량 지수(BMI) 백분위수’다. BMI를 나이에 비교해 95% 이상이면 ‘비만’, 85∼95%면 비만 위험군으로 분류된다. 즉 체중을 기준으로 100명을 한 줄로 세웠을 때 95명번째 이상은 비만이라는 뜻이다. 예를들어 12세 여자아이의 키가 140 cm, 몸무게가 50kg이라면, 체질량지수(50/1.4 =25.5)는 25.5가 된다. 체질량지수 백분위수 기준표에 따르면 이 수치는 95% 이상에 해당돼 비만에 속한다.

어린이 비만이 위험한 이유…조기에 성인병 초래
키 145㎝에 체중 53㎏인 이모군(초등 5학년)은 평소 뚱뚱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 편이다. 그러나 같은 반에도 자신과 비슷한 체형의 아이가 많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면 움직이는 것보다는 TV 보기와 컴퓨터 게임을 즐기고, 피자는 혼자서 반판을 먹을 정도로 좋아한다. 최근 병원에서 BMI를 측정한 결과, 25.2로 백분위수에서 95% 이상에 해당돼 비만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이군의 부모를 놀라게 한 것은 딴 데 있었다. 각종 건강수치를 검사했더니 혈당이 258㎎/㎗(정상치:65∼110㎎/㎗), 혈중 콜레스테롤은 276㎎/㎗(정상치:130∼200㎎/㎗)로 높게 나타나 당뇨병과 고지혈증 진단을 받았던 것이다.
어린이 비만은 어른이 돼 비만이 될 확률이 60∼80%가 높다. 또 이군처럼 각종 성인병이 조기에 발생할 우려도 크다. 실제 최근 인제의대 백병원 강재헌 교수팀이 전국 14개 중학교 3615명 가운데 비만으로 진단된 학생 587명을 조사했더니 76.5%(449명)가 지방간, 고지혈증, 고요산혈증, 고혈당 등 한가지 이상 합병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2가지 이상 합병증을 가진 학생도 36.3%에 달했다. 강교수는 “비만 학생은 정상 체중학생들에 비해 간수치는 10∼13배, 고지혈증 위험도 4배, 고요산혈증 2배, 고혈당은 5배나 높다”면서 “이 시기 비만을 단순히 성장 과정으로 오인해서는 안되며 이후 건강을 위협하는 ‘질병’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비만 아동은 고지혈증, 지방간, 고혈압, 심장질환, 당뇨병 등의 성인병이 조기에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비만이 성공적으로 치료된다면 이와 같은 문제는 대부분 사라지지만, 소아 비만이 성인 비만으로까지 이어지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성인병으로 인한 합병증의 발생 시점이 앞당겨지기 때문이다. 특히 비만으로 인한 동맥경화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동맥경화가 계속 진행돼 30~40대에 이르게 되면, 아무리 치료해도 정상으로 돌이킬 수 없게 되며, 중풍이나 심근경색증 등의 심각한 질환의 발병 가능성이 높아진다.
뿐만 아니라 비만 아동은 체중 때문에 요통이나 관절통과 같은 여러 가지 정형외과적 질환을 일으키게 되며, 배 등 피부가 겹치는 부위엔 종기나 부스럼이 자주 생긴다. 목 주위에 지방이 껴 기도를 압박하기 때문에 숨을 쉬기가 어렵게 되고, 잠을 잘 땐 코를 심하게 골며, 종종 수면 무호흡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숙면을 취하지 못하기 때문에 낮에도 항상 조는 이른바 ‘피크위크증후군’이 나타나게 된다. 내분비계에도 이상을 일으켜 여자인 경우 사춘기가 빨라지며, 초경이 없거나 월경이 불규칙해 진다.



사회성 등 정서 발달에도 장애
어린이 비만은 또 성장과 발달에 장애를 일으켜 심리적, 정서적인 인성 형성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초등학교 5학년인 박모군도 그 중 하나. 키 152cm, 체중 60kg인 박군은 몸이 뚱뚱하다는 이유로 같은 반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자연히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고 TV를 보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 학교 가기를 거부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박군의 어머니는 “아이가 가끔씩 ‘엄마 난 쓸모없는 인간이야?’라거나 ‘내가 뚱뚱해도 엄마는 날 사랑하지?’라고 물을 때가 가장 속상하다”고 말한다.
외국의 한 자료에 따르면 비만아의 90%가 체중을 줄이면 친구들이 덜 놀리고 덜 때릴 것으로 생각한다고 나타났다. 또 69%는 더 날씬해지면 친구가 많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이처럼 비만한 아이는 정상 체중 아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신감이 떨어지고 우울증이 깊고, 신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는 경우가 많다.
뚱뚱한 아이들이 보이는 낮은 자신감은 부모나 선생님조차 비만을 부정적으로 보고 못마땅해한다는 생각이 직·간접적으로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자신의 신체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도 마찬가지. 체중은 조절 가능한 문제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뚱뚱한 것을 게으름과 같은 천성과 연관지어 생각한다. 아이는 자신이 살찐 것 때문에 주위 사람으로부터 게으르거나 자기 조절을 못하는 아이라는 비난을 받을까 무의식 속에 두려워한다. 바로 이 때문에 비만아의 우울증 위험이 높아지는 것. 따라서 부모는 비만한 자녀에 대해 자기도 모르게 느끼는 부정적인 시각을 버리고 아이들 스스로가 뚱뚱하지 않은 다른 친구들에 비해 다르게 취급받는 느낌을 가지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세의대 영동세브란스병원 김호성 교수는 “비만은 신체 건강뿐 아니라 정신 건강이라는 관점에서도 예방과 치료가 중요하다”면서 “비만 어린이는 10세 이후 또는 사춘기 시기부터 적어도 2년에 한번씩 검사를 해 비만 합병증을 조기에 발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동시에 부모는 비만한 자녀에 대해 자기도 모르게 느끼는 부정적인 시각을 버리고 아이들 스스로 뚱뚱하지 않은 친구들에 비해 다르게 취급받는 느낌을 갖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내 치료의 현실, 단기감량보다 생활습관 교정
키 155㎝, 체중 66kg인 한모(13)군은 친한 친구로부터 ‘너무 뚱뚱해 사귀기 싫다’는 절교 선언을 듣고 충격에 빠졌다. 살을 빼야겠다고 결심한 한군은 하루 한끼만 먹기 시작했다. 덕분에 3개월새 15㎏을 감량했으나 얼마 뒤부터 기운이 없고 만사가 귀찮아지는 등 이상 증세가 생겨 병원을 찾았다. 무리한 다이어트로 인한 빈혈과 영양 결핍이라는 진단. 더구나 이 같은 다이어트를 계속할 경우, 근육량 감소로 이어져 성장 장애까지 불러올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한군의 부모는 아연실색했다.
소아 비만 치료의 어려움은 올바른 체중 조절과 함께 아이의 성장·발달도 고려해야 한다는 데 있다. 따라서 자칫 어른들이 하는 다이어트법을 그대로 따라 했다간 큰 후유증이 뒤따를 수 있다. 단기 효과를 노리기보다 단계적이고 지속적인 관리가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소아 비만은 성인 비만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성인 비만이 지방세포 수는 정상이고 크기만 증가하는 ‘지방세포 비대형’인 반면, 소아 비만은 지방세포의 크기는 비슷한데 수가 증가하는 이른바 ‘지방세포 증식형’이 많다. 비만의 속도가 빨라 그만큼 치료가 어렵다는 얘기. 또 성인과 달리 단순히 살이 찌는 것을 넘어 성장에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된다. 예를들어 여자 아이의 경우 몸무게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나이와 상관없이 생리가 시작될 수 있다. 또 고도 비만인 남자 아이들의 경우 가슴이 나오고 고환이 발달하지 못하는 증상도 발견된다.
그동안 국내에선 소아 비만을 성인 비만처럼 보는 잘못된 인식이 일반화돼 비만아동에 성인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적용해 단기간에 체중을 줄이는 데만 집착해왔다. 하지만 아이들 비만 치료의 목적은 체중 감소가 아니라 체형을 바로 잡는 데 둬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 견해다. 예를들어 팔다리는 가는데 배만 볼록하다거나 키는 크지 않았는데 체중만 늘었다거나 하는 경우, 단기간에 승부를 내기 위해 무리한 식이요법 등에 매달리면 성장에 필요한 영양소까지 함께 제한해야 되므로 위험하다는 것이다.
소아 비만 치료율은 20%내외일 만큼 성인 비만에 비해 효과가 낮은 편이다. 따라서 아주 심각해지기 전에 치료가 필요하며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하다. 대개 부모들은 아이가 5∼6세 됐을 때부터 비만을 인식하게 되지만, 3세 이전에 비만 예방이 시작돼야 한다. 소아 비만은 또 단순히 체중을 줄이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심리적, 정신적 문제 등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 따라서 의사, 영양사, 임상 운동사, 임상심리 전문가 등 다양한 분야의 의료진이 한 팀을 이뤄 치료해야 한다. 그렇지만 아직 국내 병원에서 이런 치료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단지 소아과나 소아내분비내과 등에서 비만을 치료하고 있을 뿐이다.
소아 비만 환자는 비만 정도에 따라 치료 횟수가 다르지만 대개 2주 또는 한달에 한번씩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어린이 비만 치료는 체중을 줄이도록 하는 것보다는 건강한 생활습관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므로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 특징. 그러나 국내 교육실정이나 어린이 비만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방학에만 잠깐 치료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어린이 비만 70% 부모 食습관 탓
이대목동병원 비만클리닉의 심경원 교수는 “지난 20년동안 한 사람이 먹는 양은 하루 약 1㎏으로 양적인 변화는 없었던 반면 육류와 어패류의 소비는 3배 이상, 달걀 2배, 특히 우유와 동물성 지방섭취가 약 10배 이상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같은 기간 특히 소아에서 비만이 급증하고 아토피성 피부염, 충치발병률, 아동정서불안, 대장암 등의 발생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999년 국내 비만청소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중 50%에서 당뇨나 고혈압, 고지혈증과 같은 합병증이 조사됐고 30%는 지방간으로 인한 간기능 이상이 있었다는 보고도 있었다.

비만의 척도=심교수는 “어린이들의 비만도는 한창 성장기에 있어 성인에 비해 측정하기 까다롭기 때문에 성별, 연령별, 신장별 표준체중을 이용해 측정한다”고 설명했다. 표준체중을 측정하는 방법은 (키-100) 0.9의 공식에 대입해 값을 구한 뒤 표준체중과 비교, 표준체중보다 20% 이상일때 ‘비만’, 50% 이상이면 ‘고도비만’으로 분류한다.
또 비만정도를 구하는 방법은 예를 들어 키가 119.5㎝인 6세 7개월된 남아의 체중이 30㎏이라면 표준체중은 23㎏임으로 이 아이의 비만도는 (30-23)/23 100=30.4%, 중등도 비만으로 판정하는 것이다.

왜 우리 아이만 살이 찔까=심교수에 따르면 살이 찌는 원인 중 약 30%는 부모의 유전적인 원인이며 나머지 70%는 부모의 생활습관이 원인이다. 아이가 비만이라면 자신이 비만이 아닌지, 또 튀김요리를 자주하는지, 짠 음식을 좋아하는지, 외식이 잦은지 등 먼저 자신의 습관을 점검해봐야 한다. 심지어 부모와 아이 모두 비만인 가정에서 부모가 함께 다이어트를 시작한 경우, 아이들은별다른 치료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살이 빠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어린이 식사지도는 이렇게=어린이 비만치료는 성인의 비만치료 방법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는 어린이는 육체나 뇌 발달이 한창 진행되고 있고 성인처럼 먹는량을 조절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는 아이의 식사 습관을 천천히 씹어먹도록 음식은 식탁에서만 항상 같은 시간에 규칙적으로 음식을 남겨도 혼내지 말고 편식하는 버릇은 바로잡도록 바꿔줘야 한다.
이와 함께 아이들이 좋아하는 패스트푸드나 청량음료, 단음식, 기름에 튀긴 음식 등은 피하고 섬유질과 살코기, 생선, 콩류, 보리, 해조류, 채소, 우유 등을 중심으로 먹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다. 많은 어머니들이 올리브 기름으로 음식을 튀기면 살이 덜 찐다는 잘못된 상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올리브 오일 등 식물성 기름으로 음식을 튀겨도 살이 찌는 것은 마찬가지다.
심 교수는“튀김기름은 오히려 중성지방 구조가 일반 기름과는 전혀 다른 ‘로프리’ 등이 지방 배설을 도와 비만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지적했다.

음식이 성격을 만든다=조금은 황당한 얘기지만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한·양방 전문의들은 지적하고 있다. 외국에서의 조사자료를 보면 패스트푸드를 많이 섭취하는 청소년들에서 폭력적이거나 충동적인 성향이 나타났다는 연구조사도 있었다.
서울 대치동의 황&리 경희한의원의 황치혁 원장은 “한방에서는 단맛음식을 적당히 즐기면 스트레스나 긴장을 풀어준다고 보지만 반대로 너무 심하게 섭취하면 신장기능에 문제를 일으켜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내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황원장은 “이외에도 매운음식을 너무 탐하면 성격이 급해지고 예민해 질 수 있으며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이 너무 짜게 먹으면 짜증이 늘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