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일터’ 듀폰의 208년

매출액 중 20만 달러를 에너지 효율 제품으로부터 창출 목표

2010-01-11     김미란 기자

1802년 화학회사에서 시작한 듀폰(Dupont)은 설립 100년이 지난 1920년부터 화학물질과 에너지 산업 분야에 진출했으며 현재는 과학 솔루션에 기반을 두고 식품과 영양, 의류, 안전과 보호, 건축, 전자, 운송 등의 산업 분야에서 삶에 진정한 변화를 이뤄왔다. 생활 터전 곳곳에서 듀폰의 기술과 정신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미국 델라웨어 주 윌밍턴에 본사를 두고 있는 듀폰은 전 세계 70여 개국에 진출 6만 여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으며 델라웨어 주에 있는 중앙연구소를 비롯해 전세계 11개국에 75개의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1802년 화학자 라부아지에의 영향으로 듀폰 설립
1739년 파리에서 태어나 가업인 시계공 도제수업을 받던 피에르 사무엘 듀폰(Pierre Samuel du Pont de Nemours)은 가업을 잇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경제학이었다. 논문 두 편으로 학자의 길을 걷게 되어 폴란드 왕실의 가정교사까지 거쳤으나 귀국 후 고국에서 재정총감의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직언을 망설이지 않아 결국 공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던 중 그는 루이 16세로부터 미국·영국간 평화조약을 중재하라는 밀지를 받고 1783년 파리평화조약, 1786년 영불 무역협정에 지대한 공로로 세워 귀족작위까지 얻었다. 하지만 정쟁에 끌려 거듭된 투옥 끝에 1799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이렇게 미국으로 이주한 듀폰가의 자녀 중 엘뢰테르 이레네 듀폰은 여기서 프랑스 출신의 유명 화학자인 앙투안 라부아지에와 공부를 하며 그의 영향을 받은 듀폰은 1802년 미국 델라웨어 주 윌밍턴에 자기 이름을 딴 화약회사를 만들었고 이것이 오늘날의 듀폰이다.
듀폰은 생전에 연구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노력은 지금의 듀폰이 11개국에 연구소를 두고 있는 것으로도 설명될 수 있다. 듀폰의 기초 과학 분야의 연간 연구개발 예산은 10억 달러를 넘어서며 그 중 절반가량은 초전도 물질, 유전자 구조, 폴리머 과학 등 첨단 연구에 나머지는 생명공학, 화학, 전자 및 에너지 분야의 연구에 쓰인다.
여러 연구기관 중에서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곳은 듀폰 중앙연구소다. 미국 델라웨어 주에 위치한 이 연구소는 세계 최초의 민간 기초 과학 연구소로 지난 1903년에 설립됐다. 약 18만 6,000평 부지에 60여 개 연구동으로 이뤄진 이 연구소에서는 현재 1,000여 명의 과학자와 전문가들이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하고 있다. 찰스 패터슨 연구원이 크라운 에테르 분자를 발견한 공로로 지난 1987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할 정도로 중앙연구소는 듀폰의 싱크탱크로 확고히 자리 잡고 있다.
철저한 품질관리와 안전대책, 고품질의 무기를 개발, 생산하게 된 듀폰은 미국 정부의 신뢰를 얻게 되었고 20세기에 들어서는 다이너마이트나 무연 화학 등도 제조할 수 있게 되었다. 듀폰이 1, 2차 세계대전에서 화약이나 폭탄을 공급한 것, 맨해튼 계획에 참가해 테네시 주의 오크리지 국립 연구소에서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을 제조하며 미국의 전쟁을 지원했던 것도 이 같은 미국 정부의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에 듀폰家에서는 사무엘 프랜시스 듀폰 같은 군인도 배출했다.
듀폰가에서는 자동차 산업에도 눈을 돌렸다. 1914년에는 GM사에 출자를 했고, 이후에는 피에르 듀폰이 이 회사의 사장으로 취임하기도 했다. 그리고 GM은 듀폰사의 든든한 지원으로 미국 1위의 자동차 회사로 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듀폰사에서도 1919년부터 1931년까지 자동차를 생산했다.
1920년대 이후의 듀폰은 화학 분야에 더욱 힘을 쏟았다. 1928년에는 폴리머 연구를 위해 월래스 캐로더스 박사를 고용했고 이를 계기로 나일론과 합성고무 등을 발명했다. 역사적인 발명에 탄력을 받은 듀폰은 이후 합성섬유, 합성수지, 농약, 도료 등도 연구하고 개발해 생산하게 되었다. 이처럼 듀폰은 하나로 정의하기 힘든 미국의 대표적인 복합 기업체이자 세계적인 회사임에는 분명하다.

1938년, 세계 최초 공해 방지 전담 엔지니어 임명
듀폰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일터’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 현재 미국 전체 산업계 평균보다 약 50배, 화학업계 평균보다는 약 10배 가까이 우수한 안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모든 안전사고와 직업병은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는 듀폰의 안전에 대한 대표에서 비롯되었으며 또한 항상 최고 경영자 회의에서도 안전에 관한 사항을 가장 먼저 토의하고 철저한 안전지침을 마련해 직원 뿐 아니라 직원의 가족과 고객까지 그 지침을 준수하게 해 얻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1970년 이후부터는 타 사업장을 대상으로 안전·환경 컨설팅 서비스도 운영하게 되었다.
이처럼 듀폰은 전세계 산업 전반의 안전관리 수준을 향상시키는데 이바지하고 있다. 그동안 약 1,000여 개 회사들이 듀폰의 공정안전관리 서비스를 제공받았으며 이를 통해 3년 만에 재해율을 64%나 감소시키는 실로 놀라운 결과를 기록했다.
또한 듀폰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1938년에는 세계 최초로 공해 방지 전담 엔지니어를 임명했다. 이렇게 산업계에서 환경보호의 선도적 위치를 굳히기 시작한 듀폰의 목표는 환경적으로 사장 훌륭한 기업이 되는 것이다.
듀폰의 CEO는 Chief Executive Officer가 아닌 Chief Environmental& Safety Officer로 통한다. 1966년 최고 경영자를 의장으로 하는 환경위원회를 발족한 듀폰은 이후 환경보호 프로그램의 방향 설정과 정책수립을 수행해오고 있다. 이로 인해 19880년대 말부터는 유엔 산하기구인 세계환경센터를 비롯한 미국 중앙정부 및 환경청 등 세계 유수의 환경기구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아왔다.
기업 내에서도 이러한 기념 이념을 적극 실천하고 있다. 1990년부터는 전세계 직원들을 대상으로 사내 안전·보건·환경 우수상을 제정해 실적이 우수한 이들에게 시상하고 있다. 최근에는 산업재해, 질병, 사고, 각종 폐기물을 ‘0’으로 줄인다는 ‘제로 목표’를 설정해 대내외적으로 공표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존경받는 기업시민 되기 위해 ‘근면하고 성실하게’
세계 70개국에 진출해 있는 듀폰은 모든 직원들을 공정하고 정당하게 대우하며, 평등한 기회를 부여해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풍습과 문화를 존중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직원 개개인의 공헌이 높이 인정되고 존중받게 되어 훌륭한 회사의 구성원으로 성장하게 된다. 나아가 듀폰은 직원 개개인이 회사에서 뿐 아니라 가정에서,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한 명의 구성원으로서 해야 할 역할과 책임을 수행하고 이를 조화롭게 이루어나갈 수 있도록 업무환경을 조성해 개인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듀폰의 ‘기업업무선언’에는 “듀폰은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기업시민이 되기 위해 최고 수준의 윤리 규범에 맞춰 근면하고 성실하게 업무활동을 수행해 나간다”는 항목이 있다. 이처럼 사회·문화적인 배경이 각기 다른 세계 여러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듀폰은 성공적으로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혁신적이고 유연한 방법들을 꾸준히 모색하며 실천하고 있다. 하지만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듀폰의 소중한 명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높은 윤리적 수준에 맞춰 업무를 수행한다는 원칙에는 예외를 두지 않는다. 사회, 문화적 측면은 달라도 윤리를 추구하는 것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이러한 윤리 규범 준수는 장기적인 성공을 위한 필수요소다.

세계적 금융위기에 직면, 위기관리플랜 가동
200년이 넘는 시간동안 듀폰의 세계적인 기업으로, 최고의 화학기업으로 그 명성을 이어오며 승승장구 해왔다. 하지만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여파는 듀폰에게도 미쳤다.
2008년 10월 초 일본을 방문하면서 금융위기의 징조를 알게 된 찰스 홀리데이 회장은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고위 간부를 긴급 소집했다. 그리고 현재 상황이 어떠한지를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절망적이었다. 금융위기가 전 세계에 걸쳐 확산될 가능성이 지대했으며, 기업들의 신용이 떨어지면서 운용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듀폰의 국내외 사업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윌밍턴에 있는 듀폰 소유의 호텔 숙박 예약률은 30% 이상 떨어지고 있었으며 제조업체의 생산율도 현저하게 감소하고 있었다. 듀폰의 페인트는 미국에서 생산되는 자동차 도장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자동차회사들의 판매가 급감함에 따라 듀폰의생산량도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듀폰은 오래전부터 위기 대처방안을 강조해왔던 터.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고위 간부들은 회사 위기관리플랜에 따라 위기의 원인을 분석하고 적절한 절차를 실행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듀폰의 이 위기관리플랜은 9.11 사태와 허리케인 발생 시에 사용된 것으로 금융위기도 이와 맞먹는 심각성을 보여 실행하게 된 것이다.
이 시기에 듀폰은 본사 17개 팀이 4일 동안 회의를 했으며 위기대처방안이 마련된 지 10일안에 모든 직원이 회의를 가졌다. 위기 상황 속에서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의견을 나누었다. 본질은 ‘금융’이었다. 직원들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출장을 줄이고 내부 회의는 취소했으며 컨설턴트와 하청업자 이용도 자제했다. 이렇게 철저한 준비와 발 빠른 대응으로 듀폰은 금융위기를 넘고 있다.

준비된 인재 ‘엘런 쿨먼’, 듀폰 역사상 첫 여성 CEO
2008년 9월23일에는 듀폰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CEO인 엘런 쿨먼 사장이 취임한다고 발표했다. 쿨먼은 그 해 10월1일부터 CEO로 활동하고 있다.
화학기업의 첫 여성CEO라고 세계가 떠들썩했지만 정작 쿨먼 자신은 덤덤했다. 오히려 CEO 내정 발표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녀는 “첫 여성 CEO라는 자리가 영예이긴 하지만 그것이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모르겠다”면서 회사의 전략을 계속 밀고 나가 화학에 기반을 둔 전통적 회사에서 농업, 생명공학, 과학기술 분야에 강점을 가진 연구개발 회사로 변화하는데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GE에서 근무하던 쿨먼은 1988년 듀폰으로 전직해 마케팅 매니저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2006년부터는 CEO실에서 최고경영자 수업을 받으며 듀폰 주요 5개 사업 부문 가운데 4개인 도료·컬러기술, 전자통신기술, 재료 등을 담당해왔다.
그녀가 경영수업을 위해 부문별 사업을 익힌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회사에서는 그녀의 경영능력과 자질을 평가하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그래서일까. 그녀가 홀리데이 회장의 뒤를 이을 거라는 소문은 기정사실화되어 있었다. 홀리데이 회장 역시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회장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또한 쿨먼은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하는 세계 100대 여성리더 중 인드라 누이 펩시 CEO, 앤젤라 브랠리 웰포인트 CEO, 앤 멀케이 제록스 CEO 등과 함께 한 명으로 뽑히기도 했다. 이로써 쿨먼은 미국 유수 기업을 움직이는 여성 CEO 반열에 올라선 것이다.
쿨먼의 능력은 안전·보호 소재 부문을 담당하고 있을 때 가장 빛났다. 당시 쿨먼은 연 매출 20억 달러를 올리고 있는 티타늄 부문을 맡고 있었는데 안전·보호 소재 부문을 맡아달라는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자산도 없고 직원 수도 적어 불안하기만 한 부서로 옮기기로 결정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녀는 이 부서를 살려냈고 회사 내에서 자신의 이름도 더욱 확고하게 각인시켰다. 그녀가 재직하던 2002~2006년까지 이 담당 부서의 매출은 35억 달러에서 55억 달러로 크게 늘어나는 결과를 나타냈다.
2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듀폰을 그녀는 크게 바꾸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200년을 고수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지역사회가 무엇을 원하는지,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대학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직접 살펴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을 토대로 듀폰은 조금씩 시대에 적응하며 변하고 있다.
쿨먼은 듀폰의 본사, 델라웨어 주 윌밍턴 시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학업을 위해 고향을 떠났다가 듀폰과의 인연으로 다시 고향에 돌아왔다. 이 인연이 언제까지 계속 이어질는지 모르지만 그녀는 지금 자기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200년을 넘는 역사 속에 그녀의 이름이 새겨지고 있다.

2015년까지 1,000개 이상 인간 보호 신제품, 서비스 출시
화학기업에서 과학기업으로 거듭난 듀폰은 21세기에 진정한 의미의 지속가능한 경영 위해 많은 고민에 빠져있다. 19세기, 20세기를 거쳐 21세기를 살고 있는 듀폰은 에너지와 자원 효율성을 향상시키고 온실 가스 배출을 줄이며 지속가능한 사회 기반을 개발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혁신을 고양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그래서 듀폰은 과학 기업으로서, 인간의 삶과 안전 및 환경을 보호 하고 향상시키는 지속가능한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해 듀폰의 과학을 제품의 개발 단계에서부터 연구에 적용하고 있다.
듀폰의 부회장 겸 지속가능성 담당 책임자 린다 피셔는 “우리는 놀라운 발전을 이룩해왔지만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아 남았다고 생각한다. 208년의 역사를 지닌 회사로서 그 유산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대중은 듀폰이 정직하기를 바라며 듀폰 또한 그러하다. 그래서 듀폰은 외부단체가 지속적으로 우리의 행동을 관찰해 듀폰이 약속을 지켜나가는 모습을 검증해 주기 바란다”고 전한다.
2006년 듀폰은 새로운 지속가능성 목표를 발표했다. 듀폰이 새로운 정점을 찍게 될 시점은 2015년이다. 2015년까지 듀폰은 고객과 소비자를 위해 듀폰의 가치 사슬과 함께 직접적이고 양적인 환경적 기여와 더불어 연구 및 개발 분야에 대한 투자를 두 배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또한 듀폰은 2015년까지 연간 매출액 중 20만 달러를 에너지 효율적이며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제품으로부터 창출하고자 한다. 그리고 듀폰은 고갈되지 않은 자원으로부터 매출을 최소한 80억 달러로 지금보다 2배 이상 증가시킨다는 목표를 세웠다.
또한 듀폰은 인간보호에 대한 관심을 늘려가고 있다. 위험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신제품을 시장에 개발하고 선보이기 위해 연구 및 개발비의 비중을 높이고 2015년까지 1,000개 이상의 인간을 보호하는 신제품과 서비스를 출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