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위기로 기업들 신용등급 줄줄이 하향 조정

두바이월드 자금 확보 어려움에도 기한 연장 요청 안 해

2010-01-08     김미란 기자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정부가 정부 소유 최대 지주회사인 두바이월드의 채무 상환을 6개월간 유예해달라고 채권단에 요청했다. 사실상 모라토리엄(채무 상환 유예)을 선언한 것이다. 두바이월드는 2006년 3월 두바이 통치자인 셰이크 모하메드의 칙령에 의해 출범한 회사로, 셰이크 모하메드는 두바이월드의 상당 부분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두바이월드는 세계 최대 인공섬인 ‘팜 주메이라’를 조성한 부동산 개발기업 나크힐과 세계 3위 규모의 항만운영기업 DP월드, 투자사 이스티스마르 등의 모회사다.

외부 자본 의존율 높아 세계적 금융 위기에 치명타
그동안 두바이월드는 12개국 30여 개 도시에 7만 여 명의 인력을 운용하면서 부동산 개발은 물론 항만 운영, 금융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바이의 발전에 앞장 서 온 회사다. 하지만 규모를 자꾸만 키워오다가 결국 모라토리엄이라는 총체적 난국에 빠져버렸다. 두바이월드의 부채 규모는 590억 달러로 알려졌다. 이는 우리 돈으로 약 68조 원. 이 중 70% 이상을 두바이 정부와 정부 소유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두바이월드는 지난 10월 전체 인력의 15%에 해당하는 1만 2,000여 명을 대거 정리해고 하는 등 강력한 구조조정을 단행했지만 모라토리엄 선언이라는 결과를 피할 수는 없었다.
두바이월드 아흐메드 빈 술라이엠 회장은 “세계 모든 기업들이 금융 위기의 여파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처럼 우리에게 직면한 도전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라고 직원들을 안심시키려 했지만 두바이월드에게 금융 위기 여파가 가장 크게 불어 닥친 셈이다.
두바이는 1960년 두바이공항과 1972년 라시드항을 개항하면서 중동 물류 허브의 지위를 일찌감치 선점했다. 이렇게 물류 인프라를 구축한 두바이는 2000년대에 들어 투자처를 찾던 중 자연스럽게 중동 오일머니를 자연스럽게 흡수했고 이 차입 자본으로 세계 최대 인공섬 ‘팜 주메이라’를 건설하기 시작했으며, 2004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부즈르 두바이’ 건설 사업도 착공에 들어갔다.
야자수 모양의 ‘팜 주메이라’에 빌라가 입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꿈만 같던 건설 프로젝트들이 하나씩 현실화되자 두바이에는 외국 투자자본이 물 밀 듯 밀려들어오게 되었고 2005년 부동산 가격은 분기당 20∼30%씩 폭등하는 등 호황을 맞았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행운은 과잉 투자로 이어졌다.
‘팜 주메이라’보다 무려 8배나 큰 ‘팜 데이라’ 건설과 두바이공항이 이미 있음에도 두바이는 더 큰 규모의 공항 건설 사업을 시작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사막에 물길을 내겠다며 발표한 75㎞에 달하는 운하 프로젝트, 세계 최대 쇼핑몰 건설 사업도 모두 이때 추진한 사업들이다. 이처럼 무리한 투자를 남발하는 과정에서 두바이 정부와 정부 소유 기업들이 부담해야 할 부채는 급기야 800억 달러(한화 92조 원)에 달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세계 금융 위기는 외부 자본 의존율이 높은 두바이에겐 그야말로 치명타였다. 금융 위기 여파가 거세게 몰아치자 국제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빌린 뒤 투자자들에게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던 두바이 담보 대출사들은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두바이 부동산 가격은 반 토막이 나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상황이 점점 악화되자 두바이 정부는 추진하고 있던 프로젝트들을 축소하고 홍콩, 싱가포르, 런던, 프랑크푸르트 등을 순회하며 투자 설명회를 열었지만 투자자들의 반응은 냉랭할 뿐이었다.
결국 지난 2월 UAE 연방 중앙은행 지원으로 100억 달러를 확보하고, 채권 발행으로 50억 달러를 추가로 확보했지만 모라토리엄 선언이라는 결과는 피하지 못했다.

금융위 “두바이 사태 국내에 미치는 영향 미미”
국내 시장에도 두바이 사태로 불안감이 고조되자 금융위원회 권혁세 부위원장은 11월29일 두바이월드 모라토리엄 선언에 따른 금융시장 파급영향 등을 점검하기 위해 ‘금융위-금감원 비상금융대책반회의’를 개최, 시장 진정에 나섰다.
권 부위원장은 “두바이월드 채무상환유예 요청 이후 국내외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다소 확대된 것은 사실이지만 현 단계에서 이번 문제가 리먼 파산과 같은 전면적인 글로벌 시스템 리스크로 확대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전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로 인한 손실발생 가능금액이 크지 않은데다가 그간 주요국 대비 금융시장 및 실물경기가 상대적으로 호조세를 보이는 등 외국인 투자자들의 인식도 상당히 개선되었기 때문에 두바이 사태가 국내에 미칠 영향은 미미하다고 밝힌 권 부위원장은 하지만 금융 불안 확산의 가능성은 열어두고 체계적으로 대비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국내 건설업체와 금융기관이 두바이에 투자한 규모는 8,800만 달러로, 두바이를 포함한 UAE에 투자한 금액은 2억 2,100만 달러로 알려져 있다. 이 중 두바이월드 투자 금액은 3,200만 달러다. 이처럼 투자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국내 경제에 큰 영향은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UAE 정부도 대응능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글로벌 공조 속에서 두바이발 쇼크가 조기에 해결될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리처드 던컨 “두바이 이어 중국도 위기 가능성” 경고
그런가 하면 ‘세계 경제의 몰락-달러의 위기’ 저자인 리처드 던컨은 “두바이에 이어 중국에서도 위기가 터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12월1일 하나금융그룹 출범 4주년 기념 국제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귀국한 리처드 던컨은 “대출과 정부 지출 등으로 경기를 부양하고 있는 중국도 두바이처럼 최근 몇 년간 대규모 건물 공사와 은행 대출 기반의 성장 전략으로 부실을 키워왔다”면서 중국 경제는 이미 위기에 처해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 그는 “은행 대출은 급증하고 있으나 대출을 받은 사업에서 이익을 내지 못해 부실자산은 쌓여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도 떨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던컨은 “아직 정부 부채가 높은 수준이 아니어서 중국이 당장 큰 위험에 빠지거나 대공황 같은 엄청난 재앙을 맞지는 않을 것이지만 중국의 연간 경제성장률은 10%에서 6∼8%로 하향 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이 매년 10% 이상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은 잘못 되었다고 지적했다.
한편, 부채를 기반으로 한 소비 위주의 미국 경제성장 모델이 무너지면서 아시아의 경제성장 모델도 위기에 직면했다고 주장한 던컨은 “경제 패러다임이 과거 자본주의에서 현재 부채주의, 정부주의로 바뀌었다”고 설명하며 다만 미국 정부가 이러한 정책을 쓰지 않았더라면 성장률은 마이너스로 돌아서고 금융시스템은 붕괴되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앞으로 5년 내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더 강한 금융 위기가 재발할 것이라고 경고한 던컨은 특히 미국 내에서 제조업 비중이 낮아지고 서비스업 비중이 높아지는 것이 문제라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미국이 보호주의로 전환될 수 있어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신성장동력을 태양열 산업 등에서 찾으면 미국 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스 10년 만에 처음 국가신용 A등급 아래로 조정
그리스도 위기에 빠졌다. 신용평가사 피치는 12월9일 그리스 국가 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하향 조정했다. 그리스의 국가 신용등급이 A등급 아래로 떨어진 것은 10년 만에 처음 있는 일로 현재 그리스는 정부의 방만한 재정지출로 국가부채가 늘어나 총체적인 경제파탄의 위기에 빠져있다. 이에 앞서 무디스와 스탠다드앤푸어스(S&P)도 그리스의 신용등급을 ‘부정적’으로 바꾼바 있다.
그리스의 2009년 재정적자는 GDP의 12.7%에 이르며 2010년 국가 부채는 125%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005년 5.5%였던 것이 2009년 12.7%까지 증가했으며 국가 총 부채도 앞으로 계속 증가, 2009년 112.6%였던 것이 2010년 124.9%, 2011년 135.4%까지 급증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이는 EU 회원국의 재정적자 및 국가부채 기준(각각 3%, 60%)에 비해 현저히 높은 비중이다.
그리스가 이 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은 2001년 유로존에 가입한 이후 정부 재산을 무분별하게 사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그리스 정부는 공무원을 5만 명이나 증원해왔다. 또한 과도한 연금제도도 정부의 부담을 가중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러한 사정은 2009년 10월까지 전혀 드러나지 않아 그야말로 융단폭격을 맞은 셈이 된 것이다. 현재 그리스 정부부채는 사상 최고인 3,000억 유로에 달한다.
그리스 게오르게 파판드레우 총리는 자국에 불어 닥친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부패’와 ‘관료주의’를 꼽았다. EU 정상회의 만찬에서 파판드레우 총리는 “그리스는 1999년 유로화 출범 이후부터 공공금융 부문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으며 행정부와 공공조달 부문의 비효율과 부정부패로 재정적자가 커지고 있어 이것이 주가 폭락, 국채 금리 폭등 등의 이유가 되고 있다”고 비판하며 “경제를 혁신하고 공공부분을 개혁하며 부정부패와 싸워 경제를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EU 집행위원회 호세 마뉴엘 바로소 위원장도 “세계 개편 등을 통한 기업 경쟁력 강화와 함께 행정부 등 정부기구의 축소, 행정 절차의 간소화 등을 통해 그리스는 현재 GDP 100%를 넘는 재정위기를 극복해 나갈 것”이라는 격려의 말을 전했다.
하지만 신용등급 하락은 그리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세계 최대의 신용평가 기관은 코파스는 12월8일 세계 47개국 중 28개국의 기업 신용등급이 하락했다고 밝혔다.
코파스의 발표에 따르면 독일, 벨기에, 프랑스, 노르웨이, 캐나다는 기존의 A1에서 A2로 하락했으며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아일랜드, 포르투갈 등은 A2에서 A3로 하향 조정됐다. 특히 러시아는 B에서 C로 하락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A1에서 A2로 하락했다. 유럽의 핀란드,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스위스, 스웨덴과 인도는 기존의 등급을 그대로 유지했다. 미국과 우리나라도 A2에서 변동 없이 유지되었다.
한편, 12월20일 외신들은 두바이월드가 채무상환 기간을 추가 연장을 요청할 것 같다는 추측들을 내놓았다. 이들은 21일 두바이월드가 채권은행단과 갖는 첫 공식 회동에서 두바이 당국의 구제 조건이 아직 결정되지 않아 기간 연장을 요청할 것이고 내다봤다.
하지만 두바이월드 대변인은 21일 주요채권자들에 대한 채무상환 추가 연장 요청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회사 대변인은 이번 첫 공식 회동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였으며 건설적인 질문이 오갔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