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대북정책

2004-10-04     글/노혜란
평양이 중국의 주요 소비시장으로 바뀌고 있다
평양이 변화하고 있다. 지난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 조처 이후 소비시장이 성장하고, 북한 주민들의 현금 보유 비율도 높아졌다. 이와 함께 북한에서는 현물거래 중심에서 기업이나 개인간 현금유통이 중시∙보편화 되고 있고, 지역 곳곳에 시장이 들어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2년 전 통제 경제를 완화한 이후 특권층이 모여 사는 것으로 알려진 220만 인구의 평양이 ‘소비’라는 색다른 재미를 느껴가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북한을 보는 중국의 눈치 빠른 시선은 여느 나라에 비해 남다르다. 북한과는 줄곧 밀접한 관계를 지속했던 중국은 북한의 최대 교역국으로 북한 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제는 북한을 중국 제품의 소비시장으로 변화시키려 하고 있다.

북한, 통제경제 완화 후 ‘소비주의’ 변화상 표출
중국, 과거 단순 대북경제지원에서 전략적 투자로 변모

국내 한 언론을 통해 밝혀진 북한의 모습은 ‘중국 경제에 예속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하는 우려의 목소리로 시작됐다. 이는 국내 한 기업인에 의한 전언으로, 이전에는 순수 관광 목적의 중국인들이 많이 붐비기는 했으나, 요즘처럼 장사나 사업을 목적으로 평양을 오가는 중국인들이 많이 눈에 띈 적이 없었다고 전했다. 북쪽 사람들의 이들에 대한 환대 또한 정성이 한껏 깃들어 있다고 말한다.
중국은 북한과 1970년대까지 줄곧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경제지원을 해왔다. 그러나 1978년 이후 시행된 개혁 개방으로 한국에 대한 인식 변화로 북한과도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선으로 후퇴했으나 한중 수교가 이루어진 1992년 까지도 북한과의 긴밀한 관계는 지속되었다.
이후 1989년 김일성(金日成) 주석이 중국을 방문하고, 장쩌민 총서기가 1990년 3월 평양을 방문해 한국과의 경제적 교류로 소원해진 관계를 재차 긴밀한 관계로 바꾸려고 하였다. 그러나 1992년 한국과 중국이 정식 수교하면서 급속도로 관계가 소원해져 1993년 3월 예정되어 있던 김정일(金正日)의 중국 방문이 취소되었다. 1992년 12월 중국이 북한에 대해 경화결제(硬貨決濟) 요구에 따라 더욱 그 관계가 냉각되었지만 북한 핵문제와 경제난이 가중되어 북한이 중국에 협조를 구하는 과정에서 관계개선을 꾀하였다.
그리하여 1993년 7월 북한의 ‘승전 40주년’ 행사에 중국 대표단이 방북하였고, 중국의 경제인들도 활발한 활동을 벌여, 중국이 북한의 최대 교역국으로 올라서게 되는 등 여전히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크다.

중국, 북한 소비주의 중심에 서다

중국을 왕래하는 기업인들은 현재 중국과 북한은 양국간 노비자 협정에 따라 비교적 손쉽게 오가는 가운데 금년 5~6월부터는 중국 기업인들의 방북이 크게 늘어났다고 전한다. 이와 함께 중국기업의 투자를 한건이라도 더 끌어들이기 위한 북한 안내원들의 극진한 환대는 눈에 띄는 변화라고 덧붙인다.
중국인의 북한 시장 공략은 북한의 변화상에 눈을 뜨면서 소비시장으로서의 잠재력을 확인했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지난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 조처 이후 소비시장이 성장하고 북한 주민들의 현금 보유 비율이 높아지면서 그간의 현물거래 위주에서 기업은 물론 개인 사이에도 현금 유통이 중시되고 보편화되고 있다. 특권층이 모여 사는 평양에는2년 전 임금과 물가 인상 조처 이후 요식업이 번창하면서 현재 식당과 맥줏집 등 500여 개의 업소가 성업 중이다. 일반 주민들은 호주머니에 현금을 갖고 다니면서 필요에 따라 언제든 물건을 사는 추세다.
북한의 이러한 변화와 함께 중국내 기업들의 북한 진출 움직임은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중국관영 경제주간지 재경시보(財經時報)는 최근호에서 중국 기업의 대북 투자열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재경시보는 중쉬그룹(中旭集團)의 평양 제1백화점에 대한 5,000만위안 투자 소식 을 전하면서 "그룹의 쩡창뱌오(曾昌飇) 회장은 온저우(溫州) 상인 300여명과 함께 제1백화점 경영에 착수함으로써 중국 기업들의 대북 투자 붐을 일으키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중쉬그룹 이전에도 북한에 진출한 기업들이 좋은 성과를 거뒀다며 북한 기업과 합작 등의 형식으로 북한 현지에서 활동 중인 기업을 열거했다. 지린대학 동북아연구소의 쉬원지(徐文吉) 교수는 재경시보와 인터뷰에서 "북한이 지난 2년 동안 실시한 경제개혁을 통해 북ㆍ중 무역의 제반 조건이 성숙되고 있다"며 "중국 자본유치의 가장 중요한 동력은 무엇보다 북한 내부의 변화"라고 강조한 바 있다.


북한, 투자하는 만큼 혜택도 많아
실제 중국 중쉬그룹은 최근 북한 최대 백화점인 평양 제일백화점에 대한 10년 임대권을 따내고 금년 말 개장을 목표로 내부 수리를 하고 있다. 이 그룹은 랴오닝성 차오양시에 있는 자체 쇼핑센터에서 옷과 시계 등 잡화를 가져와 팔 생각이다. 평양 제일백화점은 위안화와 미국 달러화만을 받기 때문에 북한의 일반 주민들은 공식 환전소나 암시장 등에서 화폐를 바꿔와 물건을 사야 한다. 내년에는 4개의 유사한 백화점이 더 개장될 예정이다. 이 외에 천시시옹마오찌쑤안지유한공사는 북-중 합작기업으로, 북한 내 유일한 PC 생산업체로 2002년 9월부터 제품을 생산하고 있고, 북한 엔진오일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북-중 합작 엔진오일 공장에 투자하고 있는 선양우진집단 등도 있다. 또 지난 6월 선양시 시시피아이티가 투자해 평양에 문을 연 ‘북한-중국 상품판매센터’에서 취급하는 2만종의 상품 가운데 60%가 중국 랴오닝성 제품이며, 이밖에도 중국 상인과 민간업자들이 투자한 식당, 여가장소, 백화점들이 북한 시장에서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재경시보는 전했다.
북한 당국도 중국 기업의 투자를 더욱 유치하기 위해 각종 혜택을 주고 있다.
평양 제1백화점의 경우 수입관세 5%와 소득세 5%가 전부일 정도로 파격적인 세금 혜택을 받는다. 평양에서 음식점, 사우나, 노래방 등을 경영하는 단둥(丹東)의 한 상인은 “북한 당국이 나서서 납세까지 책임져 준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기업의 북한 진출은 규모 큰 사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평양에 있는 외국인 전용 호텔의 이발소, 마사지 등 개인차원의 돈벌이도 중국인의 구미를 자극하고 있다.
2월 베이징(北京)에서 발족한 차오화유롄(朝華友聯) 문화교류공사는 사실상 대북무역전문 국책기업 기업인을 북한에 보내기로 했으며 지난달 약 100명을 파견했다. 비슷한 시기에 중국 정부의 시찰단 40여명도 대북투자와 합작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북한에 들어갔다.
한편 북한 전문가들은 아직까지 북한의 인프라 조건 및 행정 규제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중국쪽이 대규모 투자를 할 단계는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평양, ‘소비’의 재미를 알다

지난 5월 대북시장 공략을 위해 제 7회 평양국제상품전시회에 참가한 하오압록강맥주회사는 자사 제품인 압록강 맥주를 출품하고 멀티미디어영상 광고로 이를 평양 주민들에게 크게 알렸다. 이들은 현재 북한에서 징수하는 관세율이 높아 대북한 수출에서 거의 수익을 올리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한다. 때문에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브랜드를 먼저 창조하고 나중에 시장을 개척한 뒤 돈을 버는 계획을 마련해 놓고 있다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했다. 실제로 북한 내 주요 시장에는 중국산 물건이 가장 많이 진열되어 있으며, 또 가장 많이 팔리고 있다고 방북자들은 전한다. 일반 주민들은 특히 중국산 의류를 선호하고 있으며, 잘사는 계층은 중국산 텔레비전과 세탁기들을 고르고 있다. 중국산 시계나 전기면도기 등을 찾는 북한 주민들도 많다고 말한다. 이러한 제반 상황들로 인해 중국 기업들은 북한의 불안정한 정책과 법규 미비, 각종 무역보호조치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대북 진출 사업의 끈을 놓지 않는 이유다.

북∙중 관계는 지금?

중국은 북한의 최대 교역, 관광대상국으로 확고히 자리잡고 있다. 이제 최대 투자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3년간 양국의 교역량은 108%나 늘었다. 2000년 4억9,000만 달러에 머물던 양국 교역이 2003년에는 10억2,000만 달러로 껑충 뛰었다. 이는 북한 전체 교역량 23만9,000만 달러의 43%를 차지하는 규모다.
최근 들어 북한은 관광사업을 통한 외화벌이에 심혈을 쏟고 있다. 특히 중국 관광객은 체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적은데다, 짭짤한 수익을 안겨주어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중국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는 운송 수단이 부족해 적잖은 애로를 겪어왔다. 이러던 참에 6월21일부터 평양~단둥간 국제여객버스가 운행을 시작했다. 이 버스들은 주말 외에 매일 평양과 단둥에서 동시에 관광객들을 싣고 양 도시를 오간다. 버스 안에는 중국 기업인뿐 아니라 관광객들도 가득 차 발디딜 틈이 없다고 목격자들은 요즘 풍경을 전한다.
이처럼 중국 기업들의 태도는 확실히 달라졌다. 그간 당국 차원에서 식량과 원유 등을 무상 지원하면서 북한과 우의를 다져왔던 전통적 경협 방식이 이제 멀리 내다보고 북한 시장을 선점하려는 전략으로 바뀐 셈이다. 전문가들은 중국 기업인의 북한 시장 공략 배경에는 당국 차원의 전략적 사고도 깃들여 있는 것으로 본다. 북한을 영구적으로 중국 영향권 안에 묶어두려는 장기적 포석이라는 지적이다. 남북간의 경협이 진전되어 중국의 경제지원이나 협력이 그리 필요 없는 상황은 중국 당국도 그리 반길 일이 아니라는 추론이다. 냉전 이후 그나마 대북 경제지원이라는 지렛대로 북한에 영향력을 끼쳐왔으나, 이런 역할을 남한이 온전히 대체할 경우 앞으로 난감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게 중국 지도부의 판단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몇 년째 대북사업을 벌이고 있는 임완근 남북경제협력진흥원장 같은 이는 중국이 수년 전부터 고구려사 왜곡을 정당화하는 동북공정을 모의해왔듯이, 어느 날 갑자기 중국이 북한 경제의 발목을 잡는 날이 올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한국으로서는 또다시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 기막힌 사태에 맞닥뜨릴 수 있다는 게 임 원장의 시각이다. 그만큼 최근 중국쪽의 북한 시장 진출이 무섭게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남북경협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서가는 중국, 지연되는 남북경협
“남북경협이 핵 문제다 뭐다 하면서 질질 끌면서 제대로 되는 게 없자, 북한이 중국쪽에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이렇게 그냥 지켜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고구려사를 빼앗기듯 북한 시장마저 넘겨주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임 원장은 “중국 기업인들은 마음만 먹으면 남쪽 기업들과 달리 북한 투자에 제약 받는 게 거의 없기 때문에 순식간에 북한의 알짜배기 사업이나, 기업과 백화점 등 유통수단을 장악할 수 있다”면서 정부 차원의 시급한 대응책을 주문했다.


7∙1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2년, 정책성과 평가

2002~2004년 기간의 북한경제는 7∙1 경제관리개선조치(July Economic Manage-ment Improvement Measure)가 시행된 후 경제개혁(Economic Reform)으로 전환되는 시기이다. 2002년 7∙1 조치가 발표되었을 때만해도 이 조치가 과연 어떤 성격의 조치였는가에 초점이 모아졌다. 본격적인 시장개혁을 위한 신호탄이냐 혹은 사회주의 내부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일시적인 과도기 조치인가를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이어졌다. 24개월이 지나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전반적인 정책 평가를 내리기에는 다소 시기상조이다. 다만 북한이 추진한 일련의 경제정책들은 본격적인 시장개혁이냐 혹은 사회주의 경제체제 내부에서 효율성 제고를 위한 보완적 조치인가라는 의문에서 양측의 성격을 혼합한 중간적 정도의 위치를 갖고 있는 것으로 잠정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소유제 개혁(Ownership reform) 등 보다 본질적인 후속적인 조치들이 시행되지 않고 있으므로 아직 본격적인 시장개혁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또한 종합상설시장의 육성 등 종전의 정책과는 다른 시장 개혁적인 내용들이 포함되고 있으므로 완전한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고수라고 평가하기도 어렵다. 북한은 2002년 7월 경제관리개선조치를 발표하면서 이 조치가 1946년 토지개혁에 해당하는 사회∙경제적 파장을 내포하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종합시장 육성, 인민생활공채 발행 등 사경제를 국가의 통제 안으로 끌어들이는 조치들이 효과를 거두게 될지, 아니면 사회주의 경제의 국가통제를 벗어나 근본적인 경제개혁으로 나아갈지 미지수이나 북한이 개혁을 위한 첫발을 디디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이러한 경제개혁 조치들이 본질적 개혁인가, 혹은 의미 있는 개혁인가 또는 피상적인 개혁인가 등에 관한 논의는 현시점에서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한계를 가지고 있다. 특히 7∙1 조치의 정확한 계량적 성과가 분명하지 않은 것도 정책 평가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비록 2003년 북한의 경제성장률이 1.8% 인 것은 2002년에 1.2% 성장률을 앞지르는 것이기는 하지만 경제개혁의 결과로 평가하기에는 여전히 미흡하다. 광업(3.2%)과 농업(한국은행: 2.9%, FAO: 8%)의 성장률이 광부와 농민들의 임금상승에 따른 근로의욕 증대에 힘입은 것은 사실이지만 7∙1 조치에 전적인 원인이 있는가에는 이론이 있을 수 있다. 결국 7∙1 조치는 현재 진행 중이고 정책성과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최소 3~5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료제공:한국개발연구원 북한경제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