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문인화가/삼석 조순길
2004-10-12 글/노혜란 기자
사의(寫意) 살아있는 개성있는 문인화풍 그려내
데생의 실력을 먼저 준비하고 대상에 접근하는 것이 한국화다. 그러나 문인화의 필력은 10년 이상의 체득을 요구한다. 문인화의 대상은 제한이 없다. 붓으로 그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범주로 한다.
문인화는 순수한 문인들이 그리는 그림이기에 아마추어적인 성격이 강하며 외형적인 형태를 중시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문인화는 사물에 대한 사실적인 문제보다 작가의 정신이 화면에 투영된 사의적(寫意的)인 것을 중요시하는 예술영역이다. 친근감 있게 자연을 음미하고 문인적인 교양과 덕을 가지고 자연을 자신의 정신세계에 몰입시켜 자연을 재해석함으로 형상을 초월해 사의를 중시하는 고도의 정신세계를 그려낸다. 때문에 문인화는 시대적 정신을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해야 하며 고전적인 형식에서 그 범위를 확산시켜 현대적 감각으로 표현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달 인사동 물파 아트센터에서 열린 서화가 삼석(三石) 조순길 화백의 문인화 초대전은 문인화의 사상적 배경을 통해 여백과 선의 특질을 분석하고 나아가 새로운 시대변화에 따른 문인화 표현의 새로운 방향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던져준다.
삼석의 작품세계에 있어서 영원한 테마는 ‘자연과 희망’이다. 고대로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미의식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이어져온 사상적인 맥락(불교적 세계관 중심)과 현대미술의 실제적인 예를 통하여 한국미술에 있어서 자연관이 미친 영향과 희망을 보여준다.
삼석의 화력(畵力)을 되짚어보면 추상에서 문인화적 구상으로, 그리고 다시 추상과 구상이 절충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구상성과 추상성에 대한 깊은 성찰과 실험 끝에 삼석은 문인화풍 구상에 집중했고, 지금은 추상과 구상이라는 경계를 넘나들며 사의(寫意)의 끝자락를 잡고자 노력하고 있다. 삼석에게 있어 사의화는 추상화다. 삼석은 “추상이라는 것은 어떤 것을 뽑아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추상은 결코 구상 없이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라며 체험론을 폈다. 삼석의 내면에는 이미 구상과 추상의 경계가 없음이다. 경계가 사라진 그의 먹빛은 감칠맛 있고 깊고 그윽하다. 돌발적인 붓질에 부서질듯한 완곡함과 운치를 더하는 먹의 농담으로 아물상합일(我物相合一)의 경지를 맛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