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야권 블루칩’ 손학규 대망론
손학규의 화려한 부활, 10.28 재보선 수원 장안 승리 이끌어
민주당은 이번 재보선에서 후보등록일이 코앞에 닥칠 때까지 손학규 카드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만큼 민주당은 ‘한 자리’가 절실했다. 민주당 안팎에선 손학규가 야권 최고의 거물급 정치인인데다 과거 수원에 위치한 경기도청 주인으로서 맹활약한 바 있기에 수원 장안 재보선에서 그의 지명도를 따라올 자가 없다고 판단, 출마를 종용했다. 하지만 손 전 대표는 정중히 이를 고사, ‘지원’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손 전 대표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다. 그가 지원유세가 아닌 직접 선수로 나섰을 때의 부담감은 너무나 크다. 자신이 직접 출마해 만에 하나 낙선하게 된다면, 손 전 대표는 사실상 재기불능의 상황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부터 시작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패배, 총선 패배 등 연패의 늪에 빠져 그는 패배자로 낙인찍힐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곧 정치적 사망선고나 다름없다. 총선에서 종로구에 출마해 낙선했던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타격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 경기도지사를 지낸 손 전 지사가 사실상 텃밭처럼 여기고 있는 곳이 바로 수원 장안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다양한 위험부담을 줄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건재함을 알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바로 선거 지원유세다. 즉 대리인을 내세워 낙선의 부담을 줄이면서도 자신이 당선된 것 못지않은 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손 전 대표가 위험부담을 안고도 이찬열 후보에 정치생명을 건 이유다.
손 전 대표는 이미 오랜 시간 현실 정치에서 떨어져 있었다. 시간이 더 흐르면 흐를수록 그에게는 마이너스 요소가 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떤 형태로든 ‘손학규’라는 존재가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세상에 알려야할 통로가 필요하다. 이번 재보궐 선거 지원유세가 확실한 통로가 되었던 것이다.
이유있는 춘천 칩거, 선거 결과로 화려한 휴가 되다
손학규 전 대표가 디지틀조선일보의 케이블채널인 비즈니스앤(Business&)의 인터뷰 프로그램 ‘강인선라 이브’에 출연해 이번 선거에 출마하지 않기로 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손 전 대표는 2007년 민주당 경선, 2008년 총선에서 패한 후 춘천에 있는 지인의 빈 집에서 부인과 함께 칩거해 왔다. 뒷산에 오르고 닭을 키우면서 “내가 하고자 했다가 이루지 못한 것은 무엇이고 왜 그렇게 됐나, 지금의 내 위치는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반성하며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연이은 선거 패배의 기억이 “쉽게 소화되지는 않더라”고 했다.
그는 “빨리 나가서 뭔가 해보고자 하는 조바심, 그런 유혹과 싸우고 있다”고 했다. “국민들에게 새로운 모습, 새로운 모델을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거리라도 들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떤 기한을 정해둔 것은 아니다. 그는 “아무 때나 나갈 수 있다. 전혀 생각지 않던 계기가 있을 수도 있다. 모든 것이 완성된 상태로 나갈 수는 없으니 어느 정도 일거리만 가지고 시작하자고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재선거 출마 권유를 받은 후 “당을 위해 불쏘시개가 돼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 자리가 아니라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한명의 국회의원으로 민주당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고도 했다. “그건 다른 사람들이 해도 되고 당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변에선 ‘그러다가 잊혀진다’고 걱정하지만, 손 전 대표는 “잊혀져라. 좀 잊혀져야 새로운 손학규가 탄생할 것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한다. 춘천으로 떠나기 전의 손학규와는 다른 손학규로 국민 앞에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손 전 대표의 이유있는 춘천 칩거가 이번 선거의 결과로 화려한 휴가가 된 것이다.
‘손학규’라는 이름의 대중적 영향력이 확인
그의 시나리오는 정통했다. 이번 선거에서 최측근을 국회에 입성시키고 당선의 모든 공은 자신에게 돌아왔다. 최대의 수혜자인 셈이다.
수원 장안 선거구의 승리를 통해 현 정권의 근거지인 수도권에서 파열구를 냈다는 점, 전통적으로 여당이 유리했던 핵심 선거구를 본인의 정치력만으로 역전시키면서 실질적인 수도권의 맹주임을 증명했다는 점, 선거를 전후한 과정에서 ‘원칙을 지키면서도 책무를 다하는 정치인’의 이미지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손학규 전 대표의 대권가도에는 이미 청신호가 들어와 있다. 게다가 선거과정에서 자신의 약점이었던 정치이력 논쟁을 선거 승리를 통해 ‘세탁’한 것은 기분 좋은 덤이다. 또한 지방선거를 수개월 앞두고 수도권에서 ‘손학규’라는 이름의 대중적 영향력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이미 공식적 정치일선 복귀 시기와 상관없이 민주당에 대한 막후의 리더십까지 확보한 셈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정세균 민주당 대표 또한 위상이 달라졌다. 리더십과 소통의 부재로 곤란을 겪고 있던 정 대표의 위상이 이번 선거를 계기로 한층 업그레이드 된 것이다. 이는 두 사람 간 모호한 분위기가 연출될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당내 역학구도 상 손학규 전 대표와 정세균 대표의 지지기반은 상당부분 중첩되어 있다. 만일 두 사람이 당내에서 경쟁구도를 형성한다면 양쪽 모두 극심한 출혈이 생길 것은 자명하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은 시소를 타듯, 한 사람이 올라가면 한 사람은 내려가야 한다. 그래야 당내 분란을 막을 수 있다.
현실정치에서 잊혀진 듯 지냈던 손 전 대표가 이번 선거로 이슈메이커가 되고 유력한 대권주자임을 과시하게 됐다. 손 전 대표가 서서히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