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의 천국 이대로 좋은가
국가정보원의 패킷감청·불법 민간인 사찰 통해 공권력 장악
2009년, 민주주의가 이명박 정부로 들어서며 퇴행 혹은 역주행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인권 침해와 자유·평등에 대한 제약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군기무사령부(이하 기무사)를 동원하여 민간인 불법 사찰로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 잊혀지기도 전에 이번에는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을 통한 일반인 인터넷 감청 논란 되고 있어 ‘보이지 않는 시선’에 대한 국민들의 두려움이 확산되고 있다. 결국 MB가 목 놓아 강조했던 화합과 통합의 길은 국민들을 감시함으로써 얻어지는 공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술수에 그치는 셈인 것이다.
‘누군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국가정보원이 국가보안법 혐의 대상자를 수사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명분하에 패킷감청제도를 시행하였다. 이로써 국정원은 인터넷 이메일은 물론 웹 서핑 등 컴퓨터 사용 대상자가 쓰는 인터넷 사용 내역을 똑같이 볼 수 있게 됐다.
패킷감청은 인터넷 회선에서 오가는 전자신호(패킷)를 중간에서 빼내어 수사대상자의 컴퓨터와 똑같은 화면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신기술이다. 하지만 혐의 대상자와 같은 회선을 쓰는 가족, 동료들까지 인터넷 패킷감청 대상자가 되고 있어 사생활의 모든 영역이 제한 없이 파헤쳐진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심각한 사생활 침해가 우려된다. 기존 인터넷 감청의 경우 수사기관들이 국내 이메일 사업자의 동의를 얻어 대상자의 이메일을 전달받는 방식으로 이뤄졌으나, 논란이 되고 있는 패킷감청의 경우 인터넷 회선 사업자의 적극적인 협조를 받아 이메일 회신과 수신은 물론 메신저, 온라인 음악 감상, 웹 서핑 등 인터넷 관련 사소한 부분의 서비스 내용까지 광범위하게 감청할 수 있다. 이는 감청내용을 엄격히 제한하는 법의 내용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수사대상자는 물론 주변 인물들의 사생활마저 모두 감시·감청 당하는 것으로 엄연한 불법적 행위이며 심각한 인권 유린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통신비밀보호법 제1조에 의거하면 ‘통신 및 대화의 비밀과 자유에 대한 제한은 그 대상을 한정하고 엄격한 법적 절차를 따르도록 하여통신 비밀을 보호하고 통신의 자유를 신장함을 목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또한 감청은 범죄를 계획, 실행하거나 의심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고 범죄 실행을 저지하거나 증거를 수집할 그 외 방법이 없을 경우에만 특별히 허용하도록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정보원은 절차를 통해 합법적 틀 안에서 감청한 것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점이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고 있다. ‘공익을 위한 일이기에 합당하다’는 의견과 ‘혐의 대상자도 아닌 가족들과 일반인들의 사생활까지 실시간으로 감시한다고 생각하니 충격적’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한편 검찰이 PD수첩 작가의 이메일을 압수수색하여 공개하는 일이 벌어지며 이메일을 국내법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 외국 사이트로 옮기는 이른바 ‘인터넷망명’을 하는 네티즌들이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도 패킷감청 안에서는 소용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라 패킷감청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정원의 무분별한 감청을 통제하기 위해 지난 8월31일 참여연대, 진보연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등의 시민단체들이 구성한 ‘국정원 대응모임’이 국정원 감청 실태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국정원 관련 법률 개악 저지를 목적으로 국정원으로부터 패킷감청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곽동기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정책위원의 피해 사례를 공개하며 규탄했다. 우리나라에서 정보, 수사기관의 패킷감청 의혹이 제기되는 경우는 이례적으로 처음이다. 이들은 향후 패킷감청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수사기관들의 도·감청 실태에 대한 모니터링 작업을 벌이며 관련 피해 사례들을 추가적으로 수집해 문제점을 널리 알려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이를 합법화라고 주장하는 정부와 국정원의 인식이 변하지 않는 이상, 우리의 삶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 의해 감시 속에 살아 갈 것이다.
‘독재정권’ 부활의 신호탄 쏘아 올리나
2009년 독재정권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지난 8월13일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의 폭로로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로부터 일상생활을 감시당한 민간인 7명이 군 기밀 누설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점이 밝혀졌다. 또한 기무사가 민간인을 미행하고 촬영하는 등 대규모 불법사찰을 자행했다고 말함에 따라 과거 군사정권 시절 절대 권력을 휘둘렀던 5공보안사의 악몽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이번 사건의 원인은 쌍용자동차 노조의 농성이 집행되던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조원들이 경찰의 무리한 진압작전에 항의하기 위해 평택역에서 집회를 개최했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 불법 사찰 중이던 기무사 소속 S씨가 소지하고 있던 사찰자료가 입수되면서 문제가 일파만파 커진 것이다. S씨의 수첩에는 다수의 민간 사찰 대상자들의 행적이 날짜별, 시간대별로 비교적 자세히 적혀 있어 그동안 기무사의 불법 민간인 사찰이 소문이 아닌 현실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더욱이 토의내용에는 경찰과 동행, CCTV 설치 건 등이 메모되어 있어 그 동안의 사찰활동이 경찰의 협조 아래 진행되어왔음이 면밀히 드러났다. 이러한 기무사의 불법 사찰은 군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가해졌고, 이는 군사법원법 제44조에 따른 군에 관련한 첩보 수집 및 수사에 한정된 기무사의 직무범위를 일탈한 위법행위에 틀림없다.
‘기무사’는 무분별한 민간인 불법 사찰로 논란을 빚었던 과거 보안사의 새 이름으로 지난 1991년 1월 개명했다. 이른바 ‘윤석양 이병의 양심선언’ 사건으로 보안사가 김대중, 김영삼, 노무현 등 야당 정치인을 포함한 민간인 1,300여 명을 불법으로 감시한 것이 드러나면서 이미지 회신을 위해 기무사란 이름으로 개명,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이 일로 보안사는 민간인 사찰을 하지 않겠다고 국민 앞에서 약속한 바 있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지금, 기무사는 여전히 민간인 불법 사찰을 자행하고 있어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했다는 혹평을 듣고 있다. 국군기무사령부는 군사기밀의 보안 지원, 방첩활동, 군(軍) 및 군과 관련된 첩보 수집·처리, 특정범죄 수사 등이 주요 임무로 군사에 관한 정보수집 및 수사를 목적으로 형성된 국방부 직속 군 수사 정보기관으로, 민간인에 대한 첩보의 수집이나 수사는 제한돼 있다. 만약 군사보안 등과 관련하여 민간인 신상자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헌법과 법률의 규정 절차를 따라야 한다.
이처럼 기무사가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자 故 노무현 대통령은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독대 보고를 폐지시켰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 정권이 들어서면서 5년 만에 독대 보고가 부활했고 독재정권의 신호탄이 울리기 시작했다. 기무사 수사뇌부 구성원도 이명박 대통령 자신 스스로가 믿을 만한 사람들로 대거 교체했다. 여기에는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할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숨어 있다.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기무사가 행한 민간인 불법 사찰이 단독 행동으로 보이지만 사실 모든 사건의 배후에는 현 정권, 즉 이명박 대통령의 힘이 작용됐다고 볼 수 있다. 대놓고 경찰의 협조를 얻어 민간인 사찰을 시행한 점을 보면 이를 증명할 수 있다. 때문에 국정의 최고 운영자인 이명박 대통령은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이러한 비난을 옹호하듯 기무사는 “법 테두리 내”이며 “평택 집회 사찰은 보안법 위반혐의의 장병들에 대한 예방 활동이었으며, 민간인 사찰은 기존의 수사와 관련된 것”이라는 어불성설의 논리를 펼치고 있다.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대형마트에 가서 쇼핑을 하는 것도, 여행을 가는 것도, 가족들과 외식하는 것 등 일상적인 생활들 하나하나가 모두 혐의의 수사망에 오를 수 있다는 말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혹시 나도’라는 국민들의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민간인 사찰에 대한 진상 규명과 함께 당사자들에 대한 사죄와 불법 사찰과 관련된 책임자의 엄중한 문책이 필요하다.
경찰 너마저… ‘댓글 실시간 감시’ 제도 시행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는 우리나라 헌법 제1조를 선언하는 말로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사실을 뒷받침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국민들의 입장에 서서 권리를 보호해야할 경찰이 자유와 권리를 강탈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 개탄을 금할 수 없다. 국정원의 인터넷 회선 패킷 감청과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의혹에 이은 경찰의 사이버 감시까지 수사 정보기관의 사찰 논란이 확산되면서 표현의 자유와 사생활 침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찰청 보안과는 지난 2004년 도입한 ‘보안 사이버 검색 수집 시스템’을 업그레이드 하는 시업을 지난 7월에 시작했다. 말이 좋아 검색 수집 시스템이지 사실상 실시간 감시 시스템과 같은 맥락 이다. 경향신문이 단독 입수한 ‘과업 지시서’에 따르면 해당 시스템은 경찰이 지정하는 특정 인터넷 사이트의 게시물과 댓글, 아래한글·액셀 등으로 제작된 첨부파일 내용을 실시간으로 검색·수집하여 데이터베이스 형태로 저장할 수 있게 돼 있다. 쉽게 말하면 ‘키워드 검색’을 통해 특정 단어가 쓰여 있는 게시물을 인터넷 사이트 전체에서 실시간으로 자동 수집할 수 있다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감시의 흔적이 전혀 남지 않도록 하는 시스템 마련에 착수하여 인터넷상 비밀 사찰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이는 곧 언론, 방송 장악에 이어 인터넷 상에서 오가는 모든 정보들까지 통제하여 공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MB의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국민들의 사상까지 좌지우지 하겠다는 MB정부의 굳은 의지가 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에 시민들의 불만이 커지자 경찰은 “인터넷에 공개된 정보를 효율적으로 수집하기 위해 자동화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라며 “IP주소와 네트워크 정보를 남기지 않는 것은 DDOS나 해킹공격 예방 차원에서 일반적 수준의 보안 요구사항이며 일반인 사찰 의도는 전혀 없다”라고 주장하며 합리화시키기에 급급했다. 더욱 기막힌 사실은 이러한 문제로 분쟁이 생겼을 경우 인터넷 업체가 전액 배상 책임을 진다고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써 2009년 민주주의를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은 온라인상에서 검색하는 키워드 하나까지 정부의 감시망 아래 놓여야 하는 비극적인 상황에 도래한 것이다.
MB정부가 선택한 공안 통치
이명박 대통령이 요구하는 소통의 길은 ‘감시’였다. 수사·정보기관의 감시를 통해 사찰 당사자들은 물론 국민 모두의 사상을 통제하여 그가 바라는 화합과 통합의 세상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태도는 국민의 인권을 무시하고 독재정치를 하겠다는 뜻으로써 소통이 아닌 공권력을 선택하겠다는 뜻과 같다. 어쩌면 이러한 일들은 그동안 정부와 국민간의 소통의 부재에서 형성된 자연스런 문제점들로 보인다.
서민과 함께하는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던 MB는 어느새 귀와 눈을 막아버린 채 독단적인 국정 운영을 펼치고 있다. 때문에 국민과 MB정부와의 거리는 걷잡을 수 없이 멀어지며 하루가 다르게 시위와 불법집회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를 저지하기 위해 민생안정이라는 술수를 내세워 과잉 공권력을 투입시켜 국민들로 하여금 정부에 대한 불신을 더욱 더 키우고 있다. 이제 MB는 자신이 자행하고 있는 공권력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정부는 민간인 사찰 문제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표명은 하지 않은 채 우회적으로 ‘책임 없다’ 식의 의견만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국정원의 패킷 감청, 기무사의 불법 민간인 사찰, 경찰청의 실시간 댓글 감시제도, 등 감시제도 바탕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힘이 가해졌다는 사실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만큼 공공연한 사실이다. 설사 정부의 입장대로 이번 문제와 관련하여 직접적으로 책임이 없다 하더라도 국정의 최고 운영자이자, 국가 최고 통치기구인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가 지금과 같은 안일한 태도를 취한다는 건 도무지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상황임에 틀림없다.
정부는 이른 시일 내에 국민에게 진상 규명을 솔직히 밝혀야 한다. 국방부와 국군기무사령부는 민간인을 왜 사찰했는지 그 목적과 의도를 소상히 밝혀야 하며 사찰 대상자와 범위가 어디까지였는지에 대해서도 정확히 집고 넘어가야 한다. 또한 거기에 안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불법 민간인 사찰 제도를 개선해야 할 것이다. 정부의 노력이 미진할 경우 아무리 국민 스스로가 인권의 자유와 사생활 침해에 대해 주장해봤자 보완될 점이 없다는 것을 국민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을 향한 정부의 감시. 이것은 역사책에서나 쓰일 법한 구시대적 행태로써 민주주의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삶속에서 반드시 지워져야 할 한 시대의 역사적 오명으로 남을 것이기에 신속히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