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급 빅매치, 내년 지방선거 가늠할 ‘미니 총선’

박희태 양산 상륙, 이재오·김근태·손학규·강재섭 등 하마평

2009-09-04     신현희 차장

양산 통도사에서 양산지역 재보궐 출마자 모여
지난 7월14일 아침 경남 양산 통도사는 정치인들과 취재진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김양수 전 한나라당 의원, 유재명 한국해양연구원 책임연구원,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 송인배 전 청와대 비서관 등이 백중제에 참석한다며 통도사를 방문했기 때문. 이들은 전부 다음 달에 있을 양산지역 재보궐 선거에 출마할 뜻을 비친 사람들이다. 양산지역에서 정부의 녹을 먹으려면 통도사 방문은 필수코스다. 이 날도 정치인들이 수천 명의 신도들이 모인 통도사에서 눈도장을 찍으려 북새통을 이루는 바람에 고즈넉한 산사가 기자회견장으로 변하고 스님이 질서유지를 위해 무전기를 들고 안내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이 날은 ‘원외’라는 아킬레스건을 극복하고자 “당 대표가 후방에 안주하려 한다”는 비아냥도 뒤로한 채 재보궐 선거에 나선 박희태 대표가 집중 공격의 대상이었다. 김양수 전 의원은 “이번 선거의 변수는 박희태 대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야당이 정권심판론을 들고 나올 것이 예상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박 대표가) 높은 식견으로 순리대로 판단할 것으로 믿는다”며 “양산 선거는 지역 일꾼을 뽑는 선거로 치러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재명 연구원은 “지금 양산에는 이 지역 출신이 국회의원이 돼야 한다는 여망이 있다”며 “박희태 대표가 출마한다면 대한민국의 수치로 기록될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면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평소에도 존경해왔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김두관 전 장관은 양산 출마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이번 재보선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처음 치러지는 선거로 이명박 정부의 중간평가이기 때문에 부산과 경남의 민주개혁세력이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야4당이 한나라당을 심판할 수 있는 연합 후보를 만들려고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박 대표는 말을 아끼면서도 “양산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우리 부부가 처음 만난 곳이 양산 내원사 계곡이다. (부부의 연을 맺은데 대해) 부처님의 가호가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며 양산과의 인연을 강조하면서 “옛날에는 정치가 투쟁을 할 때는 하지만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낭만이 있었는데, 요즘은 좀 그렇지 못한 것 같다”며 불편한 심경을 직설적으로 토로했다.

박 대표는 공천을 받은 후 당대표직을 물러날 의사를 밝혔다. 이에 한나라당에서는 조기전당대회와 함께 포스트 박희태가 누가 될 것인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수도권 민심 향방의 바로미터로 작용할 안산 상록을
경기도 안산 상록을은 지금까지 10월 재보선이 확정된 지역 중 유일한 수도권 지역으로 꼽힌다.
따라서 수도권이라는 상징성답게 여야 모두 ‘당선 가능성’을 후보 선정 1순위로 두고 있다. 전략공천과 함께 치열한 공방전이 예상되는 지역이다.

한나라당에서는 이진동 전 당협위원장과 함께 4명이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18대 총선에서 아깝게 고배를 마신 이 전 위원장은 출마 준비를 마치고 벌써부터 지역 다지기에 나섰다는 후문. 일각에선 김덕룡 대통령 국민통합 특보도 출마를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이에 맞서 민주당에선 김재목 지역위원장이 출마를 확정했다. 그러나 당에서는 김 위원장 외 김근태 상임고문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친노 후보가 현 정권 심판에 앞장설 가능성도 크다. 이 지역에서 17대 의원을 지냈던 임종인 전 열린우리당 의원이 출마를 결심한 것. 여기에 안희정 최고위원, 전해철 전 민정수석 등을 전략공천 대상으로 꼽고 있다는 게 민주당 안팎의 설명이다. 따라서 민주당이 친노 후보를 앞세울 경우 수도권이라는 특성에 전·현 정권의 대결이라는 점까지 더해져 안산 상록을은 최대 격전지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변 작용하는 강릉, 한나라당 집안 싸움 지켜볼 지
강원 강릉은 여권의 집안싸움이 예상된다. 친이, 친박 간 경쟁이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는 가운데 친이는 지난 4.26 경주 재보궐의 악몽이 재현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강릉지역은 지난 15대, 16대에 이어 18대에도 재보궐 선거가 치러지면서 재보선 단골이라는 오명 때문에 지역은 썩 달갑지 않은 표정이지만, 입후보자들은 이에 아랑곳없이 선거 준비에 바쁜 모습이다. 친이 쪽에서는 김해수 청와대 정무비서관, 권성동 청와대 법무비서관, 김창남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대표가 준비 중이고, 친박 쪽에서는 심재엽 전 한나라당 의원이 공천경쟁을 선언한 상태다. 친이, 친박 간 경쟁뿐 아니라 친이 내부의 조율에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민주당은 강릉이 전통적 한나라당 강세지역이라 후보군이 열악한 편이다. 홍준일 민주당 강릉지역위원장(전 청와대 비서관)이 출마를 선언했다. 홍 위원장은 7월24일 이미 출판기념회를 개최했고 곧 사무실을 열고 선거운동을 본격화한다는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권오규 부총리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다. 무소속으로는 판사 출신의 송영철 변호사가 출마를 선언하고 예비후보 등록을 마쳤다. 송 변호사는 지난 18대 선거에 이어 동해안 무소속 벨트의 이변을 기대하고 있다.

최근 국회의원 선거에서 강릉지역 유권자들은 집권여당보다는 야당을, 거물급 정치인보다는 정치신인을 선택해왔다. 18대 총선에서는 무소속인 최욱철 후보가 당선되었고, 17대 총선에서도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 심재엽 후보가 당선되었다. 16대에서는 야당인 한나라당의 최돈웅 후보가 당선되었고, 최 후보는 한나라당 대선자금 시비에 휘말려 의원직을 사퇴한 뒤 2001년 보궐선거에서 다시 당선되기도 했다. 그만큼 강릉지역은 전통적으로 한나라당 강세지역이지만 표심의 향방이 예측하기 어려운 곳이다. 낙하산 공천에 대한 반감도 적지 않다. 지역을 잘 알지 못하고 당선만을 목적으로 하는 후보를 공천을 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 정서가 존재하는 것이다. 강원도 내 선거에서 가장 많은 이변을 연출해 온 지역인 강릉이 오는 10월 재보선에서 어떤 이변을 연출할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당대표-공천 빅딜설, 이재오 전 최고위원 수혜 보나
9월 조기 전당대회가 동력을 잃으면서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한나라당 복귀 시나리오 또한 무산된 듯 했으나 박희태 대표의 10월 재보선 출마로 다시 복귀의 문이 열렸다. 물론 박 대표의 대표직 사퇴가 전제돼야 한다. 당헌·당규에 따라 지난 전당대회에서 2위 득표자인 최고위원 즉 정몽준 의원이 대표직을 승계받게 된다. 이렇게 되면 최고위원 한 석이 궐위가 되며, 이 전 최고위원이 이를 발판삼아 정계복귀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 현재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다. 하지만 박 대표의 공천이 무산된다면 대표직을 내놓기는 힘들다. 10월 재보선 공천권은 사실상 친이 주류측에 있고, 친이 주류측은 이 전 최고위원의 당 복귀를 희망하고 있어, ‘박희태·친이주류’ 간 ‘당대표·공천’ 빅딜설이 정치권에 공공연히 나도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떤 경위로든 결국 박 대표의 10월 재보선 당선을 전제로 친이·친박 계파 진영 대결이 아닌 ‘박근혜·이재오’ 정면대결로 치닫을 것으로 보여, 한나라당의 내홍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박근혜 전 대표는 지난 8월11일 강원도 강릉 재선거 출마에 나선 심재엽 전 의원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 “선거와 관련해 제가 여태까지 관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입장을 분명히 했다. 사실상 ‘박희태 대표 선거지원에 나서지 않겠다’는 얘기다. 지난 대선 경선 당시 박 전 대표 캠프 강원도 총책과 직능총괄위원회 부본부장을 맡았던 심 전 의원의 개소식에서 박 전 대표가 이같이 언급한 것은 ‘내 사람만 챙기겠다’는 의도로도 받아들여진다. 경남 양산은 박근혜 전 대표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이다. 친박계의 유재명 전 연구원이 지난 18대 총선 때 친박 무소속 후보로 나와 30%가 넘는 득표율을 보여 박희태 대표로선 친박 진영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 박 대표가 그간 친박 복당, 당협위원장 임명 등 친박계의 손을 들어준 것도 이러한 계산이 깔려 있었던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박희태 대표로선 박근혜 전 대표의 ‘선거지원 불가’ 입장 표명이 절체절명의 위기다. 경남 양산에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박 대표가 박 전 대표의 지원마저 끊기면 현재로선 박 대표의 당선 가능성도 희박한 상황. 게다가 이미 이 대통령 앞에서 출마를 공식화한 마당에 이를 되돌릴 수마저 없다. 그로선 전퇴양난이다. 어떻게 해서든 박 전 대표의 마음을 돌려 ‘선거의 여왕’ 덕을 봐야하는 상황. 친박계에서는 박 대표가 대표직을 유지한 채 출마하기를 원하고 있다. 대표직을 내놓을 경우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정계에 복귀할 틈을 마련한다는 이유에서다. 박 대표가 당장에 당대표 자리를 내놓을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에게는 마지막 히든인 셈이다. 박 대표는 또한 친이-친박 화합을 위한 정지 작업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박 대표 주변에서는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당 복귀, 친박연대 합당, 10월 재보궐선거 공천 문제 등을 놓고 화합의 큰 틀을 마련하는데 역점을 둘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계파갈등의 진원지가 될 수 있는 민감한 당내 현안을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해 박 대표가 양대 계파 사이에서 ‘빅딜’을 중재할 것이라는 분석인 셈이다. 박 대표가 친박에게 어떤 카드를 내놓을 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단지 몇 개의 선거구에서 실시되는 재보궐에 이처럼 많은 전략과 꼼수가 난무하고 있다. 각 당은 “일단 붙고 보자”는 생각이다.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정치판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을 하는 것이다. 최대 의석을 가진 여당 당대표가 대통령을 찾아가 묵시적인 공천을 요구한 것 또한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절차도 원칙도 사라진 공천, 어느 날부턴가 전략공천이 암암리에 성행하면서 진정 지역을 위해 일할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세불리기에 급급해 당선될 만한 사람을 공천하는 것이 당연시 되고 있다. 이는 일차적으로 당에 책임이 있다. 그리고 투표권을 가진 국민들도 책임을 회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당락이 우리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전략공천이 부당하다 생각된다면 투표권을 행사해 진정성을 가진 사람을 뽑는 것이 옳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