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반년 살아남은 자의 슬픔

MB정권 언제까지 ‘용산참사’ 모른 척 하나

2009-09-04     박희남 기자

지난 1월20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남일당’ 건물. 그곳에선 도저히 눈뜨고 보기 힘든 처참한 광경이 벌어졌다. ‘남일당’ 건물 위로 갑작스레 솟아오른 화염속 불길이 철거에 반대하며 농성하던 세입자와 전국철거민연합회 그리고 이를 진압하던 경찰특공대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하고 23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이후 반년이 지난 지금, 용산참사는 사람들에게서 서서히 잊혀졌다. 그러나 남편과 아빠, 형·동생을 허무하게 잃은 유가족들의 시계는 사건당일에 멈추었고 그들은 여전히 용산참사 악몽에 고통 받고 있다.

진상규명 위해 직접 거리로 나선 유가족들
정부의 사과를 기다린 것이 어느덧 7개월을 넘어섰다. 이에 유가족들과 범국민 대책 위원회(범대위)측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며 “투쟁 강도를 더욱 높이겠다”는 의사를 내비췄다.
진상규명을 위해 유가족들은 직접 거리로 나섰다. 일각에선 거리로 나선 이들을 보며 재개발을 틈타 한몫 벌어보겠다는 속물로 매도한다. 하지만 그들이 진심으로 바란 건 단지 살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였다. 재개발 중에도 영업을 계속하기 위한 임시 상가 제공과 재개발 후 임대 상가를 보장해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시종일관 무시하며 오히려 재개발 속도를 높였다.

용산참사 범대위는 지난 7월20일 용산참사 반년을 맞아 이날을 ‘범국민 추모의 날’로 지정해 국민 분향 및 위령제, 범국민 추모대회, 추모 콘서트 등을 개최했다. 이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유가족들은 대통령 사과와 정부의 보상, 구속자 석방, 사라진 3,000쪽 수사기록 공개를 촉구했다. 유가족들은 “우리는 시신을 메고 청와대로 가서 이명박 대통령과 담판을 짓고 싶은데, 우리의 앞을 경찰들이 막아서고 있다”며 “우리는 하루 빨리 장례를 지내고 싶지만, 이대로는 장례를 지낼 수 없다. 억울해서 대통령의 사과 없이는 절대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이들은 순천향대학병원에 안치된 희생자들의 시신을 메고 용산 남일당 건물까지 운구하는 ‘천구식’을 거행하려 했지만 경찰병력에 막혀 그것마저 무산됐다. 이 과정에서 유가족들과 경찰의 실랑이가 벌어졌고, 이에 항의하던 고 양회성 씨의 부인 김영덕 씨가 실신해 병원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앞서 지난 7월17일 제헌절에는 민주노동당 의원과 용산참사 범대위 관계자 및 유가족들이 서울 시청광장 앞에 모여 용산참사의 해결을 촉구하는 삼보일배를 하며 무책임한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이에 경찰은 유가족들을 잠재적 폭도로 간주하여 최루액을 쏘고 방패를 드는 등 과잉진압을 펼쳐 또 다시 유가족들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멍에를 남겼다.

재개발·뉴타운 계획 강행하나
서울시는 보다나은 삶을 위한 도시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용산4구역 재개발 사업안을 추진했다. 용산4구역 재개발 사업은 한강로3가 63∼70번지 일대 5만 3,442m²를 도시환경정비 차원에서 재개발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이 완공될 경우 낡고 오래된 기존건물이 사라지고 40층 규모 주상복합 아파트 6개동이 들어서게 된다. 용산4구역 재개발 과정에서 서울시와 자치구들은 재개발 사업 앞당기기에 급급해 정작 가장 중요한 철거지역 세입자들의 의견반영은 무시했다. 또 세입자에게 지불해야 할 주거이전비를 지급하지 않고 강제로 철수시켰다. 보증금 1,000만 원 안팎의 높은 돈을 지불하고 입주한 영세상인들은 서울시가 지불하는 철거 보상금 100만 원 지불 소식에 망연자실했다. 하루아침에 달랑 100만 원을 주며 거리로 나가라니 철거민들은 어이없고 기 막힐 뿐이었다. 자신의 생계를 내주고도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자 분노했고, 결국 용산참사라는 화를 불렀다.

용산참사가 벌어진지 7개월이 지났지만 정부의 재개발·뉴타운 대책은 용산참사 전과 비교해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서울시는 용산4구역 재개발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췄다. 이상철 서울부시장은 “시간이 돈이다. 더 이상 철거를 미룰 수 없다”고 밝혀 철거민들의 분노를 샀다. 뿐만 아니라 호람용역 업체직원들은 강제로 철거를 자행하고 있어 참사 현장을 지키는 철거민과 날마다 마찰을 빚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국제 빌딩 제 4구역에는 아직까지 떠나지 못한 세입자들이 영업을 하고 있다. 용산참사 후 손님들의 발길이 끊긴지는 오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의지를 보여주겠다는 심정으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유가족들은 도시 재개발 사업을 두고 재개발 자체를 비하하자는 것이 아니다. 투기꾼과 건설자본의 사익을 위한 재개발이 아닌 서민을 위한 공익(공영)중심의 재개발을 원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용산참사와 같은 일을 방지하려면 재개발에 대한 개념 자체가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기존에 진행했던 재개발 사업은 토지를 이윤창출의 도구로 간주하며 부자를 위한 정책에 가까웠다.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관리자제’제도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꼭 있어야 할 재정 정책이 빠져 있어 ‘수박 겉 핥기’ 식의 방안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재개발은 소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실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보다나은 삶의 질을 위해 이루어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무조건 철거민들을 내몰려고만 하는 정책을 탈피해 충분히 그들의 생계 보장권을 책임지며 대화로써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또한 토지 국유화를 정착시키고 일부가 아닌 모든 사람이 토지를 통제하는 것이 부패된 부동산 문제와 ‘제2의 용산참사’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경찰 ‘과잉진압’ 논란 속에도 여전히 제자리걸음
용산참사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이유엔 그동안 숨기기에 급급했던 경찰 과잉진압 논란이 또 다시 불거졌기 때문이다.
용산참사 사건당일 경찰은 대형시위 규모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경찰특공대까지 투입시키며 진압작전을 펼쳤다. 유가족측은 경찰이 시너에 의해 불이 날 경우 물을 부으면 화재가 더 확산된다는 기본적인 과학상식을 알면서도 이를 무시한 채 물대포를 쏘아서 결국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고 제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경찰의 진압 과정은 정당했으며 경찰특공대 투입은 농성자 사망과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검찰은 구체적인 사건규명을 하기도 전에 ‘이명박 정권 편들기’식의 수사방식으로 사건을 종결해 버렸다.

사건 발생 7개월 후인 지금도 경찰의 과잉진압은 제자리걸음이다. 재개발 지역은 여전히 철거와 폭력으로 얼룩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건이 일어난 남일당 건물 근처엔 수십명의 전·의경이 배치되어 유가족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 하다못해 현수막 하나 거는 일 조차 경찰들의 허락을 맡아야 가능하다.
지난 7월2일엔 서울경찰특공대 대원들이 국가 중요시설 등 테러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에 대응하는 대테러 종합전술훈련을 실시했다. 훈련과정 중에 마치 용산참사 현장을 그대로 재연해 놓은 듯한 상황에서 농성 진압 훈련을 벌여 논란을 일으켰다. 박래군 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은 “경찰이 유족들에 사과는 커녕, 생존권을 요구하는 철거민을 테러리스트로 본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증명한 셈”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리는 지난 5월29일에는 80여 명의 용역깡패들이 문정현 신부와 사제들이 머물고 있는 ‘평화의 집’에 대한 명도집행을 강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평화의 집’에 무단으로 주거침입하여 집기를 들어내며 철거민들을 상대로 몸싸움을 벌였다. 이에 문정현 신부가 항의했고 이 과정에서 용역깡패들이 문정현 신부의 배를 발로 밟는 등 무자비한 폭력을 가해 부상을 당했다. 경찰은 코앞에서 이를 목격하고도 철거민들의 보호요청에 모른척하며 방조했다. 오히려 경찰 수사과장은 명도집행 고지도 없이 침입한 용역업체를 두고 “용역들의 명도집행은 공무집행”이라며 용역 편을 들었다.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신속히 달려가겠습니다’라고 적혀진 경찰 문구가 부끄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책임 없다’ 정부 모르쇠로 일관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에 용산참사는 진상규명에서 멀어지며 정치권 흙탕물 싸움으로 번져갔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등 야당은 용산참사를 전적으로 ‘MB 정부’의 책임으로 돌리며 여당을 규탄했다. 이에 여당도 민주당이 용산 사고를 이용해 정치 공세에 몰두한다는 비판을 가하며 사건의 본질을 희석시켰다.

정부는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반년이 넘었는데도 어떠한 사후 조처도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사과를 요구하는 유가족에게 용산참사는 경찰의 정당한 공권력을 행사한 것이므로 법적으로 전혀 잘못된 점이 없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용산참사는 재개발 사업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므로 정부가 개입할 일이 아니라는 식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철거민과 재개발조합 사이에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논리대로라면 용산참사에 공권력을 투입한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유가족들은 “용산참사는 오히려 정부의 적극적 개입 때문에 벌어진 일이며 철거민과 조합간의 일이라면 굳이 경찰특공대까지 투입시킬 필요가 없었다”며 무책임한 경찰의 공권력 문제점을 꼬집어 말했다.

정부뿐만 아니라 용산참사를 주도한 경찰청, 검찰, 서울시는 자신들 소관이 아니라며 발뺌하고 있다. 참다못한 유가족들은 지난 7월 한승수 국무총리를 방문했다. 직접 만날 수 없다는 답변을 듣고 탄원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몇일 뒤 한승수 국무총리에게서 돌아온 답변은 유가족들의 가슴을 또 다시 아프게 했다. 용산참사는 불법 행위였으므로 국가에서는 어떠한 보상과 책임도 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속히 불법 시위를 멈춰달라는 부탁 아닌 부탁이었다. 오세훈 서울시장 역시 “용산참사는 하루빨리 해결해야 할 문제지만 이를 해결할 제도적 법 절차가 없다. 더 이상 무의미한 투쟁은 하지 말자”고 말했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라는 모토를 갖고 시작한 도시 재개발 사업. 그러나 정작 그 풍요로운 삶을 누려할 시민들은 오늘도 목숨을 내건 싸움에 몸도 마음도 지쳐 갈 뿐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용산참사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 서민들을 외면하는 태도를 버리고 용산참사 유가족들을 만나 진심으로 위로하고 사과해야 한다. 또한 반년이 지나도록 장례도 치르지 못한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해줘야 한다. 다시는 이런 끔찍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각종 재개발 정책을 재검토하고 재개발관련 법과 제도 개선에도 힘써야 할 것이다.

 

사회진보연대 류주형 조직위원장은 전혀 지치지 않는 기색이었다.
사랑하는 가족과 다니던 직장을 떠나 남일당 건물에서 유가족들과 생활한지도 어느덧 7개월째. 그는 “용산참사를 사인간의 문제로 보기엔 공권력을 투입한 정부의 태도는 옳지 않다. 용산참사는 국정운영의 최고자인 이명박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한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 유가족들을 보상금에 혈안이 된 사람들로 오인하는 것에 대해 속상해 하며 인터뷰 내내 담배를 피워댔다. “돌아가신 분들 목숨을 돈으로 바꾸자고 이렇게까지 하겠나. 정부는 희생자들을 도시테러범으로 몰아갔다. 정부가 희생자들의 자식들이 안고 살 멍에를 한번쯤이라도 생각해 보았나”라고 한탄의 목소리를 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스피커에선 투쟁가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투쟁가가 나오자 남일당 건물 앞에 배치된 전경들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그는“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전경들과 대치상황을 이룬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전경들이라고 하고 싶어서 저러고 있겠나. 위에서 시키니까 무조건 하는거지”라고 말했다. 그는 전경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해 인명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못한 폭력진압에 대해서는 반성하는 자세를 갖길 바란다고 밝혔다.
사람들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지는 용산참사에 대해 “다음주 부터 지역 순회 촛불문화제를 통해 사람들의 인식전환을 기대한다. 뿐만 아니라 실패했던 천구식 또한 다시 강행 할 것이다. 용산참사는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진상규명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류주형 조직위원장은 진상규명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보였다.
또한 그는 “유가족이 진심으로 바라는 건 돈과 명예회복보다는 일차적으로 정부의 사과이다. 유가족은 정부의 사과가 있으면 대화를 통해 원만한 해결을 하길 바라고 있는 입장”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