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포로학대 파문 왜 발생했나

2004-06-23     글_ 최승걸 기자
‘포로협약’숙지한 미 병사 거의 없었다
작년 5월 국제사면위원회 가혹행위 계속된 고발 무시
고문메뉴얼‘강압적 심문기법’일반포로에게도 적용
미군과 영국군의 이라크 포로 학대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관련자 중징계를 포함한 파문 차단을 위해 애쓰고 있지만 군 수뇌부가 포로학대 사실을 알고도 은폐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라크에서 미군이 포로들에게 비인간적인 모독을 가한 일은 동물보다도 못한 반인륜적인 행위라는 데 전 세계가 놀라고 있다. 그동안 줄곧 미국이 이라크전쟁을 주도한 대의명분 중 하나는‘인권회복’. 그런데 그 전쟁으로 인해 생긴 전쟁포로에 대해 미국 스스로 인권을 파괴하는‘범죄’를 저지른 것이다.‘양도할 수 없는 권리’로서의 인권과 자유의‘수호자’로서 행세하는 미국의 이중적 행태가 사람들을 더욱 분노케 하고 있다.
미군의 이라크 포로에 대한 성적 학대와 고문 사건과 관련, 과연 누가 얼만큼 잘못했으며 어느 선까지 지휘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 정황으로는 포로 수용소에 근무하는 미군들은 포로의 권리를 명시한 제네바 협약에 대한 기본 지식도 없는 상태에서, 군 정보기관과 중앙정보국(CIA)의 포로 심문에 앞서‘호의적 상황‘을 만들어 주는 데 동원된 것으로 추정된다.


포로의 기본 권리도 몰랐다
지난 1월 이라크 주둔 미군이 운영하는 수용 시설들에 대한 전면적인 실태 조사에 나섰던 안토니오 M 타구바 소장은“아부 그레이브 교도소의 경우, 포로 권리를 담은 제네바 협약문은 커녕, 이런 것을 알고 있는 자가 드물었다”고 말했다. 이 교도소의 치안을 총지휘한 제 800 미 헌병여단의 재니스 카핀스키 준장은 “작년 11월 이후 사실상 교도소의 일부 구역은 군 정보기관이 통제하고 있었다”며, 자신의 영향력 밖에 있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포로를 가장 직접적으로 관리하는 자신의 휘하 병력이‘제네바 협약’의 존재조차도 모르는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美 93년‘고문 메뉴얼’개발

미 중앙정보부(CIA)와 미군은 1993년 포로의 친척에 대한 협박, 눈 가리기, 옷 벗기기 등의 강압적인 방법이 포함된‘인적자원 착취 훈련 메뉴얼’을 개발했고, 미 국방부는 작년 4월 쿠바의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에 수용된 600여명의 아프간·탈레반 포로들에게 강렬한 빛과 열, 굉음에 노출시키고 발가벗기기, 수면 박탈 등 20여가지의 강압적인 심문을 사용할 수 있도록 승인한 바 있다.
그러나 강압적인 심문 기법은‘제네바 협약’의 보호를 받는 이라크 포로에게는 처음부터 적용될 수 없었다. 브라이언 휘트먼 미 국방부 대변인은 “관타나모 포로에게 거친 심문을 할 때도 사전에 최고 국방장관까지 올라가는 국방부 고위 관리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어떤 경우에도 고문이나 잔인한 기법을 포함한 심문 절차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따라서 작년 10월 말∼12월 초 아부 그레이브 교도소에서 집중 발생한 포로 학대는‘정식 기법’에 따른 것이 아니라, 군 정보기관의 심문 전(前)‘포로 길들이기’요청과 미군의 ‘편법적인 수용’에 따른 것일 수 있다. 이 경우, 바그다드 소재 CIA 지부장과 군 정보기관 책임자들에게 책임이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그 윗선에 비난을 돌리는 시각도 있다. 리카르도 산체스 미 지상군 사령관은 작년 11월 19일 이 교도소의 헌병을 군 정보기관의 지휘하에 놓은 명령에 서명했다. 이런 일련의 조치들은‘정보 수집의 극대화’를 위해서, 헌병의 역할과 심문하는 정보 요원의 역할을 섞는 결과를 낳았다.

‘포로학대’대응 미군 지휘체계‘엉망’

이라크인 포로 성학대 사건에서 드러난 미군의 지휘체계는 사실상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 〈뉴요커〉 최신호가 분석했다. 이는“성학대 사건 처리과정에서 지휘계통은 매우 체계적으로 작동했다”는 미 국방부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두 잡지는 지난 1월 중순 포로 성학대 사진이 처음 군 조사당국에 입수되기 전부터 그 이후의 조사과정, 보도 이후의 국방부 행적 등을 되짚어보면서 미군 지휘체계가 엉망이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부터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나온 출소자와 그 가족들을 통해 폴 브리머 최고행정관은 학대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난해 가을 브리머 행정관과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미 행정부의 다른 국가안보회의 참석자에게 이 문제를 제기했으나, 올 1월 중순 조지프 다비 상병이 사진 제보를 하기 전까지 아무런 추가조처도 취해지지 않았다고 〈타임〉은 전했다.
군 당국은 제보 직후 곧바로 안토니오 타구바 장군을 시켜 은밀하게 조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라크주둔군 사령관인 리카도 산체스 중장과 그의 직속상관인 존 애비자이드 중부사령관은 초기 몇달 동안 이 사실을 비밀에 부치는 데 온힘을 쏟았다고 〈뉴요커〉는 보도했다. 이 때문에 군내의 상당수 장군들이 정보 공유범위에서 제외됐다. 국방부의 한 관리는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나쁜 뉴스는 최대한 공개를 늦추면서 좋은 일이 일어나기만 바라는 게‘럼스펠드 국방부’의 특징”이라고 비꼬았다.


허술한 보고체계와 안이한 상황인식
1월부터 군 조사관들은 성학대 사실을 담은 사진들이 존재한다는 걸 알았지만, 국방부는 이것이 얼마나‘나쁜 뉴스’인지, 누구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하는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시비에스방송〉이 사진을 내보낼 계획이란 사실을 알고 리처드 마이어스 합참의장은 앵커 댄 래더에게 전화를 걸어 2주간 방영을 연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그는 전화를 걸 때까지도 사진을 보지 못했다. 심지어 2주 뒤인 지난 4월 28일 〈시비에스방송〉 보도가 나온 뒤에도 마이어스는 아직 타구바 장군의 조사보고서를 읽지 못한 상태였다.
럼스펠드 국방장관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지난달 4일 이번 사건에 대한 기자회견을 가졌지만, 그 역시 그때까지 조사보고서를 완전히 읽지 않은 상태였다. 럼스펠드 장관은 1월 또는 2월에 포로 학대사건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란 사실을 부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시비에스방송〉이 충격적인 사진을 곧 방영할 예정이란 사실은 백악관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고 〈타임〉은 전했다.

누구에게 지휘책임 묻나

미군은 지난 1월 중순, 포로 학대 사진이 익명으로 군수사기관에 제보되면서 이번 사건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미 작년 5월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이 미·영국군의 이라크 포로 가혹 행위를 계속 고발했었고, 국제적십자사도 작년 4월 이래 지난 2월까지 수차례에 걸쳐 미국 정부에 문제점을 지적했었다. 여기에 대해 미군이 어떤 조치를 했는지는 불분명하다.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이번 사건의 경우 1월 말∼2월 초 부시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돼 있으나, 민간 단체들의 이전 지적에 대해서는 미 행정부에 전달됐는지 여부조차 확실치 않다. 따라서 이 사건은 앞으로 관련 책임자들의 은폐, 보고 지연으로까지 더욱 확대될 수도 있다.
이라크인 포로 성학대 사건에서 드러난 미군의 지휘체계는 사실상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 〈뉴요커〉 최신호가 분석했다. 이는‘성학대 사건 처리과정에서 지휘계통은 매우 체계적으로 작동했다’는 미 국방부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두 잡지는 지난 1월 중순 포로 성학대 사진이 처음 군 조사당국에 입수되기 전부터 그 이후의 조사과정, 보도 이후의 국방부 행적 등을 되짚어보면서 미군 지휘체계가 엉망이었다고 지적했다.
군 당국은 제보 직후 곧바로 안토니오 타구바 장군을 시켜 은밀하게 조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라크주둔군 사령관인 리카도 산체스 중장과 그의 직속상관인 존 애비자이드 중부사령관은 초기 몇달 동안 이 사실을 비밀에 부치는 데 온힘을 쏟았다고 〈뉴요커〉는 보도했다. 이 때문에 군내의 상당수 장군들이 정보 공유범위에서 제외됐다. 국방부의 한 관리는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나쁜 뉴스는 최대한 공개를 늦추면서 좋은 일이 일어나기만 바라는 게 ‘럼스펠드 국방부’의 특징”이라고 비꼬았다.


학대사진 누가, 왜 찍었나‘
수사기법’‘개인추억록’엇갈려
<워싱턴포스트>는“이라크전 상황과 포로 학대 등을 담은 약 1,000장의 디지털 카메라 사진을 확보하고 있다”고 지난달 보도했다.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도 아직 공개되지 않은 더 많은 사진과 비디오가 있다고 말했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이런 끔찍한 사진을 이렇게 많이 찍어 보관하고 유포시켰을까.
<월스트리트저널>은 포로들에게서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수사기법상의 필요에 따라 찍었거나, 일부 유별난 병사들이 개인적인‘전쟁 추억록’으로 찍은 것 중의 일부로 보이지만 관련자들의 진술이 엇갈린다고 보도했다.
수사상 필요 때문에 조직적으로 찍었다는 주장은 주로 학대 혐의로 조사받고 있는 병사들의 변호인들이 제기하고 있다. 포로들에게 모욕감을 주어 자포자기 심리와 공포 속에서 대량살상무기나 저항세력 관련 정보를 실토하도록 하기 위해, 군 정보장교들이 병사들에게 학대 장면을 촬영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번 파문에 연루된 병사들의 변호인인 가이 워맥은 “이 사진들은 명백히 연출된 것이며 내부 용도로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문제가 된 병사들은 군 정보장교들의 승인 없이는 이라크인 수감자들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사건을 조사한 국방부 쪽 안토니오 타구바 소장의 보고서는“일부 병사들이 저지른 경망스러운 행동”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편, 이번 포로학대 사진 공개는 디지털 카메라와 인터넷이 전쟁까지도 바꿔놓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비비씨방송>은 문제의 사진들이“개인용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아마추어 사진들이며, 인터넷은 이라크에 있는 병사들이 마음대로 이 사진을 고국의 친구나 친지들에게 보낼 수 있도록 해줬다”면서 군 당국이 병사들의 편지를 낱낱이 검열했던 과거 전쟁과는 달리 전쟁의 이미지들이 군 당국의 어떠한 검열로도 통제되지 않고 마음껏 전송될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지적했다.

사진폭로 다비상병 美서‘영웅대접’

이라크 포로 학대 사진을 폭로한 제372헌병대 소속 조지프(24) 다비 상병이 미국의 영웅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ABC방송과 AP통신 등 미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현재 이라크에서 근무 중인 다비 상병은 어머니 마거릿 블랭크에게 전화를 걸어 폭로를 결심하기까지 복잡했던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어머니에게“나는 미군에 해가 되는 일을 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서도“학대를 당한 포로들이 만약 나의 어머니, 형제, 부인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분노가 치솟았다”고 말했다.
다비가 자라 온 펜실베이니아주 제너스의 주민들은“그가 옳은 일을 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다비가 다닌 노스스타 고등학교의 역사교사인 로버트 어윙은“그는 성적이나 운동이나 보통인 학생이지만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고야마는 성격이었다”고 술회했다. 하지만 다비의 부인은 혹시나 있을지 모른 보복 공격에 대비해 이름을 숨긴 채 살아가고 있다.
1990년대 초 탄광촌인 제너스로 가족과 함께 이주한 다비는 의붓아버지가 사고로 장애인이 되면서 햄버거 가게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학비와 용돈을 버는 등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성장했다. 결혼 후 버지니아로 이사한 그는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하다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입대를 결심했다고 주위 사람들이 전했다.

미군의 포로 학대와 日帝 고문은 닮은 꼴

뉴욕타임스(NYT)지가 지난달 9일자 기사에서 미군에 의한 이라크인 학대와 식민체제 시절 일본군의 한국인 고문을 나란히 비교했다. 고문의 효과를 분석한 이 기사에서 뉴욕타임스는‘100년전과 오늘날’이란 제목 아래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미군들이 벌거벗은 채 뒤엉켜있는 이라크 수감자들을 바라보는 사진과 1905년 일본군인들이 독립운동가로 보이는 한국인을 매질하기 위해 옷을 벗겨 눕혀놓은 사진을 함께 실었다.
이 신문은‘100년전과 오늘날’이라는 제목 아래 “1905년 일본 군인들이 자백을 얻어내기 위해 한국인을 매질하고 있다”는 설명과 “이라크 주둔 미국인들은 포로들을 학대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는 설명을 각각 달았다.
NYT는 “숙련된 조사관들은 고문으로 입을 열게 할 수는 있으나 사실을 얻어내기는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그것은 조사대상자들이 (사실보다는) 고문을 멈추게 할 수 있는 말을 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즉, 고문이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또 평범하고 선량한 보통 젊은이들이 아부 그라이브에서 잔혹한 행동을 하게 된 것은‘고문의 속성’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고문과 학대에는 경계가 없으며, 아무리 경험많은 조사관일지라도 약간이라도 피의자에게 육체적, 심리적 압력을 가하는 것이 허용되면 빠져들어가기 쉽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 인권단체 브첼렘의 예헤즈켈 레인 조사국장은 “이스라엘은 테러공격을 알고 있는 피의자에 대해서만 육체적 압력을 가 할 수 있다는 내부지침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팔레스타인 피 의자 80%가 잠안재우기등의 고문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한편, 정보관련 조사관 출신으로 현재 휴먼라이츠워치의 군사문제 분석가로 활동중인 마크 갈라스코는 윌리엄 골딩의 소설‘파리대왕’에 빗대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 미군들의 심리를 분석했다. 그는‘파리 대왕’에서 무인도에 불시착한 소년들이 원시의 야만상태를 나타냈던 것처럼,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의 미군들도 기본적인 사회적 규율이 붕괴된 가운데 도덕성을 상실했을 것으로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