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악법 원천무효’, 의원직 사퇴로 승부수 띄워

“당직자들 수고했다”며 끝내 눈물 보인 ‘미스터 스마일’
단식, 의원직 사퇴, 원외 투쟁… 정세균 투사 행보, 민주당 화합 가져와

2009-08-05     신현희 차장

미디어법 강행처리를 놓고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총대를 멨다. 지난 7월19일부터 단식에 들어간 그의 얼굴에서 ‘미스터 스마일’의 모습을 찾아보기란 힘들었다. 하지만 그의 단식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나라당과 김형오 국회의장이 22일 오후 2시 본회의에서 ‘미디어법’을 직권상정을 통해 표결처리했고, 정 대표는 미디어 관련법을 저지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을 사퇴했다. 설마했던 여당의 직권상정 강행처리에 허탈한 모습이었다. “당직자들 수고했다”는 인사말을 하는 정 대표의 목소리는 떨렸고 자리로 돌아가서는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제1야당 대표가 의원직을 사퇴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국민이 뽑아준 국회의원직을 버리면서까지 강경투쟁을 하는 것은, 진정 그 자리를 버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지켜내려고 하는 강력한 의지인 것이다.

장내, 장외에서 있는 힘껏 투쟁하겠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지난 7월6일 취임 1주년을 맞았다. 민주당 역사상 1년을 넘기며 장수한 당대표는 한화갑 전 대표 이후 그가 처음이다. 그가 당대표가 된 이후, 민주당 ‘간판선수’였던 손학규 전 대표와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이 없는 상황에서 ‘강한 야당’으로 지켜낼 수 있느냐는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정치적인 카리스마가 없다는 말이다. 온화하고 합리적인 정세균식 리더십이 통할 것이라는 의견과 출구전략 전혀 없는 허당이라는 의견 사이에서 질풍노도의 세월을 보낸 그다. 그러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런 정세균 대표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는 “언론자유 말살과 민주주의 후퇴를 막아야 할 책임은 민주개혁진영에 있다”며 “민주당, 민노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시민단체 모두 힘을 합치면 국민이 지지해주실 것”이라고 민주당을 격려했다. 또 “우리는 장내, 장외에서 있는 힘껏 투쟁하겠다”며 투쟁의지를 불태웠다.
정 대표는 “더 이상 민주당이 원내에서만 싸우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앞으로 어떻게 싸워나갈지는 의원 여러분과 의논해서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언론노조에 대해서도 그는 “못 지켜줘서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전국언론노조 최상재 위원장이 정 대표 단식 당시 언론노조 지부장들과 언론사유화저지 및 미디어 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미디어행동) 관계자들과 함께 정 대표를 지지 방문했었다.
정치적 승부수 띄운 것, 민주당 화합 가져와
‘스마일’이 단지 전략이라고 하기엔 온화한 미소와 말투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사람이 정세균 대표다. 그에게 정치적으로는 마이너스가 될 지도 모르지만 ‘사람좋은 미소’가 천성인 듯 보였다. 그런 자상한 대표가 민주당의 투사로 거듭났다. 정세균 대표가 지난 7월24일 과감히 의원직을 사퇴하고 국민 속으로 뛰어들었다.
사퇴기자회견을 가지고 민주당 의원총회 연단에선 정세균 대표는 “정말 소중하고 감사한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다. 의원 여러분께서도 저와 같은 심정이라 생각한다. 의회민주주의가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에 의해 완전히 유린됐기 때문에 의회 민주주의 회복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민주주의 후퇴를 막고 서민경제를 살리고, 남북의 평화 화해를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승리할 것인가 고심 끝에 결정했다”고 밝히며 “우리가 싸우는 것은 승리하기 위해서고, 이제 새로운 싸움이 시작된다. 우리 모두 단결해서 국민 여러분과 함께 싸운다면 승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서 외유내강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냥 5선 의원이 된 것이 아니었다.
최근 정 대표의 투사적인 모습을 보면서, 미디어법을 막아내지는 못했지만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려 애쓰고 있고 당내 화합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민주당 측 관계자는 “단식 농성을 비롯해 삭발식 등을 꺼려하던 정 대표가 단식 농성을 통해 미디어법 강행처리 저지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며 “의원직 사퇴를 선언하고 장외 투쟁에 나섬으로써 실보다는 득이 많았고, 정치적으로 승부수를 띄운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실제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정 대표가 단식농성을 한 것에 대해 49%가 긍정적으로 평가를 했고, 미디어법 처리로 인해 민주당 지지율도 28.1%로 크게 높아졌다. 나름의 득이 많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의원직 사퇴서 처리 방향 “신중하게 처리할 것”
민주당을 비롯한 일부 야당 의원들이 ‘의원직 총사퇴’라는 배수의 진을 치고 초강경 투쟁에 나섰다. 의원직 총사퇴가 실질적으로 이뤄지지는 않겠지만 그만큼 강한 의지를 피력한 셈이다.
정세균 대표는 동료 의원들로부터 위임받은 의원직 사퇴서 처리 방향에 대해 “신중하게 처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이날 MBC 라디오에 출연, “야권의 당면 현안은 언론악법을 무효화시키는 것이고, 중장기적으로는 민주주의 수호와 서민경제 회생 등이 중요한 과제다. 이를 어떻게 제대로 실천할까 하는 그런 차원에서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에 경거망동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그는 “현재로는 의원들이 해야할 일은 의원직을 갖고서, 현안을 해결하고 투쟁을 제대로 하는 것”이라며 “당장은 제출할 생각이 없다”고 거듭 밝혔다. 그는 “이 문제에 한나라당이 왈가왈부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국민 여론을 외면해 언론악법을 밀어붙이고 여야가 진지하게 대화하는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협상을 파기한 것이기에 그 사람들의 정치선전은 국민들이 판단해줄 것”이라고 했다.
김형오 국회의장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반성은 전혀 없고 책임회피에 급급한 모습에 유감스럽다. 다수의 폭력은 비호하고 소수의 저항은 비판하는 편파성이 김 의장의 한계로, 그의 주장에 공감하지도 않고 따를 생각도 없다”고 비판했다. 원외투쟁 시한과 관련해선 “당장 9월 정기국회를 어떻게 하겠다고 말할 시점은 아니다. 헌재 재판 결과도 보면서 정부여당을 상대로 국정을 비판하고 경우에 따라선 경쟁도 하는 그런 입장이기 때문에 여러가지를 종합적으로 봐서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특히 헌재 재판과 관련, “법리해석만 하면 되는 복잡하지 않은 단순한 사안이라서 오래 안 걸릴 것이다. 여야가 첨예한 입장차를 보이기 때문에 명쾌하고 신속하게 결정하는 것이 국가적 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방송법 통과에 따른 방송통신위원회의 후속조치에 대해 “법효력을 놓고 심각한 다툼이 있는데 방통위원장이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것은 참으로 적절치 못한 조치다. 원천무효인 법으로 TV로 광고한다는 것은 혹세무민하는 일이고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엄중하게 경고했다.

진보개혁 성향 야권 단결력 보여주고 있어
직권상정이 이뤄진 본회 직후, 민주당 의원들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으며 민주당 의원 전원은 결의문을 발표해 ‘원천무효’를 주장했다. 이와 관련, 민주당 의원 전원은 결의문을 통해 “2009년 7월22일, 오늘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조종이 울렸다. 이명박·한나라당 정권은 국민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의회 민주주의를 난폭하게 유린하는 폭거를 저질렀다”면서 “저들의 만행으로 국회는 존립의 이유가 위협받게 되었으며, 언론의 자유는 말살되게 되었다”고 개탄했다.
민주당 의원들의 이같이 결연한 의지와 함께 민주노동당 의원들 또한 의원직 총사퇴 뜻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어, 의원직 사퇴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노동당은 7월22일 김형오 국회의장이 미디어법 직권상정과 한나라당의 강행처리 선언을 ‘폭거 쿠데타’로 규정하며 야당 의원 총사퇴와 결사 항전을 선언했다.
진보개혁 성향 야권이 이처럼 단결력을 보여주고 있는 가운데, 시민사회 진영까지 가세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정국의 여운을 그대로 이어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야권은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날치기를 ‘독재정권에 의한 의회 쿠데타’로 규정하고 있고 이는 곧바로 청와대를 향하고 있어, 정 대표의 장외투쟁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다.
어느 날부터인가 자신의 이름 앞에 진짜 촌놈 혹은 진안 촌놈이라는 뜻에서 ‘진촌’이라는 별호가 붙게 됐다는 정세균 대표. 거대여당의 무한한 외압에도, 악만 남은 민주당 내부의 압력에도 정치적 진정성을 잃지 않았던 ‘미스터 스마일’ 정세균. 그가 국회 밖으로 나온 지금, 국민적 공감대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를 정치적 꼼수라 비하하지 마라. 의원직 사퇴는 제1야당 대표로서 자신이 할 수 잇는 최선인 것이고, 민생을 헤아리는 진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