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잡기는커녕…시민 때려잡는 수도권 집값
7월 임대차법 시행 이후 지금까지 계속된 전세물건 부족 사전청약 확대 정책 세입자들의 발목 붙잡아
[시사매거진279호] 본격적인 여름휴가가 시작되는 7월은 부동산 시장의 비수기로 분류된다. 주택 매매와 전셋값 모두 상대적으로 안정된 흐름을 보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올해는 예년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계속해서 대안을 내놓고 있지만 내려갈 줄 모르는 수도권 집값에 대해서 알아본다.
비수기에도 계속 뛰는 서울 집값
지난달 서울 주택(아파트·단독·연립주택 포함) 매매 가격이 0.60% 급등하며 1년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갈아치웠다. 서울은 작년 6월부터 14개월 연속 오름세다. 이 같은 과열은 3기 신도시 등 공급 확대 정책에도 불구하고 서울 지역의 공급 부족 우려가 여전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17일 한국 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의 주택 종합 매매 가격은 0.60% 올라 전월(0.49%)보다 오름폭이 확대됐다. 지난해 7월(0.71%) 후 1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서울 집값은 작년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0.17%→0.26%→0.40%→0.51%로 4개월 연속 상승 폭이 커졌다가 ‘2·4 대책’ 영향으로 3월 0.38%, 4월 0.35%로 두 달 연속 줄었다. 하지만 야당 소속인 오세훈 서울시장이 당선된 이후인 5월부터 다시 반등을 시작했다. 5월 0.40%, 6월 0.49% 상승한 데 이어 지난달에도 상승 폭을 추가로 키웠다.
서울 외곽 등 저가 단지만 오른 게 아니다. 재건축 수요 등이 있는 강남권 고가 단지들도 골고루 가격이 오르고 있다. 25개 자치구 가운데 노원구(1.32%) 상승률이 가장 높았고 도봉구(1.02%), 강남·서초구(0.75%), 송파·강동구(0.68%), 동작구(0.63%), 영등포구(0.62%)가 뒤를 이었다.
전셋값 역시 불안한 흐름을 이어갔다. 서울 주택 전셋값은 0.49% 올라 전월(0.36%) 대비 2개월째 오름폭을 키웠다. 0.42%를 기록한 지난 2월 상승 폭을 5개월 만에 다시 갈아치웠다.
전문가들은 현재 주택 공급이 충분하지 않은 데다 각종 규제로 ‘앞으로도 이 같은 현상이 이어질 것’이란 심리적 불안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서울 재건축 단지에서 나온 일반분양 물량은 275가구에 그쳤다.
수도권 집값 8월에만 1.88% 상승…14년 8개월 만에 최고 올랐다
전국의 집값이 이번 달 상승 폭을 확대하면서 14년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오른 것으로 민간기관인 KB국민은행 조사 결과 나타났다.
전셋값 역시 수도권을 중심으로 오르며 전국적으로 상승 폭이 커졌다.
지난 8월 29일 KB 리브 부동산이 발표한 월간 KB주택 시장 동향 자료에 따르면 8월 전국 주택 매매 가격은 1.50% 상승해 지난달(1.17%)보다 상승 폭이 커졌다. 이는 2006년 12월(1.86%) 이후 14년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전국 집값 상승률은 1월 1.19%에서 2월 1.36%로 상승 폭이 커졌다가 수도권 3기 신도시 추가 공급계획이 담긴 2·4 대책 발표 등의 영향으로 3월 1.32%, 4월 1.06%, 5월 0.96%로 3개월 연속 오름폭이 줄었다. 이어 6월 1.31%로 오름폭을 키운 뒤 지난달 1.17%로 다시 상승 폭이 둔화했으나 이번 달 크게 오르며 상승 폭을 확대했다.
지역별로는 수도권이 지난달 1.46%에서 1.88%로 상승 폭이 커지며 2006년 12월(3.21%)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서울이 1.19% 올라 지난달(1.01%)과 비교해 오름폭을 키운 것을 비롯해 경기(1.70%→2.24%)와 인천(1.95%→2.59%) 모두 상승 폭을 크게 확대했다. 경기는 올해 3월 이후, 인천은 2006년 12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오른 것이다.
서울은 도봉구(2.09%)와 강서구(1.83%), 노원구(1.75%), 은평구(1.73%) 등 중저가 주택이 많은 외곽 지역이 집값 상승을 견인했다.
경기는 군포(3.68%), 안산 단원구(3.59%), 수원 장안구(3.45%), 안산 상록구(3.29%), 안양 동안구(3.22%) 등을 중심으로 올랐다.
인천을 제외한 5대 광역시도 0.93%에서 1.14%로 상승 폭이 커졌다. 대전(1.79%)과 부산(1.43%), 울산(1.02%), 광주(0.99%), 대구(0.43%) 등의 순으로 상승률이 높았다.
전셋값도 상승세가 이어졌다.
전국의 주택 전셋값은 1.03% 올라 작년 12월(1.10%)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상승하며 올해 들어 처음 1%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서울(0.92%→0.95%)은 전월 대비 소폭 상승에 그쳤으나 경기(1.07%→1.44%)와 인천(1.24%→1.52%)이 상승률을 상대적으로 크게 확대하면서 수도권(1.03%→1.25%) 전체적으로 오름폭이 확대됐다.
지방도 대전(1.08%), 울산(0.87%), 부산(0.85%), 대구(0.72%), 광주(0.48%) 등 광역시가 모두 상승한 것을 비롯해 대부분 도 지역도 상승 폭을 확대했다.
KB가 4천여 개 중개업소를 대상으로 조사한 서울의 매매 가격 전망지수는 125로, 전월(123)보다 높아졌다. 이 지수는 100을 초과하면 집값이 상승할 것으로 보는 비중이 높은 것을, 100 미만은 그 반대를 의미한다.
KB 리브 부동산은 “서울 집값 상승이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더 높아졌다”라고 분석했다.
서울의 전셋값 전망지수는 125로 지난달과 같은 수준을 유지해 전세난 우려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리 오르면 집값 잡힌다?
최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75%로 전격 인상하며 가계빚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 가운데 금리 인상으로 인한 부채 감축 효과는 제한적이며 취약계층 타격만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난 8월 29일 매일경제가 한국경제연구원에 의뢰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부터 이번 금리 인상 전까지 두 차례 기준금리 인상기의 경제 영향을 분석한 결과 잇단 금리 인상에도 집값과 가계부채의 상승세는 꺾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식은 국내 금리 동향보다 미국 등 전 세계 경제 영향을 더 크게 받았고, 부동산 자산은 주택 공급과 세제 등 국내 정책 입김을 훨씬 더 크게 받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은은 2010년 7월부터 2011년 6월까지 국내 경기 회복과 자산시장 버블 우려를 이유로 기준금리를 2.0%에서 3.25%로 5차례에 걸쳐 1.25%포인트 올렸다. 1차 금리 인상 기간 전국과 서울 아파트 가격은 각각 6.0%, 2.4% 올랐고, 가계부채는 7.3%(55조 9,000억 원) 늘었다. 금리 인상으로 인한 직접적인 '약발'은 작았다는 얘기다. 주식 등 자산가격도 크게 올랐다. 이 기간 미국이 2차 양적 완화(2010년 11월)를 통해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고, 자동차·화학·정유 부문이 탄탄한 실적을 발표하며 코스피는 19.8% 급등했다.
2차 금리 인상기(2017년 11월~2018년 11월)는 금융 불균형 확대에 따른 우려 등으로 1.25%에서 1.75%로 두 차례에 걸쳐 0.5%포인트 높아졌다. 전국과 서울 아파트 가격은 각각 11.1%, 24.7% 급등하며 강하게 치고 올라갔다. 가계부채 역시 1,370조 원에서 1,447조 원으로 5.6% 증가했다. 다만 증시는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된 데다 전 세계 경기까지 둔화하면서 17.8% 하락했다.
이상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팀장은 “국내 부동산은 금리보다 자산가격 상승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 모습”이라며 “최근 한은이 금리 인상 명분으로 부동산 가격 안정과 가계부채 증가 속도 둔화를 내걸었지만, 과거 사례에 비춰보면 가계 부실만 확대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특임교수는 “코로나19발 경제 불안을 해소하는 지원 정책과 함께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킬 만한 민간주택 공급 확대, 기업 투자 활성화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셋값 상승세의 원인은 지난해 7월 임대차법 시행 이후 지금까지 계속된 전세물건 부족 현상에다가 방학 등 이사 철 수요가 겹친 영향이 크다. 부동산 빅데이터에 따르면, 임대차법 시행 직전 5만 건 가까이 남아있던 서울 주택 전세물건은 이날 기준 2만 1858건으로 반 토막 났다.
가뜩이나 전셋값이 오르고 매물이 부족한 상황인데 세입자들은 추가적인 비용 부담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다. 늘어난 전세 보증금은 신용대출 등으로 충당해야 하는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과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규제 방침으로 비싼 이자를 감당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자는 다음 문제고, 대출을 받을 수만 있어도 다행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NH농협은행과 우리은행이 각각 11월과 9월까지 신규 전세대출 등을 중단했다. 다른 은행들은 대출 중단 등 계획이 없다는 게 공식 입장이지만 여러 검토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객에게 제공되던 우대금리를 줄이거나 대출 서류 심사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개인 대출 문턱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최근 정부가 공급대책의 속도 체감을 위해 발표한 사전청약 확대 정책도 세입자들의 발목을 붙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최근 정부는 기존 6만 2,000가구 규모였던 사전청약 물량을 2024년까지 16만 3,000가구로 늘렸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신축 아파트를 미리 청약해놓는 대신 당분간 집을 사지 말라는 취지다. 하지만 사전청약 대기자들이 주택 매매 대신 계속 임대차 시장에 눌러앉아 있을수록 전세 수요는 늘어나는 셈이다. 단기적으로 보면 한정된 매물을 놓고 더 많은 세입자가 경쟁하면서 전셋집 구하기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기준금리 인상과 사전청약 확대는 장기적으로 집값 상승폭을 줄여주는 데는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전세 시장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악재”라면서 “신규 공급 물량은 그대로 변한 게 없기 때문에 추석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전세 문제가 수면 위로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차기 대권 후보자들이 하나씩 부동산 정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모든 정책의 계획은 좋았다. 하지만 실천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고, 지금의 상황까지 놓이게 된 것이다. 남은 기간 실현 가능성이 있는, 계속 치솟고 있는 집값을 잠시나마 잡을 수 있는 대책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김현지 기자 thsu3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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