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이순신의 반역」 제 28장 안국동 풍운
[시사매거진279호] 제 28장 안국동 풍운
이순신은 군사들을 육지로 투입시키고 판옥선과 수송선을 정박시킨 후 수군 정예병을 승선시킨 판옥선 10척만을 운항하여 해안을 따라 이동 항해를 시작 했다. 반나절 쯤 동남풍을 타고 순항하던 중 갑자기 정대수가 소리쳤다.
“적의 함선입니다!”
왜적의 함대였다. 조선으로 향하는 대량의 보급선과 그 수송을 호위하기 위한 일본의 안택선을 바다 위에서 만난 것이다. 그들은 일본의 영해이기에 위험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 함대 돌격 진형으로!”
이순신의 명령과 동시에 수신호와 깃발신호가 동시에 판옥선의 수장들에게 전달되었다.
“전원 전투태세로 돌입한다! 함포장과 포수는 발포준비 하라! 사부는 위치로!”
판옥선은 일자 형태를 이루며 적의 함선과 보급선을 향하여 접근하였다. 그때서야 일본의 함선에서 반응이 일어났다. 이순신은 목청을 돋구었다.
“발포하라!”
전 판옥선 함대에서 일제히 포 사격이 개시되었다. 천자총통(天字銃筒)을 비롯하여 지자(地字), 현자(玄字), 황자(黃字) 등 대형 화포들이 포문을 열었다.
“함포사격 개시!”
조선의 함포는 왜적의 선박에서는 볼 수 없는 우수한 무기로 중무장 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육지에서는 일본의 조총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바다에서는 우세를 보일 수가 있었던 것이다. 벽력같은 굉음이 울리면서 포탄이 왜선을 향해 날아갔다.
“일본의 해역이라 그런지 아주 신명이 난다!”
사도첨사 김완은 자신이 선장으로 지휘하는 판옥선 위에서 어깨춤을 추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것은 역시 다른 판옥선을 각자 지휘하는 군관 송희립, 해남현감 유형도 마찬가지였다.
“조선 해역에는 아예 뱃머리도 올려 두지 못할 정도로 아작을 내버리자고!”
일본의 안택선과 보급선이 우왕좌왕 하기 시작했다. 적중된 함선에서는 일제히 불길이 치솟으며 비명소리가 바다를 뒤덮었다. 조선으로 수송하려던 재침략의 보급물자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일본 안택선의 수군들이 보급선을 지키기 위해서 돌격해 왔다.
“믿을 수가 없구나! 우리 일본의 해역에 조선 수군이라니! 대항하라!”
안택선의 공격 방법은 주로 배와 배 끼리의 접근을 통하여 조총 공격과 상대의 갑판으로 줄과 사다리를 이용해 침범하는 돌격전 이었다. 일본 수군의 백병전(白兵戰)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백년간의 전란속에서 무사로서의 대결과 전투력이 배양되어 있었으므로 기실 수군으로 보다는 육지군으로서 월등하였다.
“절대 접근을 허용해서는 안된다! 격군들을 독려하면서 치고 빠지고 다시 거리를 유지하며 포격하라!”
통제사 이순신은 상대의 약점을 정확히 포착하고 있었다. 판옥선으로 기어오르려는 적의 안택선을 교묘하게 유인하면서 사격을 가했다. 순식간에 왜적의 안택선 7척이 침몰하고 4척은 불타오르며 반파되었고 2척만이 간신히 도주하였다. 보급선은 20여척이 파괴되었다. 이순신 함대의 완벽한 승리였다.
“장군, 감회가 남다르옵니다. 일본의 해역에서의 승리는 또다른 기쁨이옵니다!”
조방장 정대수가 환호성을 질렀다. 이순신 역시 남해바다에서의 승리감과는 비교되지 않는 희열을 맛보고 있었다.
“교토로 기습공격을 나선 우리 군사들도 이러한 승리감을 맛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탕!
김충선의 화승총에서 불꽃이 터졌다. 그것을 신호로 철포대의 화승총이 발사되기 시작했다. 교토의 외곽을 경비 하던 일본 병사들이 우수수 짚더미처럼 넘어갔다.
“돌격이다! 한놈도 놓치지 마라.”
홍의장군 곽재우는 적의를 휘날리며 선두에서 의병들을 지휘하였다. 그 역시 감격에 벅찬 돌격장의 모습이었다. 일본의 내륙에서 전쟁을 벌이는 것은 상상도 못해본 일이었다.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조선에서 수많은 전투를 경험했지만 오늘은 기분이 이상합니다. 장군!”
이울은 곽재우를 따라 공격을 감행하면서 격앙된 심정을 토로했다. 그들뿐이 아니라 조선의 군사 전원은 미묘한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침략을 당해만 보았지 결코 침략자가 되어보지 못했던 조선의 병사들이었다.
“타앗!”
우렁찬 기합과 더불어 암석에 숨어있던 일본군 병사 수 명이 장창과 칼을 휘두르며 기습을 해왔다. 곽재우와 이울은 흠칫 놀라워했다. 단지 수 명의 일본인 병사가 터무니없게 달려드는 그 광경이 낮선 것이었다.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숫자의 조선군을 보고서도 용감하게 달려드는 무모함이라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비장함의 무사도! 배를 가르는 할복(割腹)을 태연하게 자행하는 그들이 일본인입니다.”
김충선이 방아쇠를 당기며 중얼거렸다. 총성과 동시에 병사가 꺼꾸러졌다. 다른 일본군들은 의병들이 발사한 화살에 의해서 고슴도치가 되어 죽어 넘어갔다.
“천황이 대피하기 전에 미리 도주로를 차단해야 합니다. 우선 덴노의 성으로 긴급히 출동하겠습니다.”
김충선은 이울과 함께 20명의 철포대원과 30명의 의병, 승병을 조직하여 일본의 외곽 성에서 탈취한 말을 이용해 천황이 머무는 고쇼를 향해 질주해 갔다. 곽재우와 삼혜는 그 뒤를 따랐다. 김충선의 예상은 적중했다. 조선군의 기습을 보고 받은 고요제이천황(後陽成天皇)은 가솔들을 이끌고 황급히 탈출을 감행했지만 교토를 벗어나지 못하고 김충선의 척후대에게 제지당했다. 이울은 조선군을 대표하여 정중히 일본 천황을 포박하였다.
“조선으로 모시겠나이다.”
제28장 안국동 풍운
조선의 중신들이 머리를 맞대었다.
당쟁과 관계없이 그들은
구국을 위한 결정이 필요하다.
조선의 왕 선조를 상대로 담판을 지어야 한다.
이순신장군의 구명을 원한다면 기꺼이 내가 나서야 할 것이다.
난 두렵지 않다.
가족도 당파도 없으므로.
내가 두려운 것은 이순신의 나라를 세우지 못함이다.
강한 조선의 꿈을 이루지 못함이다!
(사야가 김충선의 난중일기(亂中日記) 1597년 3월24일 갑인 )
영의정 유성룡과 도원수 권율, 의병장 곽재우, 병조판서 이항복은 도승지 오억령의 안국동 저택을 방문하였다. 마침 오억령은 좌의정 육두성과 이조판서 겸 예문관 제학 이우찬(李宇瓚), 그리고 지중추부사 정탁 등을 불러 들여 긴급한 숙의를 하고있던 참이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도원수 권율과 의병장 곽재우의 출현을 놀라워했다.
"순천의 도원수부에 계셔야 할 장군이 아니시오?“
“왜적의 재침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운 이때에 도원수가 한양에는 어인 일이란 말이요?”
“놀랍소이다. 조선의 가장 중요한 인사들이 이토록 몰려다니시다니요 대관절 무슨 일입니까?”
지중추부사 정탁은 천문과 지리, 병법등 다양한 방면에 능통하였으며 특히 인재를 등용하는데 있어서 탁월한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 이미 그는 임진왜란 전후를 통하여 이순신과 곽재우, 김덕령 등을 천거하기도 했었다.
“우리가 모인 것과 여러분이 동행한 것은 같은 사안인 것이지요?”
“그런 것으로 보여 집니다.”정탁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왜적의 재침으로 나라가 어지러운 상황에서 조정 중신들의 단합이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당쟁은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늘 연기를 피워내고 있지 않은가.
“이것은 스스로 우리의 무덤을 파는 꼴이 아니요!”
병조판서 이항복이 정탁의 탄식에 씁쓰레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 역시 동감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린 두 가지 사안을 가지고 왔습니다. 도승지 영감이 입증하시기를 바라면서 말씀드립니다. 첫번째는 통제사 이순신장군의 국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상감마마의 장계 조작과 인멸에 관한 부분입니다. 이것은 정국에 있어 매우 중대한 사안입니다. 모두 아시고 계시지만 통제사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을 장악하여 왜적의 함대를 바다에서 가로막지 못한다면......이번에는 조선이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도승지 오억령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는 참지 못하고 버럭 콧소리를 냈다.
“우리에게는 천병(天兵)! 명군이 있지 않소?”
그는 왕 선조가 신처럼 섬기는 명나라의 군사들을 역시 믿고 있었다. 그러자 예순이란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도원수 권율이 우렁찬 목소리를 꺼냈다.
“그들은 숫자에 불과하오. 또한 전쟁은 우리의 땅에서 벌어지고 있소. 결국 그들에게 바랄 수 있는 것은 위안일 뿐이요. 죽음도 삶도 우리 조선의 병사와 백성들의 몫 이라는 것을 명심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