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산업재해 사고, 근로자 생명을 위협하는 원인은?
위험천만한 노동환경과 안전 불감증이 사고 위험 높여 본사 외면으로 인한 과로와 갑질의 횡포 역시 스트레스 유발 영국처럼 산재예방 기업에 맡기고 감독관 교육 강화해야
[시사매거진277호] 산업재해는 노동과정에서 작업환경 또는 작업행동 등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하는 노동자의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말한다. 여기에는 부상, 그로 인한 질병·사망, 작업환경의 부실로 인한 직업병 등이 포함된다. 지난 6월 23일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발표한 전수 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국내 370개 공공기관의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200명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 근로자는 총 225명으로 연도별로는 2016년 53명, 2017년 57명, 2018년 50명, 2019년 31명, 2020년 34명이었다.
산재 사망사고는 공공기관의 직접 관리를 벗어날수록 많이 발생하는데, 근로 유형별로 직영 사업장의 사망자는 24명으로 전체의 10.7%를 차지했으나 나머지 89.3%(201명)는 건설발주(190명)와 하청(11명) 사업장에서 사망자가 발생했다.
공공기관이 관리하는 시설에서 이용객 등이 기관의 귀책사유로 사망·부상한 안전사고 관련 인원은 총 2천305명으로 집계됐다.
내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둔 가운데 공공기관 외에 민간 시설과 서비스직, 관리직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산업 재해가 발생하고 있으며 이들에 대한 보호 규정과 제대로 된 보상, 산재 처리 등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공사현장 추락사, 허술한 안전관리와 안전 불감증이 원인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0년 산업재해 사고 사망 통계’에 따르면 건설업 사망자가 458명으로 전체 사망자 중 절반을 넘었다. 특히 사고 유형별로는 추락으로 인한 사망이 328명으로 가장 많았다. 건설현장 추락사는 올해 상반기에만 12건이 발생하여 재발방지를 위해 사전점검과 안전관리의 강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지난 1월에는 부산 광안동 오피스텔 공사현장, 광주형 일자리 공사 현장, 강원도 양양군 숙박시설 시공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2월에는 강릉시 화력발전소 건설현장에서도 근로자가 목숨을 잃었다. 3월에는 서울 염창동 아파트 공사현장, 남양주 고속도로 공사장, 의정부 고산지구 지식산업센터 신축공사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했고 4월에는 인천시 남동구의 아파트 건설현장, 인천시 당하동 건설현장에서 사고가 났다.
또한, 5월에는 광주 화정동 신축 아파트 건설 공사현장, 6월 1일부터 24일까지는 인천물류센터 신축공사현장, 전북 전주 오피스텔 신축 공사현장에서 각각 사고가 발생했다.
특히, 광주에서 일어난 사고에서 노동자는 사다리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쳤으나 공사현장 안전 관리자를 비롯한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홀로 방치되다 다음날이 되어서야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사고발생 날이 그의 생일임이 알려져 안타까움을 자아냈고 고인이 사고 후 홀로 방치되었다는 사실에 유족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이렇듯 건설 현장의 사고가 속출하고 있지만, 현장의 안전실태는 여전히 허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43조, 44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근로자가 추락할 위험이 있는 장소에 안전난간, 울타리, 수직형 추락방망 등을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높이 2m 이상의 장소에서 작업하는 근로자에게 안전대를 착용시키고, 안전대를 걸어 사용할 수 있는 설비 등을 설치해야 한다’라는 규정도 있다.
이 외에도 공사장에서는 위험 작업 시 2인 1조로 움직여야 하고, 안전 관리자는 현장을 수시로 돌아보며 안전 상황을 확인해야 하지만 이러한 원친이 지켜지지 않는 곳이 많다.
택배 노동자 죽이는 공짜노동, 합의안 이행이 관건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 역시 산재 사례로 자주 등장한다. 택배노조가 발표한 내용을 종합하면 지난해에 16명, 올해는 현재까지 5명의 택배노동자가 과로로 쓰러져 사망했다. 주요 사인은 심야 노동과 과로로 인한 피로 누적, 뇌출혈 등이었다.
택배 노조는 과로사의 근본원인이 ‘분류작업’이라 주장한다. 택배기사들은 분류작업, 이른바 ‘까대기’를 하기 위해 오전 6시 30분부터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해당 작업은 분류작업은 별도의 수수료가 지급되지 않아 공짜노동으로 불린다. 하루 최소 2시간이 소요되는 이 작업으로 인해 결국 기사들이 길거리에서 쓰러지는 일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해 지난 1월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 기구’가 구성되어 ‘더 이상 분류업무가 택배노동자의 업무가 아니며 택배사가 책임진다’고 합의했으나 현장에서는 해당 합의사항이 여전히 지켜지지 않았다.
이후, 6월 22일 오전 국회 본청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회의실에서 택배노동자를 분류작업 책임에서 벗어나게 하는 ‘택배노동자 과로방지 사회적 합의’가 최종합의를 마쳤다.
합의문에는 연내 택배노동자를 분류작업에서 제외하기 위한 방안이 담겼고, 노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내용도 포함했다. 주당 70시간 안팎으로 알려진 택배노동자 노동시간은 주 60시간을 넘지 않도록 했다.
서비스직과 관리직 등이 겪는 갑질의 횡포 역시 몸과 마음에 폭력
근무를 하며 정신적 스트레스 즉, 마음의 병을 얻거나 이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근로자들도 있다. 해당 사례들 속에서는 서비스직과 관리직 근로자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들은 타인의 언어적, 신체적 폭력과 성희롱 등으로 인해 자괴감을 느끼거나 고통을 겪는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서비스직 종사자 10명 중 6명은 고객으로부터 폭언 등 괴롭힘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들 대부분은 감정노동으로 인한 우울증에 시달리는데, 심할 경우 ‘가면성 우울증’을 겪기도 한다.
가면성 우울증은 속상하고 힘든 마음과는 달리, 줄곧 웃는 얼굴을 한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서비스직은 사람을 많이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미소와 친절함을 내비쳐야 하지만, 높은 업무 강도와 스트레스로 인해 사실 마음속에는 우울함이 가득 찰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혼자 있을 땐 표정이 어두워지거나 가족들에게는 화를 자주 내는 특징을 보인다.
입주민의 경비원 갑질 사례 역시 산업재해를 발생시키는 주요 요인이다. 작년 4월 입주민 폭행에 시달리던 故최희석 씨가 세상을 떠난 직후, 경비원에 대한 입주민의 갑질 사례에 대해 정부도와 정치권도 여러 해결 방안을 쏟아냈으나 여전히 경비 노동자들의 현실은 달라진 게 없다.
국회에 발의된 ‘갑질 입주민 처벌 법안’은 갑질을 한 입주민에 대해 징역 2년 이하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강제조항을 담고 있지만 이 법안은 발의된 지 11개월이 지나도록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살아남은 자들에게도 남는 산재 트라우마
사고에 노출되는 환경은 근로자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한편, 사고 당사자와 동료들에게도 트라우마를 남긴다. 1년 전 작업 현장에서 일하던 박 모씨는 2020년 4월에 동료의 사고를 눈앞에서 목격했다. 1년이 지났지만, 박 씨는 사고 당시 자신을 보며 ‘숨을 쉴 수 없다. 제발 살려달라’고 절규하던 동료의 목소리가 잊혀 지지 않아 아직도 괴롭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고 발생 후 7일에서 4주가 ‘트라우마 예방의 골든타임’이라 말한다. 이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넘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시기를 의미하지만,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타임을 놓친 채 방치된다.
사고가 나면 사고 수습 및 경위 조사, 책임자 규명 등의 과정이 이루어지는데, 이 때 목격자 등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은 자연스럽게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고 현장을 목격했다는 이유로 경찰과 고용노동부 조사관 등 여러 기관에 사고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사업장은 작업 중지된 현장을 수습해 하루라도 빨리 다시 공장을 운영하는 데 여념 없이 없다.
결국 노동자들은 불면증, 불안 등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리며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된다.
사후약방문식 해결 탈피하려면 영국의 사례 벤치마킹해야
반복되는 산재사고를 막고 사후약방문식 해결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사업주, 근로자와 시민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앞서 짚은 것처럼 현장에서의 안전관리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는 6월 24일 발표한 ‘영국의 산재예방 행정운영 체계 실태조사 결과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도 영국처럼 산업재해 예방을 기업의 자율적인 관리에 맡기고 산업안전 감독관의 전문성을 높이는 데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총은 “기업과 경영인에 대한 처벌 강화에 몰두하는 한국과 달리, 영국은 선진 산업안전보건 법제를 구축하고 예방중심의 행정 집행을 통해 사업장의 안전보건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실태조사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 영국은 보건안전청(HSE)의 예방행정과 보건안전법을 통해 사고사망만인율(1만 명당 사고 사망자 비율)을 낮추고 있다. 2019년 기준 사고사망만인율은 영국 0.03, 미국 0.37, 일본 0.14, 한국 0.46이다. 해당 내용과 관련해 경총은 산업안전보건 규제의 접근 방식에 있어 영국과 우리나라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영국은 1974년 보건안전법 제정 이후 정부 지시나 명령을 통한 규제보다는 기업의 자율 책임관리 방식으로 안전관리 정책의 기조를 전환했지만, 우리나라는 업종과 현장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산업안전보건법령에 사업주가 준수할 의무를 규정해 대기업조차 안전 규정을 완벽히 준수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감독관의 역량과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체계도 필요하다. 영국은 보건안전청 감독관 채용 후 2년간 교육 프로그램 이수와 평가를 받아야만 정식 감독관으로 승진할 수 있으며 정식 감독관 선임 후 전문성 개발을 위한 교육과정을 지속해서 운영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감독관을 위한 체계적인 인사·훈련 시스템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고, 채용 후 2∼3주의 교육만 받고 현장에 배치되는 데다 고용부 내에서 순환보직이 이뤄지고 있어 전문성이 낮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장 관리자들은 ‘시일보다 완공을 앞당기기 위해’ 무리한 작업을 하는 것을 금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허술한 현장관리 태도를 개선해야 한다. 근로자들로 하여금 보호 장비 착용을 철저히 하도록 관리하고, 안전난간, 울타리, 수직형 추락방망 등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노동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 외에도 경총은 관련 인력과 예산을 보다 효과적으로 투입해 업무 효율을 개선해야 한다는 점도 꼬집었다.
서비스직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도 넘는 갑질’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원이 ‘을의 입장’이 아니라는 인식을 모두가 가져야한다.
더불어 애매하게 기술된 법을 개정함으로써 근로자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려는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며 입주민의 폭언과 폭행을 유발할 수 있는 모호한 경비 서비스 업무의 범위가 뚜렷하게 정해져야 할 것 이다.
이 외에도 고용주는 산재를 겪거나 목격한 근로자에 대한 심리적 고통도 책임져야 한다. 관리자들은 중대 재해 관리 매뉴얼 안에 트라우마 예방을 필수 요소로 포함시키고, 작업 중지 명령 해제 요건에 트라우마 예방 및 관리를 넣는 등 산재를 겪은 이들의 심리적 고통까지도 치료할 수 있도록 처우를 개선이 필요하다.
여호수 기자 hosoo-1213@sisamaga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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