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가 금융한파로 ‘꽁꽁’, 자본수혈 효과 있을까

은행 8년 만에 적자, 자본확충펀드로 자본 확충 독려…그러나 정부 간섭 우려도

2009-04-16     신혜영 기자

은행 순이익 5년 만에, 분기 적자는 8년 만에 최악
지난 2월 3일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에 따르면 국내 18개 은행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7조 9,000억 원으로 전년보다 47.4% 급감, 2003년 1조 9,000억 원을 기록한 이후 5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이중 작년 4분기에는 3,000억 원의 순손실을 입어 2000년 4분기 4조 6,000억 원의 순손실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에 특별히 발생된 출자전환주식 매각이익을 제외하더라도 전년 대비 3조 8,000억 원으로 32.5% 감소한 수준이다. 특히 경기침체가 본격화되고 기업 구조조정 결과가 일부 반영된 작년 4분기에는 은행들이 3,000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은행들이 분기 적자를 기록한 것은 8년 만에 처음이다. 지난해 국민·우리·하나은행 등 7개 시중은행의 순이익은 5조 3,000억 원으로 43.6%, 산업·기계은행 등 5개 특수은행의 순이익은 1조 7,000억 원으로 64.6% 감소했다. 반면 부산·대구·광주은행 등 6개 지방은행의 순이익은 9,000억 원으로 12.5% 증가했다.
또한 은행들의 이자 이익은 34조 원으로 9.1% 증가한 것과 달리, 수수료 이익과 유가증권 이익 등 비이자이익은 5조 3,000억 원으로 50.3% 급감한 것도 은행들의 이익감소로 이어졌다. 수익성 지표인 총자산순이익률(ROA)은 0.49%, 자기자본이익률(ROE)은 7.29%로 전년보다 각각 0.61%포인트, 7.31%포인트 추락해 2003년(ROA 0.17%, ROE 3.41%) 이후 가장 낮았다. 순이자마진(NIM)도 2.44%에서 2.29%로 떨어졌다.
금감원은 당기순이익이 감소한 것은 부실여신 증가 등으로 충당금 전입액이 9조 9,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5조 4,000억 원 늘어난 것이 은행들의 수익성 악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구용욱 대우증권 연구원은 “상반기 대손충당금이 늘어나고 마진율이 떨어짐에 따라 올해 은행들의 순이익은 20~30% 이상 감소할 것”이라며 “다만 하반기에 경기하강이 완화되고 구조조정의 강도가 약해지면서 수익성이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 22조 원 집행, 은행들 대부분 MMF에 예치
지난 2월 1일 한국은행(이하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4개여 월간 한은이 시중에 푼 원화는 약 22조 원에 이른다. 환매조건부채권(RP) 매각 및 매입 15조 9,000억 원, 통안증권 중도 환매 7,000억 원, 국고채 단순 매입 1조 원, 채권안정펀드 지원 2조 1,000억 원, 예금지급준비금 이자 지급 5,000억 원 등으로 당초 한은이 공급하기로 계획했던 22조 7,000억 원 가운데 97%가 집행됐다. 그러나 대부분의 은행들이 경기가 나빠지는 상황에서 기업과 가계에 대출을 많이 해줄 경우 부실화돼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하락하고 연체율은 상승할 수 있다는 우려로 3%대 이자를 주는 MMF에 예치하고 있다. 지난 1월 9일 시행된 한은의 정례 RP 매각 입찰에는 사상 최대인 80조 원이 몰렸다.
특히 시중은행들이 우량 대기업 위주로 대출하면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신용등급이 좋지 않은 업체에 대출해 줄 경우 자산 건전성에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신규 대출은 어렵다는 것이 은행들의 입장이다. 은행권의 중기 대출 연체율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작년 말 국내 은행의 전체 원화대출 연체율은 1.08%로 전년 말 대비 0.34% 상승, 이는 기업대출 연체율이 1.46%로 전년 말 대비 0.54%포인트나 급등한 결과다.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높은 대기업의 연체율은 작년 말 0.34%로 0.03%포인트 하락했지만, 중소기업의 연체율은 1.70%로 0.70%포인트 급등했다. 대출규모 증가 영향으로 이자이익은 2조 8,000억 원 늘어났다.
한은 관계자는 “1월 들어 은행권의 기업대출은 작년 12월보다 늘어나고 있지만 중기 대출보다 대기업 대출이 더 많이 증가하고 있다”며 “중기 연체율이 급격히 올라가는 등 신용 위험이 커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18개 은행 중 12개 은행 BIS기준 9%에 미달
실물경제의 침체가 가속화됨에 따라 전문가들은 올해 은행들의 순이익은 지난해보다 20~30% 이상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20조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이달부터 은행에 자금을 지원할 계획이다. 금융위는 지난 2월 23일 국회 정부위원회에서 “은행신청을 받아 다음달 중에 은행자본확충펀드를 통해 자금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보고했다. 이에 따라 국내 18개 은행 중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기본자본비율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권고치를 맞추지 못한 은행들이 자본확충펀드 지원 신청을 검토, 금융위는 신청 은행들이 발행한 신종자본증권과 후순위채를 사들여 자본을 늘려줄 예정이다. 지난 달 중순과 3월 결산이 이뤄지는 4~5월 등 단 2차례만 펀드 지원신청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지난 2월 11일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은 정부가 추진 중인 은행 자본확충펀드에 한국은행이 산업은행에 대출하는 방식으로 10조 원을 지원하며, 신용보증기금은 산은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10조 원 이상을 보증한다는 실무 협의를 마쳤다. 총 20조 원 규모로 조성되는 자본확충펀드에는 한은이 10조 원, 산은이 2조 원을 각각 지원하고 나머지 8조 원은 기관 및 일반투자자가 참여하게 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자금조성 방안에 대해서는 협의가 마무리됐고 향후 운영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며 “보증한도는 현재 추정으로는 약 12조 5,000억 원 규모로 신용보증이 지원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은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은행이 부담해야 하는 부실채권 규모가 적게는 20조 원에서 많게는 60조~70조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은행의 BIS 비율이 악화될 경우 추가적으로 자본을 확충하거나 자본확충펀드를 통해 자본을 수혈하면 된다”고 말했다.
지난 2월 21일 금감원에 따르면 우리·기업·외환은행, 농협, 수협 등 12곳이 BIS 기준 기본자본비율에 대한 금감원의 권고치 9%(작년 말 기준)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집계됐다.
국민·신한·하나은행 등 시중은행들은 지난해 말까지 자본확충을 통해 기본자본비율 9%를 모두 넘긴 반면, 우리·기업·외환은행, 농협 등 12곳은 9%에 미치지 못했다. 현재 우리은행은 BIS기준 자기자본비율이 7.7%로 정부에서 자본비율이 낮은 은행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자본확충펀드 지원을 신청한 상태다.
농협은 이 비율이 6.78%, 수협은 6.09%로 각각 2조 원 안팎, 4,000억 원 정도의 자본 수혈이 필요한 것으로 파악됐다. 광주은행과 경남은행은 기본자본비율이 각각 7.58%, 7.84%로 추정돼 2,000억 원씩의 지원을 요청할 예정이다. 기업은행은 기본자본비율이 7.24%대 후반으로 5,000억 원 이상의 지원을 신청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하나은행이 정부의 자본확충펀드를 사실상 거부했다. 김종열 하나지주 사장은 지난 1월 17일 “하나은행은 업종 부실화에 대비한 충분한 증자로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13%대의 자본건전성을 갖췄고 자체적인 추가 자본확충 계획 등으로 2분기 정부의 자본확충펀드 지원도 받지 않아도 될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외환은행은 기본자본비율이 8.59%로 아직 자본확충펀드 신청 여부를 결정짓지는 못한 상태다. 외환은행을 제외한 이들 은행이 정부 지원을 요청한다면 그 규모는 9조 원 안팎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상당수 은행 정부 간섭 우려, 이용 꺼려
하지만 현재 자본확충펀드를 놓고 일각에서는 신용등급이 우량한 은행채, 회사채 등에만 투자해 ‘채권시장 안정용’이라는 본래 기능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김형기 산은자산운용 본부장은 “채권펀드는 은행 등이 출자한 자금이어서 신용등급이 낮은 채권에 투자하면 투자자들의 위험 가중치가 올라가는 부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금융권 관계자는 “자본확충펀드를 통해 자본을 늘린 은행들은 기업 대출이 부실해지더라도 BIS 비율을 일정 수준 유지할 수 있게 돼 신용도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가 적극적인 신청을 독려한다면 은행들도 중기 대출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은행권은 정부의 자본확충펀드 조성 계획이 은행의 건전성을 높여줄 것으로 기대하면서도 자칫 은행권 구조조정의 시발점이 되지나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은행 경영권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상당수 은행은 정부 간섭을 우려해 자본확충펀드 이용을 꺼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에 정부 관계자는 “은행들의 원활한 실물 경제 지원과 기업 구조조정에 필요한 실탄을 넣어주는 것으로 경영 간섭을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향후 경기 상황을 감안할 때 은행들의 BIS 비율 하락이 불가피해 자본확충펀드를 이용하는 곳이 많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경기 추락과 은행 건전성 악화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면 공적자금 투입 문제를 본격적으로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하반기에 상황이 달라질 수 있지만 일단 은행들이 이 펀드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며 “펀드 지원을 받아 자본을 늘려놓는 것이 대내·외 신인도에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선진국 은행들은 공적자금 ‘수혈’ 등을 통해 발 빠르게 자본 확충에 나서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2월 4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40여 개 나라가 은행권에 대한 종합적인 자본 투입 계획을 발표했거나 개별적으로 자본 투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중 37개국의 은행자본 확충 계획 규모는 1조 4,000억 달러에 이른다. 실제로 은행권에 투입되거나 투입 예정 규모는 5,932억 달러에 달했다. 미국이 절반가량인 2,946억 달러를 차지했고 영국 804억 달러, 네덜란드 428억 달러 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