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ㆍ금융 등 업종간 벽 사라져 금융산업의 빅뱅

변화하는 금융환경과 제도로 글로벌 금융산업으로의 도약에 밑거름

2009-04-16     이준호 기자

정부가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선진화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자본시장통합법을 도입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 금융위기, 특히 대형 투자은행들의 파산에서 보듯이 금융회사의 건전성이나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확보하지 않은 채 일방적인 규제 완화와 선진금융기법의 무분별한 활용이 예상치 못한 금융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11년 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상품시장의 교역확대는 물론 자본시장의 개방이라는 경제 구조적 변환을 경험한 바 있다. 특히 자유화 진전으로 외부 금융시장 충격에 바로 노출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주가 폭락, 환율 급등 등 국내 금융시장이 크게 요동치고 있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자통법 시행으로 선진금융기법을 배운다고 해서 곧바로 국내 금융시장이 선진화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국내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높일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는 금융위험관리 능력이 선진국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국내 금융시장 여건상 금융선진화와 경쟁력만을 내세워 무리하게 규제 완화를 하거나 성급하게 선진금융기법 도입을 추구하는 것은 자칫 금융회사의 부실화를 키우고 금융시장 전체를 위기 상황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자통법이 금융규제 완화 확대와 금융선진기법 도입을 촉진할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 금융산업이 선진화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위해서는 금융제도와 관행이 좀 더 성숙하게 발전하고 건전한 환경을 조성해 나가는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또한 외환위기 이후 새로운 통합금융감독기구 도입으로 금융회사의 건전성이 많이 개선되기는 했으나, 국내 금융산업의 규모 확대와 국제화 추세에 맞추어 금융감독기구의 금융회사 및 금융시장 전반에 대해 리스크 중심의 체계적인 감독과 모니터링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자통법 시대, 규제 칸막이 사라진다
황건호 금융투자협회장은 최근 ‘자본시장통합법의 전망과 과제’ 국제 콘퍼런스에서 “무한 경쟁시대에 특화된 부문에 역량을 집중해야만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라는 말을 했다. 자통법시대를 맞이하는 금융업계의 전략은 ‘특화된 부문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지난 2월 4일 금융산업 칸막이가 사라지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이른바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이 발효되었다. 증권, 자산운용, 선물 등으로 구분하던 자본 시장이 통합되면서 영역 구분이 사라지고, 금융사는 경쟁시대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각 업종을 관리하던 증권거래법·선물거래법·자산운용업법·신탁업법·종금법·기업구조조정투자회사법·증권선물거래소법 등 7개 증권 관련법을 하나로 통합한 것이 자통법이기 때문인데, 자통법 시행으로 국내 증권사에는 ‘기회이자 위기의 시대’가 도래했다. 규제 칸막이가 줄어든 만큼 업종 간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특히 금융사들은 자본시장통합법이 발의 된 후 지난 2년여 기간 동안 다양한 상품 출시와 IB 부문 강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대우증권은 2년 전 트레이딩 사업부에 금융공학부, FICC파생부 등을 신설했다. 주식이나 채권뿐만 아니라 금리·외환·신용·일반상품 등과 연계한 신종 금융상품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굿모닝신한증권도 지난 2007년 상품개발팀을 신설하고 IB의 명품 랩(wrap), 아트펀드, 와인펀드, 곡물지수연계 DLS 등을 지속 출시해왔다. 상품개발팀 인력을 충원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발굴에 주력한 것이다. 굿모닝신한증권은 이와 함께 향후 340억 원 규모의 IT 신시스템과 인프라 투자해 새로운 상품개발 기반을 마련하는 등 역량을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화증권은 선물업과 지급결제업무에 참여하기로 결정하고 기존 주가지수 등 주식관련 선물업 외의 금리·외환·상품 등 현재 선물회사가 영위하고 있는 장내 파생상품 매매 및 중개업에 새로이 참여하고 있다.
이밖에도 글로벌 시장 진출 및 IB사업부분이 가속화를 보이고 있는 곳도 많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 2007년 홍콩법인을 시작으로 중국·베트남·영국·미국에 각각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지난해 4월 1일에는 기존 진출한 홍콩·베트남·영국·미국을 비롯해 진출 예정인 인도·브라질 등 해외 주요 거점에 리서치 조직을 강화하고, 글로벌 리서치 조직을 구축해 급성장하는 해외시장에서 다양한 투자기회를 엿보기 위한 포석을 깔아 놓았다. 또한 기존 주식중개(브로커리지) 외에 IB 부문 투자를 위한 해외진출도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삼성증권은 올 초 일본 시장에 진출한다.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가 글로벌 사업에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있기 때문인데, 최근에는 유럽의 로스 차일드와 제휴를 맺고 글로벌 시장의 M&A 기회를 엿보고 있다.
굿모닝신한증권과 한국증권은 말레이시아의 이슬람채권(수쿠크) 발행에 나섰고 대우증권도 글로벌 얼라이언스 전략을 펼치고 있다. 대신증권도 최근 2∼3년간 일본·중국·대만·베트남·캄보디아 5개 국가의 8개 금융기관과 전략적 업무제휴를 체결하고 현지법인 진출도 추진하고 있다. 이 밖에 교보증권은 유망중소기업의 IPO 등 IB 부문 특화를 지속적으로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보험업계는 ‘자통법’ 사각지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 공식적으로 발효됐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봤을 땐 당장 보험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문난 잔치에 증권업계만 초대된 격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특히 금융투자업 상품에서 변액보험 등 보험사의 투자형 상품은 제외됨에 따라 자통법과 보험업계의 연관성은 더욱 찾기 힘들어진 것과 변액보험은 자통법의 투자자 보호 조항에 적용받지 않게 됐다.
금융당국은 각 보험사에 변액보험은 자통법상 금융투자업 상품에 속하지 않는다고 통보하고 내부 완전판매기준에 따라 해당 상품을 판매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변액보험의 경우, 중도해약시 원금에 손실을 보는 것은 패널티적 성격이 짙다”며 “만기를 채우면 원금이 보장되기 때문에 투자형 상품으로 분류할 수 없다”고 말하고, 원금손실의 가능성이 있는 변액유니버셜보험(VUL)의 경우, 변액보험의 범주에 묶여 자통법이 적용되는 금융투자업 상품에서 제외된 것으로 전했다.
각종 금융규제를 완화하고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자통법은 포괄주의 원칙에 따라 금융상품의 범주는 확대하고 내용은 복잡해 졌다. 때문에 자통법은 금융투자업 상품을 판매할 때 적합성 원칙을 의무적으로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적합성 원칙이란 상품 가입자의 소득, 재산, 계약목적, 과거 투자경험 등에 근거해 적합한 상품을 권유하도록 의무화한 제도를 말한다. 이에 따라 금융소비자가 펀드에 가입할 때 투자 가능기간, 투자 경험, 원금 손실 수용 가능범위 등을 묻는 ‘투자정보 확인서’를 작성하고 서명을 해야 한다.
금융회사 역시 투자자를 안정형, 안정추구형, 위험중립형, 적극투자형, 공격투자형 등 5단계로 구분해 적합한 상품을 권유해야 하며, 불완전판매에 대한 금융회사의 손해배상책임도 이행해야 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번 보험업법 개정안에 보험 상품에 대해 자통법에 준하는 수준의 적합성 원칙을 적용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며 “올 하반기에 시행될 예정이니 각 보험사는 변경내용을 숙지할 것을 요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보험업계는 보험 상품에 대한 적합성 원칙 적용과 관련해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한 관계자는 “적합성 원칙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인적 인프라, 전산설비, 노하우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증권업계는 지난 2003년부터 자율시행을 통해 준비단계를 거쳐 온 반면, 보험업계는 아직 그러한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은 상태”라고 지적하고 “적합성 원칙이 이번 보험업법 개정과 더불어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의해 전반적인 보험 상품에 포괄적으로 적용될지, 아니면 변액보험 등 투자형 상품에 한할지도 불투명하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하면 자통법과 동일한 수준의 투자자 보호장치가 이번 보험업법 개정을 통해 마련될지 미지수라는 것이다.
한편, 보험업계에서는 간접투자증권 취득권유인 자격증을 보유한 보험설계사들 정도만이 자통법이 시행되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다고 한다. 자통법 시행으로 기존의 ‘간접투자증권 취득권유인’이 ‘증권 펀드 투자상담사’로 명칭만 변경됐을 뿐 자격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지만, 부동산이나 파생상품 펀드를 판매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자격을 취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투자자 특성 따라 적합하게 권해야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에서 가장 비중을 두고 있는 부분 중 하나가 투자자에 대한 보호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자통법은 예전과 다른 획기적인 개선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선 소비자보호의 원칙이라고 불리는 ‘적합성 원칙’이 자통법에 채택된 것은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적합성 원칙이란 금융투자업자가 투자 권유를 할 때는 반드시 투자자의 특성에 맞춰 적합하게 권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자통법을 마련하는 단계에서 금융업계가 적합성 원칙 채택을 끈질기게 반대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은 펀드 불완전판매 문제가 발생하면 금융 소비자들이 스스로 불완전 판매가 있었음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포괄주의’가 채택된 자통법이 시행되면 불완전판매 여부를 입증하는 책임이 판매회사에 있게 된다.
적합성 원칙과 함께 ‘상품 설명 의무’와 ‘부당권유 금지’ 조항도 중요한 소비자 보호 장치다. 상품 설명 의무는 투자상품의 위험도를 충분히 설명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손해배상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다. 부당권유 금지는 투자자 요청이 아니면 전화, 방문 등 투자 권유를 할 수 없도록 하는 원칙으로 투자를 권유받은 고객이 거부의사를 표시하면 한달 이내에 다시 권유할 수 없도록 금지했다. 이와 더불어 광고 규제도 도입되어 ‘낮은 위험 속에 높은 수익만 올린다’는 식의 무책임한 금융투자회사의 광고가 이뤄지지 않도록 했다.
이런 원칙이 적용되면 투자자의 투자목적, 재산상태, 투자 경험 등을 서면 확인받게 되며 투자의 권유도 투자자가 원할 때만 가능하게 된다. 더욱이 금융소비자들이 과장광고의 유혹에 빠질 위험도 줄어든다.
특히 자통법에 ‘이해상충 방지체제’가 마련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금융투자회사 내부 부서 간의 이해상충을 막도록 하고 행위 금지의 원칙적 규정을 마련, 법률적인 제재를 가하기로 했다. 내부 관리시스템을 통해 이해상충을 파악한 경우 그 내용을 해당 투자자에게 알리도록 하고 이해상충 발생 가능성을 투자자 보호에 문제가 없는 수준까지 낮추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는 중요한 부분이다. 자통법에서는 증권과 펀드, 선물 등 모든 분야가 하나로 통합되는 만큼 운용회사와 증권사가 하나로 통합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서로의 이해관계가 달라 고객에게 큰 손해를 미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해상충 가능성을 낮추는 것이 곤란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금융서비스 제공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 이해상충 가능성이 큰 것으로 인정되는 금융투자업 간에는 정보교류 차단장치(chinese wall)를 의무화했다.

금융상품은 쏟아지고, 인력은 부족해
미국 금융위기에서 보듯 금융산업을 발전시키려면 그에 걸맞은 규제감독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손실 정도가 아니라 시스템 전체가 무너지는 사태를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시장을 감독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자본시장통합법에서는 금융상품을 포괄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자유로운 상품 개발의 범위만큼 감독당국 입장에서는 장외 파생상품을 비롯한 어떤 상품도 규제의 그물망에 가두게 된 셈이다. 하지만 이는 그물에 들어온 모든 상품의 특성과 위험을 파악할 당국의 능력을 전제로 해야 한다. 또한 업무간 벽을 허무는 업무통합(기능별 규율체계)이나 불완전판매 사후식별 등 투자자보호 조치도 감독당국의 역량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렇지만 당국의 역량에 대한 의문은 해소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감독기관이 시장의 첨단기법을 따라가기엔 벅찬 측면이 있다. 게다가 최근 정부 지침에 따라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감독당국 인력을 줄여야 하고 우수한 외부인재를 끌어오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이보다도 더 큰 문제는 감독당국의 규제가 도리어 시스템 리스크를 확대시킬 수도 있다는 점이다. 가령 투자자 보호제도가 본래 취지와는 달리, 헤지펀드나 뮤추얼펀드 운용자의 위험추구 성향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규제도 마찬가지다.
이번 위기에서도 은행으로부터 거금을 차입한 헤지펀드들이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보유 담보가치가 하락하자, 은행들이 BIS비율 하락을 막기 위해 헤지펀드를 대상으로 자금회수에 나섰고 이는 다시 헤지펀드 담보가치 하락으로 이어졌다. 은행 건전성을 보장하기 위한 BIS 규제가 오히려 은행과 헤지펀드의 상호 부실을 키운 셈이다. 이 같은 피해를 한 방에 막을 묘수는 없어 보인다. 더욱 철저히 관찰하고 신속히 대처하는 것 만이 정도이자 유일한 해법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금융선진국이라고 불리어지는 미국의 경우 FRB 등 5개 연방감독기관으로 구성된 연방금융기관검사위원회감독기관(FFIEC)가 감독정보를 효율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이와같이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등 금융감독기관들이 상시로 공유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유관기관들에게 실시간으로 접근할 수 있는 체제가 반드시 선결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