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옥 폭행사건 ‘테러’인가 ‘할리우드 액션’인가

“눈을 손가락으로 후벼 팠다” vs “전 의원 쇼하고 있다”

2009-04-08     신현희 기자

국회가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다. 국회 내 폭력사건으로도 모자라, 국회 앞에서 국회의원이 폭행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최근 전여옥 의원이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 가운데 ‘5·3동의대사건’ 관련 시민단체 여성들에게 폭행을 당한 것이다. 전 의원은 곧바로 국회 의무실에서 치료를 받은 뒤 순천향병원으로 이송됐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이날 오후 보도자료를 내고 “이번 사건은 헌법기관이자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의원에 대한 명백한 테러로서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면서 “국회의원이 국회 내에서 폭행을 당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있을 수도 없는 일로 대단히 충격적이고 유감스런 사건이다”고 밝히고, 전 의원을 문병했다.

엇갈리는 목격자 진술 ‘진실은 무엇인가’
한나라당에서는 “전 의원이 지난 2002년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가 동의대사건 관련자들을 민주화운동 인사로 결정한 것에 대한 재심이 가능하도록 관련법 개정안을 낸 것에 불만을 품고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폭행을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날 동의대 사태 유족과 동의대 사태 당시 감옥살이를 했던 5·3 동지회 회원 등 30여 명과 동행한 조광철(민주화운동정신계승 국민연대 국장)씨에 따르면, 전 의원을 폭행한 것으로 지목된 이정이 전 부산 민가협 대표는 전 의원의 옷을 잡았을 뿐 폭행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날 국회 기자실에서 관련 기자회견을 열기 위해 방문한 동의대 사태 유족들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국회 출입통제가 취해져 국회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때 국회 밖으로 나가려던 전여옥 의원이 목격됐고, 이 전 대표가 전 의원에게 달려들어 옷을 붙잡고 개정안 제출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면서 실랑이를 벌였다고 한다. 이 상황은 10초 정도 이어졌고 곧바로 국회 입구를 지키던 경위들에 의해 제지당했다.
조씨는 “이후 전 의원은 국회 안으로 잘 걸어들어갔는데 왜 그렇게 쇼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른 목격자들도 이날 국회 의사당 후문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해 유사한 증언을 내놨다. 이날 이른바 MB악법 저지를 위해 민주당 정세균 대표를 면담하려고 국회 면회실에 대기하다가 이번 일을 목격한 시민단체 회원들은 “폭행이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현장에 CCTV가 있었으니 그걸 보면 폭행이 아니었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날 것”이라고 폭행 주장을 일축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번 일을 ‘전여옥 테러’라고 이름 붙이며 공세에 나섰다. 윤상현 한나라당 대변인은 “전여옥 의원이 국회 본청을 빠져나가는데 5~6명의 여자들이 달려들어 할퀴고 얼굴을 때리며 눈을 손가락으로 후벼팠다”면서 “전 의원은 지금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로 순천향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밝혔다.

CCTV 녹화 내용 밝혀야 명백해 질 것
시민단체 관계자는 “폭행은 없었고 전여옥 의원이 쇼를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을 폭행한 혐의로 체포·연행된 이정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폭행을 전면 부인했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보면 폭행 여부에는 자연히 의문점이 제기된다. 먼저, 국회 경위와 방호원들이 상주하고 있는 국회 의사당 후문 면회실 앞에서 10여 초 동안 ‘눈이 안 보일 정도’의 상처를 입히는 폭행이 가능했겠느냐는 점이다. 당시 목격자들은 이씨가 전 의원에게 달려들자 경위 등이 즉각 나서서 이씨와 전 의원을 떼어놓았다고 말했다. 68세의 고령인 이씨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전 의원을 입원시킬 정도로 폭행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또 사건 발생 이후 이씨의 행적도 폭행 여부에 의문점을 던지고 있다. 이씨는 사건 후에도 국회를 떠나지 않고 오후 2시 50분까지 국회 내 후생관에서 이날 동행한 다른 회원들과 식사를 했다. 이씨는 식사를 마친 뒤 후생관을 나서면서 경찰에 연행됐고, 이 과정에서 강하게 저항하다가 쓰러지기도 했다. 영등포경찰서에서는 “사건 전모를 파악 중이다. 추가 가담자를 파악해 사법조치하겠다”고 밝혔고, 전 의원 측에서도 폭행 용의자를 5~6명 정도로 주장하고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들의 집단폭행으로 전 의원이 다쳤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폭행 여부를 명확히 가리기 위해서는 국회 의사당 면회실 주변의 CCTV 녹화 내용을 수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 의원 “병상에서도 테러 두려움에 시달려”
전 의원은 병상 인터뷰를 통해 “테러에 대한 악몽과 두려움에 시달렸다”고 호소했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있을 때 계속 누가 뒤에서 머리를 잡아당길 것 같아 수면제 없이는 잠을 못 자고 있어요. 가족에게 위해를 가할 수도 있고….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되잖아요.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어렵게 정권교체를 했는데, 이런 일 바로잡으라고 국민들이 표를 주신 거 아닙니까. 남은 힘을 다해 대한민국을 정상적인 나라로 만들고 싶어요”라며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또한 지금까지 추진해 온 재심법안 제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강조했다. “국가의 명령에 따라 정당하게 법을 집행하다 억울하게 숨진 경찰들을 생각해 보세요. 동료를 구하려는 경찰에게 시너를 뿌리고 화염병을 던진 것은 일종의 화형식이었다고 봅니다. 저도 대학시절 학보사 편집장을 맡고 학생운동도 했지만 동의대사건은 어떤 명분으로도 ‘민주화운동’으로 포장될 수 없습니다. ‘민주화운동’과 ‘폭력적인 친북좌파 활동’을 분리해야 민주화운동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이제 폭력을 민주화로 포장하는 일은 사라져야 합니다.”
또한 전 의원이 ‘할리우드 액션’을 취했다는 것에 대해 “국회의원이 맞고 다니는 게 창피한 일이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들으며 정신없이 맞았는데도 창피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그래서 경위가 뜯어말리자마자 뒤엉킨 머리부터 추슬렀어요. 의무실로 갔는데 눈이 너무 아프고 어지러워서…. 아직도 가슴이 아파 숨을 크게 쉬기가 힘들어요” 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경찰의 공정한 수사 요구
사건 당일 국회를 견학 중이던 김천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캠코더로 찍은 동영상에 따르면 집단 폭행 장면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동영상에는 약 20초 가량 폭행 전후 모든 상황이 담겨있다는 것. 그런데 동영상에는 폭행 피의자로 구속된 이씨가 전 의원에게 뛰어가 (전 의원의) 머리 쪽에 손을 올려 때리는 장면만 나올 뿐, 동영상 전체를 살펴봐도 이씨 이외에 다른 사람들이 전 의원을 폭행하는 모습은 전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이유에서라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특히 자기와 뜻을 달리한다고 해서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 어느 누가 큰 뜻을 품고 나라와 국민의 발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올곧은 목소리를 낼 수 있겠는가.
하지만 반대측 주장처럼 집단폭행은 없었고 전 의원이 할리우드 액션을 취한 것이라면, 그렇지 않아도 입바른 소리 잘해 미운털이 박혀 있는 전 의원으로서는 또한번 정치적인 치명타를 입을 것이다. 전여옥 의원의 유명저서 ‘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돼라’는 제목이 씁쓸하게 와 닿는다. 이번 수사는 취임한 강희락 경찰청장에게도 풀어야 할 중요한 숙제다. 스스로를 ‘민중의 지팡이’라 칭하는 경찰의 공정한 수사가 요구된다.

‘5·3동의대사건’의 전모
 

1989년 학내분규 중이던 동의대 학생들이 화염병을 던져 경찰관 7명을 숨지게 한 ‘동의대사건’에 대해 학생들에게 징역 2년에서 무기징역에 이르는 중형이 선고되었고 대법원은 이를 확정했다.
법률적으로 종결된 이 사건에 대해 재평가가 이루어진 것은 김대중 정권 출범 이후인 2002년 4월.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동의대사건에 대해 찬성 5명, 반대 3명, 기권 1명의 결과로 “동의대사건 가담자 46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한다”고 결정했다. 민주화보상위 측에서는 “(가담자들이) 고의로 살인한 것이 아니고, 중대한 결과가 발생하리라는 것을 예견할 수 없었다”며 “당시의 일반적인 시위방식에 따라 화염병을 사용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경찰관이 사망했다는 결과만으로 민주화운동 관련성을 부인할 수 없다”고 결정이유를 밝혔다.
민주화보상위 결정은 당시 각계의 재심 요구를 부르는 등 큰 파문을 일으켰다. 경찰은 집단항의 움직임을 보였고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도 강력히 반발했으나 보상위는 재심불가의 원칙을 고수했다.
유족들은 민주화보상위 결정 직후 헌법소원을 냈다. 선고를 미루던 헌재는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인 2005년 10월 ‘유족들은 직접 당사자가 아니어서 그들이 낸 헌소는 위헌심판 대상이 아니다’는 의미의 각하 결정을 내렸다. 각하 의견을 낸 사람 중 한 명인 조대현 재판관은 “순직 경찰관들이 이미 국가유공자로 대우받고 있기 때문에 동의대사건 관계자들을 민주화유공자로 인정한다고 해서 경찰 유족들의 명예가 반드시 침해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동의대사건은 민주화보상위 결정 이후 7년, 헌대의 각하 이후 4년 만인 올해 2월 전여옥 의원이 핵심으로 민주화보상위 재심을 추진하면서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당시 동의대사건을 담당했던 부산지역 전직 경찰들이 전 의원의 법률 개정안에 찬성하고, 사건의 진실을 알리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부산진 경우회장은 당시 사태진압을 지휘했던 경찰간부 중 한 사람으로 몇해전 퇴임했다. “현직 경찰관들은 대신해 선배로서 5ㆍ3동의대사건의 진실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순직한 경찰관들의 명예를 반드시 되찾고 싶습니다.”
그는 5ㆍ3동의대사건을 민주화 운동으로 볼 수 없는 논거로 우선 “사건의 동기가 민주화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학내 부정시험문제였다”고 지적하고, “불필요한 과격시위로 파출소에 화염병 투척 및 공무를 집행하는 전경납치 감금, 방화·살인이라는 위법한 행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동의대사건은 국민이 직접 선택한 정권하에서 학내 문제로 일어난 사건으로서 군사독재에 항거한 지난날의 민주화운동과는 엄연히 구별되어야 하며, 공무를 수행하는 경찰관을 살상한 행위는 당연히 범죄에 속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