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득의 분노 “내가 이명박 똘마니냐”
‘대통령의 형’이라는 이유로 정치적 진정성 잃어서는 안돼
“정치적 관록과 연륜의 중진의원, ‘형님’의 틀에 가두지 마라”
‘당 4역을 두루 거친 6선 의원’.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자리다. 이렇게 롱런하는 데는 그만한 파워와 내공이 있어야 함은 지당한 사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관록과 연륜에 만족하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대통령의 형님’이라는 자리가 너무 컸던 걸까. 이상득 전 부의장은 ‘똘마니’라는 말까지 입에 올리며 자신의 정치적 주체성을 강조했다. 미디어법 기습 상정이 대통령 형제의 작품이라는 일부 언론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것이다.
지난 2월 28일 이 전 부의장은 정두언 의원을 비롯한 일부 의원들과의 만찬에서는 “(대통령의 형이라는 것 때문에) 6선 의원이면서도 동료 의원들과 편안하고 화기애애하게 밥 한 그릇 못하는 신세여서 마음이 안 좋다”는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당시 참석자들은 “(대통령의 형이라는 게) 이상득 전 부의장의 회한으로 느껴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전 부의장의 입장에서는 ‘대통령의 형’이 무슨 죄라도 되는 것처럼 이를 의식하고 자신의 정치적 소견을 함구할 수만은 없는 일, 하지만 지난 정권 ‘봉하대군’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국민들의 우려도 무시할 수만은 없다.
당내에서 경험과 연륜에 맞는 역할을 하는 것이 당연지사
언론에 심심찮게 들리는 ‘만사형통(萬事兄通)’, ‘영일대군’은 이상득 전 부의장을 지칭하는 별명이다. 최근에는 흥선대원군을 빗댄 ‘영일대원군’, 매사가 형님의 말에 의해 결론이 내려진다는 뜻의 ‘만사형결(萬事兄結)’, 당대표보다 더한 권력을 갖고 있다는 뜻의 ‘왕대표’ 등이 새롭게 부상해 그의 권력을 실감케 한다. 그의 지역구인 영일만 주변의 SOC관련 예산이 풍년을 만난 것 또한 ‘형님예산’이란 말에 빗대어졌다. 어쩌면 당의 중진의원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쓴소리를 하고, 지역구에 대한 예산을 따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형’이라는 위치 때문에 그의 정치적 진정성이 희석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 전 부의장으로서는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잘난 동생을 둔 죄(?)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 봤을 때, 동생이 높은 자리에 있고 할 수만 있다면 내가 나서서 도와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는 1988년부터 의정생활을 시작한 6선 의원이며 당 4역 중 원내총무, 사무총장, 정책위의장을 역임한 관록 있는 중진 의원이다. 위태로운 나라와 심약한 거대공룡 한나라당을 진심으로 위한다면 경험과 연륜에 맞는 역할을 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이 일이 대통령을 위한 일이라면 금상첨화라고 봐야하는 것이 정상적인 시각이다. 이는 여·야당뿐 아니라 언론, 시민단체가 다 마찬가지다.
4·2 9 재보궐 선거 공천문제와 당협위원장 선출 급선무
이러한 껄끄러운 상황 속에서도 이상득 전 부의장의 계파를 넘나드는 행보는 계속되고 있다. 이 전 부의장의 이 같은 행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집권 2기를 맞은 MB정부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돕기 위해 나섰다는 게 중론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 전 부의장이 결심을 한 것 같다. 자신이 직접 한나라당을 이끌고 나가야 한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행보”라고 말했다. 특히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귀국으로 친박 친이 대결 모드가 다시금 부상하고 있어 이를 직접 화해 분위기로 만들기 위한 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시급한 문제가 바로 4·29 재보궐 선거 관련 공천문제와 당협위원장 선출이다.
당장 경주 재보궐 선거에서는 친이계 정종복 전 의원과 친박계 정수성 전 안보특보간 대결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정 전 의원과 정 전 특보가 맞붙는 경주지역은 이 전 부의장의 연고지 포항과 함께 TK지역이다. 아무래도 이 전 부의장이 지지하는 정 전 의원이 공천을 받아 무소속인 정 전 특보에게 지기라도 한다면 정치적으로 이 전 부의장에게 흠집이 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정 전 의원이 공천을 받는 것 자체가 친박계에서는 탐탁치 않을 수 있다. 지난 18대 총선에서 공천학살의 주역 중 한명이 바로 정 전 의원이기 때문이다. 정 전 의원은 당시 사무부총장으로 공천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친박과의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선 경주 공천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 전 부의장이 친박과의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선 자신의 것을 버려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측근을 날려야 하는 어려운 결정을 쉽게 내리진 못할 것이다. 결국 어떤 방식으로 타협점을 찾을 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친이 친박의 공천문제는 생각보다 상당히 골이 깊다. 이번 공천건은 세 가지 시나리오를 만들 수 있다. 첫째 ‘정종복을 공천, 당선’이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둘째 ‘정종복을 공천, 낙선’이다. 한나라당 아니 친이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지난 총선 공천 파동의 재연이고, 박근혜 전 대표의 위상은 더 공고해 질 것이다. 셋째 ‘정수성 공천’이다. 이는 결과에 상관없이 친이와 친박의 화합을 위한 가장 최상의 방법이다. 현재 이상득 전 부의장은 화합의 카드를 내놓고 있지만 결론은 아직 미지수다.
정치적인 역량과 리더십은 상상 그 이상
요즘 형님은 바쁘다. 친이계 만찬과 함께 지난 2월 10일에는 강재섭 전 대표의 ‘동행’ 연구소 모임에 참석했다. 지난 해 ‘권력 사유화’를 주장했던 정두언 의원의 정책토론회에도 참석하는 등 발 빠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21일 부산에서 친박계 의원들과 만났던 이유도 경주 재보궐 공천문제와 당협위원장에 대한 타협점을 놓고 논의가 됐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여의도에서도 형님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연말·연초 국회 극한 대치의 뒷배경에도 이상득 전 부의장이 등장했다. 한나라당의 홍준표 원내대표가 야당과 타협을 시도할 때 그를 중심으로 한 친이계 의원들은 ‘85개 법안 일괄 처리’라는 강경론을 고수했다. 이상득 전 부의장은 지난해 말에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도 “우리가 목표치로 삼은 것은 물러섬 없이 달성해야 한다”고 의원들에게 역설했다고 한다. 정치컨설팅 ‘포스 커뮤니케이션’의 이경헌 대표는 “전임 대통령들의 친인척 비리 때문에, 대통령의 형이라는 자체만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는 흑색효과가 있다”며 “그런 이미지를 불식시키려면 인사문제에 개입하지 않고, 부정축재를 하지 않겠다는 이 전 부의장의 단호한 결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를 위해 정치적 선언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며 “이 전 부의장은 당권이나 국회의장 등 개인적 사심을 멀리하는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더욱 선명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사실상 크고 작은 정치적 문제에 있어서는 ‘형님이 나서야 해결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대통령의 형이라는 점을 배제했을 때 그의 정치적인 역량과 리더십은 상상 그 이상이다. 우리나라에서 쉽게 선진 정치문화가 정착되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렵지만, 화합과 상생의 정치를 이루지 않는다면 계속적인 후퇴만이 있을 뿐이다. 더이상 깎아내리려 하지 말자. 더 떨어질 곳도 없다. 이제는 형님으로서가 아니라 진정한 중진의원 ‘이상득’을 평가해야 할 때다. 흩어진 힘을 결집해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