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 고사부리성, ‘상부상항’명이 온전하게 새겨진 첫 목제 유물 발견

2021-01-12     이용찬 기자

 

[시사매거진/전북] 정읍시(시장 유진섭)와 (재)전라문화유산연구원(원장 천선행)이 정읍시 고부면에 소재한 사적 제494호 정읍 고사부리성(井邑 古沙夫里城) 성벽에 대한 8차 정밀발굴조사를 지난해 12월 완료한 가운데, 상부 계곡부 유물들 가운데 상하 방향으로 새긴 목재 ‘상부상항(上卩上巷)’ 유물이 발견됐다고 12일 밝혔다.

정읍시에 따르면, 고사부리성의 사적지 승격 이후 정읍시와 (재)전라문화유산연구원은 고사부리성 성벽 보수를 위해 그동안 연차사업으로 과거 고사부리성의 수구(水球) 지역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해 왔고, 지난해 조사를 진행한 남쪽 성벽 내측 평탄지 두 봉우리 사이의 계곡부에서 백제시대 유물이 발견됐다.

정읍시는 지난해 조사과정에서는 삼국시대, 통일 신라시대, 조선시대 등의 다양한 유구와 공간 이용의 변화상이 확인됐고, 특히 조사구역이 두 봉우리 사이 계곡부에 위치해 유수 퇴적층과 물을 이용하기 위한 저수시설 및 우물, 배수 시설(목제 배수로), 지반 보강 시설 등이 다수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중에서도 백제시대 퇴적층에 조성된 직사각형 모양의 구덩이(길이 640㎝, 잔존 너비 192㎝)는 내부가 오랜 기간 침수되어 얇은 점토층과 실트층이 반복적으로 쌓여있었고, 바닥에는 삿자리를 깔고, 양 가장자리에 구덩이 길이 방향으로 한쪽에 결구를 위한 구멍을 뚫은 막대형 목재(길이 144∼148㎝, 두께 3.3∼3.6㎝)를 한 쌍씩 나란히 붙여 설치했던 것이 확인됐다.

이번에 발견된 막대형 목제 유물의 하나에서 상하 방향으로 새긴 ‘상부상항(上卩上巷)’명이 확인된 것인데, 상부와 상항은 백제의 수도를 편제한 오부(五部)·오항(五巷) 중의 하나로, 기존의 고사부리성 북문지 발굴조사(2005)에서도‘상부(上卩)’, ‘상황(上巷)’ 명의 기와 편이 출토된 바 있다.

이 자료들은 부여, 익산 등 백제의 고도에서 주로 출토되던 것으로, 정읍 고사부리성에서도 확인됐다는 점에서 백제 중방 성으로서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 오부명이 새겨진 유물은 대부분 기와이고, 오부명과 오항명이 함께 기술된 것은 부여 궁남지에서 출토된 서부 후항(西卩 後巷) 명 목간(木簡)이 유일하다.

특히 이번 고사부리성에서 나온 ‘상부상항(上卩上巷)’ 이름의 유물은 나무에 새겨진 목재 유물로 발견된 최초의 유물이자, 기존 조사를 통해 추정되던 ‘상부상항’ 명의로 온전하게 발견된 목재 유물로도 첫 발견 사례다.

이것은 백제 사비 시기의 것이 확실한 오부와 오항 명이 함께 새겨진 자료의 발견에 따라 학술 가치 또한 큰 발견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따라 정읍시는 앞으로 오부와 오항의 관계, 그리고 고사부리성에서 출토된 ‘상부상항(上卩上巷)’의 의미를 파악하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읍시에 따르면, ‘상부상항’명이 새겨진 목재 유물을 비롯한 출토 목재 유물들은 현재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원형 유지를 위한 보존처리 중이며, 문화재전문위원 등 관련 전문가의 유물 선별 과정을 통한 최종 판단을 거쳐 정읍시립박물관 또는 국립부여박물관 등 소장 박물관이 정해져 보관될 예정이다.

한편 현재의 사적 제494호 ‘정읍 고사부리성’은 행정구역상 정읍시 고부면 고부리, 성황산(해발 133m) 정상부에 자리한다. 백제의 고사부리성은 백제 오방성(五方城) 중 하나인 중방(中方) 성으로, 조선시대 영조 41년(1765년)까지 읍성으로 이용되던 곳으로, 고부 성황산의 두 봉우리를 감싸는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며 둘레 1,050m, 장축 길이 418m, 단축 길이는 200m 내외다.

이용찬 기자 chans0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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