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최강 노키아 경쟁력은 ‘원가 관리’ 에 있다
연구개발 분야보다 구매파트에 최고 인재들을 대거 배치하여 가장 싼 가격으로 부품 사들여
상품은 우수하고 실용적인데 고객인 소비자에게 알려지지 않아 제대로 인식되지 않고 있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따라서 훌륭한 경영자는 고객의 만족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상품의 가치를 높이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이는 상품의 가치와 통할 수 있는 브랜드 경영에서만 그 빛을 발할 수 있다. 브랜드의 이미지는 결코 우연히 고객에게 인지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소비자의 관심과 소비자에 대한 유인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브랜드 경영은 결국 참신한 아이디어와 품질, 홍보와 광고를 적시에 런칭하는 등 소비자에게 차별화된 타깃 마케팅이 병행되어야 한다. 또한 영속성을 가진 브랜드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환경에 맞는 기업으로 변신하거나 제품을 혁신해야만 한다. 우리 기업이 살아갈 길은 세계적인 브랜드 상품을 하나라도 더 많이 보유하는 길밖에 없다. 세계 경영이 곧 국제적인 브랜드 경영임을 모두가 새롭게 인식할 때이다.
노키아의 경우 브랜드는 알아도 국적이 어딘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만큼 브랜드가 강력한 이미지를 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키아는 흔히 일본 회사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이동전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핀란드에 있는 세계 최고의 이동통신 단말기 회사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노키아는 불과 10년 전만 해도 퇴출 위기에 있었던 회사였다. 그러나 노키아는 난관을 뚫기 위해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 쇄신에 모든 힘을 기울였다. 원래 노키아는 ‘노키아’라는 마을에 세워진 펄프 제지 공장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세계적인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심기 위해 잘나가던 목재, 케이블, 타이어 공장을 매각하고 미래의 무선 이동통신시대에 대비하여 브랜드를 키워 왔다. 이런 전략들이 오늘날의 노키아를 있게 했고, 이동통신 회사로 세계 시장의 30.6%를 석권하게 했다. 이제 노키아는 미국의 모토로라의 시장점유율 13.3%를 따돌리고, 브랜드 가치로도 미국을 제외한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세계 10위권 안에 들어가는 초우량 기업으로 변신하였다.
노키아를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시킨 요르마 올릴라 리더십
핀란드를 ‘노키아랜드’라고 부를 정도로 핀란드 경제에서 노키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핀란드의 경제연구소인 ETLA에 따르면 2000년 노키아가 핀란드 경제성장률 5.1%에서 차지한 몫이 1.6%(약31%)이었다. 또한 노키아 일개 기업이 핀란드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60%를 차지하고 있으며, 제조업 고용의 1/3을 차지했다고 한다. 인구 500여만의 작은 나라 핀란드가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세계경제포럼)로 꼽히는데 노키아가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1865년 설립된 노키아는 사업을 급속히 다양화했으며 1970년대 고무, 제지, 케이블 등 20여개 계열사를 거느린 핀란드 최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1988년 노키아는 유럽에서 가장 큰 TV 제조 업체였고,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가장 큰 컴퓨터 회사였다. 그러나 관련 없는 분야로 확장을 거듭한 탓에 계열사간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없었으며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갔다.
노키아는 1980년대 후반 경기후퇴기를 맞아서 심각한 경영위기를 겪게 된다. 회사 존립마저 위태롭던 1992년 요르마 올릴라는 41세의 젊은 나이에 노키아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다. 올릴라 회장은 고무, 제지, 펄프, 타이어, 가전제품, PC 등을 모두 정리하고 당시 회사 매출액의 10%에 불과하던 이동전화 단말기와 정보통신 인프라 부문에 사활을 걸었다. 특히 펄프사업의 정리는 제지업체로 출발한 노키아의 정체성(Corporate Identity) 마저 부인하는 결단이었다.
요르마 올릴라는 ‘통신관련 사업에 초점을 맞추고,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그리고 부가가치 높은 것만 한다(telecomoriented, focused, global, value-added)’는 전략적 비전을 설정하고 여기에 올인 한다. 올릴라는 취임 일성으로 “우리는 통신 분야와 함께 살거나 죽는다. 업계 1위가 아니거나 1위가 될 가능성이 없는 사업은 과감히 포기한다. 휴대전화 이용자가 2004년에는 12억 명 규모가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축적한 기술력도 없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다는 건 무모한 짓이었다. 이런 포기 전략은 그 자체가 커다란 도박이었다. 특히 당시에는 이동전화 사업이 이익을 내기 시작한지도 얼마 안 됐었기 때문에 노키아의 미래를 맡길 수 있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휴대전화 수요는 2천만대 수준에 불과
했다. 또한 휴대폰 시장은 스웨덴의 에릭슨, 독일 지멘스, 그리고 미국의 모토롤라 등 쟁쟁한 경쟁자들이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올릴라는 디지털 기술의 미래에 대한 신념이 있었다. 올릴라의 의지는 확고했다. 올릴라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과감히 실행했고, 그 판단은 적중했다.
1990년대 노키아는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 아시아, 남미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갔다. 1994년 초 노키아의 휴대폰 사업부는 모든 디지털표준(GSM, Gsm1800, TDMA 등)에 맞게 휴대폰을 제작한 최초의 메이커가 되었다. 1997년 노키아는 CDMA 분야에도 진출했다. 현지 판매회사를 개설한 것은 물론이고 유럽, 미국, 아시아에 제작 및 R&D 시설을 건설했다. 노키아는 세계 최고 휴대폰 제작 및 원거리통신 장비 메이커가 되었으며, 현재의 전략이나 조직에 만족하지 않으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요르마 올릴라 회장은 회로 설계에서부터 생산, 심지어는 판매까지도 아웃소싱을 했다. 이는 그 당시까지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한 혁신적인 방법이었다. 올릴라 회장의 선택 이후 시장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중심으로 이행했다. 노키아가 주력했던 GSM 중심으로 휴대 전화 표준규격이 설정되는 등 운도 따랐다.
통신문화 아이콘으로 재탄생한 노키아
1993년 노키아는 휴대전화 시장에 뛰어든 지 불과 2년만에 23억 달러의 순이익을 올리며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1997년까지 이동전화 사업의 세계적인 선도기업이었던 모토롤라(Motorola)는 디지털 무선기술로 넘어가는 1~2년 정도의 시기를 놓쳐버렸다. 1998년 바로 이 황금시기, 그 때까지는 무명이었던 북유럽 기업 노키아(Nokia)는 단말기 시장 진출 10년 만에 모토롤라를 제치고 세계 1위에 등극했다. 그 이후 오늘까지 점유율 30~40% 수준을 유지하며, 세계 최고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커넥팅 피플(Connecting People)'이라는 노키아의 모토는 단순히 휴대폰을 만들어 판매하는 회사가 아닌, 통신 문화의 아이콘이 되었다.
요르마 올릴라 회장은 비즈니스위크에서 ‘&천재 경영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학부에서 정치학(헬싱키대학)을 전공했고, 경제학 석사(런던스쿨), 공학석사 학위(헬싱키기술대학)를 추가로 취득했으며 정치학 박사(헬싱키대학)까지 화려한 학위를 보유하고 있다. 78년 씨티뱅크에 입사한 그는 85년 노키아로 자리를 옮겨,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거쳐 92년 노키아 수장에 오른다. 그는 이론과 실무 차원에서 경영자로서의 자격을 이미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요르마 올릴라는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 과감한 결단력, 전략과 비전 공유능력, 고객 중심 경영과 R&D 등 경영의 전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초일류기업 노키아의 선장 노릇을 훌륭히 수행했다. 무엇보다도 글로벌 차원에서의 핵심 우수 인재 확보와 엄청난 교육 투자, 그리고 전략적 인사 배치를 통한 경험 축적, 적절한 동기부여를 통한 조직 능력 극대화, 학습조직을 실천함으로써 초일류기업의 기반을 튼튼히 구축했다.
요르마 올릴라는 미래형 초일류 기업에 걸맞은 기업문화 구축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젊고 개방적인 조직문화와 실패로 부터의 학습을 장려하는 문화,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노키아 밸류(Nokia value)를 가꿔서 이를 공유하는 것과 같은 전략적 문화관리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도 빼놓을 수 없다. 또한 빠른 환경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최하위직에서 그룹 회장까지 5단계에 불과한 수평적 유연조직과 열린 조직을 구축함으로써 임파워먼트를 통한 속도경영과 변화에 익숙한 경영체제를 구축하고자 힘썼다.
노키아의 핵심 능력, 기술개발과 인간존중
노키아가 세계적인 브랜드를 얻을 수 있었던 데에는 글로벌 R&D 시스템 구축을 빼놓을 수 없다. 노키아의 6만여 종업원 중 1/3은 R&D 관련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아울러 노키아는 14개국에 R&D 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매출액 대비 10% 가량을 신기술 개발에 쏟고 있다. 노키아는‘&신기술을 한발 앞서 개발하고 새로운 시장에 먼저 진입한다’&는 정신으로 시장 지향적 R&D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또한 적과의 동침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경쟁업체들과 기술협력을 통해 신기술 개발과 신산업에서의 표준 확보에 열중해 오고 있다. 노키아의 총 매출액 중 97%는 해외에서 발생한 매출이다. 그만큼 글로벌 경영과 지역적 특성에 맞는 마케팅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생산과 마케팅, 그리고 R&D와 인재 확보 등 경영의 모든 측면에서 완벽하다 할 정도로 글로벌 경영체제를 구축하고 이를 실천해 옮겨가는 기업이 바로 노키아다.
올릴라 회장은 늘 이코노미석을 이용하고, 일반 직원과 함께 회사 식당에서 식사하면서 격의 없는 대화를 즐긴다. 근로자와 관리자의 벽을 허물기 위해 공장 한가운데 벽 없는 사무실을 만들었다. 사업 매각시 100% 재고용 보장 조건을 고수한 것도 그의 인간존중 경영을 잘 나타내준다. 한마디로 경영의 교과서라 할만하다.
휴대폰 최강 노키아 경쟁력은 “원가 관리” 에 있다
휴대폰 업계 2·3위인 모토로라 와 삼성전자를 합친 것보다 휴대전화를 더 많이 파는 휴대전화업계의 절대 강자 노키아(Nokia). 유럽기업으로는 유일하게 매년 꾸준히 세계 10대 브랜드에 포함되는 노키아는 142년의 역사를 가진 장수기업이다. 하지만 ‘휴대전화=노키아’ 라는 공식이 만들어진 것은 불과 십 수년 전의 일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노키아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노텔·에릭슨 등과 비교할 때 통신기기업계에선 낯선 기업이었다. 그런 노키아가 1998년 미국의 모토로라를 제치고 세계 시장점유율 1위로 올라서자 휴대전화업계는 ‘노키아 방식(Nokia Way)’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GM·포드·크라이슬러 등 미국 자동차업계 ‘빅3’가 일본 도요타의 린(lean) 생산방식 배우기에 나선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노키아는 1865년 프레드릭 이데스탐(Fredrik Idestam)이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북쪽으로 약150㎞ 떨어진 곳에 세운 노키아 라는 작은 펄프공장이 모태다. 이후 1898년 설립된 핀란드고무회사와 1912년 세워진 핀란드전선회사 등 3사가 통합, 1967년 노키아 그룹으로 제2의 창업에 나선다.
전선(전자포함)과 목재, 고무라는 이질적인 제품 군의 연합체로 출범한 노키아 그룹은 1960년대부터 통신산업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핵심경영자원을 이동통신 부문에 집중하는 대 결단을 내렸다. 도박에 가까운 이런 결정의 이면에는 통신기술력에 대한 노키아의 자신감이 숨어 있었다.
노키아는 1967년 디지털 기술 개발을 시작해 2년 뒤에는 세계 최초로 디지털 전송시스템을 선보였다. 아날로그시대였던 1970년대에 노키아가 개발한 디지털스위치 DX200은 지금도 유선뿐 아니라 무선 네트워크의 기반 스위치로 활용되고 있다. 통신 단말기 부문에서도 1964년 라디오 폰, 1966년 카폰 등을 생산했고, 1981년부터 본격적인 휴대전화 생산에 착수했다. 1994년에는 GSM(유럽식 이동통신 방식), TDMA(시분할다중접속), 재팬 디지털 등 당시 주요 디지털 이동통신용 단말기를 모두 출시한 세계 최초의 기업이 됐다.
앞선 디지털 기술로 무장한 노키아가 아날로그 기술에 치중했던 업계 1위 모토로라를 따라잡은 것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노키아의 경쟁력의 비결은 독보적 원가관리
노키아가 기술력만으로 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석권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기술력을 돈으로 바꾸는 시스템(노키아 방식)이 다른 회사들보다 뛰어났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 노키아 방식의 핵심은 표준화 플랫폼 이용, 적은 로열티 지불, 부품가격 협상력 등 3가지의 독보적인 원가관리방식으로 압축된다.
노키아는 휴대전화 신모델을 개발할 때 차량을 만드는 제조공정과 비슷한 방식을 사용한다. 같은 차체로 여러 모델을 만드는 자동차회사처럼 노키아의 휴대전화 제품들은 S30, 40, 60, 80 등의 이름이 붙어 있다. 기반이 되는 휴대전화의 플랫폼을 통일하고, 여기에 카메라와 MP3 등 부가기능을 바꿔 신제품을 출시하는 표준화 플랫폼을 이용하는 것이다.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설계를 이용하면 기본 기술은 같지만 외관이나 기능은 다른 다양한 신제품을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예컨대 S60 플랫폼으로는 44개 기종으로 7억대의 제품이 만들어졌다. 이 같은 생산방식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노키아만 쓰고 있다.
플랫폼 설계방식은 다른 여러 부수입을 가져왔다. 판매단가의 12%였던 R&D 비용 비중이 8%로 떨어졌다. 또 제품 개발 사이클은 기존 공정보다 20% 단축됐고, 판매 대비 제품 개발 원가도 30%가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났다.
반면 한국의 경쟁업체들은 이동통신사업자의 요구를 일일이 들어줘야 하기 때문에 생산라인이 복잡하고 모델 수도 많을 수밖에 없다. 한국 휴대전화 업체의 모델 수는 평균 100여 개로 노키아(70여 개)보다 많다.
노키아는 휴대전화의 핵심 부품인 칩셋 로열티 구조면에서도 훨씬 유리하다. 노키아는 미국식 이동통신 표준인 CDMA(코드분할 다중접속 방식) 휴대전화를 만들 때는 로열티를 내지만 거꾸로 유럽표준인 GSM 휴대전화 시장에서는 로열티를 받는다. 어느 쪽을 만들든 모두 로열티를 내야 하는 국내 업체와는 원가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른 셈이다.
제3세대 휴대전화의 지적재산권 부문에서도 노키아는 한발 앞서 있다. 제3세대 휴대전화의 지적재산권 구성 비율은 노키아와 퀄컴이 각각 22%이고, 모토로라는 12% 정도에 불과하다. 노키아의 부품가격 협상력은 세계 최대 생산업체로서 누리는 덤이다. 휴대전화 출하량이 국내 업체의 최고 6배에 달하는 노키아는 부품 조달 가격이 훨씬 낮을 수밖에 없다. 원가를 낮춘 덕분에 노키아는 중국시장에서 80%가 넘는 저가폰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R&D보다 구매파트에 우수한 인재 배치
전자업체의 가치사슬은 대개 R&D, 디자인, 기획, 구매, 제조, 생산, 물류, 서비스 등으로 구성된다. 이 중 가장 중요한 단계는 무엇일까. 브랜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 R&D, 디자인, 서비스 단계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원가측면에서 본다면 단말기 매출 원가의 60%를 차지하는 구매가 가장 중요하다.
한국 기업들은 R&D를 가치사슬의 제왕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구매는 그 다음 단계로 취급된다. 우수한 인재들은 구매 부서로는 가려 하지 않는 것이 기정사실이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어떤 기업에서 구매가 매출의 5%를 차지한다고 가정할 때 구매를 잘해서 50억 원의 비용을 절감한다면 이는 1,000억 원의 매출을 늘린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구매의 중요성을 인식한 선진 기업들은 구매담당 최고임원(CPO·chief procurement officer)이라는 직책을 별도로 두고 있다. 노키아는 구매의 중요성에 일찍 눈을 뜨고, 구매 대신 전략적 조달(strategic sourcing)이란 용어를 쓰고 있다. 노키아는 구매 인력이 경쟁업체보다 많다. 치밀하게 부품업체를 개발하고 협상하는 여력은 여기서 생긴다.
노키아의 구매관리자의 연봉은 R&D 관리자의 연봉보다 높다. ‘비용이 많이 발생하는 곳에 우수한 인재를 배치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또 ‘R&D는 구매에서 시작한다’는 말도 있듯이 구매와 R&D 부문 간의 인력교류도 활발하다. 구매와 R&D를 유기적으로 연계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한 노키아는 영업과 마케팅, 생산, 서비스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아웃소싱을 전략적으로 활용한다. 심지어 소프트웨어개발이나 단말기 테스트와 같은 R&D 분야도 아웃소싱 대상이다. 아웃소싱을 애용하는 이유는 물론 비용 대비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단기간에 급성장하기 위해서는 아웃소싱이 불가피했다는 점이다. 아웃소싱을 외면하고 자체 제작과 조달에만 의존하면 늘어나는 시장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국내 업체들도 적극적으로 매출증가를 꾀하려면 아웃소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노키아는 최적의 기능과 탁월한 공급망을 통해 부품 조달 원가에서 경쟁사보다 두 자릿수 높은 비율로 원가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노키아는 1995년 한때 부도 위기에 직면했다. 원가관리를 잘못한 때문이었지만,
노키아는 이를 기회삼아 이후 세계 최강의 원가관리 기업으로 다시 태어났다.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몫이다. 국가 또한 그것은 마찬가지로 적용이 된다. 연구개발과 기업문화혁신을 통해 미래를 준비해온 핀란드의 기적과 북유럽 강소국들의 성공에서 우리는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전과 대안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