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첫 흑인 ‘퍼스트 레이디’ 미쉘 오바마

‘불만에 찬 흑인 여성’에서 ‘백악관의 흑진주’로

2009-02-09     이연제 기자

 

오바마의 영원한 멘토 ‘미쉘 라본 로빈슨 오바마’
올해 초만 해도 미쉘은 직선적인 언행으로 보수세력에게 ‘불만에 찬 흑인 여성’이라는 집중 공격을 받았지만 선거운동이 진행될수록 청중을 사로잡는 능력을 과시하며 ‘흑진주’라는 평가를 받았다.
미쉘 라본 로빈슨 오바마는 1965년 1월 17일 시카고의 흑인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순수 흑인’이다. 그녀는 시카고의 사우스 사이드에서 성장했다. 미쉘은 영리한 아이였고 4살 때 집에서 읽는 법을 배웠고, 2학년을 건너뛰었다. 6학년 때 미쉘은 영재수업을 들었다. 몇 년  후에 그녀는 영재들을 위한 시카고의 첫 번째 고등학교에 다녔다. “그녀는 항상 똑똑했고 그녀가 교육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학교에 다니고 싶어 했다”고 그녀의 남매 크레이그가 말했다.
‘가장 영향력 있는 하버드 동문 100인’ 가운데 58위에 랭크되기도 한 미쉘 오바마는 명문 프린스턴대와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했다. 졸업 후 로펌과 시카고 시 정부에서 일했으며 비영리단체 등에서 다양한 사회활동을 했다. 시카고대 병원의 부원장을 맡기도 했다.
오바마와는 시카고의 한 로펌에서 만났다. 오바마가 인턴으로 로펌에 왔을 때 그의 멘토를 맡아 친분을 쌓았고 1992년 10월 결혼, 말리아(10)와 사샤(7)라는 두 딸을 두고 있다. 최근 ‘타이라 쇼 3’에 출연한 오바마는 정치적 노선보다는 자신이 로맨티스트임을 부각시키는데 더 힘을 쏟았다.
오바마는 아내 미쉘을 평생의 동반자로 얻을 수 있었던 짜릿한 에피소드를 공개했던 것이다. 회사의 직속 상관이었던 미쉘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다 번번히 거절당했던 그는 회식이 있던 날 미쉘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며 데이트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미쉘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에 반해 키스를 했더니 첫 키스가 초콜릿 맛이었다는 그의 쑥쓰러운 고백에 방청객들은 환호를 보냈다.
‘그 사람 과장이 없는 사람이에요’ 미국의 영부인이 된 미쉘 오바마는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들의 첫 만남에서부터 처음으로 자기에게 구애하던 시절의 첫인상에 대해서 그를 묘사한 표현이다. 또 미쉘은 젊은 오바마를 만났을 때 그가 어떤 식으로 옷을 입었는가를 말하면서 보통 젊은이들과는 다른 그를 기억하였다. 그는 사회사업가로 보이지 아무리 봐도 은행원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그에게는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가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특히 패션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훨씬 중요했던 것은 이미지 관리가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그가 어떻게 하면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였으니까요”라고 말했다.

 

미쉘, ‘가정적 퍼스트레이디’로 백안관에 안주할까
‘바쁘게 일하는 엄마이자, 운동과 건강식단을 챙기며 자기 관리도 잘하는 역할모델’. 백악관에 둥지를 튼 미쉘 오바마가 대학시절 룸메이트였던 앤젤라 애크리 변호사에게 최근 털어놓은 ‘퍼스트 레이디’로서의 생활 목표다. 하버드 로스쿨 출신의 변호사로 시카고대학병원의 부원장을 역임한 커리어우먼이기보다는, 두 딸 말리아(10)와 사샤(7)를 돌보는 가정적인 안주인으로 남겠다는 굳은 의지로 읽힌다.
‘아이들이 일반 아이들과 똑같이 생활 할 수 있도록 모든 일을 다 하겠다’고 밝힌 미쉘은  “내가 잠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생각하는 첫 번째 일은 나의 두 딸에 대한 것이고, 내가 잠자리에 들면서도 여전히 생각하고 있는 나의 두 아이에 대한 것이다. 나는 이 나라의 첫 번째 엄마가 되고 싶다” 이 대목에서 그녀는 가능한 항상 훌륭한 엄마로 남아 있고자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지난 선거운동기간에 미쉘은 두려움을 모르는 눈부신 연설가로 재탄생하였다. 경쟁자인 신디 매케인을 능가했다. 신디는 미쉘에 비하면 얌전하고 말수가 적었다. 또한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주요 지지 기반은 변화와 개혁을 갈망하는 진보세력이었지만, 미쉘의 이런 태도는 보수세력의 지지를 얻어내는데도 한몫 거들었다. 백인 중산층 지역에 거주하면서 오바마를 찍지 않았다고 밝힌 한 미국인은 “미쉘은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는데도 균형을 잘 잡고 있다.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이자 남편에게 좋은 아내가 되는게 구닥다리처럼 들리지만 아주 중요한 일”이라며 미셸에게 지지를 보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했다.
미셸 오바마는 남편과 마찬가지로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와 CBS뉴스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6%가 미쉘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반감을 표시한 사람은 7%에 불과했다. 이는 1980년 이후 가장 높은 퍼스트레이디 호감도다.

 

측근인사 정치색채 강해, ‘힐러리처럼 목소리 낼 것’ 전망도
미국 대통령 부인은 백악관 안주인 이상의 역할이 요구된다. 프린스턴대,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재원인 미쉘 오바마는 상수도 펌프 운전기사, 민주당 지구당 당직자, 잡지사 등 다양한 경험도 갖고 있다. 중산층 가정 출신인 만큼 저소득층에 대한 이해도 어느 퍼스트레이디보다 깊다. 이로 인해 미 역대 퍼스트레이디 중 큰 족적을 남긴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리노어여사, 빌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여사에 버금가는 활동을 펼칠 것으로 기대된다.
미쉘 오바마는 자원 봉사와 군인가족 지원 등 종전의 퍼스트레이디들이 집중했던 역할뿐 아니라 소외계층에 적대적인 고용시스템, 반인종차별법의 처벌 강화 등 보다 미묘한 문제에서 힘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미셸의 오랜 친구이자 비영리 교육지원단체 퍼블릭앨리의 폴 슈미츠는 지난 1월 20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미쉘 오바마)가 가진 경험은 퍼스트레이디로서는 매우 독특한 것”이라며 퍼스트레이디로서의 미쉘의 활약에 대한 기대감을 피력했다. 슈미츠는 특히 미셸 오바마가 저소득층과 여성 등 소외계층 문제에 전문성을 발휘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대선 기간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드러냈을 때 남편이 보수파의 공격을 받았던 것을 고려, 취임 직후 미셸은 한동안은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며 전통적인 퍼스트레이디의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직접 코디네이터를 고용, 백악관의 모습을 중산층 가정의 모습으로 꾸민 것 역시 이 같은 미쉘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다.
반면 미쉘이 엘리트 출신인데다 측근 인사들의 정치 색채가 강해, 과거 힐러리 클린턴처럼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영부인이 되리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미쉘은 군인 가족과 맞벌이 부부 등을 지원하는 등 전통적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일반인들에게 백악관이 좀 더 접근하기 쉬운 곳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애크리 변호사는 “선거 전 미셸은 백악관을 지역 공동체, 특히 어린이들에게 개방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며, “말리아와 사샤의 친구들이 백악관을 꽤나 들락거릴 것이다. 이제 권력과 돈이 있는 집안 아이들 말고도 점점 많은 어린이들이 ‘나 백악관 가봤다’고 자랑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애크리는 “미쉘이 유기농 식품을 신뢰하지만 유기농 식품을 살 형편이 못 되는 일반인들의 건강과 영양에 대해서도 걱정하는 퍼스트레이디가 될 것”이라며 “유기농 식품을 먹으러 백악관에 오는 아이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첫 흑인 퍼스트 레이디의 역사적 의미는 작지 않다. 워싱턴 스미소니언 미국역사박물관의 퍼스트레이디관에는 벌써 미쉘의 사진이 걸렸다. 미쉘의 사진 맞은 편에 있는 조지 워싱턴 대통령(초대)의 부인 마사는 노예농장을 경영하며 흑인 노예를 부리던 인물이었고, 미쉘 사진 위에 있는 제임스 포크 대통령(11대)의 부인 세라는 “노예든 하녀든 다 자기 역할에 맡게 태어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오늘날 박물관을 찾는 이민자 2세들은 “이제야 나도 미국인이란 느낌이 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제2의 ‘재클린 케네디’ 미쉘오바마, 미국의 패션아이콘으로
지금 미국에선 최초의 흑인 영부인이 된 미쉘의  ‘재키 스타일’ 패션이 화제다. 美 대선에서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기까지, 그 뒤에서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한 미쉘은 미국 곳곳의 유세 현장을 누비며 세련된 모습을 보여왔다.
특히 볼륨을 넣은 풍성한 단발머리에 여성스러운 원피스 정장, 진주 목걸이로 멋을 부린 미쉘의 패션은 ‘재키 스타일’로 유명한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의 옷차림과 비슷해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미쉘은 지난해 9월 17일 미국 대중잡지 피플지가 뽑은 10대 여성 베스트 드레서에 오르기도 했다. 무명 디자이너의 옷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진 미쉘은 외신에서도 좋은 패션 감각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ABC뉴스는 “미쉘의 옷차림은 세련됐지만 서민들과 위화감을 조성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데 이어 워싱턴포스트는 “미쉘은 주류에서 소외된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명성을 알릴 기회를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멋진 외모로 제2의 ‘재클린 케네디’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미셸은 미국의 최초 흑인 퍼스트 레이디로 오바마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 줄 거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녀는 현명한 조언자이자 오바마의 실절적인 멘토이다. 오바마는 그가 무언가에 대해서 확신이 서지 않을 때 그녀에게 항상 조언을 구했다. 미쉘의 결단력과 재치, 그리고 강한 의지는 오바마가 무엇을 해야 할 지를 알아내는데 항상 도움을 주었다.
그녀는 남편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출마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것이 가능한 지 여부에 대해서 확신하지 않았다. 그녀는 의문점이 있었고, 그에 대한 해답을 원했다. 그녀는 어떻게 선거운동 자금을 모을 것이며 선거전략은 무엇인지를 알고 싶었다. 그러한 계획들이 더욱 현실적이고 분명해 졌을 때, 그녀는 가능성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자신의 남편의 선거 운동을 돕기 위해서 자신의 재능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훌륭한 연설가인 그녀는 열정과 용기를 가지고 그녀의 남편을 위해서 쉬지 않고 선거운동을 했다.
미쉘은 “이 나라의 국민들은 변화할 준비가 되어있고 다른 종류의 정치에 굶주려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한마디 하겠습니다. 저는 제 성인기에 처음으로, 희망이 마침내 돌아온 것 같기 때문에, 제 조국에 대해서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 2008년 2월 18일 연설에서 말했다.

 

 

백악관 할머니 기자, 10명의 美대통령 취재 진기록
 

     ‘살아있는 전설’ 헬렌 토머스(89) 기자, 오바마 행정부 출범 백악관 브리핑 참석

반세기에 가까운 48년 동안 백악관을 출입하며 9명의 역대 대통령을 취재해온 ‘살아있는 전설’ 헬렌 토머스(Helen Thomas) 기자가 10번째 미국 대통령 취재라는 진기록을 달성했다.
“이번 대선에서 오바마에게 한 표를 던졌지만 앞으로 오바마와의 허니문은 없을 겁니다” 무려 48년 동안 백악관을 출입하며 날카로운 ‘송곳 질문’으로 9명의 대통령을 몰아세웠던 ‘할머니 기자’가 지난 1월 12일(현지시간) 취재 일선에 복귀하며 던진 말 한마디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이는 당연한 언론의 속성 아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오바마도 ‘송곳 질문’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주인공은 미국 언론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올해 88세의 헬렌 토머스(Helen Thomas). 이 할머니 기자는 올해 5월 위장질환으로 일선 취재현장을 떠났다가 반년만에 지난 주 백악관 브리핑룸에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데이너 페리노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 앞서 토머스 기자에게 다가가 반갑게 악수를 청했고, “너무도 보고 싶었던 헬렌 토머스가 복귀하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며 깍듯이 예우했다. 토머스는 이날 백악관 브리핑룸 맨 앞줄 정중앙에 마련된 자신의 ‘지정석’에 앉았다. 그녀의 ‘상징’이기도 한 백악관 브리핑룸내 유일한 지정석 밑에는 ‘헬렌 토머스’라는 이름이 동판으로 새겨져 있다.
흔히 새로운 정권은 출범 초기 국정의 안정적 기반이 다져질 때까지 언론에 비판적 보도를 자제해 줄 것을 요청하며 이른바 ‘언론과의 허니문’을 꺼내 들곤 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권력과 언론의 허니문’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권언유착(權言癒着)’이다. 언론에게는 국민의 눈과 귀를 대신해 권력을 감시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부여돼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심장부인 백악관을 반세기 가깝게 취재해 온 헬렌 토머스는 이날 당연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언론의 정도(正道)를 새삼 강조했던 것이다. 미국에서 헬렌 토머스 기자의 존재 가치는 불편부당(不偏不黨)한 언론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녀를 바라보는 많은 미국인들은 그녀가 작성한 기사의 내용 못지않게 언론인으로서 갖춰야 할 자세에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그녀의 백악관 브리핑룸 복귀 소식은 이날 유튜브를 비롯해 각종 인터넷 동영상과 주요 언론의 화제기사가 됐다. 특히 많은 누리꾼들이 돌아온 그녀에게 ‘환영합니다’가 아닌 ‘고맙습니다’라는 댓글을 남긴 것을 보면서 부러움과 부끄러움이 교차되기도 했다. 국민의 눈과 귀를 대신한다는 언론이 정작 국민들로부터 질시와 냉대를 받는다면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과거 ‘권력의 시녀’로 전락했던 한국 언론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앞에 두고 지금의 우리 언론은 과연 떳떳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물론 일부 언론의 얘기겠지만 ‘언론의 권력 눈치보기’와 정권의 ‘특정언론 편가르기’ 행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노무현 정부에 이어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에도 언론개혁을 명분으로 일련의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지만 낙하산 인사논란 속에 파열음만 불거지고 있다. 언론은 국민을 두려워해야 하지만 권력에 두려워해서는 안되며, 권력은 그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언론을 좌지우지할 수 없는 일이다. 혼돈에 빠진 한국의 권력과 언론. 헬렌 토머스의 교훈을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