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통령 공식 취임, 美역사의 새장을 열다
200만 명 운집…전 세계가 주목한 미 대통령 취임식
카터, 아버지 부시, 클린턴 대통령 등 생존한 전임 대통령도 미국의 새 역사가 펼쳐지는 순간을 200만 군중과 함께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 수정헌법 20조에 규정된 신구 권력 교체시점인 이날 정오께 존 로버츠 대법원장 주관 아래 링컨 전 대통령이 지난 1861년 취임식 때 사용했던 성경에 왼손을 얹고 취임선서를 했다. 오바마 대통령에 앞서 조 바이든 부통령 당선인도 존 폴 스티븐슨 대법관 주관으로 선서를 하고 부통령에 취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식 직후 상·하 양원 취임식 공동위원회 주최로 열리는 오찬에 참석한 뒤 오후 2시 30분께 의사당에서부터 백악관이 위치한 펜실베이니아가 1600번지까지 기념행진을 벌였다. 당시 오바마 내외는 백악관으로 향하는 전용 리무진을 타고 퍼레이드를 하던 중 갑자기 차에서 내려 거리를 행진해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거리를 메웠던 시민들은 환호성을 질렀으며 취재진은 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열띤 취재 경쟁을 벌였다.
네 시간가량 이어진 가두 행진에서 시민들은 가치를 바탕으로 세계의 지도자가 되겠다고 선언한 새 대통령에 박수를 보냈다.
앞서 오바마 내외는 이날 오전 8시 45분 역대 대통령들의 관례대로 성 요한 교회에서 비공개 예배를 본 후 백악관으로 이동, 조 바이든 부통령 당선인 내외와 함께 이임하는 부시 대통령 내외, 딕 체니 부통령 내외와 커피를 마시며 환담했다.
이날 오바마의 취임식은 미국 노예해방을 선언했던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의 탄생 200주년의 해에 열린데다 흑인 민권운동가였던 마틴 루터 킹 목사 기념일 이튿날 치러져 미국의 인종문제진전과 민주주의 심화라는 역사적 의미를 보냈다.
짧고 간결한 흡인력 있는 취임사 눈길
취임식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취임사였다. 명연설가로 유명한 오바마가 링컨과 케네디에 견줄 만한 취임사를 펼칠지 전 세계가 관심을 갖고 한마디 한마디에 주목했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사는 미국이 처해 있는 상황과 되살려야 할 건국 당시 이상들을 주요테마로 변화·희망·통합 메시지를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선서 후 행한 취임연설에서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새로운 책임의 시대”라면서 “어려운 과제에 우리의 모든 것을 바치는 일 보다 우리의 정신을 만족시키고, 이를 통해 우리의 성격을 규정짓는 일은 없다”고 모든 미국민의 책임감 있는 행동을 촉구했다.
또 오바마 대통령은 경제위기 및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예로 들면서 “우리가 직면한 도전과제들은 실제상황이며, 쉽거나 짧은 시간에 극복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할 수 있고,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미국의 앞선 세대들은 미국의 힘이 우리가 힘을 신중하게 사용할 때 나오며, 우리의 안보는 대의명분이 올바를 때 나온다고 믿었다”면서 “우리는 이라크를 주민들에게 책임있게 넘기는 작업을 시작할 것이며,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어렵게 얻은 평화를 진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강조, 오래된 친구는 물론 예전의 적들과 함께 핵위협을 줄여나가는데도 부단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는 이런 유산을 다시 한 번 이어받아 다른 국가들과 더 많은 협력과 이해를 통해 안보위협을 극복해 나갈 것”이라고 밝혀 조지 부시 행정부의 힘에 의존한 일방외교에서 탈피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경제위기와 관련해서는 “경제상황은 과감하고도 신속한 행동을 요구하고 있으며, 우리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은 물론 성장을 위한 새로운 기초를 닦는 등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언명하며 “이번 경제위기는 감독의 시선이 없을 경우 시장은 통제에서 벗어나게 되며, 오로지 부유한 자들만을 위하면 국가는 장기간 번영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재삼 일깨워줬다”고 말해 금융위기 재발방지를 위한 감독기능 강화 방침을 강력히 시사했다.
오바마 취임사에는 ‘우리(We)’ ‘우리의(Our)’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했다. 이는 지난해 대선 당시 사용했던 슬로건인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의 연장선상에서 위기극복을 위한 미국의 총체적 단합과 책임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Challenge, Our journey, Our responsibility 등 주체 대상을 주어로 명명하는 경우가 많았고 ‘미국을 다시 개조하는 작업’을 시작하겠다는 의미를 the work of remaking America로 표현한 점도 눈에 띄었다.
그의 간결하고 흡인력 있는 취임사는 역대 미국 대통령보다 약간 짧은 18분 30초에 마무리 됐다.
한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이튿날인 2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취임 선서를 다시 했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이 22일 보도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전날 취임식장에서 존 로버츠 대법원장의 실수로 취임 선서문의 어순을 바꿔 낭독했기 때문이다.
오바마 취임 연설 80% 이상 긍정적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취임 연설에 대해 전직 대통령의 연설문을 작성했던 이들의 평가는 엇갈렸다. 이날 가디언이 실시한 인터넷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0% 이상은 오바마의 취임 연설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1961년 존 F 캐네디 대통령의 취임 연설을 썼던 테드 소렌슨은 “연설 자체와 그 내용은 위대한 날을 상징했다”고 극찬했다. 소렌슨은 지난 1월 21일 영국 일간 가디언 인터넷판에 기고한 글을 통해 “그의 연설은 전달력면에서 탁월하고 강력했다”면서 “그의 성실함과 결의가 묻어 있는 연설이었다”고 평가했다. 또 “전반적으로 사려 깊은 연설이었고 자유를 위해 싸운 선조들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매우 힘이 넘쳤다”면서 “해외에서도 그의 연설을 높이 평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1·2기 취임사를 작성했던 마이클 거슨은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사는 문학적 관점에서 진부했다”고 혹평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 연설 직후 보수성향의 폭스뉴스에 출연, 취임식에서 드러난 오바마 대통령의 존재감 및 취임사 주제의 강렬함과 공감대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놀라운 사실은 이처럼 중요한 시점에 이번 연설은 너무 평범했다”고 지적했다.
지구촌 새 미국 대통령에 대한 기대로 축제 분위기 물씬
독일의 한 클럽에서는 오바마의 취임 선서가 끝나자 지켜보던 1,500명의 시민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러댔다. 같은 시각 영국에서도 러시아에서도 홍콩과 인도네시아에서도 10억 명 넘는 사람들이 TV 앞에 앉아 새 미국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했다. 분쟁지역 코소보에는 오바마의 취임을 축하하는 대형 포스터가 내걸렸고, 중동에서는 파병된 미군들에게도 현지인들에게도 부시가 가고 오바마가 오는 순간의 의미는 남달랐다.
오바마 대통령과 이름이 같은 일본의 오바마 시에선 오바마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하와이식 축하공연이 열렸고, 남미 콜롬비아에서는 남녀노소가 거리로 나와 기쁨의 춤판을 벌였다.
오바마 아버지의 나라 케냐에선 모의 취임식과 퍼레이드가 진행되는 등 지구촌 곳곳이 새 미국 대통령에 대한 기대로 들뜬 하루를 보냈다.
특히 케냐에서는 오바마 이름이 새겨진 30달러짜리 ‘오바마폰’이 출시됐다고 대만 공상시보(工商時報)가 보도했다. 중소 휴대전화 제조업체가 만든 오바마폰의 뒷면에는 영문 이름 ‘OBAMA’와 대선 과정에서 그가 내세운 ‘예스, 위 캔(Yes, We Can)’ 이라는 구호가 새겨져 있다. 이 회사 측은 “오바마 대통령의 생부(生父)가 케냐 출신인 점에 착안해 이 제품을 현지에서 처음 선보였다”며 “출시 일주일 만에 1,000대 이상 팔리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저가폰인 만큼 기능을 최소화했고, 현지 전력 사정이 좋지 않은 점을 감안해 발광다이오드(LED)를 휴대전화 뒷면에 달아 손전등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오바마 신드롬’에 경제가 웃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인기 덕분에 오바마 캐릭터 상품이 세계적인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역대 대통령보다 3배가 넘게 팔려 ‘오바마 신드롬’을 낳고 있다고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지난 1월 23일 전했다. 뉴스위크에 따르면 미국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오바마 맥주를 마시고 오바마의 얼굴이 새겨진 옷을 걸친 채 오바마의 저서를 읽으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일이 더욱 잦아지면서 오바마 증후군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소매업계를 겨냥한 웹포털인 ‘홀세일닷컴’은 오바마를 주제로 한 장난감, 골동품, 소품 등 455종의 상품을 만들어 판매에 나섰고 마우스패드나 벨트, 넥타이 등은 물론 ‘핫포유’라는 이름의 오바마 핫소스까지 등장했다. 소매업자들은 비틀즈 멤버였던 존 레넌의 캐릭터 상품 바로 옆에 오바마 소품을 진열해 놓고 손님을 맞고 있다.
펩시콜라는 최근 광고에 ‘희망’, ‘변화’, ‘낙관주의’ 등 오바마가 즐겨 사용하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가구유통업체 이케아는 오바마 판촉 전략을 곳곳에서 선보이고 있다.
과거 수십 년간 미국에서 대통령이 취임하게 되면 대통령의 캐릭터를 활용한 상술이 성공을 거둔 사례가 여러 번 있었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경우는 좀 유별나다.